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85화 (185/415)

< 185화. 복잡한 마음 >

다부진 몸의 한 청년이 아카데미의 정문을 지나쳤다.

그의 등에는 평범해 보이는 창이 매달려 있었다.

“후읍, 하아······.”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 청년은 이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옆으로 다른 이들도 속속히 모여들었다.

“어떻습니까?”

그와 함께 온 타르밀 아카데미의 후배가 묻자 로베르토는 미소 지었다.

“좋군!”

대륙 10인, 신창(神槍) 드레드 애버크롬비의 아들.

로베르토 애버크롬비가 로들렌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지정된 귀빈용 건물에 들어섰다.

“오늘은 고작해야 예선전이니 본선부터 구경하죠.”

“일단 부지 내를 관람할까요?”

타르밀 아카데미에서 선별되어 초대된 학생들은 곧바로 짐을 풀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편에서 아직도 무언가를 뒤적이고 있는 로베르토를 향해 물었다.

“선배님! 같이 나가실 겁니까?”

“난 토너먼트 보러간다.”

“예선인데요?”

“예선이라고 우승 후보가 안 나오냐? 됐으니까 알아서들 놀아라.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태블릿으로 연락하고.”

이내 창만 짊어지고 나갈 준비를 마친 로베르토가 일어서자 타르밀 아카데미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 그의 뒤를 따랐다.

“뭐야? 놀러 가는 거 아니었어?”

“생각해보니까 로들렌 아카데미에 마냥 놀러온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래. 잘 생각했다.”

로베르토가 씨익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밖으로 나온 그들은 곧바로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토너먼트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어? 저기······.”

“음? 불칸 아카데미군.”

도착한 대경기장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초대받은 타 아카데미 중 한 곳인 불칸 아카데미.

그 위명은 로들렌 아카데미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그 면면들이 화려했다.

“옆에 앉지.”

“네? 굳이요?”

“왜? 쫄릴 거 없잖아.”

로베르토는 자신 있게 걸어가 불칸 아카데미의 학생들의 옆에 앉았다.

갑작스런 인물의 등장에 불칸 아카데미 측의 시선도 자연스레 돌아갔다.

“로, 베, 르, 토.”

새하얀 눈과 같은 단발이 인상적인 누군가가 로베르토의 이름을 끊어서 불렀다.

“안녕? 알아봐줘서 고마워. 미안한데 이름이 뭐지?”

“한기.”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이 고개를 들자 잠시 드러났다.

기묘한 모양의 눈동자를 한 남자는 다시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백, 한, 기.”

“아! 그쪽이 불칸의 귀신이라 불리는 백한기였군. 만나서 반갑다. 이미 알겠지만 난 로베르토 애버크롬비.”

“싸울래?”

맥락 없는 백한기의 제안에 로베르토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싸우다니?”

“너랑 싸워보고 싶어, 로베르토 애버크롬비.”

“미안하지만 여기에는 싸우러 온 게 아니라서 말이야.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대련이나 한 판 어때?”

“······시시해.”

백한기는 온몸으로 냉기를 뿜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불칸 아카데미의 인물 하나가 로베르토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 이 녀석,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지가 않아서 말이야.”

“아니야. 나도 솔직히 궁금했는데 속 시원히 싸우자고 못해줘서 미안하네. 그쪽은 이름이?”

“굴라드 히첼. 만나서 반갑다.”

“오오? 눈꽃의 마법사? 이제 보니까 쟁쟁한 인물들만 왔군. 잘 지내보자고.”

로베르토가 말문을 트기 시작하자 경계를 하던 타르밀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천천히 다가와 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다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듯 바라보며 전투력을 측정하고 있을 때쯤 굴라드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다른 아카데미는 아직 보이지 않네. 혹시 본 적 있나?”

“아니. 우리도 방금 막 도착해서 불칸 아카데미를 처음 만난 거야. 나머지가 몇 군데에서 더 오더라?”

“불칸, 타르밀, 에어코스, 밀레니엄, 육도(六道). 내가 알기로 이 다섯 군데다.”

“아직 세 군데나 남았군.”

다들 늦는 건가.

타 아카데미에 대한 인물을 떠올리다 곧이어 시작되는 예선전에 잠시 생각을 멈췄다.

예상대로 예선전은 수준이 낮았다.

‘평균적인 실력을 보면 우리 아카데미보다 높은 건 확실하지만······.’

그래도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생각하며 계속 지켜보고 있자 옆에 있던 굴라드가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한기, 쟤가 어제 말한 그 녀석이다.”

“누, 구?”

“올해 2학년이 된 루이스 아트만. 신성이라는 별명을 지닌 녀석이지.”

“아아. 걔?”

별로 흥미 없다는 목소리로 말한 백한기였지만 그 속에 숨겨진 흥분은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된 루이스의 시합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오오?”

“저기 봐봐. 쟤는 좀 하는데?”

관중석에 있던 학생들이 감탄을 토해냈다.

시합의 시간은 짧았지만 여기 모인 학생들의 수준이 높다보니 실력을 대략이나마 파악이 가능했다.

벌떡!

“한기?”

“저 녀석이랑 붙을 거야.”

“백한기. 분명 사고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견학 온 걸로 아는데?”

“약속? 그딴 거 알 바 없어.”

당장이라도 관중석을 넘어 경기장으로 뛰쳐나가려는 백한기와 그를 필사적으로 막는 불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마치 한편의 희극 같았다.

“저기에도 터무니없는 애가 있네요.”

“지금 그 말 뭐야? 우리 쪽에도 있다는 소리야?”

“네? 아하하······.”

“그 웃음 뭐야? 난 저 정도는 아니라고!”

점차 풀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토너먼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참가하는 학생들이 많았기에 쉴 틈 없이 진행이 되었는데 이어서 등장하는 학생들을 보고 굴라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세레나 에레스티얼과 루시아 에버라스트.”

“유, 명해?”

“그럭저럭. 적어도 로들렌 아카데미 재학생들은 다 아는 이름인 것 같군.”

이내 확인된 시합은 미묘했다.

지켜보던 학생들의 뇌리에 스친 생각은 대동소이.

“강하긴하지만 특별할 것도 없군.”

“루이스 아트만이라고 했나? 걔에 비하면 너무 평범한데.”

그렇게 품평하듯 내뱉은 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다른 요주의 인물이 없나 살펴볼 때.

“!!”

로베르토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며 뒤로 돌았고, 백한기가 검을 뽑아 마치 휘두를 듯 자세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따라가지 못한 학생들은 이내 그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 구?”

“언제부터?”

“아드리아스 크롬웰!”

굴라드가 놀라서 외쳤다.

그가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견학을 오기 전에 미리 로들렌 아카데미를 조사한 인원들은 전부 그를 알아보았다.

묶어 올린 검은 머리카락에서 드문드문 초록빛이 보이는 남자.

호리호리하지만 단단하게 단련된 근육이 마법사의 로브를 입었음에도 눈에 선명했다.

그는 타 아카데미 학생들의 바로 뒷자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편안한 자세였다.

학생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를 바라봐도 무관심하던 그는 이내 누군가의 시합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

백한기가 여전히 검을 뽑아 든 채 아드리아스를 불렀다.

아드리아스의 시선이 천천히 그에게 향하자 백한기는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부릅뜨며 미소 지었다.

“나랑 싸우, 자.”

“배, 백한기!”

이보다 더 당황할 수 없는 목소리로 백한기의 이름을 외친 굴라드가 말리려했지만 백한기가 더 빨랐다.

“로들렌의 괴물! 난 귀, 신 백한기다! 귀신하고 괴물. 잘, 어울리지 않아?”

“백한기.”

드디어 아드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스산한 공기가 주위를 감쌌다.

“네가 방금 얕본 세레나 에레스티얼. 넌 걔도 못 이긴다.”

“······뭐?”

“나랑 싸우고 싶으면 먼저 네 실력부터 증명해라.”

그 말을 끝으로 아드리아스는 곧바로 관중석을 나갔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그가 사라진 후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어수선해졌다.

“그니까 저 사람이 지금 로들렌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하다는 소리지?”

“생긴 건 평범한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

굴라드는 멍하니 서있는 백한기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직도 손에 검을 쥔 채 서있었는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증명······.”

“백한기. 괜찮나?”

“굴라드. 나 저 괴물이랑 싸워보고 싶어.”

“상대도 그다지 피하는 느낌은 아니었지. 아마 실력을 증명하라는 건 다른 녀석을 꺾고 오라는 말일거야.”

“누, 구?”

“세레나 에레스티얼. 방금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굳이 이름을 꺼낸 걸 보면 걔부터 이기고 오라는 말이지 않을까?”

“세레나 에레스티얼······.”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백한기를 향해 굴라드가 애써 말렸다.

“일단 첫날은 조용히 지내지. 세레나 에레스티얼은 방금 시합을 마쳐서 전력이 아닌 상태다. 그런 상대를 이기면 너도 찝찝할 것 아닌가.”

“알, 았어.”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은 백한기의 눈에 이번에는 로베르토가 들어왔다.

“로, 베, 르, 토.”

"왜 그렇게 띄엄띄엄 부르는 거야."

“나랑 싸, 우자.”

아드리아스를 마주 친 후로 로베르토도 몸이 근질거렸던 참이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남의 대련만 구경한다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불칸의 귀신이 어느 정도인지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겠군.”

“좋, 아. 괴물을 상대하기 전에 딱 알, 맞은 상대.”

기이한 눈동자가 다시금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백한기는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난, 지지 않아.”

**

백한기, 그리고 로베르토 애버크롬비.

앞으로 플레이어블과 비슷한 수준의 명성을 대륙에 날리게 될 차세대 인재들이었다.

미래의 대륙 10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어린 괴물들이라고 할까.

‘게임이었으면 졸업하고도 한참 후에나 볼 녀석들이었지.’

특히 백한기의 경우 루트에 따라 빌런이 될 수도 있고 조력자가 될 수도 있는 중립 성향의 인물이었기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할 일이 있었기에 잠시 미뤄둬야 할 때.

“······.”

“흠, 흠.”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비비안이 옆에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가 올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기며 이제 곧 도착할 세레나와 루이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 신입생이 한명 온다고 했나.’

피오네 아르디.

원래는 로들렌에 입학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마 내 행동이 뭔가 영향을 주어 입학을 하게 된 모양인데 무려 신입생 대표까지 차지할 정도의 인재였다.

내가 아는 정보로는 아르디 후작가가 친황제파라는 정도.

그 외에 게임 속에서는 그다지 비중이 없던 가문이라 관심이 없었다.

“아드리아스.”

“예, 비비안.”

“세레나는 왜 찾은 거야?”

그녀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제가 예전부터 1학년들을 봐준 건 알고 계시죠?”

“응.”

“한 번 봐줬으니까 끝까지 책임지려고 합니다. 이번 방학에 꽤 괜찮은 걸 익혀왔는데 조금 알려주려고요.”

“뭔데?”

“검법입니다. 안 그래도 저 때문에 세레나가 방황하고 있어서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알려주려고 합니다. 물론 비비안한테도 알려주고요.”

내 대답에 잠시 나를 말없이 바라본 비비안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드리아스는 왜 그렇게 남들한테 잘해주는 거야?”

“제가요?”

“나를 구해준 것도, 루시아를 살피는 것도, 애들을 봐주는 것도,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검법을 알려준다는 건 보통 사람이 해줄 만한 일이 아니야.”

“저라고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게 아닙니다.”

내 대답에 잠시 눈이 커진 비비안이 갑자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지 싶던 찰나에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무나가 아니면······뭐야?”

“음, 정확히 표현하기에는 어렵네요. 1학년들 같은 경우에는 챙겨주고 싶은 유망한 후배들이고 루시아는 친한 동생?”

“나는?”

“비비안은······.”

뭐라 대답해야하지?

사실 비비안과 지금 이렇게 가까워진 것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친구인가? 하지만 친구라고하기에는 더 가까운 게 사실이다.

‘전우?’

지금으로서는 이게 가장 알맞은 단어가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고 비비안에게 전우 같은 관계라고 대답하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엄청 친한 친구?”

“······흥.”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갑자기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는 비비안을 보자 괜히 마음이 안절부절 못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쯤, 드디어 기다리던 후배들이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뉴페이스인 피오네를 살펴봤다.

마침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드리아스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피오네 아르디라고 해요.”

“그래, 반갑다.”

“아드리아스 선배님.”

“음?”

“처음 보자마자 갑작스런 말인데······좋아합니다!”

정말로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선배로서 존경한다는 말로 알아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사색이 된 루이스와 세레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내 뒤에 있는 비비안에게 향해있는 걸 눈치 채고 돌아보려는데 피오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선배님, 지금 혹시 교제하시는 여성분이 계실까요?”

“교제?”

“만약 없으시면, 저는 어떤가요?”

······뭐라는겨?

이거 아무래도 특이한 애가 온 모양이다.

< 185화. 복잡한 마음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