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3)
화신 그리고 구원자
사태를 파악하고 오는 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주요 인물들은 무사했다.
니켈을 가넷에게 맡겨 둔 건 좋은 판단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설득이었다.
누구를?
바로 저 빌어먹을 초월자를.
[“그의 유산을 몸에 지닌 채 관찰자를 품었구나.”]
속삭이는 자, 그 이름도 원죄에게 들어 알고 있을 뿐이지만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원죄가 해 준 말이 맞다면 대화는 해 봐야지.
“네 말이 맞다.”
[“녀석이 경고하지 않더냐. 이곳은 본좌가 관장하는 영역. 입장한 이상 본좌가 눈치챌 수밖에 없다.”]
“거래를 하기 위해 왔다.”
[“거래?”]
순식간에 대화가 오고 갔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이 꿈틀댔고 저 멀찍이서 남궁일영과 니켈이 여전히 쫓는 자를 상대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원죄가 조언해 준 대로 입을 열었다.
“관찰자는 복수를 원한다.”
[“복수.”]
“궁금하지 않나? 관찰자의 복수가.”
솔직히 원죄 녀석이 무슨 복수를 원한다는 건지 몰랐다.
설마 초월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도 아닐 테고 구체적인 목표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내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최선이었다.
[“망각하는 자. 아이야, 이제 보니 그의 씨앗도 품고 있구나. 두 개의 씨앗이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었다.
그 감정의 의미가 뜻하는 바를 몰랐기에 조용히 기다렸다.
[“좋다.”]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주변을 감싸고 있던 속삭이는 자의 기운이 옅어졌다.
한결 숨쉬기 편해진 상황이었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게 더 재미있겠구나.”]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의지가 이내 묘한 웃음을 남기며 사라졌다.
[“부디 살아남도록 열심히 발버둥 쳐라.”]
성공……한 건가?
겨우 이 정도의 말로 초월자를 물러나게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급한 상황에다가 원죄 녀석이 자신 있어 하기에 질러 본 건데 정말 통할 줄이야.
[“녀석들을 인간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마.”]
‘일어나 있었냐.’
[“미친놈들이 둘이나 주변에서 시끄럽게 구는데 안 일어나고 배기겠냐.”]
투덜대고 있었지만 덕분에 위기를 하나 넘겼기에 고맙게 느껴졌다.
[“흐흐. 고맙다고? 저 녀석은 어떻게 처리할 건데?”]
원죄가 가리킨 건 여전히 남아 있는 쫓는 자였다.
정확히는 쫓는 자가 구현한 화신.
원죄의 말에 따르면 초월자가 물질계에 현현하는 것은 거대한 리스크를 진 일이라고 한다.
덕분에 직접 닿을 수 있는 실체나 약점이 생겨 버리고 본래의 강함보다 약해지는 건 덤이었다.
니켈에게 껍질 틈 안쪽을 공격하게 한 것도 원죄의 조언 덕분.
[“그래도 녀석은 초월자의 화신이다. 인간 따위가 감당하기 힘들지.”]
원죄는 묘하게 이 상황이 즐거운 듯 보였다.
[“그래서 속삭이는 자도 그냥 물러난 거고. 사라진 척했지만 아마 아직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과연 우리가 저 녀석을 이겨 낼 수 있는지 궁금할 테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관건은 저 녀석만 없애면 된다는 이야기니까.
[“하하하. 어디 한번 실컷 발악해 봐라.”]
‘미친놈. 넌 누구 편이냐?’
원죄의 비웃음에 한마디 해 주며 디에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뭔가를 전하고 싶어 했다.
“아드리아스…….”
“이제 저한테 맡기세요. 조금만 쉬고 계시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아드리아스, 내가 좌표를 남겼어.”
그녀의 손끝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으로 향했다.
니켈로 상황을 보고 있었기에 저 마력이 공간 이동 마법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깥세상하고 통하는 좌표야. 나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들어오는 건 가능해.”
“그 말씀은…….”
“만약 우리 아버지가 확인하신다면 잠깐뿐이지만 도우러 들어올 수 있을 거야. 다른 마법사들은 확인 못 해. 우리 가문에서만 전해지는 특수한 좌표라…….”
점차 눈이 감기는 디에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하셨습니다.”
“가능성은 낮아. 그래도 부탁해, 아드리아스.”
디에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저 좌표 마법이 확실하다면 바하트가 우리를 도우러 올 수도 있다는 건데 그녀의 말대로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바하트에게 직접 알림이 가는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하아.”
주변을 둘러보자 살아 있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가넷과 미르바.
베델.
차강제르와 케찰 수인 8명.
남궁일영과 중원 세력 5명.
그리고 디에네와 나.
우우우웅―――.
디에네는 기절한 상태니 숨길 필요가 없었다.
―크허엉!
―구워어어어.
거대한 루도와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티무르가 나왔다.
[퓨리 레버넌트(전설)]
―티무르
―언데드
―7티어
―마나: 3,333
―특성: 자아, 극의: 권拳, 버서크, 분노
티어가 한 단계 상승하고 분노 특성이 생겼다.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예상이 맞다면 니켈처럼 오러 비기를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
―히히히!
미리내도 하늘을 날아오르며 등장하고 새로운 오러 마스터 언데드도 나왔다.
야만족 오러 마스터로 만든 새로운 언데드.
듀라한이었다.
―우우우.
오러 마스터인 만큼 기본 스펙 자체는 뛰어났다.
게다가 정예 언데드라고 볼 수 있는 듀라한으로 만든 덕분에 상당히 쓸 만했다.
“저것들은 또 뭐야?”
또 다른 괴물이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지만 무시했다.
니켈은 이미 진즉에 남궁일영을 돕고 있었다.
추가로 나와 티무르가 혓바닥을 공략하고 루도가 괴성을 지르며 알을 공격했다.
“별 희한한 놈들이군. 강시인가.”
남궁일영이 내 언데드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말투하고는 다르게 마음에 든 모양인데.
[“관찰자.”]
상대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그 검은 괴물들부터 이 혓바닥 화신까지.
이 녀석은 레테나 속삭이는 자와 달리 조금 급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의지도 훨씬 중구난방하고 굳이 이렇게 현현하는 것도 뒤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초월자임은 변하지 않으니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촤르륵――――!
침이 튀며 주변을 부식시켰다.
“나도 돕겠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언데드가 같은 편인 걸 확인한 베델과 나머지 사람들이 나섰다.
그 뒤를 이어 차강제르도 말없이 다가와 혓바닥이 알을 보호하려는 걸 막았다.
―쿠워어어어!
쾅!
드디어 루도의 대검이 내려 찍히기 시작했다.
폭음과 함께 알이 흔들렸는데 끄떡도 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저 틈만이 약점인 것 같군.”
“그러면 반대로 가겠습니다. 남궁일영이 알을 공격해 주십시오.”
“그러마.”
남궁일영이 사라지듯 자리에서 꺼졌다.
동시에 루도가 알을 때리던 걸 멈추고 혓바닥을 막기 시작했다.
혓바닥의 크기는 루도의 하반신을 모두 감을 정도로 거대했는데 둘이 붙게 되자 괴수 대전이 따로 없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의지를 직접적으로 때려 박는 정신적인 충격을 제외하면 무난하다고 느낄 정도.
현현한 대가로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괜히 왕관까지 꺼낸 거 아닌가…….
쩌어억―――.
너무 플래그를 세웠나.
갑자기 혓바닥의 여기저기가 갈라지더니 눈알이 생겨났다.
“마주치면 안 돼요!”
그 눈과 마주치자 몸이 굳었다.
가넷의 외침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커억!”
수십 개의 눈이 달린 혓바닥은 순식간에 몸이 굳어 있는 베델을 낚아챘다.
루도가 대검을 휘둘러 내려찍었지만 굴하지 않고 베델을 감아 버렸다.
치이익―――!
“끄아악!”
살이 익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마법을 사용하며 멀리서 응수했지만 베델을 구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끄으윽.”
결국 베델이 죽자 몇몇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다.
죽은 건 죽은 거고.
나는 곧바로 베델의 시신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퍼어어억――――――――!
콥스 익스플로전.
베델이 폭탄이 되어 혓바닥의 눈들을 타격했다.
[“싫어. 관찰자. 싫어.”]
함께 싸우던 사람들은 그게 마법인지도 모르고 혓바닥의 짓이라고 오해하며 더욱 불타올랐다.
“베델마저 죽다니…….”
“저 눈깔들하고 시선만 마주치지 마!”
악과 깡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 달려갔다.
그 와중에도 남궁일영이 열심히 상대의 약점을 헤집어 놓은 상태였다.
[“아파. 아파.”]
“아파? 아픈 걸로 안 끝난다. 죽여 주마!”
분노한 사람들이 최대한 시선을 내리깔며 혓바닥을 공격했다.
그래도 나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라 의지로 인한 정신 공격이 아닌 이상 혓바닥의 몸부림에 쉽사리 당해 주지는 않았다.
―크허엉!
투웅!
쿠아아아아앙―――――!
혓바닥에 난 눈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내 언데드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한번 혓바닥의 패턴에 익숙해지자 티무르는 아예 자리를 잡고 두들겨 팼다.
대미지가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덕분에 혓바닥은 남궁일영을 막지 못하고 묶여 있었다.
쩌적!
“어?”
한참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 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 거의 다 된 건가?”
“남궁일영 님이 해냈다!”
쩌억!
사람들의 말대로 알이 깨지고 있었다.
그러나 알 근처의 있던 남궁일영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도망쳐라.”
“네?”
돌연 도망치라는 남궁일영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듯 쳐다봤다.
곧이어 나도 왜 그가 도망치라 했는지 어렴풋이 느끼며 소리쳤다.
“물러나세요!”
“도대체 둘이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잘못된 거야?”
저건 타격을 입은 게 아니었다.
깨진 껍데기 틈으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
그건…….
[“진정한 현현.”]
원죄가 대신 대답했다.
“니켈! 디에네를 데리고 어서…….”
콰아앙―――――――――!
루도가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갔다.
그 거대한 덩치가 허공을 유영하는 모습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쿠웅!
사람들이 당황하며 루도가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알이 전부 깨지며 그 속을 드러냈다.
[“안녕?”]
활기찬 인사.
그것은 검고 거대한 혓바닥으로 마치 미라처럼 둘둘 감긴 모습이었다.
감긴 틈으로는 오직 번뜩이는 두 눈만이 보였다.
“으헉!”
완전히 현현한 화신의 의지는 모두의 정신을 짓뭉갰다.
그것은 존재 자체만으로 공격이 되고 있었다.
“괴물이군.”
남궁일영이 말하며 움직였다.
순식간에 미라의 앞에 나타난 그는 강대한 기세를 내뿜으며 검을 내려쳤다.
콰르릉!
남궁일영의 검이 화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혓바닥을 갈랐다.
하지만 갈라진 혓바닥은 순식간에 복구가 되며 도리어 반격에 나섰다.
투웅!
작은 소리였음에도 남궁일영은 길게 밀려났다.
인상을 찌푸린 그의 모습이 상대가 전혀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모두 도망쳐라. 오히려 방해만 된다.”
“도, 도련님!”
“나 정도 되는 강자가 아닌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서 꺼져라!”
다급한 남궁일영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없어 보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사람들이 표정을 굳힐 때, 강렬한 의지와 기세가 퍼져 나갔다.
[“내가 다 먹을 거야. 먹어도 되지? 먹을게? 먹을게? 먹을게? 먹을게? 먹을게.”]
“컥.”
두 초월자가 의지를 충돌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이모탈과 나, 그리고 남궁일영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 단 한 번의 의지로 쓰러져 버렸다.
촤르르륵!
혓바닥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혓바닥도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양.
하나만으로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혓바닥이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끝이에요.”
그 절망과 같은 광경을 본 미르바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나조차도 저 혓바닥들의 개수에 기가 질려 버렸다.
‘이대로 놔둘 거냐?’
애써 원죄에게도 말을 걸어 봤지만 녀석은 깨어 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채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혓바닥들이 움직였다.
사용하면 반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기에 아끼고 있었지만…….
나는 언제든 죄악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 전에…….’
칠흑 같은 아공간이 열렸다.
동시에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초월자와 대적하다니 단단히 미쳤구나.
크리브마허.
고대의 용이 완벽해진 모습으로 몸을 드러냈다.
진화를 해서 윤기 있는 비늘을 되찾은 크리브마허는 이전과 다른 강렬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난 거부하고 싶군.
“내가 죽으면 너도 없어.”
내 말에 크리브마허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갑작스러운 크리브마허의 등장에 모두가 놀라고, 특히 화신은 잔뜩 경계한 기색을 혓바닥의 움직임으로 보여 줬는데 이미 늦었다.
브레스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으니까.
“남궁일영, 비키세요.”
내 말에 곧바로 물러나는 남궁일영 옆으로 브레스가 날아갔다.
쿠아아아아――――――――!
강대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전보다 강해진 브레스는 단순히 산성이 아닌 파괴적인 기운을 내포한 채 화신에게 쏟아졌다.
―피했다.
“피했다고?”
그 순간.
갑자기 시야가 반전되며 귀가 멍해졌다.
‘뭐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속도로 나를 치고 지나갔다.
그 경이로운 속도는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미르바의 몸 반쪽이 뜯겨 나가 있었고.
가넷의 팔 한쪽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남궁일영은 공격을 막아 냈는지 몸에서 김을 뿜으며 서 있었는데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닌가.’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했다.
시야가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인해 어두웠다.
[“무서워. 관찰자. 무서워.”]
화신이 어린아이처럼 칭얼댔다.
조금 전의 브레스가 무서웠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의지에 헛웃음이 나왔다.
맞지도 않으면서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하, 씨발.”
너무도 압도적인 전력 차를 느껴서일까.
웃음과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브레스가 확실히 위협적이어도 방금과 같은 속도면 도저히 맞힐 수가 없었다.
[“관찰자?”]
또 눈 깜짝할 새에 내 앞에 와 있는 화신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게임에서도 화신을 상대해 봤지만 그건 초월자가 인간의 몸에 강림했던 상태.
그러나 이 녀석은 본인이 직접 현현한 화신이었다.
그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먹을게?”]
혓바닥이 풀리며 거무튀튀한 몸체가 드러났다.
무슨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마치 검은 연기와 같은 몸을 지닌 인간형 화신이었다.
두 눈만이 마치 라이트를 달아 놓은 것처럼 빛나는 괴이한 형상.
―베여라.
[“베여라?”]
방심한 상대를 향해 갈락슈르를 휘둘렀다.
무결.
모든 걸 베어 넘기는 검에 제왕검형의 기세를 심었다.
역천의 회로가 타들어 갈 듯이 회전하며 내 언령 마법을 보조했다.
파사사사삭――――!
기묘한 소음과 함께 화신이 베어졌다.
[“아?”]
통했나?
하지만 다시 한 번 시야가 뒤집혔다.
내장이 상한 듯 극심한 고통이 속에서 느껴졌다.
[“아파.”]
어느새 화신이 내 다리 한쪽을 잡고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시야가 뒤집힐 만한 상황이었네.
다리를 움켜쥔 혓바닥의 힘이 무시무시한 탓에 뼈가 가루가 된 것 같은데.
[“아파!”]
“어쩌라고, 이 새끼야.”
혓바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내 복부를 강타했다.
핑!
소리조차 희미한 움직임.
그러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커흑.”
죽겠다.
어차피 죽는 거, 이제 아낄 필요 없겠지.
딱딱!
내가 특수 기술을 사용하려는 그때, 니켈이 다가왔다.
언제 싸운 건지는 몰라도 니켈 또한 성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이제 보니 저 수많은 혓바닥들과 내 언데드들이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니켈, 안 돼.’
부질없었다.
니켈의 스펙은 내가 따라잡은 지 꽤 됐다.
그런 니켈이 화신을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관찰자, 장난감?”]
퍼억!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빠르기의 혓바닥이 니켈을 후려치고 갔다.
그러나 니켈은 포기를 모르는 것처럼 나를 향해 계속 다가왔다.
“의미 없다고.”
명령도 듣지 않는 니켈을 보며 묘한 감정이 생겼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고작 언데드 주제에.
주인의 명령까지 무시하면서.
딱딱!
덕분에 시간이 벌리고 있기는 했다.
화신은 나를 들어 올린 상태로 니켈만 신경 쓰고 있었다.
[“이상해.”]
그래, 이상하다.
계속 나를 구하기 위해 명령도 무시하는 니켈도 이상하고, 그런 니켈을 신경 쓰고 있는 화신도 이상했다.
[특수 기술 ‘탐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씨발. 하필이면 왕관도 벗겨졌다.
상관없다.
‘사용한다.’
삐익―.
[‘순수한 원죄’가 숙주의 부름에 거절했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멈췄다가 다시 회전했다.
‘원죄.’
대답이 없었다.
“원죄!”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하하.”
이 개같은 놈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지금 상태로 죄악을 사용하면 넌 죽는다.”]
“이제야 대답하네?”
이 또라이가.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더 재밌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말이야.”]
“개소리도 정도껏 하고 어서 죄악을 내놔!”
[“기다려 봐. 자, 이제…….”]
뭘 기다리라는 거야, 도대체!
이제 니켈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팬텀이 아니라 스켈레톤이라고 해도 될 정도.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만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냥 날 죽게 내버려…….”
우와아아아앙―――――――――!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공간을 뒤덮었다.
갑자기 뭐지?
[“내가 말했잖아. 기다려 보라고.”]
원죄의 말을 흘러 넘기며 마나의 흐름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은 디에네가 말했던 좌표가 남아 있던 장소였다.
“바하트?”
설마 바하트 알븐이 좌표를 확인했다고?
그 만에 하나도 안 될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곧이어 후폭풍이 끝나며 밝은 빛에 휩싸인 누군가가 나타났다.
“잘 버텼어.”
“……아?”
여인의 목소리.
바하트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디에네?”
“역시 아드리아스. 바로 알아보네? 이번에는 내가 구하러 왔어.”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의 디에네 알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