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2화. 아드리아스의 반격 >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대로 얼어붙은 4학년 3인방은 눈도 깜빡하지 못한 채 막시민만 바라봤다.
“막시민 크로넬? 대륙 최강의 검사?”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벤자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내가 어렵게 초빙한 이번 평가 담당 강사다. 난 볼 일이 따로 있으니까 말 잘 들으면서 따라다녀.”
“아니, 아니. 잠깐!”
내 말을 듣고 그제야 얼음이 깨진 세레나가 소리쳤다.
“교, 교수님? 농담이시죠? 저, 저 사람이 진짜 막시민 크로넬이라고요?”
“관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서 못 알아보는 거냐? 막시민 맞아.”
아예 철면피를 깔고 말하자 세레나가 입만 벙끗거렸다.
“아드리아스.”
아차차.
해결할 사람은 정작 따로 있었지.
막시민이 팔짱을 낀 채 음울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라.”
“저쪽에서 잠깐 따로 이야기 하실까요?”
나는 막시민을 한 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개르부터 숙였다.
“미리 말을 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말을 하면 안 받아주실 것 같아서······.”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했다는 말인가.”
“막시민,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뭣하지만 저 학생들은······.”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나야 저들이 플레이어블이라는 걸 알고 곧 닥칠 대륙의 위기도 알고 있지만 막시민한테는 무슨 말을 늘어놔야할 지 애매했다.
“저 학생들은 미래입니다.”
“장난치자는 건 아니겠지.”
“예, 진심입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금 풀었다.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전쟁의 여파는 단순히 제국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전 대륙을 뒤덮을 겁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거짓은 아닙니다.”
“그게 지금 일이랑 무슨 상관이지?”
“저 아이들이 그 혼란을 해결할 겁니다. 예정보다 전쟁이 빨라져서 애들이 성장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이렇게라도 데리고 나왔죠.”
“넌, 예언자인가?”
내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리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막시민이 내 편이라는 걸 믿기 때문이었다.
“그 비슷한 능력이 있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더 놀랍군. 그런 말을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다니.”
막시민도 나처럼 상대의 신체 반응을 보고 거짓을 판별하는 모양이었다.
“전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요.”
“그 혼란을 꼭 저 아이들만 막을 수 있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좋죠.”
난 말을 하면서도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전 모두를 지키고 싶어요.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그 욕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 아이들이 유용하다는 거군.”
그렇게 따질 수도 있겠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막시민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향했다.
“확실히 재능들은 뛰어나 보이는군. 육안으로 재능이 보일 정도의 인재는 너 이후로 처음이다.”
“저도 그랬습니까?”
“아니, 처음에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재능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더군.”
역시 막시민이라고 해야 할까.
재능이 진화한 것도 다 눈치 채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결국 네가 원하는 건 저 아이들의 성장이겠군.”
“막시민한테 이 일을 부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막시민이 가장 믿을 수 있거든요.”
무려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칭호를 가진 사내.
솔직히 언데드들을 모두 소환하더라도 아직까지 이길 자신이 없었다.
‘죄악을 사용하면 가능할까?’
그것도 하나가 아닌 중복 사용을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
막시민은 내 말을 전부 듣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 말이 없으니까 괜히 더 쪼들린 나는 은근슬쩍 말했다.
“이 일이 끝나고 과수원 땅을 넓혀드리겠습니다.”
나도 놀란 일이었지만 막시민은 영지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이자벨과 함께 과수원을 관리하거나 차만 마신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과수원 일에 빠진 모양이었다.
“딱히 넓어지는 걸 원하지 않아. 지금이 적당하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말했다.
“라스틸리아랑 제가 거래를 하고 있는 건 아시죠? 라스틸리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과일의 종자를 구해보겠습니다.”
“흐음, 식물이라는 건 아무 땅에나 심는다고 자라는 게 아니야. 식물마다 알맞은 환경이 있지. 라스틸리아에서만 자라는 과일은 그 이유가 다 있는 법이야.”
“막시민, 제가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저 마법삽니다. 그것도 워록.”
“음?”
“씨앗만 구해오면 종자개량은 가능합니다. 조금 고생할 수도 있지만.”
게다가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 라고가 지금 우리 영지에 있지.
“흐음······.”
무표정이었던 막시민이 고뇌에 찬 얼굴로 변했다. 진심으로 고민하는 그 모습에 그가 얼마나 과수원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하의 막시민이 고작 과일 종자로 부탁을 들어준다니.’
아직 결론이 지어진 건 아니지만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거래 조건을 늘리면 받아주지.”
“뭡니까?”
“과일 종자 3종, 거기에 라스틸리아 차의 종자, 마지막으로 히프란 꽃의 종자.”
······이건 좀 어렵네.
과일 종자 3개는 아무거나 달라고 부탁하면 될 일이지만 히프란 꽃은 라스틸리아 내에서도 희귀한 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스틸리아 차.
차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라스틸리아 엘프들인 만큼 라스틸리아 찻잎도 함부로 반출하지 않았는데 종자를 구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해야지.
세상을 구할 인재들을 성장시키는 게 라스틸리아 차의 종자를 구해오는 것보다 중요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정말인가.”
“까라면 까야죠, 뭐.”
“가능한 일이냐는 말이다.”
“가능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니, 가능합니다.”
내가 이래봬도 세계수의 구원자다.
그까짓 라스틸리아 차의 종자? 바로 구해다 주지.
“거래 성립이다.”
“감사합니다.”
한 건 넘겼군.
“아! 막시민.”
“말해라.”
“되도록이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주십시오. 정말 위험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설령 사지 중 하나가 잘린다고 해도 걱정은 없었다. 이미 아가타라는 예시가 있었기에 관리만 잘하면 다시 붙이는 건 가능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일이 끝나고 다시 뵙죠.”
막시민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오자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부터는 이 둘을 따라가라.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고.”
“막시민 크로넬을 따라가라는 말입니까?”
루이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오히려 나한테 감사를 해야 할 거야. 누가 대륙 최강의 검사랑 흑마법사 사냥을 가볼 수 있겠냐.”
“하지만 그는 제국의 수배자입니다.”
이게 문제였다.
이놈들은 제국을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도 게임에서는 그랬으니까.’
딱히 정의의 편까지는 아니어도 적이라는 생각은 못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죄악들이 황궁과 연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내겐 적이었다.
‘마지막 보스전은 죄악과 관련이 있다.’
죄악의 회수를 최대한 막으면 마지막 보스전이 쉬워졌다.
그때는 그저 집회가 모은 건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집회와 제국의 합작이었지.
“난 상관 없다.”
그때 크리스가 나섰다.
“제국의 수배자? 그게 무슨 문제지? 제국의 수배자라는 이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칭호가 중요한가.”
크리스의 말에 루이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돌아봤다.
“범죄자라고.”
“범죄? 루이스, 넌 검에 대해서는 나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어리군.”
크리스가 비웃었다.
“막시민 크로넬이 저질렀다는 범죄가 그래서 뭐지?”
“제국의 오러 마스터와 수많은 기사들을 죽였지.”
“왜 죽였을까?”
크리스가 계속해서 되묻자 루이스의 말문이 막혔다.
“그건······.”
“난 유서 깊은 유노르 가문의 적자다. 그러나 제국의 편을 들지는 않지. 뛰어난 검사라면 무릇 객관적인 통찰력을 지녀야 하는 법. 그리 못하면 아기의 손에 보검이 들린 꼴이다.”
잘한다, 크리스!
나는 말없이 흐뭇하게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으음······.”
루이스가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둘의 대화를 같이 듣고 있던 세레나가 내게 물었다.
“정말로 막시민 크로넬인지는 제쳐두고 교수님은 다른 곳에 가신다는 말인가요?”
“그래.”
“이렇게 무책임한 분이신 줄은 몰랐네요. 혹시라도 막시민이 저희를 인질로 잡고 제국을 협박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막시민이? 너희를?”
난 세레나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너,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냐?”
“전 에레스티얼 가문의 자식입니다.”
“내세울 게 그것 밖에 없어?”
“으으!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네.
“막시민은 제국의 적이지 너희들의 적이 아니야.”
“그게 그 말이죠!”
“아니, 다르다. 냉정하게 생각해봐. 네 말대로 네들이 인질로 잡혔다고 해보자. 제국에서 너희를 위해 뭔가를 할 것 같냐?”
“우리 가문에서 분명······!”
“그건 에레스티얼 후작가의 사정이고 제국 측에서 도와줄 것 같냐는 말이야. 후작가에서는 당연히 조치를 취하겠지.”
내 말에 세레나도 입만 벙끗거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이라도 평가를 받기 싫으면 돌아가도 된다. 나는 너희한테 기회를 주러 온 거지 무언가를 강제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저, 교수님. 저는 교수님과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벤자민은 막시민 따위야 어찌되든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안 돼.”
“알겠습니다.”
대답은 곧바로 했지만 마치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풀이 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건 멍청한 짓이지.”
크리스가 먼저 의견을 냈다.
근데 저 놈은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근데 왜 반말이야?
“저도 교수님의 깊은 뜻에 따르겠습니다.”
벤자민도 뒤이어 말하자 결국 나머지 둘도 결정을 내렸다.
“하겠습니다.”
“나만 빠질 수는 없지. 저도 할 게요.”
아주 복에 겨운 놈들.
이게 다 너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다, 이 녀석들아.
“평가가 끝난 뒤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채점이 큰 의미는 없지만 일단 저 둘에게 각자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하고 갈 테니 알아둬라. 1등한테는 상을 줄 거니까 그리 알고.”
나는 말을 마치고 아가타와 막시민에게 따로 다시 말했다. 부디 이 녀석들을 잘 봐달라고.
“갈까요?”
둘과 이야기가 끝난 나는 비비안에게 말했다.
비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응, 가자.”
제스터.
나를 공격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
“흐으.”
제스터 르반.
200년을 넘게 산 리치이자 집회에서 가장 큰 파벌을 소유하고 있는 흑마법사.
그런 그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통째로 가린 모자를 긁고 있었다.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한 번에 끝장을 냈어야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공격을 하는 거였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히나 흑마법사들은 원한을 잊지 않는다. 독하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바닥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스터 님!”
때마침 크롬웰을 정찰하라고 보냈던 수하가 돌아왔다.
크롬웰의 전력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았으니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기에 보낸 건데······.
“적들이 오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특히나 상대의 세력에 모른 드왈스키가 있다면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할 리 없었으니까.
“다른 곳에 연락은 다 돌렸겠지?”
“그렇습니다. 이미 나흘 전에 돌렸습니다. 집결하지 않은 세력들도 오늘 안에는 전부 도착합니다.”
“적들의 위치는?”
“이제 막 출발을 한 듯하여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제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 드왈스키, 루나 펜드래곤, 그리고 살렘 예디디아.
분명 강력한 전력이었지만 제스터는 자신이 있었다.
‘모른의 파벌까지 합세한다고 해도 애초에 그 파벌의 세력은 소수다. 충분히 할만 해.’
단지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전혀 예측 못했던 환수종.
이름조차 모를 거대한 고래 형태의 환수는 비록 수하들을 통해 보고로만 전해 들었지만 전혀 무시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주 은밀하게 별별 준비를 해왔구나.”
만약 이번 반격만 막아낸다면 승리를 다시 되찾아올 수 있을 터.
제스터는 전황을 길게 보기로 마음먹었다.
쿠우웅!
“뭔 소리야!”
갑자기 터져 나온 폭음에 제스터가 소리쳤다.
“화, 확인해보겠습니다!”
현재 그가 위치한 곳은 마경 근처의 빈 땅이었다. 그러니 이런 곳을 방문했다는 것은 아드리아스의 세력 밖에 없었다.
“속였구나. 이미 도착한 거였어.”
아직은 괜찮았다.
어차피 곧 자신의 모든 세력들이 집결할 것이고 그때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제, 제스터 님!”
“그래, 밖의 상황은?”
“그, 그게······.”
수하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말했다.
“하얀 빛으로 만든 듯한 검이 날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얀 빛의 검?”
듣자마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가 왜?
“잘못 본 게 아니고?”
“으아아악!”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동시에 누군가가 적의 이름을 외쳤다.
“에반! 에반 폰 오를레옹이다!”
제스터의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짐작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322화. 아드리아스의 반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