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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94화 (392/415)

< 394화. 산양 주점 >

“이제 좀 걸을 수 있게 됐네?”

무한의 땅을 벗어나고 마주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들이 위태롭게 존재하는 협곡이었다. 사실상 샤이야를 앞에 두고 존재하는 마지막 관문이나 마찬가지.

듣기로는 샤이야까지 이틀거리라고 했다. 길었던 여행이 끝나감을 실감하게 되는 거리였다.

“신기한 기분이네요. 평생 기어 다녔었는데······.”

프레위르가 흐뭇한 얼굴로 걷고 있는 네브로에게 말하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마법을 반쯤 사용하며 이동했지만 오늘은 대부분 직접 걷고 있는 네브로였다.

“그나저나 일리아스는 좀 어때요?”

“일리아스는 괜찮아.”

갈락슈르의 후유증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일리아스는 슬쩍 토르의 눈치를 살폈다.

“으음? 뭘 그렇게 쳐다보냐, 광대!”

“······아무것도 아니야.”

헐렁한 왼팔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죄책감을 가진 모양인데 토르는 전혀 개의치 않는, 오히려 왜 쳐다보는지조차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대인배라고 해야 할지, 그냥 미쳤다고 해야 할지.’

그때 앞서 걷던 토르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으하하! 산양 주점이구나! 모험에 주점은 빠질 수 없지!”

그의 말대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기괴한 건물이 한 채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런 협곡에 주점은 조금 황당했지만 이제 놀라기도 지쳤다.

“바로 가야······.”

“주점은 못 참지! 으하하하!”

일리아스가 가야된다고 말했지만 토르는 듣지도 않고 주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프레위르가 씁쓸하게 웃으며 일리아스에게 말했다.

“어차피 내일이나 모레면 도착하지 않아? 조금 쉬었다 가지, 뭐.”

“으음······.”

일리아스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발걸음을 주점으로 향했다.

[“이런 곳에 주점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토르님은 여길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산양 주점이라고 했나.

장소도 장소인 만큼 평범한 곳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딸랑-

“어이, 판! 안에 있나!”

벌써부터 쩌렁쩌렁한 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브로가 아직은 익숙치 않은 다리로 급히 뒤따라 건물로 들어가자 평범한 주점의 내부가 반겨주었다.

“의외로······평범하네요.”

“판이 운영하는 주점이야. 판이 누군지는 알지?”

프레위르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네브로를 쳐다보았고 네브로는 쑥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아는 게 뭐냐?”

나도 궁금해진다. 넌 대체 아는 게 뭐냐.

“프레위르도 알고 계신 걸 보면 생소한 곳은 아닌 모양이네요.”

“당연히 와본 적은 없지. 나도 라스틸리아에서만 쭉 살아왔으니까. 대신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지.”

“어이, 판! 빨리 나와서 주문 받아라!”

자연스레 탁자 하나를 잡고 착석한 일행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르가 여전히 주인장을 찾으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미 익숙해진 그들에게는 대화를 나누기에 별 지장이 없었다.

“여행도 끝이네.”

“그러게요.”

네브로와 프레위르의 시선이 자연스레 일리아스로 향했다. 무려 50번의 회귀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온 그녀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겠지.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일리아스는 그런 그들을 향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무사히 온 적은 있었어?”

“······처음이야.”

“거 봐. 이번에는 성공할 거야.”

기분이 싱숭생숭하겠네. 오히려 지금이 가장 불안할 것이다. 그러니 토르한테 바로 가자고 말한 거겠지.

끼익-

주점 안쪽에서 소음이 들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부시시한 모습의 소년이었는데 하반신은 역관절로 된 산양이었고 상반신은 인간이었으나 뿔이 달려있었다.

“뭡니까, 너희들.”

“으하하! 판! 손님이 없다고 또 자고 있었던 거냐!”

“토르, 왜 그 꼴입니까. 왼쪽 팔은 어디에 팔아넘겼어요.”

판이라 불린 반인반수의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술통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토르에게 건네고는 잘린 왼팔을 확인했다.

“깔끔하게 잘렸네요. 검입니까?”

“그래! 으하하하!”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말려들게 하지 말아주세요.”

거기까지 말한 판은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토르의 일행들?”

“내 광대들이다!”

“없는 거 빼고 다 있습니다. 뭐 먹을래요.”

판의 자연스러운 접객에 일행들이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

“황금 돼지 구이.”

“라스틸리아 차도 있나?”

“저, 전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 중 아무거나······.”

-사과!

주문을 받은 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점의 안쪽으로 돌아갔다. 이내 몇 초 만에 나온 판의 양손에는 음식들이 들려있었다.

[“신기하네.”]

“음?”

내가 감상을 중얼거리자 판의 고개가 돌아갔다. 180도로 돌아가는 목이 그로테스크했다.

[“그렇게 보니까 무서운데.”]

“손님이 하나 더 있었네요.”

판은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고 네브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를 보는 거겠지만 네브로는 부담스러운지 몸을 움츠려들었다.

“네가 네브로입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 절 아세요?”

날 보는 게 아니었구나.

네브로를 처음 보자마자 아는 인물은 판이 처음인 것 같았다.

“네 형이 말해주었습니다.”

“제 형이요?”

“사마엘.”

판은 그리 말하며 술통을 하나 더 들고 왔다. 그리고는 다시 토르의 앞에 내려놓았는데 토르는 어느새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으하하하! 좋구나! 노래를 불러봐라, 광대들아!”

-노래! 노래!

사과를 씹던 그린나래가 웬일인지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며 토르와 어울렸다. 분위기가 묘하다고 생각이 될 무렵, 네브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판에게 물었다.

“사마엘 형님을 아세요?”

“당연히 알지요. 얼마 전에 이곳으로 찾아왔었는걸요.”

“얼마 전에······?”

“너에 대한 말을 해주었지요.”

판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이내 다른 이들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더니 중얼거렸다.

“곧 올 시간이군요.”

“누, 누가요?”

네브로가 당황하는 동시에 몸을 긴장시켰다. 지금 보니 음식에 입을 대지 않은 건 네브로뿐이었다.

토르가 너무 자신 있게 들어와서 모두 긴장을 늦추었던 걸까. 아니면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 자체가 판의 능력인 건가.

“특이하네요. 내 앞에서 긴장을 할 수 있다니. 확실히 사마엘이 신경 쓸 만하군요.”

“뭘 꾸미고 있는 겁니까!”

네브로의 마력이 모였다. 그럼에도 나머지 일행들은 헤롱헤롱한 상태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딱히 꾸미는 건 없습니다. 난 그냥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

두두두두!

건물 밖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발소리, 아니 말발굽 소리였다.

[“일행들을 깨우는 게 먼저다.”]

“예.”

네브로의 마나가 주점 내부를 순환했다. 그러나 공간이 일그러지며 네브로의 마법을 거부했다.

“이곳은 내 공간입니다. 그 어떤 신이나 초월자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날 이길 수 없어요.”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재밌으니까? 난 갈등이 좋거든요.”

쿵!

주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오는 인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우르르 들어오는 인물들의 귀는 마치 누군가의 그것처럼 뾰족했다.

“엘프?”

네브로가 당황한 눈으로 그들을 보며 말하자 선두에 선 엘프가 차가운 시선으로 네브로를 보았다.

“······.”

말없이 한 차례 훑어본 엘프는 이내 노래를 부르며 취한 듯 행동하는 프레위르를 보고는 판에게 말했다.

“보수는 지금 바로 주지.”

“좋아요. 데려가요.”

보수? 데려가?

네브로가 다급히 그 엘프의 앞을 막아섰다.

“누, 누구시죠? 도대체 왜 저희를······.”

“저희?”

엘프가 싸늘한 눈으로 네브로를 바라보았다.

“난 내 딸을 데리러 온 것뿐이다.”

“······뇨르드?”

프레위르의 아버지였다니 이건 예상 밖인데.

그나저나 여기에 올 줄은 어떻게 알고 미리 판에게 의뢰를 해놓은 거냐.

“알았으면 비켜라.”

뇨르드도 초월자였다. 비록 우리와 함께하는 토르나 이전에 보아온 초월자들에 비해 격이 좀 떨어지지만 초월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 안 됩니다!”

“······.”

네브로는 일행들의 술판을 곁눈질하면서 양팔을 벌려 뇨르드를 막았다. 그러자 뇨르드는 하찮다는 눈길을 보내더니 턱짓했다.

“치워라.”

“넵!”

뇨르드와 함께 온 엘프들이 네브로를 향해 다가왔다.

[“검.”]

내 의지가 전달되자 네브로가 프레위르의 검을 염동력으로 뽑아 들었다.

“부탁드립니다. 이제 목적지가 코앞이에요. 프레위르를 데려가는 건 그 이후로······.”

“너희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안다. 알고 있기에 여기서 미리 대기할 수 있었던 거지.”

뇨르드가 차가운 목소리로 네브로에게 말했다.

“샤이야에 도착하면 끝인 줄 아는 건가?”

“예?”

“난 내 딸을 지키기 위해 데려가는 거다.”

뇨르드가 단호하게 말하며 손짓했다.

“어서 프레위르를 데려와라.”

그러자 엘프들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네브로를 향해 다가갔다.

촤앙!

“보, 본인의 의사는 중요하지도 않다는 말입니까!”

“딸이 사지로 들어간다는 걸 보고 있을 부모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적어도 설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뭣도 모르는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데려가려고 하신다면 전 막을 수밖에 없어요.”

네브로의 검이 춤을 췄다. 다가오는 엘프들을 위협적으로 막으면서도 상처 하나 만들지 않는 상승의 검술이었다.

‘그새 성장했다.’

천마의 검을 본 게 그만큼이나 영향을 끼친 것일까. 하여간 이 녀석도 절대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다.

“으윽.”

“크음.”

수하들이 막히자 뇨르드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직접 나서기 위해서인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브로여.”

“절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 그대는 지금 내 딸을 걱정할 때가 아니야.”

뇨르드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담겼다. 갑자기 왜 저러지?

“내가 샤이야를 사지라 불렀는지 아느냐?”

“거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말하면 안 돼요.”

지켜보고 있던 판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태평하게 말했다.

“이것도 부탁받았거든요.”

“철저하군.”

상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판에게 이 상황을 부탁한 게 뇨르드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

[“또 누가 부탁을 했지?”]

“영업 비밀입니다.”

아무래도 갈락슈르를 노리는 적들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기 들어온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던 듯싶네.

[“판, 넌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지.”]

“나한테 부탁이라도 하시려고요? 하지만 넌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지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주겠다.”]

“지식?”

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판에게 나는 말했다.

[“미래의 지식을 알려주마.”]

“······미래?”

판의 눈이 세로로 찢어졌다. 마치 염소의 눈과 같이 변한 판의 눈이 네브로의 전신을 훑었다.

[“대신 넌 일행들을 다시 멀쩡한 상태로 만들어줘야 해.”]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요?”

판이 의심하자 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내 존재 자체가 미래에서 왔는데 의심을 당한 다는 게 유쾌한 기분이었다.

[“판, 갈락슈르는 결국 샤이야에 도착한다. 그리고 무사히 봉인되지.”]

“소설을 쓰나요? 그리고 봉인이라니? 기껏 완성해놓고?”

[“끝이 아니야. 또 하나 말해줄 게 있지.”]

“······.”

[“언젠가 모든 초월자들은 갈락슈르에서 추방당한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의지에 판뿐만 아니라 네브로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도 전부 정적에 휩싸였다.

[“인간의 시대가 찾아오지.”]

판의 눈이 좁혀졌다.

“넌, 예언자인가요?”

< 394화. 산양 주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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