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92화 (391/415)

< 392화. 전투 그리고 위기 >

“달려라, 광대들아! 으하하하!”

무한의 땅.

알고 보니 이곳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고, 그 길이 또한 측정이 되지 않는 신비의 땅이었다.

운이 좋으면 당장 1시간 뒤에 샤이야 근처로 도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몇 달이 걸려도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길어도 최대 1년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다행이지.’

대신 그 안에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면 도착하게 되는 장소는 무작위였다. 이쯤 되면 무한의 땅이 아니라 랜덤의 땅이라 불러도 상관없겠는데.

“조용해졌네요.”

무한의 땅에 들어서자 온갖 마수들과 추격자들이 사라졌다. 입장하기 전에 토르가 정리한 것도 한 몫 했겠지만 무한의 땅이 가진 특성이 큰 역할을 했다.

“오른쪽.”

가는 도중에는 일리아스가 방향을 잡았다. 그녀는 무한의 땅에서 샤이야로 가는 길을 공식처럼 알고 있었는데 이건 회귀 때문이 아닌 혈통 덕분이라고 한다.

“이대로만 가면 별 문제없겠는데?”

프레위르가 순조로운 여행을 보며 편해진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초반을 제외하면 정신없는 여행이었던 것 같은데 간만에 편하긴 하네.

‘토르 덕분이지.’

단지 의문이라면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는 건데 처음부터 석가모니가 좀 강한 초월자를 붙여줬으면 안 됐나 싶었다.

“아직이야.”

그때 일리아스가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프레위르를 향해 말했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어.”

“또 뭐가 있는 거야? 그냥 미리 말 좀 해줘라.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게.”

프레위르의 말에 일리아스의 시선이 토르에게 향했다.

“토르가 우리랑 함께하는 이상 인과율의 제약을 받게 돼.”

“뭔 소리야?”

“일행 중에 초월자가 존재하면 적도 초월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 전까지는 초월자가 우리를 직접 건드리면 인과율의 제재를 받았어.”

일리아스의 말에 토르를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천사님은?”

“천사님은······조금 이상해. 갈락슈르의 인과율에서 벗어난 느낌. 무력도 강하지 않으니까 인과율에 제재를 받을 일도 없어.”

“무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네.”

그때 앞서 걷고 있던 토르가 우리를 돌아봤다.

“광대들아, 서사시는 잘 쓰고 있나?”

“서사시?”

“응.”

네브로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일리아스는 익숙하다는 듯 끄덕였다. 그러자 토르가 크게 웃으며 팔자걸음으로 나아갔다.

“그래, 그래! 근데 중요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 너희다! 너희들도 지금 서사시를 써내려가는 거다!”

“뭐 그리 거창한 거라고 시까지 써······.”

프레위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보고 광대라고 하는데 시 정도는 쓸 수 있지.”

“어이, 뇨르드의 광대! 서사시는 중요하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하던 토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크게 뜨인 그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일행들 사이에서 긴장된 기운이 맴돌았다.

“왔다.”

일리아스가 짐작했다는 듯 말하며 갈락슈르를 꺼내 들었다.

[“누가 왔다는 거야.”]

“여동빈.”

여동빈은 또 누군데.

이름은 동양풍이니 그쪽 관련 초월자인가 싶었는데 하늘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을 밟고 선 사내가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찾았다.”

저 자가 여동빈?

딱 봐도 ‘나 강해요.’ 라고 쓰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으하하하! 설마 여동빈, 네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올 줄이야!”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나도 나서지 못했겠지.”

여동빈의 말에 토르가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네가 지금 하려는 짓이 무슨 짓인 줄은 알고 그러는 거냐!”

“도의에 어긋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내 정의를 관철시킬 뿐.”

광인처럼 보이지만 순수하게 우리를 도와주는 토르와 멀쩡해 보이지만 결국 갈락슈르를 뺏으러 온 여동빈이 대조되어 보였다.

“토르.”

“걱정마라, 광대야. 저 녀석은 내 상대가 안 된다.”

토르가 자신을 부르는 일리아스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여동빈을 쓰러트려도 그 다음이 있을 수도 있어. 일리아스가 갈락슈르로 여동빈의 움직임을 딱 한 번 막을 수 있으니까 신호를 줘.”

“그 다음이라······.”

토르는 여전히 묘한 미소를 띠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광대야! 네 도움을 받지!”

“잘 생각했어.”

독불장군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도움을 받겠다는 토르를 보자 다시 보게 된다.

그는 생각보다 이성적이었고, 아마 상대인 여동빈이 생각보가 강한 거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되자 네브로와 프레위르, 그린나래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천하의 토르조차 긴장할 상대면 나머지는 할 게 없지.

[“방해나 되지 않게 비켜라. 네브로, 넌 마법으로 지원이라도 해보고.”]

“요즘 따라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는데······.”

프레위르가 순순히 물러나면서도 인상을 구겼다. 오러 마스터에 버금가는 검술 실력을 지녔음에도 최근 만나는 상대들을 보면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좋지 않았어.”]

“천사님이 알려주는 검술을 더 확실히 익힐 수만 있다면······.”

프레위르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짬을 내서 틈틈이 무결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쫓기는 상황에 여유가 많은 건 아니라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콰르릉!

전투는 곧바로 시작됐다.

토르가 선전포고를 하듯 천둥을 울렸으며 번개를 온몸에 둘렀고 여동빈은 여전히 구름 사이에서 부유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으하하하! 너와 싸우게 되는 건 처음이다! 항상 궁금했는데 잘 됐구나!”

마법 따위로 만든 번개가 아닌 순수한 자연의 힘이 담긴 번개가 여동빈을 노리고 쏘아졌다.

콰지지지직-------!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토르와 그 주변을 땅을 전부 불태웠고 여동빈이 만든 듯한 먹구름도 구멍이 뚫렸다.

“망치를 꺼내지 않으면 넌 날 상대하지 못한다.”

번개가 쏘아졌음에도 여동빈은 멀쩡했다. 오히려 토르를 나무라며 마치 공격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네브로.”]

“예, 옙!”

[“혹시 저 먹구름을 제어할 수 있겠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여동빈의 먹구름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저 구름을 네브로가 마법을 통해 제어해낼 수 있다면······.

콰르릉! 콰광!

어느새 가만히 공격을 받아주기만 하던 여동빈도 나서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번개와 함께 충돌로 인한 눈부신 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으하하하! 고작 그것뿐이냐!”

토르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망치를 꺼내들며 여동빈을 두들겼다. 그러자 이전과는 다른 굉음이 폭발하며 주변이 울렸다.

“크으.”

-날아간다!

단순한 전투의 여파로도 주변이 초토화가 되었다.

네브로가 급하게 보호 마법을 걸어준 덕분에 현장에 가까이 있던 일리아스가 무사히 서있었다.

“천사님! 됩니다!”

[“될 줄은 몰랐는데······. 토르를 도와봐.”]

네브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동빈의 먹구름마저 뺏어왔다.

쿠릉!

“음?”

한참 토르와 싸우던 여동빈도 이상을 느꼈는지 먹구름 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네브로가 뺏은 먹구름에서 검이 쏟아져 나왔다. 번개 대신 검을 쏟아내는 먹구름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았다.

“괴이한 능력이군. 사술인가?”

여동빈의 시선이 네브로 쪽으로 쏠렸다.

한 마디로 보스의 어그로를 끌어버린 상황.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냐!”

꽈르릉!

여동빈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자신의 검들도 막는 동시에 토르마저 상대해야 하자 겉보기엔 밀리는 형국이었다.

“다른 구름들도 곧 있으면 다 뺏어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잘했다.”]

역시 네브로는 미쳤다.

감히 누가 초월자의 공격을 뺏을 생각을 할까.

네브로의 몸에 있어서 그가 마력을 다루는 방식이 고스란히 느껴졌는데, 도저히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마법의 신이냐.’

어쩌면······.

네브로가 이대로 계속 강해진다면 정말로 마법의 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말 신기한 힘이긴 하군.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마치 무공처럼 매우 정교해.”

누구?

순간 등 뒤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프레위르가 경악하며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만······.

“네브로!”

“꺼져라. 본좌는 네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기척도 없이 등장한 인물은 프레위르를 가볍게 날려 보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엄청난 무리(武理)를 읽은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여동빈보다 강하다고?”]

“음? 하하, 본좌를 높게 쳐주어 고맙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상대의 동작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보니 어디서 본 얼굴과 모습이었다.

[“흐림을 막았던 그······.”]

“그래, 본좌가 그대들을 한 번 도와주었지.”

묵빛의 검과 묵빛의 도복을 입은 사내.

거칠게 기른 더벅머리를 대충 올려 묶은 사내의 얼굴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정리가 덜 된 가시 수염도 그런 인상에 한몫했다.

‘잠시만······이 기운하고 호칭은······.’

탑에서 보았던 속삭이는 자?

흐림은 쫓는 자, 그리고 스스로를 본좌라 지칭하던 탑의 주인이자 무림 쪽 초월자가 속삭이는 자였던 걸로 기억난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근데 아무리 봐도 우리를 도우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음, 실제로 보니 더 신기하군. 설마 천둥의 신이 너희를 돕는 이유가 그대 때문인가?”

[“모른다.”]

“······이제 보니 막혀있군. 스스로의 정체조차 감추어버렸어. 대체 무슨 제약을 스스로에게 건 것이냐. 하하.”

상대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염탐해왔다. 토르가 내 정체를 알아봤을 때와는 달리 훨씬 노골적이고 끈적이는 기운이었는데 내 전부가 샅샅이 뒤져지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건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계약을 한 것인가?”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대의 기분을 본좌가 배려할 이유가 있나?”

묵빛의 사내는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는 짓과는 달리 겉모습은 호감상인데 영 글렀다.

“네브로! 상대는 천마야! 도망쳐야 돼!”

그때 멀리까지 튕겨나갔던 프레위르가 입가에 선혈을 묻힌 채 소리 질렀다.

“천마?”

“그래. 본좌의 별호가 천마(天魔)다.”

천마? 그게 뭔데? 먹는 거냐?

네브로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위기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소란을 느낀 일리아스도 우리를 돌아보며 외쳤다.

“도망쳐!”

“일리아스?”

“천마는······내 계획에 없었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으나 너무 늦었다.

“토르가 왜 먹지 않고 남겨뒀는지 모를 일이군. 그렇다면 본좌가 잘먹어주지.”

묵색 도복의 사내, 천마가 손을 뻗어왔다. 그저 단순한 손놀림에 불과하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우웅-

네브로가 다급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그 판단까지 거의 0.1도 걸리지 않는 굉장한 반응 속도였고, 순식간에 네브로의 앞으로 마름모 형태의 프렉탈이 나열되었다.

콰직!

천마의 손길이 프렉탈을 부숴나가며 접근했다. 그 모든 모습들이 마치 사진 속 피사체의 프레임처럼 시야에 담겼다.

툭!

“아······.”

“노력은 가상하나 본좌를 막을 수 있는 건 없다.”

천마의 손이 네브로의 몸을 헤집고 들어갔다.

< 392화. 전투 그리고 위기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