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2)
썩은 희망을 속삭이는 자
소름 끼치는 의지의 향연.
그것은 범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었다.
“크어억!”
그나마 버티고 서 있던 사람들이 쓰러져 가기 시작했다.
단 한마디의 의지만으로 인간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 혓바닥.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먹어도 돼? 먹어도 돼? 먹어도 돼? 먹어도 돼? 먹어도 돼? 먹어도 돼?”]
마치 대답을 원한다는 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지의 충돌은 이내 가장 약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퍼억!
쓰러진 인물 중 하나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흩뿌려진 피와 살점은 검은 대지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안 돼.”
가넷이 눈을 부릅뜨고 기술을 사용했다.
감정이 형형색색의 기술로 변해 사람들을 감쌌다.
“미르바, 도와주세요.”
“아, 알겠습…….”
미르바의 표정이 망가졌다.
생물이 아닌 이모탈에게마저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의지.
그러나 미르바는 이를 악 물고 기술을 사용했다.
우웅― 우웅―.
퍼져 나가는 형형색색의 빛이 모두에게 스며들며 더 이상의 희생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허억, 허억.”
기절하거나 속을 게워 내는 건 양반이었다.
모두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구는 가운데 온전히 서 있는 이들은 이모탈과 디에네, 차강제르 그리고 남궁일영밖에 없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남궁일영이 실핏줄이 터져 피 눈물을 흘리는 디에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할 기운도 없던 탓에 가만히 서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지독하군. 우연히 신선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이제 어떡하죠?”
기술을 사용하고 있던 가넷이 힘겨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들의 의지를 차단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감정이 소모되고 있었기에 이대로 버티고만 있을 수도 없음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운에 맡겨야지.”
“……그렇군요.”
그나마 의식이 남은 사람들은 남궁일영이라면 돌파구를 찾아내 주지 않을까 했지만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의지가 침범하지 못하게 되자 알의 껍데기 틈에서 나온 혓바닥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 움직임이 마치 먹잇감의 냄새를 쫓는 뱀의 그것과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검을 휘두르는 것뿐.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일영이 검을 들고 혓바닥을 향해 다가갔다.
혓바닥은 그런 남궁일영을 향해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다가갔다.
서겅!
그러나 남궁일영의 검은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파식――.
검에 닿은 혓바닥이 움츠러들었다.
피해를 입어서 움츠린 것이 아닌 그저 놀란 듯한 모습.
“하아.”
남궁일영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새겨졌다.
“예상은 했지만 무리군.”
“남궁일영 님.”
디에네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피 눈물을 닦아 내며 지팡이를 꺼내 들고 있었다.
“제가 공간 마법을 사용할 만한 시간을 한 번만 더 벌어 주세요.”
“가능하다고 보나.”
“해 봐야죠.”
그녀는 말과 동시에 캐스팅을 시작했다.
범위는 이곳에 있는 인원 전부.
그러나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강대한 의지에 의해 무산되었던 마법인 만큼 성공 가능성은 희박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놀라… 그럼…… 해돋이…….”]
의지가 다시 띄엄띄엄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르바는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였고 가넷의 표정도 점차 굳어만 갔다.
“버틸 수 없어요.”
그 와중에도 검은 혓바닥은 마치 간이라도 보는 것처럼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 혓바닥을 남궁일영이 묘한 보폭으로 쫓으며 경계했다.
위이이잉――――――.
다시 한 번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나로 만들어진 마법진은 전과 달리 희미한 빛으로 깜빡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먹어…….”]
혓바닥이 날아오고 남궁일영의 검이 맞받아쳤다.
미끈거리는 검은 타액이 튀며 남궁일영의 옷이 부식되었다.
“성가시군.”
[“맛있어 보여. 맛있어? 보여?”]
가넷의 결계가 무너졌다.
온전히 느껴지기 시작하는 의지에 디에네의 마법이 흔들렸다.
“우욱.”
역류하는 속을 참아 내며 캐스팅을 끝맺기 시작했다.
“후우, 하아. 이번 거는 좀 다를걸.”
[“봐 보자꾸나. 아이야.”]
웃고만 있던 의지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의지를 표현했다.
굳이 따지자면 기특함과 대견하다는 시선이었다.
우우우우웅――――――――!
발동한 마법이 거대한 공명음을 일으켰다.
위기에 몰릴수록 급격한 성장을 이루는 디에네는 자신의 천재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조금 전에 불발한 마법을 토대로 개량한 공간 마법.
주위가 투명한 막에 싸이며 의지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맛있겠다! 맛있겠다?”]
[“하하하! 대단하구나.”]
감탄하는 의지가 들리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 성공한 건가?”
“당장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제발!”
퍼엉!
그 순간 마법으로 만들어졌던 투명한 막이 비누 거품 터지듯 터졌다.
“아아?”
모두의 기대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의지가 웃었다.
[“하하하하하.”]
절망스러운 분위기가 좌중을 덮었다.
지독한 허무감 그리고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
“실패인가.”
남궁일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디에네는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반이요.”
“뭐?”
“반만 실패했어요.”
반이라니? 실패한 게 아닌 건가?
남궁일영이 의아해하는 찰나 의지가 다시 개입했다.
[“기회를 주마.”]
“기, 기회?”
뜬금없는 말에 그나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자 갑자기 검은 대지가 갈라지며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 어?”
쭉 이어진 길의 방향을 눈치챈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지금이라면 이 탑을 나갈 수 있다.”]
그 길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출구.
바깥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그곳에 있었다.
[“마지막 기회다. 어떻게 할 거냐.”]
기묘한 웃음과 함께 의지의 기운이 약해졌다.
덕분에 몸이 한결 편해진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아…….”
“나, 난 나갈 거야!”
[“단, 나가는 이들의 수만큼 안에 남아 있는 이들이 죽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조건에 뛰어가던 이들이 멈칫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일 뿐, 다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런!”
“미쳤어? 사람들을 다 죽일 셈이야?”
“어차피 여기 남아 있다가는 우리가 죽는다고! 헛소리 말고 너희도 그냥 나와!”
꽤 설득력 있는 말에 분위기가 점차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한 명이 가기 시작하자 두 명, 세 명은 금방이었다.
“그래. 어차피 여기 있다가 죽게 되는 건 우리야. 그리고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어차피 이대로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상관없어.”
“빠, 빨리 나가자!”
그런 사람들의 앞을 디에네가 막아섰다.
“잠시만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다 같이 살아 돌아갈 수도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까부터 마법만 실패하는 주제에 어디서 길을 막고 지랄이야!”
“침착하게 생각해 보세요. 저들이 과연 우리를 곱게 보내 줄까요? 이미 저런 해괴한 조건이나 다는 존재들입니다. 차분히 다시 생각해 보셔야…….”
“이 새끼가 정말!”
케이레스 세력의 정예 등반자가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디에네는 설마 그가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반응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대신 죽여 주마! 죽어!”
거대한 철퇴가 떨어져 내리고 디에네가 급하게 마법을 캐스팅하려던 순간.
서겅!
누군가가 디에네의 앞을 막으며 철퇴를 베어 냈다.
그리고는 무자비하게 상대의 목도 함께 갈랐다.
푸슉!
“크륵.”
피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이를 바라보며 모두가 굳었다.
“누, 누구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갑자기 나타난 인물.
가면을 쓴 갑주의 기사였다.
그는 검은색 갑주의 위로 도복과 같은 것을 망토처럼 달아 놓은 특이한 차림새를 자랑하며 검에 묻은 피를 털고는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가면의 검사……?”
디에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인물의 출현으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괴이한 녀석이군.”
길이 트인 이후로 잠잠해진 혓바닥 덕분에 여유가 생긴 남궁일영이 가면의 검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상대의 가슴 중앙에서 심장과 같은 무언가가 뛰고는 있지만 절대 살아 있는 이가 아님을 그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끄아악!”
갑작스러운 인물에 등장에 혼란스러운 찰나, 멀리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직 길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먼저 출구를 향해 달려간 이들이 검은 무언가에 의해 붙잡히고 있었다.
“왜! 살려 준다고 했으면서!”
비통한 외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지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본좌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도 너희를 살려 준다고는 하지 않았지.”]
혓바닥이 왜 조용했나 했더니 어느새 출구에 다가선 이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알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혓바닥만 검은 땅에서 순간 이동하듯 튀어나와 사람들을 휘감았다.
혀에 닿은 사람들은 그대로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으아악!”
“차, 차라리 죽여 줘! 아파! 아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혓바닥의 제물이 되어 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혓바닥을 막을 생각을 못 했다.
[“한 번에 다 같이 가면 누구라도 한 명은 탈출할 수 있지 않겠나.”]
마치 비웃듯 말하는 그 의지에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저 디에네의 말이 맞았음을 깨달으며 삶을 달관했다.
“우린 다 죽을 거야. 끝이야.”
“하하하. 시팔. 하하하.”
그 활기찬 칸이나 자부심 강했던 케이레스의 베델조차 말을 잃고 망부석이 되었다.
초월적 의지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절망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탁!
그때 갑자기 나타났던 가면의 검사가 움직였다.
그는 뚜벅뚜벅 걸으며 혓바닥이 소환되었던 알로 다가가더니 깨진 틈으로 갑자기 검을 집어넣었다.
[“아파아! 아파아아아!”]
소름 끼치는 의지가 전해져 왔다.
의지의 폭풍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뇌리를 찌르며 견디기 힘든 충격을 주었다.
푸욱!
[“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가면의 검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한 번 검을 찔러 넣고 휘저으며 상대를 공격했다.
“공격이 통한다라…….”
남궁일영이 두통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흥미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의지는 제쳐 두더라도 저 알은 공략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됐군.”
남궁일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에 혓바닥이 급하게 돌아와 가면의 검사를 튕겨 냈다.
촤악!
치이이익!
“너, 보아하니 이 의지들에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한가 보군. 내가 혓바닥을 맡겠다. 네가 계속 공격해.”
끄덕.
가면의 검사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하하! 본좌가 있음을 잊었나?”]
두 의지가 충돌하자 남궁일영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러자 혓바닥이 화났다는 듯 거칠게 움직이며 남궁일영뿐만 아니라 주위를 부수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아아아!”]
“막아!”
“아, 안 돼!”
가면의 검사가 다급히 공격하던 걸 멈추고 뒤로 물러나 디에네를 안아 들고 보호했다.
의지의 충돌로 정신이 없던 디에네는 그저 몸을 맡긴 채 흔들렸다.
퍼석!
치이이이익!
갑주가 깨지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혓바닥의 공격은 동시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디에네를 안고 있는 가면의 검사를 날려 버렸다.
콰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에네는 어지러운 정신 상태에서도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저, 절 포기하세요.”
그러나 가면의 검사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디에네를 다시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안전한 자리를 찾아 발광하는 혓바닥을 피해 다녔다.
“으아아악!”
“우욱, 살려 줘.”
아비규환의 현장이 이어졌다.
남궁일영이 간신히 혓바닥을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칸…….”
차강제르가 하반신이 녹아 사라진 칸의 시신을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크라이슨도 이미 죽어 사라진 지 오래.
그야말로 전멸이었다.
“이제 끝났어요. 더 이상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디에네마저 포기한 말투로 가면의 검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대답 없이 몸을 움직였다.
“이제 끝났다고요! 저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디에네의 시선이 천천히 돌려졌다.
“아, 아드리아스? 네, 네가 왜 여기에…….”
아드리아스 크롬웰.
비비안은 곁에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머리 위에 쓰고 있는 검은 왕관.
“구하러 왔습니다.”
기이한 빛이 그의 눈가에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