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화. 박멸 >
제스터의 세력은 집회 내에서도 가장 많은 만큼 이곳저곳에 흩어져있었다.
그리고 나는 에반의 정보 조직과 모른이 원래 알고 있던 정보를 통해 그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전부 파악한 상태.
꾸드득!
한 차례 진화를 마친 용아병들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맨몸이었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무장을 한 모습.
[엘더 스파르토이]
100마리의 용아병이 제스터의 세력을 급습했다.
“뭐, 뭐야 이놈들은!”
“언데드다! 막아라!”
적들의 당황도 크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의 세력과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어서 그런지 금세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콰직!
“으억!”
“그, 그냥 스켈레톤이 아니다!”
원래부터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지녔던 용아병들이 진화까지 하자 상대의 흑마법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저랑 비비안은 나서지 않아도 되겠네요.”
“응.”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이내 태블릿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여기는 끝났으니 이제 저희가 갈 곳은 한 군데.”
“제스터라는 흑마법사는?”
“거기에는 이미 에반이랑 노아를 보내놨습니다. 저는 선수를 쳐서 제스터의 다른 몸이 있는 장소에 미리 가있을 거예요.”
“다른 몸?”
“아, 제스터는 죽어도 다른 몸으로 옮길 수가 있습니다. 대부님께서 다른 몸이 있는 위치를 알고 계신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죠.”
지금쯤 아카데미 4인방도 열심히 싸우고 있겠네.
그런데 직접 상대해보니 제스터의 세력은 덩치만 크고 강한 흑마법사가 눈에 띄지 않아 4인방이 과연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끄억······.”
대부분은 도망을 치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녀석을 쓰러트렸다.
도망치는 자들은 일부러 살려두었는데 어차피 세력을 흡수하면 내게 될 거라 생각하고 내린 판단이었다.
다 죽여 버리면 의미가 없지.
“갈까요.”
“응.”
우리는 곧바로 다음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
콰앙!
콰드드득!
“하아, 하아······.”
누군가의 예상과는 다르게 치열한 전투 현장.
루이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양손으로 잡은 검을 치켜세웠다.
“후우, 설마 마을 사람들 전원이 흑마법사일 줄이야.”
세레나가 볼에 튄 핏자국을 땀과 함께 닦아내며 말했다.
설마 마을 전체가 흑마법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고전하고 말았다.
휘릭!
그 와중에도 벤자민이 마치 곡예를 하듯 엄청난 속도로 적들의 틈새를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온몸에 검을 주렁주렁 매단 채 저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게 경이롭기만 했다.
“언제까지 쉬고 있을 거냐!”
크리스가 노파를 베며 말했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그 모습에 루이스가 어금니를 씹었다.
“정말······정말로 이 사람들이 전부 흑마법사라고?”
“네가 방금 베었으면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콰앙!
크리스의 대답이 전부 나오기도 전에 루이스의 근처에서 마법이 터졌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루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너만 죽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고.”
“크윽.”
조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이, 과일을 팔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날씨가 좋다며 산책을 하던 노인이.
“어째서······.”
루이스는 비정한 현실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하지만 검을 잡은 두 손에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루이스!”
후우웅-----!
그런 루이스를 향해 다크 스피어가 쏟아졌다.
후와아아앙!
그러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루이스의 검이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몰아치는 검.
다크 스피어는 잘게 쪼개졌다.
“걱정하지 마.”
루이스는 중얼거렸다.
“우리가 죽을 일은 만들지 않을 거니까.”
조금은 체념한 듯한 눈으로 말을 마친 루이스가 드디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애송이들이 감히!”
그때 안쪽에서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 튀어나왔다.
팔이 세 개가 달린 검은 로브의 인물.
그는 누가 보아도 흑마법사였다.
“저 사람은 내가 맡을게.”
루이스가 그나마 안도를 느끼며 나섰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던 이들보다 위험할지는 몰라도 훨씬 마음의 부담이 덜했다.
“흐흐, 편협하구나. 나를 상대하는 건 괜찮고 내 수하들을 상대하는 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냐?”
“그래.”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어리석구나.”
흑마법사의 말에도 루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겉모습으로 판단되는 게 억울하면 너도 그 괴상한 팔을 붙이지 말았어야지.”
루이스는 말을 하며 단숨에 땅을 박차고 나갔다.
“흐하하! 애송이, 죽어라!”
녹색의 구체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이내 요란하게 터져나가며 루이스의 진로를 방해했지만 루이스는 모든 공격들을 피해내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하! 움직임이 좋구나!”
흑마법사의 기괴하게 비틀린 세 번째 팔이 움직였다.
우웅----!
그러자 허공에 마법진이 수놓아지며 마법세례가 쏟아졌다.
“흐읍!”
달려가던 루이스가 급정지를 하며 호흡을 들이마셨다.
곧이어 다가오는 수많은 마법들을 막아내고, 튕겨내고, 피해냈다.
“······꽤 하는군.”
흑마법사는 살짝 당황했지만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땅을 독의 늪으로 바꾸고 주변을 흑마법으로 감쌌다.
“소용없어.”
루이스의 눈이 빛났다.
동시에 허공에다 강하게 내려그은 검이 빛을 발했다.
금빛 오러.
그것은 검기의 폭풍이 되어 거리가 떨어진 흑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콰가가가각!
“으아아아!”
흑마법사도 만만치 않았다.
루이스의 검기를 보호 마법으로 전부 막아낸 그는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하하! 너흰 아직 멀었다! 감히 애송이들이 이 레곤 님의 땅을 침범하다니! 그 죗값, 목숨으로 바치······.”
후웅!
쇄애애액!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오고 이내 흑마법사의 목이 떨어졌다.
철컥!
벤자민이 허물어지는 흑마법사 옆에서 검을 갈무리했다.
“덕분에 처리가 쉬웠습니다, 선배.”
“그래.”
루이스가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았지만 흑마법사와의 일대일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반증이었다.
“끔찍하네.”
세레나가 중얼거렸다.
현장만 보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것만 같은 모습.
루이스는 차마 그 광경을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루이스 아트만.”
그때, 지금까지 지켜보기만 했던 막시민이 다가왔다.
“두 눈 크게 뜨고 봐라. 피하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굳이 그래야할까요.”
“검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죽이기 위함이다.”
“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습니다.”
“죽이지 않고 지키기만 할 수는 없다. 적은 너와 달리 냉정하고 잔혹해. 네가 살려주면 살려줄 때마다 돌아와서 네 소중한 사람들을 헤치려 할 거다.”
막시민의 차가운 말에 루이스가 결국 고개를 들어 비참한 풍경을 바라봤다.
“아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은 없었던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나 첫 살인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총 4명이 도망쳤어요.”
아가타가 말했다.
“쫓아간다.”
크리스가 금방이라도 추격을 할 것처럼 말했지만 아가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드리아스 님께서 굳이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쫓아가다 함정에 걸리면 손도 못쓴다고요.”
“그깟 함정······.”
“그깟 함정이 아니에요. 대체로 함정들은 약자가 강자를 잡기 위해 만든 물건입니다. 방심하면 안 돼요.”
아가타의 충고에 크리스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여기가 끝이 아니거든.”
막시민의 말에 4인방의 고개가 돌아갔다.
“끝이 아니라고요?”
“처리해야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제국 수사관들이 찾을 때는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 곳을 우리 교수님은 어떻게 2군데나 찾은 거야?”
세레나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뱉었다.
“다친 분들은 이 포션을 사용하세요. 아드리아스 님께서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아주 만반의 준비를 해놨군.”
크리스가 드문 미소를 보이며 포션을 챙겼다.
가장 많이 날뛴 벤자민도 포션을 챙겨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세레나도 얕게 난 생채기를 살피며 멍하니 선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 넌 필요 없어?”
“어, 괜찮아.”
다친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 상처를 안고 가기로 했다.
뚜벅.
스윽-
“아?”
“네가 거둔 모든 목숨을 안고 가려 하지 마라. 버티지 못할 거다.”
막시민이 내민 포션을 멍하니 바라보던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
“······.”
“언젠가는 무뎌지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습에 막시민도 재차 권하지 않았다.
“너도 그 애송이처럼 쓸데없이 고집이 세군.”
“아드리아스 교수님 말입니까?”
막시민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준비가 끝났으면 바로 출발한다. 다음 위치의 적들이 눈치 채고 도망갈 수도 있으니 빨리 가야 된다.”
““예.””
**
웅웅웅!
수많은 빛의 검이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그러나 그 실상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기술이라는 걸 알면 절대 아름답다고 표현은 못할 모습.
“에반 폰 오를레옹, 이곳은 어떻게 안 것이지?”
제스터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대륙 10인 중 1인이자 성국의 수호자라 불렸던 에반이 아드리아스와 한 패라는 것을.
그러니 제스터는 그가 우연히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고 믿고 싶었다.
“난 이제 오를레옹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질문인가.”
한때는 자부심 넘치고 빛나는 모습이었던 에반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의 그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부랑자와 같이 볼이 움푹 패고 수염과 머리카락도 정리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성국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흑마법사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냐!”
“흑마법사 사냥이라······.”
에반은 피식 미소를 흘렸다.
“나는 주군의 명에 따를 뿐, 흑마법사 사냥을 하는 게 아니다.”
“주군?”
제스터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주군이라고?”
다시 되묻는 제스터를 향해 에반이 검을 겨누었다. 이미 이 장소에는 에반의 수하들과 에반, 그리고 제스터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자들이 없는 상태.
“네놈한테 가르칠 이유는 없다. 곱게 죽어라.”
이내 허공에 떠오른 빛의 검들도 제스터를 겨누었다.
“크흐. 난 죽지 않는다.”
제스터가 발악하듯 소리 질렀다.
“죽여볼 테면 죽여봐라! 난 죽지 않는다고!”
제스터 르반.
그는 분명 뛰어난 흑마법사이자 워록이었다.
어딜 가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자.
그러나 살렘 예디디아와 에반 폰 오를레옹은 인간계 최강의 괴물들이었다.
‘내 대진운은 왜 항상 이런 식이지?’
이들과 싸우기 전에 마주친 모른도 그렇고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었지만 하필 자신보다 강한 몇 안 되는 인물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 잘 가라.”
이내 수십 개의 빛의 검이 떨어지며 제스터를 꿰뚫었다.
“크하하하! 어리석은 녀석! 다시 나를 찾으려면 수십 년이 걸릴 거다!”
제스터는 현재의 몸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며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의 다음 몸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장소에 위치해 있었기에 되살아난다면 몇 십 년 동안은 숨어 지낼 생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만 열손가락을 넘는다. 하지만 언제나 살아남는 쪽은 나였지.’
무려 200년을 그렇게 살아남아왔다.
인간은 결국 세월 앞에서 무너지기 마련.
에반도 몇 십 년 뒤에는 한 줌의 흙이 되어 있을 거다.
스르르-
의식이 전이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몸에서 깨어남을 느꼈을 때.
“어서와, 제스터.”
“응?”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아드리아스 크롬웰이었다.
< 323화. 박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