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일상으로 >
“가셨던 일은 잘 해결하셨습니까?”
데오스 교장이 특유의 인자한 얼굴로 물어왔다.
“덕분에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라니요. 아무리 아카데미의 일이 중요하다지만 가문과 관련된 일이 우선이지요.”
비꼬는 건가? 아니겠지?
데오스에게는 가문의 사정 때문에 나갔다 온다고 해두었기에 딱히 의심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데오스가 정령사인 것도 이제 밝혀질 일이 없겠네.’
데오스가 정령을 사용할 만한 일을 미리 다 처리해버렸다.
아카데미 부지에 봉인된 고대 마수와 카일러, 카론, 두 흑마법사를 미리 처치해버렸으니······.
“마침 개교기념일이 곧 다가옵니다. 중간 평가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편히 쉬셨다가 천천히 강의를 준비해주십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야기를 끝내고 비비안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데오스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왜 그래?”
“강의라고 하니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할 지 고민입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아드리아스한테 배운 적 있었잖아. 도움 많이 됐어.”
좋게 말해주는 비비안에겐 고맙지만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이제 4학년이 된 플레이어블 3인방의 성장이었다.
‘원래였으면 3인방이 겪었어야할 시련들을 내가 전부 해결해버렸다.’
덕분에 생존율을 높였지만 성장할 기회를 빼앗은 셈이었다.
특히 루이스의 경우 고난과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차피 아드리아스가 가르칠 애들은 네 명 밖에 없잖아.”
“예.”
플레이어블만 신경 쓰고 싶었기에 시험을 치른 다른 쟁쟁한 학생들도 전부 탈락시켜버렸다.
욕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지만 뭐 어쩌겠나.
나한테는 그 4명을 가르치기에도 빠듯했다.
“나도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비비안.”
비비안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자 어디서 온 건지 모를 학생들이 순식간에 주변에 가득 찼다.
대부분은 기사학부의 학생들.
매직 태블릿으로 대놓고 나를 찍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교수님! 혹시 지금까지 어디에 다녀왔는지 물어도 될까요?”
당돌한 학생 하나가 갑자기 길을 막으며 내게 물었다.
신문부원인가.
“이름이 뭐지.”
“네?”
“이름.”
도리어 내가 되묻자 질문을 던진 학생은 잠시 당황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법학부 2학년 콜렛 체임버입니다.”
“그래, 콜렛.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궁금해?”
“넵!”
용기를 낸 학생에게는 기회를 조금 줘볼까.
“내가 문제를 하나 내볼게. 네가 맞추면 말해주고 틀리면 그냥 갈 거야.”
“어떤 문제요?”
“그냥, 마법 이론에 관한 잡지식?”
“좋아요!”
콜렛을 비롯한 몇 없던 마법학부 학생들의 귀가 쫑긋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하여간 귀여운 것들.
“너도 알다시피 내 졸업 논문은 제 4의 기원에 관한 내용이야. 혹시 읽어본 적 있어?”
“넵! 작년에 접하고 지금까지 연구 중입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네. 그럼 문제를 낼게.”
내가 제어의 기원에 대한 말을 꺼내자 콜렛은 오히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열심히 연구한 모양이군.
“내가 발견한 것 이외에 존재했던 각 기원들은 서로 맞물리는 형태였어. 모순이 순수를 이기고, 순수는 이해를 이기지. 반대로 이해는 모순을 이겨.”
너무나 당연한 기원의 이론이었다.
처음 발견된 기원인 순수를 중심으로 모순과 이해가 파생됐지.
“그건 3살짜리 아이도 알죠.”
“그래, 이건 3살짜리 아이도 알거야. 그런데 생각해봐. 과연 내가 찾은 제어의 기원은 원래 존재했던 세 가지 기원들과 무슨 연관 관계가 있을까?”
“제가 알기로 교수님께서 찾으신 제어의 기원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전혀 별개의 것, 그래. 하지만 내가 질문을 했던 연관 관계와 무슨 상관이지?”
내 의문문에 콜렛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포트리온의 디바우러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아무 연관도 없다고요.”
“넌 내 문제를 잘못 이해했어. 중요한 건 ‘연관’이 아니라 ‘관계’야.”
“네?”
“새로운 네 번째 기원이 기존의 세 가지 기원과 무슨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게 내가 내는 문제다.”
“그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물음에 콜렛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아무 관계가 없을까?”
다시 한 번 던져진 내 물음에 콜렛이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열심히 생각을 했다.
역시 마법학부 애들의 탐구욕은 대단하네.
“연관이 되지는 않았지만 관계는 성립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건 지금 네가 나한테 제출해야할 답이지.”
“으음······.”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군. 콜렛 체임버, 해답을 구하면 나중에 찾아와라. 날 가로막은 용기에 대한 보상을 그때 치러주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마법학부의 후배들도 보니 기분이 썩 좋네.
“교수님!”
그때 뒤에서 콜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님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계신 건가요?”
“콜렛, 마법이란 건 말이야.”
나는 슬쩍 고개만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응용의 학문이야. 정해진 길은 없어.”
“그, 그렇지만 문제를 냈다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시는 대답이 있다는······.”
“그것도 내가 낸 문제의 일부라고 생각해. 과연 내가 알고 있을지, 모르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으으!”
앓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는 콜렛을 놔두고 나는 비비안과 함께 내 집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시에 학생들이 파도처럼 갈리며 우리의 길을 텄다.
“아드리아스.”
조금은 소란이 사라진 사이 비비안이 조심히 나를 불러왔다.
“예.”
“답, 알고 있어?”
“방금 전에 낸 문제요?”
“응.”
비비안이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
“알고 있죠.”
“기원 같은 개념은 기사학부도 알아. 그래서 궁금해. 아드리아스가 찾은 새로운 기원은 어떻게 ‘기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야?”
비비안이 건넨 질문은 이미 논문의 발표 때 증명한 바 있었다.
“제가 새로 찾은 기원으로 파생된 마법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게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원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모든 마법은 기원을 뿌리로 둔다.
하지만 내가 제어의 기원으로 선보였던 마법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보인 적이 없는 형태.
한 마디로 기존의 세 가지 기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마법은 무조건 기원을 뿌리로 둬야하니 결국 새로운 기원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지.
“원래의 기원하고는 정말로 연관이 없어?”
“연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설적으로 연관이 없기 때문에 관계가 성립되죠.”
“무슨 소리야?”
“제가 찾은 기원은 기존의 세 기원들처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법을 사용할 때는 다르죠.”
제어의 기원은 오직 조화의 기원과 연관이 있다. 원래 있던 세 개랑은 전혀 별개지.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고민한 나는 천천히 풀어서 설명했다.
“기존의 세 가지 기원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였기 때문에 동시 사용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굉장히 까다로웠죠.”
예를 들면 디에네가 사용하는 공간 마법이 있지. 이건 순수와 이해를 동시에 운용하는 마법이었다.
이러한 마법들은 한 가지의 기원을 사용하는 마법보다 높은 난이도와 마법적 재능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서로 연관된 기원을 사용하는 것이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제가 찾은 새로운 기원은 말했듯이 기존의 기원들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덕분에 섞어서 사용하기가 매우 용이하죠.”
“아아.”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그렇지만 마법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어가 연구될수록 수많은 마법들이 파생될 거예요.”
워낙 예상치 못한 발견이라 아직은 이걸 깨달은 마법사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것도 금방이었다.
마법사들은 똑똑했고 그 중에서도 천재라 불리는 괴물들이 즐비했으니까.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앞으로는 평범한 파이어볼도 궤도를 쉽게 바꿀 수 있고 좀 더 나아가면 마나의 제어로 더 예리한 윈드커터도 볼 수 있겠죠.”
“역시 아드리아스.”
“예, 이게 접니다.”
장난스럽게 말한 나는 드디어 도착한 건물을 바라봤다.
“애덤이 잘 지냈는지 모르겠네요.”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딱히 관심은 없었다.
조교수인 애덤보다 일단은 플레이어블 3인방과 벤자민의 생활이 궁금했다.
**
“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루시아 에버라스트는 눈을 비비며 실험대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이내 오늘이 그동안 연구했던 마법을 연무장에서 직접 시행해보기로 한 날짜임을 알아챘다.
“으응.”
비몽사몽 연구실 한쪽에 비치된 세면실로 들어가 대충 얼굴만 닦은 루시아는 이내 방을 나왔다.
기묘한 형태의 복도가 그녀를 마주하자 그녀는 새삼 자신이 로들렌 마탑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선배.”
뜬금없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루시아 본인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실제로 로들렌 마탑에 처음 들어와 본 건 아드리아스와 함께였으니 떠오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어, 우리 잠꾸러기 대마법사님께서 어쩐 일로 연구실에서 나왔대?”
탑 내부에 있는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에 마탑의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으응? 누구였더라?”
“이제 이름은 좀 외워줘라. 페리산이라고 벌써 다섯 번은 말한 것 같다.”
“정확히는 네 번.”
“기억하고 있잖아!”
이름은 기억 못해도 네 번이나 말한 건 알고 있던 루시아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를 지나치려했다.
“너도 혹시 아드리아스가 돌아왔다는 말에 나온 거냐?”
“으응?”
갑작스레 나온 아드리아스의 이름에 루시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뭐야, 아드리아스 때문에 나왔던 거 아니었어? 아드리아스, 오늘 아카데미에 복귀했다던데?”
“아······.”
잠시 멍하니 있던 루시아는 이내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선배 보러 가는 거예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평소에도 너넨 친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도 너처럼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사람은 재능이 있어야 여유도 생기고 돈도 생기고 애인도 생기고······.”
혼잣말을 시작하는 이름 모를 선배를 놔두고 루시아는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는 탑 내부에 있던 연무장으로 향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자랑해야지.”
그동안 그녀도 헛되이 시간을 보낸 게 아니었다.
언젠가 아드리아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마법의 연구를 해오던 나날들.
병을 고치고 재능이 만개한 그녀의 진심은 그 어떤 마법사의 성취보다 빨랐다.
이내 탑의 밖으로 나온 루시아는 오랜만에 쬐는 햇볕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아드리아스의 집무실은 수시로 놀러갔던 적이 있기에 이제는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
“아드리아스 교수님은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집무실에는 조교수인 애덤 밖에 없었다.
“어디 갔어?”
“기사학부 쪽으로 가셨습니다.”
오자마자 기사학부라니.
루시아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게으른 몸뚱이를 이끌고 기사학부로 향했다.
무려 한 달 가까이 자리를 비웠던 아드리아스를 보기 위해서 이 정도 귀찮음은 감수해야지.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할 거지만.’
아드리아스에게 장난을 칠 생각이 가득한 루시아는 혼자 실실거리며 기사학부에 도착했다.
기사학부 부지에 도착한 루시아는 아드리아스가 있는 장소를 알 수 없었지만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변에는 온통 급히 어디론가 향하는 기사학부 학생들.
그들이 향하는 곳에 당연히 아드리아스가 있을 터였다.
““와아아!””
환호성과 같은 감탄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루시아가 도착한 연무장에는 학생들이 한 가득이었다.
“안 보이잖아.”
작게 투덜거린 루시아는 그대로 허공을 부유했다. 그러자 시야가 탁 트이며 단숨에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자마자 뭐하는 거래.”
아드리아스는 공개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앞에 세워둔 건 네 명의 학생뿐이었지만 사실상 탁 트인 곳에서 강의를 하는 만큼 공개 강의나 다를 바가 없었다.
스릉-
날카로운 검명과 함께 아드리아스가 시범을 보였다.
그 모습이 검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봐도 감탄이 나오는 움직임이었다.
““오오오!””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오고, 그 모습을 본 루시아가 피식하며 웃었다.
“멋있긴 하네. 그래도······.”
아드리아스 선배는 연구하는 모습이 제일 멋있다.
< 312화. 일상으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