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화. 신화의 한 자락 >
“드디어 마을이네.”
북구로주를 떠난 지 일주일.
그동안 노숙을 전전하며 걸어온 일행들은 처음으로 마을을 맞이했다.
‘대륙 자체의 인구수가 적은 느낌인데.’
일주일 만에 첫 마을을 조우했다는 점이나 그동안 살펴본 도시들의 양상을 보면 내가 살던 시대에 비해 사람이 적어보였다.
대신 온갖 기괴한 종족들과 초월자들, 그리고 신비들이 넘쳐나는 듯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사람이 적은 걸 수도.’
평범한 인간들이 살아남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위험했다.
마을의 경계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그 반응에서 평소에 외지인이 흔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서 오셨우?”
“위에서 왔다. 오늘 하루만 묵었다 갈 수 있을까?”
밭일을 하다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에게 프레위르가 나서서 대답했다.
“여행객들이우? 별일이구먼. 안쪽에 촌장의 집이 있으니 한 번 가보시라우.”
딱히 거절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일행들은 그녀의 손짓에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네.”
프레위르는 마을의 존재가 기껍다는 듯 웃으며 네브로와 일리아스를 바라봤다.
“다행입니다.”
“······.”
환하게 대답하는 네브로와 달리 일리아스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간 겪어온 일리아스는 다른 일행들과 사적인 대화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
“야, 일리아스. 넌 안 좋아?”
“일리아스는 이 일의 책임자야. 일이 무사히 끝나기 전까지 기뻐할 수 없어.”
일리아스의 대답을 들은 프레위르가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이내 앞장 서 나갔다.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나는 일행들이 다투든 말든 주변 환경과 상황부터 파악했다.
처음부터 느꼈던 거지만 뭔가 묘하게 긴장된 분위기가 마을 전체에 흐르고 있었는데 이게 과연 원래부터 그러한 마을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네브로.”]
“예.”
[“마을에 왔다고 긴장을 늦추지 마라. 오히려 마을이라 위험할 수도 있어.”]
“예.”
대답은 꼬박꼬박 잘해왔지만 전혀 경계하는 기색이 없는 네브로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아마 일주일동안 아무 일도 없이 온 덕분에 긴장이 풀린 거겠지.
‘나라도 신경을 써주는 수밖에.’
네브로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네브로의 마법적 능력이라면 웬만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애초에 이제 처음 세상을 경험하는 네브로가 나처럼 경계심이 많거나 노련할 수는 없는 법이지.
“저긴가?”
마을은 허름했다. 대충 지어진 집들은 가축과 인간이 함께 사는 듯 따로 구분이 지어지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울타리조차 없었기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약간은 봐줄만한 집이 한 채 있었는데 프레위르가 가리킨 집이 그것이었다.
그때였다.
‘살기!’
나만 느낀 건가?
아무 대책 없이 걷는 일행들을 보며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여실히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에 곧바로 의지를 날렸다.
[“네브로!”]
“예?”
[“살기가 느껴진다. 적이 있을 수도 있어.”]
내 의지가 전달되자 네브로의 몸이 바짝 긴장하며 굳었다.
“적?”
“뭐라고?”
일주일간 내 의지에 따라 함께 수련을 하게 된 프레위르는 네브로의 혼잣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사주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천사가 뭐라고 했어?”
“살기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주변에 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네브로의 말에 프레위르의 두 눈이 쌍심지를 켰다. 그리고 곧바로 검이 뽑혀 나오며 주변에 대고 소리쳤다.
“나와라! 우릴 노리는 거 다 들켰으니까.”
나였으면 모르는 척 조용히 있다가 습격해오는 상대를 제압했을 텐데 저 방법도 나쁘진 않겠군.
프레위르의 말에도 주변은 고요했다.
대신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 단번에 집중되는 게 명백히 느껴졌다.
끼익-
“음? 누구시오?”
그때 촌장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의 문이 열리며 삐쩍 마른 노인이 한 명 나왔다. 그리고 노인을 확인한 네브로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곧바로 마나를 모았다.
“뭔가 이상한데······.”
이내 자연스레 마법이 전개되며 노인이었던 사람의 겉모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너 저 노인한테 뭐한 거야?”
“역시 이상하다 했는데 변장을 하고 있었군요.”
나조차 느끼지 못한 마나의 흐름을 읽었던 모양이다. 노인은 네브로의 안티 매직을 맞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르.
‘수인?’
은회색의 털이 인상적인 늑대인간이었다. 이게 무슨 동화 속에 빨간 모자도 아니고 별 게 다 변장을 하고 있네.
수인은 눈앞의 녀석 하나뿐이 아니었다.
정체가 들키자 숨어있던 녀석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특이한 능력이군.”
뒤늦게 나타난 다른 늑대인간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푸른빛을 띠는 털이 유독 특이한 녀석은 다른 늑대인간들보다 훨씬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큰 정도가 아닌데.’
거의 집채만 하다고 해야 할까.
그 크기만으로 기세를 압도하고 있었다.
“촌장으로 변장한 걸 보면 마을을 인질로 잡고 있었군.”
“흐흐. 부정하지 않으마. 이미 며칠 전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프레위르와 대장처럼 보이는 늑대인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네브로에게 명령했다.
[“방심하고 있을 때 먼저 공격해라. 가장 강력한 걸로 기습적으로.”]
미리 알고 대기했다는 뜻은 결국 일리아스를 노리고 왔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가진 물건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싯다르타가 부탁한 만큼 결코 평범한 건 아니겠지.
“닉스의 무녀를 내놔라. 그러면 너희들은 그냥 보내주마.”
“개새끼라 그런가? 개소리만 해대네.”
“고작 엘프 따위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는 거냐.”
푸른빛의 늑대인간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웃는 표정 같았는데 실제로 웃는 것 같았다.
“이 몸은 마나가름((Mánagarm), 신화를 쌓고 있는 흐로드비트니르의 아들이자 무쇠의 숲의 자식이지.”
“오, 그러셔? 난 프레위르 뇨르드 제 팔라렘. 감히 내 앞에서 혈통싸움을 해보자는 거냐?”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갔다.
주변에서 점차 포위망을 좁혀오는 늑대인간들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공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쿠르릉-----!
강력한 파괴의 힘이 네브로의 손을 타고 흘렀다. 그가 모은 마나는 곧 번개 속성의 마법이 되어 세상을 뒤덮었다.
‘이만한 마법인데 마나의 배열과 술식이 벌써 끝났다고?’
이건 정말 미친 수준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마법은 최소 상급, 아니 최상급의 위력을 가진 마법이었다.
스으읍-
콰과과광-----------!
쏘아진 전류가 마나가름이라고 했던 늑대인간을 직격했다.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고 주변으로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카가가강!
네브로는 자신과 일행들에게 보호 마법을 펼치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모자랐을까요?!”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걱정되면 다음 마법을 준비해둬라.”]
“옙!”
그는 곧이곧대로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소마법이 아닌 단순히 살상력을 극대화시킨 마법이었는데 나름 내 오리지널 마법이라고 볼 수 있는 마법 탄환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저 개수겠지.’
한 번에 하나의 탄환으로도 회전과 격발, 유도, 겨냥 등의 복잡한 술식이 들어가는데 이 녀석은 그런 탄환을 동시에 수십 개씩 만들어내고 있었다.
쿠르릉-
새하얗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주변으로는 전류를 흘리며 부들대는 늑대인간들이 보였다.
“크으으.”
그러나 마나가름은 멀쩡히 두 다리로 선 채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마법을 준비하기를 잘했군요.”
네브로가 전혀 위기감 없는 말투로 마법을 쏘아 보낼 준비를 했다.
쿠웅!
“어억?”
“조심해!”
네브로가 탄환을 쏘기 직전, 땅이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등장이야.”
“예?”
그간 조용히 있던 일리아스가 입을 열자 균형을 잡던 네브로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일리아스는 의외로 뛰어난 균형감각을 선보이며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인.”
쿵!
그녀의 말과 동시에 다시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엄청난 기세를 느끼며 네브로가 식은땀을 흘렸다.
“거인?”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법한 거대한 인영이 한 손에 나무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무쇠의 숲의 수호자.”
프레위르가 상대의 정체를 짐작했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다.
방금 마나가름이 무쇠의 숲의 자식이라고 했었는데 그와 연관된 건가. 그것보다 살아있는 거인을 실제로 볼 줄이야.
“어머니.”
마나가름이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다가온 거인은 마나가름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쇠 숲의 수호자여, 왜 우리를 핍박하는 거지?”
프레위르가 기세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거인에게는 하찮게 보였는지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이 늑대인간들에게 우리를 노리라고 시킨 게 너냐?”
“뇨르드의 딸아, 넌 닉스의 아이가 운반하는 물건의 정체를 아느냐?”
목소리만으로 기를 죽인다는 게 이러한 것일까. 단지 말을 했을 뿐인데도 네브로의 솜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그딴 거 알 바 없어. 난 보수를 받았고, 받은 만큼 일하면 그만이야.”
“어리석구나.”
거인의 부정적인 감정이 여실히 전해져왔다. 그 감정만으로도 주변이 진동하는 걸 보면 초월자 저리가라 할 정도의 힘을 지닌 듯했다.
“보아하니 너에게 말할 필요도 없겠군. 그대, 강력한 힘을 지닌 자여.”
거인은 프레위르를 무시하고 네브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대의 이름을 듣고 싶다.”
“네브로입니다.”
“······설마 아이온의 자식이더냐.”
아이온의 이름이 나오자 네브로의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거인에게로부터 강렬한 기파가 폭발했다.
“부정한 자로다!”
[“네브로!”]
거인의 고함과 함께 내가 의지를 전달하자 네브로가 만들어두었던 수십 개의 탄환들이 곧바로 거인에게 쏘아졌다.
우드득!
카가가각!
탄환이 쏟아지는 순간 거인의 피부가 순식간에 금속과 같은 재질로 변했다. 그러자 탄환들은 굉음만 만들며 상대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소멸했다.
“무리야. 상대는 초월자······.”
프레위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초월자가 직접 나서서 힘을 행사할 줄은 예상도 못했는데.”
“피하죠.”
네브로가 마법을 이용해 일리아스와 프레위르를 묶었다.
“뭐하는 거야!”
“이 장소를 이탈하겠습니다.”
네브로의 마법이 재차 발동했다.
이쯤 되면 마나가 부족할 법도 했는데 여전히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놓치지 않는다, 부정한 자여.”
거인이 손에 들고 있던 나무를 휘둘렀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네브로의 마법이 먼저 발동되었다. 그야말로 미친 속도의 연산 능력이었다.
우우웅!
공간 이동이 이루어지자 네브로의 시야가 반전되며 이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염동력을 이용한 마법으로 바닥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털썩.
“뭐야, 여긴 어디야?”
“일단 아무 장소로 피했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해? 네 능력은 무슨 만능이냐?”
“천사님의 마법은 만능이자 세상 제일입니다!”
또, 또 헛소리 늘어놓는다.
나는 뿌듯하게 말하는 네브로를 향해 한 마디했다.
[“위치 파악부터 해라.”]
“예! 천사님!”
주변을 확인하자 숲과 같은 곳에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흔히 봐왔던 평범한 숲이 아닌 형형색색의 기묘한 빛들이 산재해있는 몽환적인 숲이었다.
“여긴 대체······.”
“일리아스를 따라와.”
어느새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일리아스가 자연스레 앞장서서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이, 일리아스?”
당황한 네브로가 그 뒤를 쫓자 주변에서 무언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소근소근.
-속닥속닥.
“어어······?”
이내 날아든 무언가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일리아스가 그 중 하나를 보며 말했다.
“페어리 퀸.”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하핫!
페어리 퀸이라니······정말인가?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 떨어지고 말았다.
< 384화. 신화의 한 자락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