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70)
아드리아스의 시험
기사학부장인 수라한은 마법학부장이었던 베리얼과 달리 성실한 교사였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졸업반 학생들을 되도록이면 전부 지도해 주려 했기에 항상 바쁠 수밖에 없었다.
오러 마스터의 가르침은 천금보다 귀했으니까.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은 그를 찾아오는 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비록 입학식 행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건 썩 특이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여유인가.”
수라한은 잠시 집무실에서 멍을 때리다가 돌연 대강당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아드리아스는 예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될 만한 기세.
이전에 있었던 일로 인해 아드리아스에게는 그럭저럭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수라한은 그의 교수 재직이 달가운 편에 속했다.
“아닌 놈들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항상 그렇듯 잘나가는 걸 보면 질투를 하게 된다.
아드리아스의 교수 임명은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였기에 교수들 사이에서도 큰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에는 영 서툰 수라한은 자리를 피하고 곧장 집무실에 들어온 참이었다.
똑똑!
“학부장님, 애거서입니다.”
“들어와.”
마침 찾아온 졸업반 학생으로 인해 수라한이 자세를 다시 했다.
그러나 막상 수라한을 찾아온 애거서는 영문 모를 소리를 꺼냈다.
“바깥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바깥소식?”
“지금 연무장에서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세레나 에레스티얼과 대련을 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아드리아스를 생각하고 있던 수라한은 흥미가 동한 얼굴로 일어났다.
“왜 아무도 오지 않나 했더니 다들 구경 갔군.”
“그런 것 같습니다.”
“애거서, 미안하지만 나도 지금 구경 나가야겠다.”
“괜찮습니다. 애초에 소식을 알려 드리러 온 겁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서 구경이나 하지.”
방을 나서는 수라한의 뇌리로 언뜻 다른 교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아드리아스를 씹어 대던 인간들이었던 만큼 아마 대부분 연무장으로 모이겠지.
‘재미있겠군.’
흉터가 아로새겨진 그의 얼굴이 미소를 띠었다.
* * *
“오랜만입니다.”
루이스는 이제 완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 3년 안에 오러 마스터가 되겠지.
그런 그의 옆으로는 크리스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있었다.
조금은 철이 든 모습이네.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낸 모양이야.”
“나름 충실하게 지냈죠.”
내가 알기로 북부와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갖은 에피소드를 겪었을 거다.
기사학부 선배와의 트러블도 있었을 것이고 실습 중에 사고도 있었겠지.
중간 평가나 기말 평가, 그리고 토너먼트까지 온갖 일들에 휘말렸을 게 분명했다.
‘그중 몇몇은 내가 먼저 해결했지만.’
카론이나 카일러와 같은 아카데미 내의 흑마법사들은 내가 진즉에 처리했기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을 거다.
루이스의 특성은 고난을 겪을수록 성장하는 고유 특성.
고난의 일부를 내가 가져가 버렸으니 다시 고난을 만들어 줘야겠군.
“대련은 끝이다. 오늘은 더 이상 받지 않을 거야.”
“아쉽네요.”
“대신 문제를 내 주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제…… 말씀이십니까?”
“풀면 자유 지도를 해 줄게.”
비비안에게서 다시 갈락슈르를 받아 들었다.
곧이어 새하얀 검신을 드러내는 갈락슈르를 보며 모두가 감탄했다.
“와아…….”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나는 연무장의 한쪽 벽에 다가갔다.
힘 조절이 관건이겠는데.
타닥―.
내 발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휘둘러지는 검은 탑에서 나오고 6개월 동안 갈고 닦은 남궁세가의 검법이었다.
휘익!
순식간에 움직인 내 몸은 벽에 흔적을 남겼다.
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검흔만을 남기기 위해서는 꽤 큰 집중력을 요구했다.
스륵―.
이내 내 움직임이 멈추자 벽에는 마치 용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았다.
“이걸 해석해 와라. 해석의 방법은 자유다. 몸으로 직접 표현하든, 말로 설명하든, 종이에 적어 오든,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면 통과.”
“…….”
조용했다.
기껏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줬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싸늘하네.
‘내가 너무 고상했나?’
내 높은 뜻을 알지 못하다니, 쯧쯧.
아무도 반응이 없자 나는 그냥 비비안에게 다가갔다.
“가시죠.”
“응.”
참고로 비비안에게도 남궁세가의 검법을 내가 전부 알려 줬다.
어차피 남궁세가가 없는 세상이니 내가 검법을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겠지.
“아, 한 가지 깜빡한 게 있는데.”
나는 비비안과 돌아가다 멈춰 서서 말했다.
“기한은 일주일이다.”
이래야 좀 더 고난 같겠지?
내가 보여 준 검법은 남궁세가의 정수인 창천일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 검법도 아니었다.
창천일검이 남궁세가의 직계들만 익힐 수 있는 검법이라면 방금 보인 검은 속가제자가 익힐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상승의 무공.
‘……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 이상인 것 같았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속가제자한테는 비전 무공을 알려 주지 않을 텐데 이건 유독 강한 검법이었다.
물론 그만한 단점이 있어서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단점을 극복하면 창천일검과 엇비슷하지 않을까.
“아드리아스.”
“예.”
“그냥 저렇게 알려 줘도 돼?”
“상관없어요.”
어차피 보고 바로 익힐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루이스 정도?
애초에 루이스를 키우기 위한 행동이니 오히려 좋아였다.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네.”
* * *
연무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의 등장으로 인해 침묵이 깨졌다.
“벌써 끝난 건가?”
기사학부장, 수라한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방금 우리가 뭘 본 거야?”
“벽! 벽에 가 보자!”
수라한이 나타났음에도 모두들 검흔이 새겨진 벽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라한도 덩달아 벽으로 다가갔다.
“허어…….”
벽을 본 수라한이 탄식을 흘렸다.
마치 거대한 뱀이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웅장한 검흔은 검으로 새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 흔적이었다.
“수라한 학부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뒤이어 도착하기 시작한 기사학부 교수들이 몰려 있는 학생들과 멍하니 벽을 보고 있는 수라한을 보며 물었다.
“저도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라한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수라한을 본 다른 교수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벽을 보았다.
“이건 또 누가 이런 거야?”
“쯧. 학생들이 연무장을 부숴 먹는 게 하루, 이틀 일입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해야지요.”
교수들이 이내 학생들을 물러나게 하며 정리를 하려 하자 수라한이 멈춰 세웠다.
“멈추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학부장님?”
“이게 단순히 학생들의 실수로 만들어진 흔적으로 보입니까?”
수라한의 말에 그제야 검흔을 자세히 살펴본 교수들은 점차 얼굴이 굳어 갔다.
그런 그들 틈으로 한 학생이 나서서 수라한에게 보고했다.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만든 흔적입니다!”
“아드리아스가?”
아드리아스가 교수라는 것도 잊고 수라한이 되물었다.
그의 되물음에 나섰던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흔적을 해석할 수 있는 학생에 한해서 자유 지도를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아!”
수라한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검흔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이없는 시험 내용이었지만 검흔을 볼수록 감탄만 나왔다.
“허이구. 이 녀석이 교수가 되자마자 사고를 치는구나.”
“학부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징계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몇 교수들이 검흔을 살피던 걸 멈추고 수라한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교수들을 향해 수라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제 재량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기물 파손입니다!”
“기물 파손 이전에 학생들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을 위해서라면 그깟 연무장은 수십 번을 다시 지어도 되지요.”
“하,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선례를 남기시면 앞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때 가서 차차 고칠 일이지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수라한이 학생들 틈으로 들어가 벽을 만져 보았다.
다시 살펴봐도 놀라운 검술이 아닐 수 없었다.
“오히려 이걸 직접 보지 못한 게 더욱 한에 남는군요.”
“크, 크흠. 알겠습니다. 전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트집을 잡았던 교수가 얼굴을 붉히며 사라졌다.
하지만 남은 교수들은 염치 불고하고 수라한처럼 벽에 새겨진 검흔을 살피기 바빴다.
“확실히 놀랍긴 하군요. 이게 그저 검으로만 가능하다고요?”
“학부장님 말씀대로 직접 봤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아드리아스 교수가 이 정도 실력이었습니까? 허어, 괜히 그 나이에 교수로 임명된 건 아니군요.”
한번 물꼬가 트이자 너도나도 검흔에 대고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은 이 검흔의 주인이 아드리아스라는 것조차 잊고 몸을 움직여 보았다.
“이걸, 이렇게?”
“아니죠, 아니죠. 분명 이런 식으로 움직였을 겁니다.”
“그런가요? 전 여기서 보폭을 좁혔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어느새 학생들보다 더욱 극성인 교수들로 인해 공간이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검흔을 바라보던 수라한은 자신의 옆에 있는 루이스를 발견하고 물었다.
“직접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어땠지?”
“처음 보는 움직임이었습니다. 몸의 움직임과 걸음걸이 자체가 특별하다는 느낌이요.”
루이스의 말에 수라한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설마 싶은 감정이 고개를 들었고 이내 반쯤 확신에 물들었다.
“아드리아스…… 중원 세력에서 무공을 뺏어 왔군.”
“중원? 무공?”
“아무것도 아니다.”
수라한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사방이 학생들로 가득 찼고 모두들 검흔을 살피기 위해 열심히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거참. 교수가 되자마자 일을 벌여 주는군.”
“언제나 그랬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걸 해석해 내야 한다고 했지?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나?”
“방법은 자유고 그저 본인을 설득만 시키면 된다고 했습니다. 직접 몸으로 구현하지 못해도 이론적으로 이해를 한 이들을 위해 배려한 거겠죠.”
“배려? 이게 배려라면 애초에 시험을 이런 식으로 내지 않았겠지. 하여간 고약한 성미야.”
“그렇긴 하죠. 게다가 기한도 겨우 일주일을 주었습니다.”
“일주일?”
수라한은 검흔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과연 자신이 일주일 만에 이 검흔을 파악하고 해석해 낼 수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실패하겠군.’
비록 직접 보지 않았기에 실제로 보았으면 해석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오러 마스터로서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가능하겠나?”
“일주일이면, 간신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렵사리 나온 루이스의 대답에 수라한이 미소 지었다.
“역시 검룡이군.”
“아닙니다. 다른 애들 중에서도 분명 해석하는 애가 있을 거예요.”
“과연 그럴까.”
수라한은 루이스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한 답변도 회의적이었다.
물론 4년 동안 보아 오며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지는 알았지만 이 검흔은 무려 무림에서 온 무공.
로들렌의 그것과는 형이나 개념이 아예 달랐다.
“이게 고작 입문 시험이라면 자유 지도는 어떨지 모르겠군.”
수라한이 중얼거리며 루이스를 바라봤지만 이미 루이스는 검흔에 빠진 상태였다.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그를 보며 수라한은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입가로 어렴풋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는 언제나 환영이지.”
라프란디스꽃이 흐드러진 봄.
입학식 첫날부터 로들렌 아카데미는 달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