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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19화 (319/415)

< 319화. 누군가의 결심 >

툭! 툭!

아무도 없는 대전.

그곳에는 황제만이 홀로 왕좌에 앉아 습관적으로 검집을 두드리고 있었다.

끼익-

이내 대전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나타난 이는 제국의 재상 헥토르 카자프.

황제는 헥토르가 왔음에도 여전히 턱을 괸 채 검집을 두드리기만 했다.

툭!

묘하게 신경을 긁는 소음이 이어지고 마침내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날 때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짐의 계획은 완벽하다.”

뜬금없는 황제의 말에 헥토르는 그저 고개를 조아렸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완벽했다.”

황제가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 발칙한 놈이 완벽한 짐의 계획을 헝클어놓았지.”

헥토르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대전으로 향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전해들은 상황이었기에 그저 황제가 진노하지만 않기를 바랄 뿐.

“짐보다 완벽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는 말은 짐의 계획을 이행하는 짐의 수하들이 못났다는 뜻이겠지.”

“송구하옵니다, 폐하.”

헥토르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아드리아스 크롬웰에게서 원죄를 회수하는 계획에 자신이 연관된 것은 없었다.

온전히 황제의 계획과 실행의 결과물.

그러나 오만한 황제는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닌 수하들에게서 찾았다.

“자비에 레오날드에게 근신령을 내렸다. 나머지 근위기사들은 전원 감옥에 처박아뒀지.”

“폐하.”

헥토르가 걱정스럽게 운을 떼었다.

“남부 연합의 기세가 심상치 않사옵니다. 아무래도 우리 측의 계획을 눈치 챈 듯싶사온데 근위기사들의 공백은 뼈저린······.”

“그러면 잘됐군. 죗값을 전장에서 치르도록 할까.”

황제의 잔혹한 말에 헥토르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근위기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전장에 내세운다는 뜻일 터.

“어떻게 생각하나, 재상?”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그들은 모두 고위 귀족의 자제들이옵니다. 큰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소인은 심히 걱정되옵니다.”

“죄인이 죗값을 치르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황제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헥토르를 바라봤다.

그 순진무구한 얼굴에 헥토르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황제가 정말 미쳐가는구나.’

총명했던 황제가 이제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생각만이 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괴물.

“죗값은 치러야하는 게 맞사옵니다. 하지만 그 형벌이 너무 강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옵니다.”

“무려 원죄를 놓쳤다. 이제 다시 부른다고 해도 녀석은 황궁에 오지 않겠지. 그렇다고 짐이 직접 명령을 내려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

“물론 원죄의 중요성은 소인도 짐작하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다른 귀족들은 원죄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니 죄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른지 모르고 반발할 것입니다.”

헥토르는 어느새 자신의 몸을 찌르는 기운을 이겨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미 황제에게 마음이 떠난 상황이었지만 세력을 옮길 준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고를 치는 건 막아야만 했다.

“반발을 한다고? 감히 짐에게?”

황제의 어조는 나긋했다.

하지만 헥토르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멈추지 못했다.

“그, 그렇사옵니다.”

“재상, 그대의 발언은 그저 망상인가 아니면 진실로 충언한 것인가.”

“소인, 감히 폐하 앞에서 거짓된 말을 올리지는 않습니다.”

황제의 기운으로 인해 헥토르의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갈 때쯤, 황제가 웃었다.

“푸하하하하!”

갑작스러운 폭소에 헥토르가 당황한 가운데 황제가 말을 이었다.

“감히 짐에게 반발이라? 좋아, 좋아. 무료했던 일상이 재밌어지겠어.”

“폐, 폐하?”

“재상, 내 계획은 변치 않는다. 남부와의 전쟁이 벌어지면 이번 죄인들을 화살받이로 사용해라.”

“폐하, 그리하면 분명······.”

“반발? 오히려 좋다. 이번 기회에 제국의 환부도 싹 다 도려내지. 감히 짐에게 반발을 한다고? 허!”

과연 누가 제국의 환부인 것일까.

헥토르는 어질어질한 정신을 붙잡은 채 간신히 한 마디만 할 수 있었다.

“소인은 그러면 그리 알고 미리 대비하고 있겠습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돌연 다른 이름을 꺼낸 황제의 말을 헥토르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들었다.

“최우선적으로 관찰해라. 기회가 되면 곧바로 원죄를 되찾겠다.”

“알겠습니다.”

이내 이야기가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아직 물러나라는 말이 없었기에 헥토르는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래, 이제 가서 볼 일을 보거라.”

“예, 준비가 되는대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아, 그 전에 모하임은 어찌 됐지?”

“아직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곧 반응이 올 것 같습니다.”

“본보기로 모하임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군.”

황제가 오만하게 미소 지었다.

“짐에게 반발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 대륙에 각인시켜주겠다.”

**

지하에 위치한 은밀한 연구실.

그곳에서 아가타는 이어붙여진 자신의 팔을 살펴보았다.

“좋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건 이후의 문제.

“······오셨다고 들었는데······.”

한참 팔을 확인하던 아가타는 아드리아스를 떠올렸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나 살렘과 라고가 잠시 나갔다 돌아온 후, 아드리아스가 영지에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꾸욱-

마법적인 시술이 새겨져 더욱 강해진 팔에 힘이 들어갔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지.’

처음 고용됐을 때까지만 해도 아드리아스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씬의 첩자 역할을 수행하느라 적이라고 인식했던 상황.

“라고, 시간이 됐다.”

때마침 라고가 나타나 아가타를 손짓했다.

팔을 붙여준 대가로 그녀의 팔을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오늘의 실험은 얼마나 강한 힘을 낼 수 있는지 측정하는 연구.

“저······라고.”

“라고, 말해라.”

“아드리아스 님은 아직 영지에 계신 거죠?”

“라고, 내일 돌아간다고 들었다.”

내일이라······.

아가타는 아드리아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실험이 끝나고 가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을까.

“라고, 실험 많이 할 거다. 팔의 모든 부위의 근육량을 측정하고 당기는 힘, 미는 힘, 악력, 모두 확인할 거다.”

“알겠습니다.”

이내 실험이 진행되고 아가타는 묵묵히 실험에 응했다. 딱히 힘든 것은 없었기에 도리어 딴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한테 구체적으로 뭘 바라시는 걸까.’

팔을 고쳐주는 대가로 제시한 것은 고용.

오히려 그녀로서는 감사하다고 해야 할 일.

지금껏 인간과 수인의 혼혈로 살아오며 핍박과 멸시만을 당해왔던 그녀로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제안이었다.

‘사실상 씬도 날 쓰고 버리기 좋은 말로 생각했겠지.’

그녀의 외형은 평범한 수인과도 달랐다.

보통의 수인이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의 느낌이라면 인간과의 혼혈인 아가타는 인간의 모습에 동물의 귀와 꼬리만 달린 외형이었다.

그렇기에 씬 소속의 수인들과 대화를 할 때도 꺼림칙한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하고 있었냐?”

살렘이 돌아왔다.

그는 실험을 진행 중인 둘을 보다가 아가타에게 말했다.

“이제 이틀 정도만 더 마법적인 시술을 하면 끝이야. 물론 적응 훈련도 해야겠지만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를 하지 말고 이 녀석한테 해라.”

“이 녀석?”

아가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살렘의 뒤로 아드리아스가 나타났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당황한 아가타는 들고 있던 악력 측정기를 부숴버렸다.

콰직-

“아! 죄송합니다.”

“라고, 더 단단한 측정기 만든다.”

그 모습을 본 아드리아스가 천천히 다가와 아가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팔은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 아가타는 어색하게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아가타를 보며 아드리아스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제가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네에.”

아가타는 슬며시 팔을 내밀었다.

세밀하게 새긴 마법진이 인상적인 팔은 살렘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시술에서 티가 나지 않게 가려준다고 했었다.

“어떠냐?”

살렘이 은근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으음······.”

“왜? 반응이 왜 그런데?”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아드리아스가 세심하게 팔을 만지며 살피자 아가타의 얼굴에 홍조가 깃들었다.

애써 내색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살살 건드리는 아드리아스의 손길에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르릉.”

“예?”

순간적으로 들려온 고양이의 골골거리는 소리에 아드리아스가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아가타는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쪽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 죄송해요. 시, 실수로······.”

“아닙니다. 저를 부르신 줄 알고 제가 오해했습니다. 마저 살펴보죠.”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아가타는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묘하게 기분 좋게 느껴지는 아드리아스의 손길은 수인으로서의 감각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참아야 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견뎌낸 아가타는 이내 아드리아스가 손을 떼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으."

“아직 팔의 상태가 안 좋은 겁니까?”

“아, 아니에요. 상태는 좋아요.”

괜히 얼굴이 붉어진 아가타는 아드리아스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한 채 우물쭈물 댔다.

“그래서. 어떠냐고!”

“라고도 궁금하다.

아가타의 반응 따위 관심도 없는 살렘과 라고가 재촉하자 아드리아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좋은데······.”

“뭐야, 그 반응은. 뭔가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여기 이 부분 있지 않습니까······.”

“으익!”

갑자기 손이 닿자 깜짝 놀란 아가타의 고양이 귀가 뻣뻣해졌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드리아스가 급히 사과를 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신 거 맞죠?”

“네, 네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살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터벅터벅 다가와 아가타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반응도 없이 오히려 왜 잡았냐는 듯 올려다보는 아가타의 눈빛에 살렘이 피식 웃었다.

“멀쩡하구만! 왜 그렇게 엄살을 부리는 거냐?”

“말했잖아요. 괜찮다고······.”

“뭐야, 근데 왜 아드리아스가 잡을 때는 그리 민감하게 반응해?”

“네? 제, 제가요?”

당황한 듯 눈알을 굴리는 아가타의 모습에 살렘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 설마······.”

벌컥!

그때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드리아스, 있어?”

“비비안, 오셨군요. 저 여기 있습니다.”

“응.”

로들렌에서 출발했던 비비안이 지금 도착했다.

곧바로 아드리아스를 찾아온 그녀는 오자마자 그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비, 비비안?”

“싸웠다고 들었어. 몸은 괜찮아?”

“전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이 다 처리해주신 덕분에······.”

“무사해서 다행이야.”

살포시 웃는 비비안을 향해 아드리아스가 마주 웃어 보이며 이내 살렘을 향했다.

“팔에 새겨진 마법진 중에서······아가타, 다시 팔을 살펴도 되겠습니까?”

“네.”

후우, 하아.

아가타는 각오를 다지며 팔을 내밀었다.

실수하면 안 된다. 지금은 무려 비비안이 보고 있는 상황.

‘저 사람은 분명 아드리아스 님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안 돼.’

모르는 사람이 봐도 티가 날 정도로 비비안의 헌신은 눈에 띄었다.

특히나 지옥에 잠깐 같이 갇혔을 때 봤었던 비비안의 감정이나 모습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기 이 부분의 마법진, 이 공식을 사용하면 어떻습니까?”

“응? 그렇게 하면 이 뒤쪽도 싹 바꿔야하잖아.”

“물론 바꿔야죠. 하지만 여기를 이렇게 바꾸면?”

“라고, 알았다! 뭔지 알았다! 아드리아스, 대단하다!”

한참 자신의 팔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이들을 보며 아가타는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을 위해주고 혼혈이라고 흉을 보지도 않는 사람들.

‘행복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한 감각에 아가타는 생각했다.

이 감각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 319화. 누군가의 결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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