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대왕들 그리고 부름 >
마나를 끌어올리자 순식간에 날개가 생성되었다.
콰앙!
동시에 염라의 손아귀를 양손으로 막아내자 밟고 있는 땅에 깊은 고랑이 일며 뒤로 밀려났다.
“하하!”
염라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말했잖아. 널 데리고 간다고.”
초월자에 대적하는 날개의 힘이 거세게 달아올랐다.
염라도 그 반응을 느꼈는지 내 등 뒤에 있는 날개를 곁눈질했다.
“네 쪽 세상에서는 기를 마나라고 부른다지? 마나를 다루는 것도 신기한데 저 날개는 더 신기하네.”
염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움켜잡으려는 것처럼 반대편 손을 뻗어왔고 나는 상대를 밀어내는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사위가 조용해졌다.
“처음 느껴보는 힘이야. 널 데려가야 할 이유가 늘었어.”
“좀 물어봅시다. 절 데려가서 뭘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염라가 노리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데려가서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질문은 약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대답해줄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는 이번엔 봐줄 생각이 없는지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는 게 눈에 띄었다.
“발악해봐라.”
파앙-!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오며 주먹을 휘두르는 염라를 몸을 틀어 피했다.
아니, 피하려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손끝에 닿았다.
퍼어어억-----------!
손끝에만 닿았음에도 압도적인 괴력에 의해 몸이 날아갔다.
다행히 초월자를 상대로 압도적인 위력을 드러내는 날개 때문에 대부분의 타격은 상쇄되었다.
“거 참 희한하네. 어떻게 돼먹은 몸이냐?”
염라도 손맛이 덜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내게 돌진해왔다.
하필이면 검도 없어서 맨몸인 상태라 제 실력을 못내겠군.
‘어쩔 수 없지.’
격투기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검보다 오래 익힌 게 맨몸 격투였으니까.
후우웅--
염라가 휘두른 주먹이 몸을 낮춰 피한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그 힘만으로 없는 살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퍼엉!
그러나 그렇게 피해낸 덕분에 나는 염라의 간이 있는 부위를 주먹으로 힘껏 찌를 수 있었다.
“어쭈?”
염라가 우습다는 소리를 내며 곧바로 반대 손으로 나를 후려쳤다.
그러나 그 동작 또한 미리 예측한 나는 슬쩍 스탭을 밟아 뒤로 피해냈다.
“쥐새끼냐?”
쥐새끼라니 그런 섭섭한 말씀을······.
확실히 현대의 격투술은 이곳에서도 충분히 먹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날개까지 소환한 상태라 내 육체능력은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팡팡팡!
나는 가볍게 스탭을 밟으며 가벼운 공격만 날렸다. 의외로 잘 먹히나 싶었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우드득!
갑자기 염라의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 날아왔다.
콰아아앙--------------!
“크헉.”
대포알을 정통으로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날개가 있는 상태였음에도 제대로 맞은 염라의 공격은 내부가 진탕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먼저 맞고 날아갔던 생불과 같이 바닥에 처박힌 몸을 애써 일으켰다.
그러나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장난은 끝이다, 이놈아.”
면전에서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웃고 있는 염라가 내 머리통을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씨부럴, 안 그래도 그다지 잘난 것 없는 얼굴인데.
꽈득-
나는 바닥에 처박힌 상태에서 내 머리통을 움켜쥔 염라의 손목을 잡았다.
근접전? 오히려 좋지.
우득!
순식간에 팔을 타고 올라가 손목을 뒤틀었다.
덕분에 잡혀있던 머리가 풀려났다.
현대 무술 중에서도 내가 최우선적으로 익혔던 실전 주짓수가 첫 선을 보였다.
“허허?”
손목이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인 염라가 허탈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나도 날개를 소환한 상태가 아니었으면 꺾지도 못할 만큼 강골이었는데 그런 손목이 부서지니 놀란 모양이었다.
화르륵--
“아!”
잊고 있었네.
이 엄청난 열기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순식간에 화마가 일어나 염라의 몸과 주변을 불태웠다.
화탕지옥에서 간접적으로 느꼈던 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열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프스스-
마나가 거의 다 떨어져 날개도 사라지려하고 있었다. 이대로 팔을 잡고 버티는 것도 의미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벗어나려했다.
“어딜 가려고.”
염라가 곧바로 반대쪽 손을 뻗어 내 발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고열의 불꽃을 내 온몸에 붙였다.
화르르륵----!
“끄어어.”
입이 저절로 벌리며 고토에 찬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에 지글거렸다.
파삭!
결국 마나가 다 떨어지며 날개까지 사라졌다.
그러자 화염으로 인한 고통이 순식간에 배로 늘어났다.
“끄윽, 끅.”
애써 억누른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야······.
피잉-
“그만하십시오, 염라.”
처음 듣는 여인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오관,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여기 온 거라고 말했을 텐데?”
“그 이유가 그를 불태워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는 몰랐군요.”
오관대왕인가.
검수지옥의 주인이 등장했음을 깨달은 나는 염라가 대화 나누는 사이를 틈타 날 잡은 손아귀에서 엄지손가락만 잡아 꺾었다.
“이놈 봐라?”
비록 부러트리지는 못했지만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고통을 견디며 간신히 벗어난 나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시 인재는 인재야. 넌 내가 반드시 데려간다.”
염라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는 저 미소를 볼 때마다 소름이 돋네.
“괜찮나요?”
오관은 이제 보니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여인이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얼굴부터 살폈다.
보이긴 하니?
“염라의 화염을 맞고도 멀쩡한 영혼은 처음 보네요.”
날개가 염라의 기운을 억제한 게 아니었으면 나도 고통에 미쳤을 거다.
때마침 오관이 도착해서 말을 건 것도 신의 한수였지.
“오관, 비켜. 그 녀석은 내가 데리고 갈 거야.”
“또 고문하시게요?”
“내가 그놈을 고문하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야. 그만하고 비켜.”
“염라, 저는 이미 당신의 무례함을 참았습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절 무시하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오오, 싸우냐?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내 시험은 어떻게 되는 거고, 탈출은 어떻게 하지?
스스스스---
대나무 숲에서 묘한 소음이 들려왔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그건 날붙이가 갈리는 소리였다.
“야아, 오관. 나랑 싸우려고?”
“필요하다면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있죠.”
“너도 설마 보살들이랑 한 패냐?”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
기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염라는 확실히 나를 상대할 때보다 신중한 기색으로 오관을 살폈다.
“그래, 내가 사과할게. 널 무시한 건 미안했다.”
의외로 염라가 순순히 고개를 숙······.
인줄 알았지만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라고 할 줄 알았냐?”
거대한 주먹이 오관을 향해 던져지고 오관은 곧바로 검을 뽑았다.
우우웅---
그러나 둘의 대결은 뜻밖의 존재로 인해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파박!
“시간을 너무 끌었네.”
급히 멈춰선 염라가 짐작했다는 표정으로 오관과 자신의 사이에 생긴 검은 블랙홀을 보았다.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블랙홀은 이내 거무튀튀한 뭔가를 뱉어냈다.
“오도전륜······.”
그 모습을 본 오관이 눈썹 사이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게 오도전륜대왕.
마지막 지옥을 다스리는 자라고 들었다.
근데 그 생김새가 마치······.
“먹물?”
일단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검은 먹구름 같은 무기물의 형태였는데 아직 등장하지 않은 건가 싶어도 블랙홀에서 튀어나온 건 그게 전부였다.
“염라, 자리, 이탈.”
“그래. 알았어, 알았어. 금방 돌아갈게. 그 전에 딱 하나만 하자.”
염라가 미소 지으며 두 팔을 들었다.
그 태연한 모습에 오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검을 거칠게 갈무리했다.
“하나만? 무엇을?”
“저 녀석을 데려가려고.”
염라가 나를 가리키자 먹구름이 허공에서 스물스물 거리더니 이내 내 앞에 멈춰섰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반갑습니다.”
초강이 염라와 오도전륜은 인간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설마 이런 괴상한 형태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염라, 불가.”
“왜!”
“아드리아스, 크롬웰, 시험, 자질, 판단, 관음, 관찰 중.”
“천수관음 따위 내 알 바 아니야. 꼬우면 덤비라고 전해.”
“불경한, 발언.”
먹구름이 시커멓게 번지기 시작했다.
나름 위협을 한다고 하는 모양이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특이한 생물이네.’
생물, 맞지?
어찌됐든 이왕이면 오도전륜이 염라를 설득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다음 지옥이 염라가 있는 지옥인데 과연 멀쩡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을까?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저놈은 내 지옥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
염라가 마침 내가 생각한 걸 입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오도전륜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오도전륜, 데리고 간다.”
“뭐?”
“조금 전, 위에서, 지시, 곧바로, 흑암지옥.”
오도전륜의 말에 오관과 염라가 놀란 듯 보였다. 당사자인 난 당연히 놀랐고.
염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를 드러냈다.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냐. 이 조막만한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지 할 말만 다하네.”
“할 말, 안 끝남.”
오도전륜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곧이어 먹구름은 점차 그 양을 불려나가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모든 걸 뒤덮기 시작했다.
“이 되도 않은 새끼가 어딜!”
염라가 오도전륜을 욕하며 냉큼 내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던 나는 뒤로 빠질 수 있었다.
“염라, 부처랑, 협상? 안 됨. 넌, 영원히······.”
오도전륜의 말이 점점 명확해져갔다.
“발설지옥을 담당해야함. 도망갈 수 없음.”
“누가 안한데! 일단 협상 시도라도 해보자는 거지!”
오도전륜의 말을 통해 나는 염라가 억지로 대왕의 자리를 맡고 있음을 깨달았다.
초월자들 사이에서도 급이 나뉘는 듯 아마 부처에게 붙잡혀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부처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날 붙잡아서 부처랑 협상을 시도할 생각이라는 말이었다. 근데 대왕들보다 약한 일개 인간한테 왜 부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지?
“오도전륜!”
염라의 불꽃이 하얗게 번졌다.
그러나 오도전륜도 만만치 않은지 그 불길을 막아내며 점차 범위를 넓혀 나를 집어삼키려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흑암지옥에 빠지면 넌 죽은 거나 다름없다! 차라리 나를 따라와라! 그러면 넌 적어도 내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
“자리?”
“그래! 내가 하려고 했던 건 내 자리를 대신해줄 사람을 찾는 거였다. 그리고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지옥에서 좀 굴려줄 생각이었지. 내 수련이 괴롭긴해도 흑암지옥에 비할 바냐! 게다가 무려 염라대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날 수련시켜주고 키운 다음에 다음 염라의 자리를 넘기려고 했다고?
“다시 말하지만 흑암지옥에 빠지면 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어둠 속에서 견뎌야한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그저 죽은 거나 다름없이 있어야해.”
그건 좀 위험한데.
그렇다고 해야 할 건 안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일단 염라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왕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건 곧 이곳에서 기한 없는 세월을 보내야한다는 의미.
누군가는 대왕의 자리를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겠지만 난 사양이다.
‘흑암지옥도 문제군.’
사실 무슨 지옥인지는 몰랐었다.
애초에 알았어도 결과가 변하는 건 없었겠지만 가기 전에 알게 된 이상 뭔가 더 나은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관세음보살.”
나는 위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살님께서 제게 거짓을 말한 것도 초강에게 들어 알게 됐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반응이 터져나왔다.
“너, 뭐하는 거냐?”
염라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불을 내뿜으며 오도전륜을 밀어내고 있었다.
오도전륜도 그런 내 행동에 버벅거렸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불경, 불경.”
저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었다.
내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관세음보살이나 부처가 뭘 원하는 건지 알아야했다.
“제가 염라를 따라 간다면 곤란해집니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그냥 그를 따라 가겠습니다.”
[“결국 연자가 본인의 인과를 깨게 만드는구나.”]
솔직히 통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초월자의 강렬한 의지가 머릿속으로 전해져왔다.
< 301화. 대왕들 그리고 부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