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9)
교수
“자, 잘 부탁드립니다!”
집무실을 두드리고 들어온 녀석은 내 한 학년 후배인 애덤이었다.
작년에 졸업한 학생으로 루시아와 동급생이라 알고 있었다.
“이름은.”
하지만 모르는 척해 줘야겠지.
“아, 아! 소, 소개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실례했습니다! 전 올해부터 아드리아스 교수님의 마법 지도 조교수가 된 애덤 테일러라고 합니다!”
“테일러 백작님의 아들인가. 작년에 졸업했지?”
“그렇습니다!”
“원래였으면 탑에 들어갔어야 할 텐데 아쉽게 됐네.”
“아닙니다! 오히려 아드리아스 교수님의 조교수로 들어올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따지고 보면 한 학년 선배인데 편하게 대해. 공과 사만 구분하면 그렇게 빡빡하게 대할 생각은 없어.”
“아, 알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이라…….
영 어색한 칭호다.
황궁에 있는 탑은 우리가 나온 뒤로 폐쇄되었다.
영구적인 폐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올해는 입장을 금지했다.
‘올해 졸업생들하고 루시아가 손해를 봤지.’
원래였으면 탑에서 보상을 얻었어야 할 루시아도 이번 폐쇄로 피해를 입었다.
나오는 보상은 매번 랜덤이라 무얼 얻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전력 손실이었다.
특히나 내가 얻은 보상이 역대급이어서 더욱 비교가 됐다.
“이쪽은 내 호위 기사 겸 검술 지도 조교수, 비비안 벨로칸.”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비안 선배님!”
애덤 테일러는 둥근 성격이 장점인 녀석이었다.
4차원인 루시아도 잘 받아넘겼던 걸로 기억이 난다.
조교수 뽑기 운이 좋았네.
“애덤, 이제부터 저쪽 자리를 쓰면 돼.”
“감사합니다!”
대체로 아카데미의 마법학 조교수는 마탑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
디에네나 루시아처럼 그 재능을 인정받은 이들은 졸업 즉시 마탑에 스카우트되지만 그 전에는 대부분 조교수를 하거나 영지에 종속된 마법사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들렌 아카데미의 조교수 자리는 경쟁이 심했다.
조금 어벙해 보이는 애덤이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인재라는 뜻.
“그, 교수님.”
“…….”
“아드리아스 교수님?”
날 부르는 거였구나.
아직 교수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았다.
“왜?”
“혹시 앞으로의 일정표가 있나 해서 말입니다. 강의 준비를 미리 해야 하고 장소 섭외나 다른 교수들과도 말을 맞춰 놔야…….”
“일단 이번 주는 아무 일정도 없어.”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말했다.
“그, 예?”
“아무 일정도 없다고. 적어도 학생들이 나를 직접 찾아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아, 자유 지도. 그렇군요.”
애덤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대화가 끊기고 마저 책을 읽는 가운데 애덤이 다시 손을 들었다.
“저, 교수님.”
“한 번에 물어봐.”
“죄, 죄송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애덤은 약간 곤란한 듯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전 뭘 하면 될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찾아야지. 넌 이제 학생이 아니니까.”
“그, 그렇죠. 하하.”
“말했다시피 지금 당장은 할 거 없어. 그러니까 개인 연구나 진행해.”
“그래도 됩니까?”
“그럼? 뭐 하고 있을 건데?”
내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이 된 애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도 아니야. 아, 그리고 내 조교수니까 나도 교수 노릇을 해야겠지. 내가 바쁘지 않아 보이면 언제든 마법에 대한 자문이나 도움을 구해도 좋아. 그래 봤자 나도 썩 대단한 실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아, 아닙니다! 아드리아스 선배님의 졸업 논문은 제가 100번도 넘게 복습했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급하게 말했는지 선배라고 해 놓고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졸업 논문이야 디에네와 루시아가 만든 거나 마찬가지인 만큼 완벽할 수밖에 없겠지.
“안 그래도 ‘제어’의 개념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요즘 제국은 물론이고 마법 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가 이 새로운 기원에 대한 분석이었는데 권위자께서 직접 살펴봐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아무래도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처에 있는 디에네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바로……!”
똑똑똑!
흥분한 애덤의 말을 가로막는 건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였다.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누구십니까?”
애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물음에 곧바로 문 너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모건입니다.”
“들어오세요.”
집무실의 첫 손님은 교장 직속의 아카데미 직원인 모건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반가운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드리아스 교수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도 아직 교수라는 직함이 어색합니다.”
“하하. 차차 익숙해지겠지요.”
내가 앉을 자리를 안내하려 하자 그는 손을 저었다.
“데오스 교장님의 말만 전달하러 온 거라 급히 또 가 봐야 합니다.”
“그렇군요.”
“다름이 아니라 내일 있을 세미나에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참여하셨으면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세미나라면…….”
“마법학부 신입생 세미나입니다. 케일린 교수님, 실베크 교수님 그리고 톨먼 교수님이 참여하지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물은 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세미나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돌려 말하는 거였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연은 다른 교수님들이 모두 준비하셨고 아드리아스 교수님께서는 그냥 자리에 참석만 하시는 일입니다.”
얼굴이나 비치라는 소리인가.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모건은 정말로 바빴던 모양인지 순식간에 할 말만 하고 물러났다.
그가 나가자 애덤이 슬쩍 물었다.
“세미나라면 다른 마탑에서도 오겠죠?”
“그러겠지. 여긴 로들렌 아카데미니까.”
“로들렌 마탑도 당연히 참가할 거고요?”
“어.”
표정을 보니 아주 좋아 죽는다, 죽어.
모건이 나가자 한동안 다시 조용해졌다.
애덤은 아직 짐을 모두 가져오지 않았다며 짐을 가지러 떠났고 비비안은 그저 옆에서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롭군.
“또 손님.”
비비안이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발걸음의 기척을 보니 세레나로 짐작되었다.
똑똑.
“들어와.”
졸업반 무렵에는 내가 논문 작성에 오리지널 마법을 만든다고 정신이 없었고, 작년에는 탑에서 지낸 시간과 나오고 나서 재정비를 하느라 보낸 시간 때문에 신경을 써 주지 못했다.
햇수로 2년이나 봐주지 못한 셈인데 이제는 4학년이 되었을 트리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내 예상대로 들어온 이는 세레나 에레스티얼이었다.
그녀는 2년 전과 달리 체형이 날렵해진 느낌이었는데 어깨에 단 외투와 외투에 걸린 완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세레나, 오랜만이야.”
“교수님은 여전하시네요.”
어쩐지 분위기도 조금 바뀐 것 같고?
예전에는 나한테 쩔쩔맸었는데 좀 컸다 이건가?
“그래서. 용건은?”
“대강당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바로 찾아왔어요.”
세레나는 허리춤에 맨 검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제 자신을 증명하고 지도를 받아 보겠습니다.”
“자신 있어?”
“네.”
역시 변했다.
내가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변화라 기꺼울 뿐이었다.
“첫 주는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일이 생겼군.”
“싫으신가요?”
“아니, 오히려 반갑다. 너희 중에 한 명이라도 안 찾아왔으면 서운할 뻔했어.”
“지금 보니 교수님도 조금 변했네요. 그런 농담도 할 줄 아시고.”
“난 원래 이랬어.”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는 끝이었다.
나는 곧바로 책을 덮고 일어나 갈락슈르를 챙겼다.
“연무장으로 가지.”
* * *
내 집무실은 마법학부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법학부 출신인 데다 졸업 논문이 큰 역할을 했지.
덕분에 연무장까지 가는 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드리아스 교수님이다.”
“학생회장하고 같이 있는데?”
“저 뒤에 따라다니는 호위 기사도 재작년에 졸업한 선배라며?”
아카데미 특성상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원수가 적어지는 탓에 나를 알고 있는 이들보다 처음 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덕분에 전과 달리 호승심이 넘치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옆에 있는 세레나 덕분인지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학생회가 좀 세졌다며?”
“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출세했네. 내가 알던 넌 학생회 말단이었는데.”
“그건 신입생 때 일이죠.”
연무장이 마법학부 부지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난 굳이 기사학부로 왔다.
내가 봐야 할 녀석은 세레나 하나뿐이 아니었으니까.
오오오!
드디어 도착한 연무장에는 이미 꽤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이미 소문이라도 퍼진 모양인지 아예 자리를 잡고 있던 이들도 몇몇 눈에 보였다.
“세레나 회장님, 힘내세요!”
“아자, 아자!”
열렬한 환호성과 응원이 마치 춘계 토너먼트 같았다.
풋풋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게 귀엽게만 느껴졌다.
“일단 가볍게 대련부터 해 보자.”
“알겠습니다.”
세레나가 어깨에 멘 외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뽑기 시작했다.
실력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여유를 부리기에는 조금 애매하네.
“비비안, 제 여분의 검을 부탁드립니다.”
“응.”
갈락슈르의 절삭력은 네임드 아이템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기에 대련에서 사용하기에는 애매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세레나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얼굴 풀어라.”
“……전 예전의 그 꼬맹이가 아닙니다, 교수님.”
“나도 알아. 몰랐으면 진검이 아니라 훈련용 검을 들었을 거다.”
그 말이 시발점이 되어 세레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캉!
“좋아.”
호흡을 노린 기습적인 공격.
나쁘지 않았다.
주변은 어느새 적막에 휘감겼다.
환호성을 내지르던 학생들도 대련이 시작되자 긴장된 표정으로 우리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스르르르―――.
채앵!
세레나의 공격은 단순하지만 빨랐다.
거기다 얼핏 보이는 무결의 무리가 그녀 나름대로 잘 흡수한 듯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
성장한 세레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기뻐도 한숨이 나올 수 있는 건 처음 알았네.
촤앙!
세레나는 있는 힘껏 모든 걸 토해 냈다.
그저 단순하기만 한 줄 알았던 검이 때로는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때로는 무결의 흐름을 따라 내 움직임의 결을 잘라 내려 했다.
‘이게 네가 내린 해석이냐.’
뿌듯한 감정이 가슴을 채우는 가운데 세레나가 돌연 내 검을 강하게 막아 내고는 물러섰다.
우우웅―――.
그녀의 검이 울기 시작했다.
“나왔다!”
누군가가 그런 세레나의 모습을 보며 외쳤고 다른 이들도 기대감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게 보였다.
“와라.”
난 그녀의 준비 동작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늘어뜨린 채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렸다.
피잉―.
순간 나조차도 놓칠 뻔한 속도로 그녀의 검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 천재급 검술 재능은 그런 그녀의 검조차 본능적으로 읽어 냈다.
파앙!
마치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세레나가 튕겨져 나갔다.
검 면으로 때린 것치고는 소리가 꽤 크게 울렸네.
“아?”
“어떻게 된 거야?”
자리에 앉은 이들마저 벌떡 일어서며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세레나가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실제로 멀쩡할 거다. 힘을 빼고 때렸으니까.
“그래.”
“……하아.”
내 덤덤한 대답에 세레나의 눈동자에서 언뜻 절망이 스쳐 보였다.
너무 큰 격차를 보여 줘 버렸나.
사실 원래대로라면 세레나의 실력과 내 실력은 크게 차이가 나면 안 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탑의 인연으로 남궁세가의 무공을 익혀 온 나는 또 한 단계 올라서고 말았다.
그쪽 세상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공이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
“격차가 줄지 않은 것 같아?”
“…….”
“이미 루이스나 크리스를 보면서 이 세상은 너만 달리고 있는 게 아닌 걸 알았을 텐데.”
내 자신이 노력한 만큼 상대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세레나는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놀라게는 하고 싶었어요.”
“충분히 놀랐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언제나 내가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돌봐 주려 했었지만 결국 나 없이도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순간 네 속도를 못 따라잡았잖아. 거의 본능으로 막았지.”
“……정말이요?”
“너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텐데?”
세레나도 느끼고 있었겠지만 확신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 말에 드디어 마음을 놓은 세레나가 미소를 지었다.
“하아. 저 성장한 거 맞죠?”
“그래. 이제는 루이스나 크리스도 이기겠는데?”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에요.”
세레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오네요. 왜 안 오나 했다.”
“세레나 에레스티얼.”
난 루이스가 오든 크리스가 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세레나.
그녀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랐다.
내가 강하게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넌 내 자유 지도를 받을 자격이 있다.”
“……네.”
“내 자유 지도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내 말에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내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아아…….”
그녀의 표정이 환희에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