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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52화 (352/415)

< 352화. 비틀림 >

백기사를 죽인지 2주 가까이 지났다.

크롬웰로 돌아온 나는 방안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 눈과 귀가 되어주는 에반의 조직이 3시간 단위로 보고를 올려주었기에 조급함도 없었다.

“그새 책이 많이 나왔네.”

전쟁 중에도 여전히 시장은 형성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가 되자 책과 같은 물품들은 가격이 떨어졌기에 부담 없이 구입이 가능했다.

지금 꺼내든 책은 내가 만든 제어의 기원을 토대로 작성한 마법 이론 논문이었다. 나도 미처 살펴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었기에 이러한 연구는 도움이 되었다.

콰앙!

“친구우! 나 왔어!”

거칠게 열린 문으로 루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들어왔다. 이미 특유의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기에 짐작하고 있던 난 책을 잠시 덮어두고 일어났다.

“오셨어요?”

“응. 뭐해?”

“책을 좀 읽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 포트리온에 있었더니 새로운 책들이 많이 나왔더라고요.”

“그래?”

루나는 쫄래쫄래 다가와 내가 읽던 책을 살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아이 같았지만 그녀도 엄연히 워록으로서 명성을 떨치는 마법사이다 보니 책의 제목만 보고 단숨에 내용을 파악했다.

“친구가 만든 이론이네? 다른 기원하고 다른 점을 정리한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책을 후루룩 넘기며 살핀 루나는 이내 자연스레 책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런 루나를 건드리지 않고 옆에 있던 다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음? 왜 문을 열고 있어?”

때마침 아침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비비안이 열려있는 문을 보고 의아해하다가 이내 책을 읽고 있는 루나를 보며 납득했다.

“루나, 문은 닫고 다녀야지.”

“응? 아! 미안!”

생각해보면 루나가 비비안보다 나이가 많단 말이지? 내가 1년 늦게 아카데미에 입학한 탓에 학년은 같았어도 비비안보다 한 살 많으니까.

그런데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맏언니와 막내 여동생의 모습 같았다.

“루이스도 수련장에 있었습니까?”

“응.”

잠깐 다녀와야겠다.

내가 책을 덮고 일어나자 둘의 시선이 나를 쫓아왔다.

“잠깐 갔다 오겠습니다.”

“같이 가.”

“나도!”

수련장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했다.

내 방이 수련장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기도 했기에 나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선배님.”

“오! 계속해, 계속해.”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루이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다시 자세를 잡고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오러 마스터가 돼도 성실하네.”

원래 그런 캐릭터이긴 했지만.

지난 2주 동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루이스가 오러 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막시민이 있었다.

내가 따로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애들을 봐주다니 조금 의외이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흠······.”

내가 대놓고 수련을 지켜보자 루이스가 부담스러웠는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애초에 크롬웰로 끌려온 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

“저······선배님.”

“음?”

“다시 한 번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거 없지. 대신 가볍게 하는 거다.”

“감사합니다.”

기분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표정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수련이 가능한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좋은 거냐.

“준비 됐다. 덤벼라.”

대련용 검을 든 채 대충 몸을 풀고 말하자 루이스는 사양 없이 내게 덤벼들었다.

‘그러고 보니 난 언제쯤 오러 비기를 얻는 거지?’

루이스의 검을 막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검술 실력으로만 보면 이제 막시민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오러 비기가 없는 게 이상했다.

‘그릇 특성 때문에 오러 비기를 익힐 수 없다든가?’

따지고 보면 살렘도 신체 개조를 통해 기사와 마법사의 마나 양측 모두 사용할 수 있었지만 오러 비기를 익히지는 못했다.

살렘을 한 번 만나서 이에 대한 토론이나 연구를 해보는 것도 좋겠네.

챙!

“부러졌네.”

루이스가 사용하던 대련용 검이 부러졌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부러진 검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뭔 가르침. 오랜만에 몸 풀어서 좋았다. 수고해.”

검이 부러진 게 우연은 아니었다.

재능으로만 따지면 이제는 세계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루이스보다 뛰어나진 나였기에 의도하고 부러트린 것이었다.

‘사실상 초월자만 아니면······.’

언데드까지 소환한다는 가정 하에 내가 이기지 못할 생명체는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아! 뱀파이어 퀸이 있지.’

이론 상 존재하는 뱀파이어 퀸을 제외하면 개인의 무력으로는 내가 가장 강할 듯싶었다.

이번 묵시록의 기사들만 처리하면 루시펠 가문의 방문하기로 했으니 조금 기대되네.

“이제 어디가?”

“지하 연구소로 갈 겁니다. 가기 전에 모른한테 한 번 들르고요.”

“응!”

게임에서는 항상 이맘때쯤 골머리를 썩였는데 이렇게 여유로워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크롬웰 각하!”

모른에게 향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며 나를 불러 세웠다. 적기사가 나타난 건가?

“모하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각하를 찾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온 후 처음으로 오는 연락이었다.

내 소식을 들었을 거지만 웬일로 연락은 없었는데 드디어 오는군.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일단은 무슨 일인지 확인해봐야겠다.

묵시록의 기사가 우선이기에 도와주러 가지는 못하겠지만 왜 연락을 했는지는 들어봐야지.

**

여긴 어디지.

내가 눈을 뜬 곳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크아악!”

“죽어! 죽으라고!”

처절한 비명과 광기 가득한 외침.

속이 메스꺼워졌다.

[“깨어났나.”]

사방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흑색 말의 고삐를 쥔 사내가 이런 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서있었다.

[“붉은 말의 기수여. 일어나라.”]

[“붉은 말의 기수?”]

나를 부르는 건가?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손을 내려다보니 내 오른팔은 손이 아닌 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피를 머금은 듯 붉은 검이 요염하게 빛났다.

[“······이상하군.”]

그때 고삐를 쥔 사내가 나를 보며 음침하게 입을 열었다.

[“적기사여, 어째서 가만히 있는 거지.”]

[“어째서?”]

어째서라니? 그야······.

뭘 할지 모르니까 그렇지.

난 누구지? 난 왜 이런 전장의 한복판에서 눈을 뜬 거고, 내 팔은 왜 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 검은 말을 끌고 있는 사내는 왜 나를 아는 척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

[“말이 없군.”]

[“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되묻게 된다.

[“그대의 붉은 말은 어디 건 거지?”]

[“모른다.”]

[“그대는 적기사가 맞는 건가?”]

[“그것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냥 죽어라.”]

흑마에 올라탄 사내가 저울을 들고 내게 돌진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슈각!

달려오는 말의 돌진을 피해내며 검으로 이루어진 오른팔을 휘둘렀다.

쫘자자작!

서로의 공격이 엇나갔다.

대신 흑마가 지나간 자리가 순식간에 말라가며 땅이 갈라지고 비틀어졌다. 피로 강이 이루어져있던 장소를 단숨에 마르게 하는 힘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대단해보였다.

“저, 저건 뭐야?”

“저런 기사가 우리 진영에 있었나?”

한창 싸우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대들은 곧 굶어죽게 되리.”]

이상한 말을 하는 흑마의 기수를 보며 나는 첫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뭔가 기억이 떠오를 것도 같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오리무중이었다.

[“난 뭘 해야 하지? 붉은 말의 기수가 대체 뭐냐.”]

[“넌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소멸하면 될 뿐.”]

다시 적의를 불태우며 내게 달려드는 흑마를 간신히 피해냈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움직임에 익숙해지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소멸하기 싫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단 한 가지는 알았다.

그건 내가 죽기 싫다는 사실.

[“넌 존재 가치가 없다.”]

[“왜?”]

[“이 세상이 원했던 것은 붉은 말의 기수다. 하지만 넌 붉은 말이 없다.”]

그런 논리가 어디 있어.

난 죽고 싶지 않았다.

[“발악하지 마라, 망가진 존재여. 고분고분 사라져라.”]

[“난 죽기 싫어.”]

몸이 점차 익숙해지며 이제 모든 게 내 뜻대로 통제가 되기 시작했다.

[“날 죽이려면 너도 목숨을 걸어라.”]

[“망가졌구나.”]

다시 흑마가 돌진해왔다.

나는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몸을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비틀어 움직였다.

뚜둑!

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덕분에 나는 흑마의 돌격을 피해내며 그대로 베어낼 수 있었다.

-히히힝!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흑마가 새까만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흑마를 벤 순간, 나는 내 몸에 달린 검이 평범한 검이 아님을 깨달았다.

동시에 저 흑마와 흑마를 타고 내게 말을 걸던 ‘무언가’도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떻게······.”]

낙마를 하고 엎어진 무언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적마도 없는 네가 어떻게 그런 힘을 부릴 수 있는 거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난 그가 일어서기 전에 부서진 몸으로 게걸스럽게 달려가 상대의 목을 베었다.

퍼걱!

평범하지 않은 내 검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가볍게 베어 넘겼다. 목이 잘린 무언가는 잘린 머리로도 중얼거렸다.

[“적기사, 너는 분명 나보다 약해야······.”]

[“난 적기사가 아니라며.”]

난 적기사가 아니다.

그럼 대체 나는 누구지?

괴상한 저울을 들고 있던 무언가는 그대로 죽었다. 어느새 주변은 그가 만들어낸 힘으로 인해 모든 게 말라비틀어진 상황이었다. 심지어 싸우고 있던 사람들마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게 보였다.

[“난 누구지.”]

의문을 가진 채 주변을 둘러보아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으으으.”

“괴, 괴물······.”

어느새 전쟁은 소강상태를 맞이하고 몸을 다쳐 도망치지 못한 이들이 나를 보며 두려워했다.

난 괴물인가?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내가 죽였던 녀석과 나는 약간 닮았던 것 같다.

그럼 저 녀석은 흑기사인가?

근데 왜 나를 죽이려 했던 거지?

터벅터벅-

“히익!”

“오, 오지 마!”

사람들의 비명을 들으며 계속 걸어 나갔다.

확실한 건 이곳에서는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걸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흑기사, 적기사······다른 기사도 있는 건가.”]

흑기사는 나를 적대했기에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됐지만 다른 기사는 몰랐다.

난, 나를 알고 싶었다.

“모두 겁먹지 마라! 모하임 전하께서 백기사를 쓰러트린 영웅, 크롬웰 공을 호출하셨으니 걱정 말고 일단 물러나라!”

백기사?

나는 비틀린 몸을 억지로 다시 끼워 맞추며 소리쳤던 인물에게 달려갔다.

“히, 히익!”

“도망쳐!”

도망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소리 지른 인물에게 도달한 나는 창칼을 모두 베어내며 물었다.

[“백기사? 백기사라는 것도 있었어?”]

“사, 살려줘!”

[“대답해. 대답하면 죽일 생각은 없다.”]

“그, 그렇습니다! 얼마 전 팔레스코 평원에서 백기사라 이름 지어진 하얀 말을 탄 괴물······아니! 거인이 나타났었습니다.”

거인?

나는 내 몸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주변 사람들에 비해 조금 큰 키이기는 했지만 거인은 아니었다. 흑기사는 나보다도 작아서 여기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키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 백기사는 네가 방금 말한 인물이 죽인 거고, 그 인물은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안내해라.”]

나는 대답해준 인물의 뒷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그 사람을 만나봐야겠다.”]

“으억!”

겁에 질려 바동거리는 사람을 억지로 어깨에 들쳐 맨 채 저 멀리 보이는 성으로 향했다.

백기사를 죽였다는 인물, 크롬웰을 만나기 위해.

< 352화. 비틀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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