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1)
신, 초월자, 자연, 신선, 부처, 우주, 의지, 그리고 그 무언가
꾸드득―!
퍼석!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선두에서 길을 트는 가넷과 미르바 덕분에 검은 땅에 닿을 염려는 없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괴물들을 처리하느라 진행이 더뎠다.
“이런 식이면 이틀은 걸리겠는데?”
마침 다가오는 괴물 하나를 처리한 칸이 투덜거렸다.
그런 그에게 케이레스 세력의 베델이 차분히 말을 건넸다.
“급하게 나아가려다 위험해지는 것보단 낫겠지.”
“그래, 뭐. 한 달 동안이나 갇혀 있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칸은 말을 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로들렌 세력에서 차출한 인원들이 몰려 있었는데 크라이슨이 자신처럼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참가를 하지 않을 줄이야. 그렇게 안 봤는데…….”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말하는 건가?”
“어.”
탑의 풍운아.
입장하자마자 탑의 역대 기록들을 깨부수며 올라간 미친 신입.
최근에는 감당 못할 괴물들을 상대로 미친 신위를 뽐냈었고 그 모습을 본 이후 남궁일영의 충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과는 격이 다른 재능과 실력.
그러나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이런 탐색에 내뺄 인물은 아니었는데 어째서 불참한 것일까.
“다들 그의 불참을 의아해하는 것 같던데 그렇게 대단한 남자인가?”
“일영이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알 정도였단 말이지.”
“남궁일영이? 그자가 그 정도인가?”
“어. 넌 못 봤구나?”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호기심만 쌓이는군.”
베델은 등반의 한계를 느끼고 수련에 집중하던 인물이었다.
그동안 조용히 지냈었지만 갑작스러운 탑의 오염으로 다시 나오게 된 터라 소식에 깜깜한 편이었다.
“이번 탐색을 마치고 돌아가면 내가 소개해 줄게.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니까 기대하라고.”
“정말로 기대되는군.”
탑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만 모인 원정대는 여유가 있었다.
바닥에서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괴물들의 습격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처를 할 정도.
그러나 사람들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안색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괴물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덕분에 출발 때와는 달리 쉼 없이 괴물들을 상대하게 된 사람들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런 상황인데 그 기묘한 구체가 있다는 곳은 도대체……?”
결국 선두에서 길을 트던 미르바가 뒤로 돌아와 말했다.
“저희가 저번에 왔을 때보다 숫자가 늘었어요. 아무래도 더 이상의 진행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우린 아직 괜찮다.”
“지금은 괜찮지만 더 들어가게 되면 탈출을 못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르바의 말에 수뇌부들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조용히 있던 남궁일영이 한마디 꺼냈다.
“내가 선두에 서지.”
“아…….”
“알았다는 걸로 알겠다.”
남궁일영의 말에서 후퇴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 진행하겠다는 그의 말에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해 봐야지. 이대로 있다간 탈출도 뭣도 없이 말라 죽을 거니까.”
“그 정체불명의 알도 조사하고, 이왕 이렇게 모두와 나왔으니 탑의 출입구까지는 가 봐야 하지 않겠어?”
결국 계속 나아가기로 결정이 되자 미르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면 저와 가넷의 힘이 약해질 수도 있으니 디에네께서도 선두에 함께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갈게요.”
이내 원정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꿈틀대는 검은 대지가 짙어져만 갔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풍경이었다는 듯 마을과 도시에는 검은 인간들이 주민들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남궁일영과 디에네의 선두 합류로 오히려 행군의 속도는 빨라졌기에 사람들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도 전에 앞으로 나아갔다.
“다 왔습니다.”
이틀을 꼬박 달려온 높은 언덕.
가넷이 저 멀리 맥박 치는 거대한 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징글징글하게 많군.”
“정말 수상하긴 한데? 뭐야, 저거. 움직이잖아?”
거대한 알 모양의 구체는 검은 끈적이에 뒤덮인 채 어두운 빛을 주기적으로 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맥박이 치는 듯해 기묘했다.
“저번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만…….”
미르바가 당황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어찌할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이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확인해 봐야지.”
베델이 말했다.
수많은 괴물들이 지키듯 둘러쌌지만 그는 이 정도의 전력이면 충분히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같은 의견이다.”
크라이슨이 동의하고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일영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듯 검을 든 채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미르바가 앞장섰다.
그의 기술에 검은 땅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꾸르륵.
침입자들의 존재를 눈치챈 괴물들이 일시에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섬뜩한 광경에 칸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우, 좀 무서운데?”
이내 곧바로 전투가 시작됐다.
서걱!
퍼버벅――――!
“멜라토!”
“알았으니 보채지 좀 마라!”
“오른쪽이 너무 많아! 아무나 도와줘!”
“으아압!”
마치 괴물들이 처음 나왔던 첫날과 같이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선두에는 남궁일영이 신들린 무력으로 시원하게 뻗어 가고 있었지만 다른 곳은 사방에서 부딪혀 오는 적들로 정신이 없었다.
탑의 최정예인 만큼 죽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적의 수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나오는 적들이 너무 많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 일단 최대한 버텨!”
기나긴 싸움.
그 끝은 결국 원정대의 승리였다.
“하이고, 나 죽어!”
“도대체 얼마나 죽인 거야. 다 땅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숫자도 못 셌네.”
죽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힘은 들었지만 모두가 밝은 모습으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우리를 막은 걸까.”
“미르바! 뭐 알아낸 거 있어?”
미르바와 가넷이 알과 같이 생긴 둥근 물체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그들이라고 딱히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긴 하네요.”
알을 조사하던 이들 틈으로 디에네가 끼어들었다.
미르바가 그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디에네를 바라보자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검은 인간들은 살아 있는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알은 살아 있어요.”
“아!”
디에네가 말한 살아 있음의 기준으로 따지면 이모탈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그녀가 말한 의도가 뭔지를 눈치챈 미르바와 가넷은 다시 한 번 알을 살펴봤다.
“확실히 이건 생체 반응이 있어요.”
“외형만 알이 아니라 정말로 알이라는 뜻인가요?”
“그걸 지금부터 조사해 봐야겠죠.”
디에네의 합류에 조사의 진도가 빨라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이들의 조사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도왔다.
“깨 보는 건 어떤가?”
문득 멜라토가 알을 두드리며 말했다.
멜라토의 의견을 들은 조사 인원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이 알을 문지르고 있는다고 뭔가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적다. 내가 성분 분석을 해 봤지만 이건 그냥 단순한 알이야.”
“이걸 부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대로 두고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아니면 들고 갈까?”
멜라토의 말에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확인해 본 결과 검은 대지와 연결이 된 알을 떼어 내는 것도 꽤 큰일 같았다.
“남궁일영 님, 혹시 이 알을 땅에서 떼어 내 주실 수 있을까요?”
결국 디에네가 남궁일영에게 부탁했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알 가까이 다가섰다.
서겅!
그러더니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단단하군.”
“알을 베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내 검에도 베이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누구도 알을 깰 수 없다. 아드리아스의 마법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
알을 땅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아닌 알 자체에 검격을 휘두른 남궁일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미 알이 단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 태도에 사람들은 뭐라 하지는 못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두근!
“어?”
옆에서 구경하던 칸이 무언가를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방금 움직이지 않았냐?”
“네?”
그러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꽈지직!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알이 흔들렸다.
“남궁일영! 네놈이 깬 것 아니냐?”
“내 검으로는 무리다. 그건 직접 휘두른 내가 잘 알지.”
“그럼 저 반응은 뭐야?”
“깨어날 때가 되었으니 깨어나는 것뿐 아니겠……!”
말을 하던 남궁일영이 돌연 위를 올려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탑의 천장을 갑자기 올려다보는 남궁일영의 행동에 멜라토가 의아함을 느끼고 물었다.
“뭘 보는 건가?”
“이건…….”
흔들리는 남궁일영의 눈동자를 본 사람들은 이내 따라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허공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남궁일영? 뭘 보는 게야?”
멜라토가 한 걸음 옮겨 남궁일영의 위치로 다가가던 그때.
“멜라토, 움직이지 마라!”
남궁일영이 갑작스레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콰직!
기계 부품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호흡조차 잊은 채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메, 멜라토?”
“죽었어?”
마치 거대한 존재가 밟아 버린 것처럼 바닥에 찌부러져 박살이 난 멜라토의 잔해가 그곳에 있었다.
“뭐, 뭐야! 남궁일영! 이게 대체 무슨 일…….”
“모두 움직이지 마라.”
남궁일영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들리게끔 말했다.
“지금 이곳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뭐?”
“내 기감으로도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 존재가 이 근처에…….”
꽈직! 콰지직!
알이 깨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갈라진 틈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돼 가고…….”
[“논리를 파먹은 혜성이 바람개비를 세뇌해.”]
갑자기 모두에게 들린 무언가.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의지, 그 자체.
“허억!”
그리고 그 강렬한 의지를 맛본 몇몇 이들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아, 아…….”
가넷은 깨달았다.
아드리아스가 말해 줄 때는 그저 그런 정보가 있구나 싶었지만 실제로 저 의지가 뇌리에 박히자 초월자라 부른 존재들을 실감하게 되었다.
초월자.
너무도 잘 표현한 단어였다.
“둘이다.”
“네, 네?”
“우리 곁에 하나, 그리고 저 알 속에 하나. 총 둘이야.”
남궁일영의 말에 모두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지만 가넷은 알아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불가능. 말로만 듣던 신선들을 직접 겪게 되다니 나도 놀랍군.”
신선이라는 말에 함께 있던 중원 세력의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하는 나머지 세력의 인물들은 그 뜻이 궁금했지만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다.
“모두 가만히 있어라. 보이지 않는 존재를 자극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의지가 메아리쳤다.
처음에 들렸던 것과는 다른 의지임이 확실하게 인지가 되었으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커어억!”
사람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졌다.
[“하하하하하! 하하!”]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즐겁다는 듯 또 하나의 존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정신없는 의지의 폭력 앞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독하군.”
남궁일영이 중얼거렸다.
간신히 서 있는 이들 중 하나에 속하는 디에네가 힘겹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결국 죽을 것 같은데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뭘 할 건가? 신선들을 상대로 과연 뭘 할 수 있지?”
“신선이고 나발이고 지금 다 죽게 생겼다고요.”
디에네의 마법이 발현되었다.
찬란한 빛이 이내 마법진의 형상을 갖추며 사람들이 위치한 바닥과 허공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대규모 공간 이동 마법.
과부하가 온 디에네의 코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도와줄게요.”
가넷의 형형색색의 기술이 마법진을 보탰다.
그러자 흔들리던 마법진이 단단하게 지탱이 되며 디에네의 부담이 가셨다.
“1분! 1분만 버티면 공간 이동이 가능해요.”
쩌저적!
마치 그 말을 들었다는 듯 알이 깨지는 소리가 빨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한 알이 아니라는 걸 안 사람들은 그 공포스러운 소리에 몸을 떨었다.
“빠, 빨리!”
“이게 제 최선이에요!”
1초가 마치 1분과 같이 느껴지고.
마침내 30초가량이 지나자 사람들은 가슴이 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제발……!”
기나긴 1분이 지났다.
마침내 마법이 발동되며 마법진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됐어요!”
하지만 가동된 마법은 곧바로 작동하지 않았다.
허공을 춤추듯 빙글빙글 도는 마법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초조함이 담겼다.
“대체 왜? 발동한 거 맞아?”
“조, 조금만 기다리면…….”
코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디에네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함께 다시 웃음소리가 뇌리에 직접 박혔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그것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마치 기계가 인간을 흉내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억지웃음이었다.
쩍!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알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며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주르륵―.
검은색의 기다란 혀가 그 틈새로 나왔다.
[“먹어도 돼?”]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강렬한 하나의 의지가 더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