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아드리아스를 찾는 사람들 >
루이스 아트만은 아드리아스가 아카데미에 복귀하자마자 자신들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연무장으로 나왔다.
‘드디어······.’
기다리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언제쯤 아드리아스의 강의를 받을 수 있을까 항상 기대해왔던 그였다.
“늦었어, 루이스.”
연무장에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있던 세레나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주변은 이미 학생들로 가득 들어찬 상황.
“선배, 아니 교수님은?”
“오고 계셔. 곧 도착하신대.”
옆을 보자 크리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있었고, 세 학년 후배인 벤자민이 온몸에 검을 주렁주렁 매달고 주변을 서성였다.
“아드리아스 교수님 언제 복귀하셨대?”
“나도 몰라. 들은 적도 없는데 갑자기 오셨네.”
주변 학생들도 갑작스런 이벤트에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기다리고 있을 때,
“왔다!”
드디어 그가 등장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로들렌 아카데미 최연소 교수이자, 대륙 역사상 최연소 오러 마스터.
아직 황궁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에레스티얼과 유노르 가문의 공언으로 확정이 난 분위기였다.
“우리랑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실제로 얼마 안 나지. 재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학생이셨으니까.”
“그런데 저 4인방을 가르친다고? 조금 무리 아니냐?”
한 학생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갑자기 관심을 받게 된 그 학생은 당황한 듯 손을 저었다.
“아니, 딱히 교수님을 낮잡아보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의문이잖아. 교수님이 강하고 뛰어난 인재인 건 인정하지만 가르치는 걸 과연 잘할까 의문인 거지.”
“그건 맞지. 가르치는 건 또 별개의 영역이니까. 오히려 가르치는 건 잘 못하시지 않을까?”
그럴듯한 말에 학생들이 호기심을 품을 무렵, 아드리아스가 마침내 연무장 안으로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벤자민이 평소답지 않게 밝은 모습으로 아드리아스를 반겼다.
“제 2의 크리스인 줄 알았는데 아드리아스 교수님한테만 저런 반응이란 말이지.”
세레나가 귀엽다는 듯 중얼거리며 본인도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어.”
간단히 대답한 아드리아스의 곁에는 언제나 그렇듯 비비안이 붙어있었다.
“간단하게 수업 하나 하자.”
루이스와 크리스의 인사도 마저 받은 아드리아스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배울 건 다 배웠을 테고, 알 건 다 아는 알 테니까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말을 마친 아드리아스가 훈련용 검을 집었다.
“교수님.”
그런 아드리아스를 향해 예전보다 훨씬 과묵해진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이런 장소에서 가르침을 주시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주변을 슬쩍 훑는 크리스의 눈빛이 자신들을 둘러싼 학생들을 향했다. 그 스산한 눈빛에 구경을 나온 학생들은 몸을 움찔 떨며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다른 애들도 다 보라고.”
“그 말은······.”
“딱히 내 강의를 숨길 필요는 없잖아.”
당당하게 말한 아드리아스는 곧 검을 치켜들었다.
“저번에 벽에 새겼던 검흔, 그것부터 시작할까?”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
콰앙!
“예상이 또 맞았어.”
책상을 내려친 것치고는 덤덤하게 말한 미누스 모하임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렸다.
“혹시나 했는데 안 좋은 일도 맞춰버리는군.”
“크롬웰 백작의 말을 듣고 우리도 어느 정도 알아본 뒤에 예측한 일이잖아.”
그레타가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히려 미리 대비했었으니까 이제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되는 일이지.”
이어지는 그레타의 말을 듣던 미누스가 의자에 거칠게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물며 짓씹었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글쎄. 난 어차피 출가외인이 될 몸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어.”
“지금 장난치자는 걸로 보여?”
미누스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하아······.”
그런 미누스를 보며 그레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다 준비해놓고 왜 그렇게 쫄아있는 거야, 오빠.”
“이 선택 하나로 우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가문의 미래가 걸려있다.”
“언제는 안 그랬어? 평범한 약초상 가문이었던 모하임이 이렇게 성장한 것도 다 그런 선택들의 결과야.”
그레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누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누스의 앞에 놓인 서신을 보더니 그대로 들고 찢어버렸다.
“그레타!”
“모하임 전하.”
그레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가 흔들리면 가문이 흔들립니다. 확고한 기둥이 되어주십시오.”
그레타의 말에 미누스는 입을 벌린 채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굳게 다물었다.
“넌 결심을 한 모양이구나.”
“전 처음부터 결심을 굳혔습니다. 모하임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찌 뒤로 내뺀 답니까.”
웃으며 말하는 그레타를 본 미누스의 마음도 단단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진지한 태도의 그레타를 보는 것은 미누스도 처음으로 보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하. 좋아,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미누스는 그레타의 손에 들린 찢긴 서신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 박혀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황실의 인장.
“우선은 우리 쪽에 연락부터 싹 돌리고 남부 왕국 연합에도 연락해야겠군.”
“제가 서부 측 가문들을 담당하겠습니다.”
“대너드랑 클루소를 데리고 가.”
“알겠습니다, 전하.”
그레타는 별 다른 말없이 곧바로 방을 나섰다.
발 빠른 그녀의 행동에 미누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이다.”
갑자기 날아온 황궁의 무리한 요구.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가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예견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남부 왕국 연합과의 마찰, 그리고 갑자기 눈엣가시처럼 성장하는 우리 가문.’
남부 왕국 연합과 전쟁을 예고하는 서신, 그곳에는 무리한 액수의 전쟁세와 병력 동원이 요구되고 있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이 제안을 수락하면 서부의 맹주라는 체면이 구겨지게 된다. 결국 모하임의 힘은 서부 귀족 가문들의 지지로 만들어지니 아무리 공작이라는 허울 좋은 작위가 있어도 결국 추락하고 말 터.
그렇다고 황궁의 명령을 무시하면 그 또한 불순한 요지로 받아들일게 뻔했다.
‘황궁은 지금 남부 왕국 연합과 우리 가문, 둘 중 하나를 지우려고 한다. 아니면 둘 다 지우거나.’
그동안 너무 고여 있기는 했다.
그로 인해 귀족 가문들에 대한 황궁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
황궁의 입장에서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분위기 전환, 즉 타국과의 전쟁이나 먹기 좋은 가문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타국은 그렇다쳐도 본보기로 뽑힌 가문이 제국의 네 기둥 중 하나인 모하임이 될 거라고는 아마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터.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 녀석을 제외하면 말이지.”
그는 모하임이 성장할 방법과 더불어 성장할 시에 황궁의 견제가 들어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그 조언까지 들었음에도 지금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결정.
띠리리리-
마침 울리기 시작하는 마법 통신기에 미누스가 받았다.
“무슨 일이지?”
-전하,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아카데미에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래, 마침 잘됐네. 나도 조금 있다가 아카데미로 가겠다.”
-전하께서 아카데미로요?
“어.”
아드리아스를 만나야했다.
이미 수많은 조언과 계획을 전해들었지만 막상 시기가 다가오자 다시 한 번 그와의 대화가 절실했다.
-전하, 그런데······.
“왜 또.”
-황궁에서도 곧 아카데미에 사람을 보낸다고 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출발하거나 도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
갑자기 누구를 보냈다는 소리지? 그리고 왜?
그런 미누스의 의문에 통신을 건 수하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조금 전에 극비 정보로 들어왔습니다만 알아낸 바로는 아마······.
**
“후우, 하아.”
거칠게 호흡을 내뱉은 루이스는 천천히 자세를 거둬들이며 이내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몇 시간 전에 아드리아스에게 배운 강의를 복습하며 훈련한 모습이었다.
“벌써 시간이······.”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끼니를 챙기지 못했기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무리 아드리아스가 알려준 강의 내용이 좋아도 무리해서 몸을 혹사하면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것도 아드리아스 선배님이 알려준 내용이지.’
이전까지는 그저 무턱대고 수련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 시절의 아드리아스가 워낙 휴식을 강조했던 터라 지금은 머리에 각인이 되었을 정도로 틀어박혔다.
덜컥-
개인 연무장을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 곧 여름의 초입이었지만 날이 저문 후에는 아직 시원했다.
“아! 루이스 선배님! 수련 끝나셨어요?”
마침 지나가던 후배 하나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응. 너도?”
“예! 마침 밥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러자.”
“어? 검룡 선배님? 식사하러 가세요?”
우연히 만난 후배와 함께 식당 쪽으로 걸어가자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하며 자연스레 대열에 합류했다.
“이야, 확실히 오러 마스터는 다르더라. 움직임이 우리랑은 완전 다르던데?”
“근데 교수님 말 대로면 딱히 오러 마스터가 아니어도 그, 보법이라는 걸 배우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면서?”
“교수님이 탁 트인 곳에서 강의를 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일부러 그런 곳에서 강의를 한 거겠지? 우리도 보라고?”
결국 20명이 넘는 대규모의 일행이 되어버린 상태로 식당을 향하자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후우웅-
“음······?”
일행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길을 걷던 루이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앞을 응시했다.
한 남자가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학생이 아니야.’
그러나 교수도 아니었다.
그가 알기로 저런 외모의 교수는 없었으니까.
탁!
결국 루이스는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맨 앞에서 걷던 루이스가 멈추자 학생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그의 시선을 따라 앞을 보았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네?”
“외부인이 학부 부지를 저렇게 함부로 돌아다닌다고?”
이내 학생들도 수상함을 눈치 채고 상대를 경계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신데 누구십니까?”
드디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다가온 남자를 향해 루이스가 먼저 물었다.
남자의 외모는 굉장히 평범했지만 어딘가 인간이 아닌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꼭 인형 같아.’
상대의 얼굴에는 그 흔한 감정이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의 물음에도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표정 없는 얼굴로 학생들을 슥 훑어보고 걷기만 할 뿐.
“거기, 잠시만요!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허가를 받더라도 관계자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다니는 건 불법······.”
무시하고 지나가는 상대를 한 학생이 막아섰다. 그러자 드디어 상대가 반응을 했다.
“비켜.”
무미건조한 음색.
그러나 거기서 느껴지는 폭력적인 기운은 주변의 모두를 움찔 떨게 할 정도였다.
‘최소 오러 마스터!’
루이스가 한껏 긴장했다.
오러 마스터나 되는 존재가 아카데미 부지를 홀로 걷고 있다는 것 자체도 어딘가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제국의 오러 마스터는 대부분 특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상대는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
“정체를 밝히십시오.”
루이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검을 뽑아 들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루이스 아트만이군.”
남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절 아십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기괴하게 느껴지는 사백안으로 뚫어지게 루이스를 바라만 보았다.
흰자에 둘러싸인 검은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었다.
“서, 선배님. 일단은 물러나고 교수님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학생들이 그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너흰 물러나. 교수님들한테 수상한 자가 부지 내에 들어왔다고 알리고. 상대는 오러 마스터인 것 같다.”
“오, 오러 마스터!”
루이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는지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는 몇몇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르게 흩어졌다.
“절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루이스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드디어 대답을 했다.
“그렇다.”
“전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어떻게 저를 알고 있죠?”
“넌 날 안다.”
남자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이내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찾으러 왔다. 그는 어디 있지?”
“교수님을?”
아무리 봐도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아드리아스를 찾으러 왔다는 말에 루이스가 경계했다.
경계하는 기색을 느꼈는지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모르나?”
“당신처럼 수상한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
뭔가 이상한 느낌이 물씬 풍길 때 남자가 서서히 허리춤에 찬 검을 뽑기 시작했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드리아스의 위치를 알아야한다.”
“크윽.”
강렬한 기세.
기계나 인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표정한 남자였지만 검을 뽑아들자 살인적인 기운이 주변을 잠식해나갔다.
“여기서 검을 함부로 뽑으시면 안 됩니다.”
그때 남자를 경고하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선배! 마침 근처에 계셨습니다!”
조금 전에 달려갔던 후배들이 누군가를 대동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강의를 했던 사내.
그리고 수상한 자가 찾고 있던 사람.
“그게 아무리 근위기사단장이라도 말이지요.”
아드리아스 크롬웰이었다.
< 313화. 아드리아스를 찾는 사람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