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71화 (171/415)

171화. 세계수 진입 그리고 돌발 상황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후겐의 뒤를 따라 나서게 된 나는 여러 엘프들에게 둘러싸였다.

듣기로는 그들이 세계수까지 안내할 이들이라고 하는데 나를 보는 시선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걸어서 가는 겁니까?”

세계수는 거대한 크기인 만큼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막상 거리는 꽤 멀었다.

지금 출발하는 라스틸리아의 대회의장에서 걸어가면 꼬박 며칠이 걸릴지도 모를 정도의 거리.

그렇기에 당연히 그리핀을 타고 갈 줄 알았다.

“…….”

그러나 내 물음을 들은 엘프들은 대답조차 없이 묵묵히 걸어갔다.

조금 뻘쭘해져서 후겐을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표범을 타고 갈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핀이 바람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탈 것이라면 라스틸리아 숲 표범이라는 짐승은 주로 고위급 엘프들이 타고 다니는 귀한 동물이었다.

바하트의 스톰브링어, 루나의 노랑 꼬리 돌 원숭이처럼 영물로 구분되었다.

이내 세계수의 영역과 도시의 경계선 같은 곳까지 걸어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엘프들이 숲표범들을 인도했다.

녹색의 털을 가진 표범들은 숲의 색과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보호색이 뛰어났다.

“내 뒤에 타라.”

후겐의 말에 냉큼 그가 앉아 있는 표범에게 올라탔다.

표범의 크기는 성인 서넛을 합친 것보다 훨씬 컸기에 내가 올라타도 문제가 없었다.

“얼마나 걸립니까?”

“얼마 걸리지 않는다. 궁금한 것도 많군.”

후겐의 핀잔을 한 귀로 듣고 넘기며 숲 표범의 털을 움켜쥐었다.

꼭 나뭇잎 같은 질감이네.

타닥! 타닥!

표범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나무뿌리와 바위들로 울퉁불퉁한 지형에도 마치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뛰어다녔다.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소음도 전혀 없는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그 녀석들이 없군.’

바람 기사단장인 세이르를 주축으로 한 배신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의 귀에도 내가 세계수로 향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텐데 의외였다.

저번에 당한 포람 때문에 조심하고 있는 건가 싶어도 그건 포람 개인의 일탈로 일단락되었기에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할 줄 알았는데…….

반나절을 꼬박 달린 나는 드디어 저 멀리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세계수를 둘러싼 주변에 아무 건물도 들어서지 않은 걸 보면 저 건물은 따로 특별한 용도가 있어 보였다.

터벅. 터벅.

“내려라.”

후겐을 비롯한 엘프들이 자연스레 표범에서 내렸다.

나도 따라서 내리자 건물에서 엘프가 한 명 나왔다.

‘강하다.’

살을 에는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이 정도의 기세라면 당연히 오러 마스터겠지.

‘세계수 지킴이군.’

세계수를 지키는 세계수 지킴이 엘프는 둘이 있었다.

각각 오러 마스터와 워록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전력.

저자는 아마 그중에서도 오러 마스터인 호이르.

“그 인간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호이르는 은퇴한 장로인 만큼 연배가 높았다.

후겐도 호이르에 비하면 아이 취급을 받을 정도의 차이였다.

“알겠네. 여기서부터는 함께 가지.”

강렬했던 기세와는 다르게 호이르는 신선 같은 느낌의 늙은 엘프였다.

스승님처럼 근육질인 것도 아니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세계수가 바로 앞이라 그런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데슈른의 제자라고?”

“예.”

“인간의 삶은 짧군. 녀석이 벌써 그럴 나이라니…….”

내가 데슈른의 제자라는 건 미리 알려 둔 모양이다.

근데 엘프들을 겪어 볼수록 도대체 스승님은 어떻게 이들과 교류를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들과 어울리려면 보살이 되어야 했다.

그 뒤로는 일절의 대화 없이 그저 걷기만 했다.

엘프들은 과묵하네.

아니면 나 때문인가?

“다 왔다.”

“하…….”

세계수.

이런 게 정말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나무가 눈앞에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라기보다 녹황색의 벽 같았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후겐이 세계수를 살피는 나를 보며 경고했다.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깐깐하시긴.

굳이 엘프들과 옥신각신할 이유는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따랐다.

[가호 ‘신살의 씨앗’이 신의 기운을 발견합니다.]

[‘그루터기에 세월을 세기는 자’의 기운이 발견됐습니다.]

[강력한 신물입니다. 억제가 불가능합니다.]

[흔적을 모을 수 없습니다.]

신살의 씨앗이 반응했다.

하지만 여태까지와는 다른 반응에 조금 흥미로웠다.

“여기가 입구다. 내부는 복잡하니 잘 따라와라.”

호이르가 세계수의 밑동에 있는 균열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봐도 입구처럼 꾸며져 있는 그곳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눈팔면 그대로 미아가 될 거다.”

마지막까지 충고를 남긴 호이르가 먼저 들어가자 엘프들이 뒤를 이어 차례대로 들어갔다.

게임에서조차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순간인 터라 조금 감회가 깊었지만 일단은 따라가야겠지.

……라고 생각한 순간.

“윽.”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누군가의 말이 머리를 울렸다.

[“들어가면 안 돼.”]

‘원죄?’

[“들어가면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오랜만에 느끼는 원죄의 존재감.

그러나 갑작스러운 원죄의 반응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말릴 거면 진즉에 말리든가 이 앞까지 와서 들어가지 말라고?

‘이유는?’

내가 멈칫거리자 앞서가던 엘프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서서히 의문과 의심이 깃들자 나는 빨리 결정을 해야 함을 느꼈다.

[“내가 녀석의 존재를 느꼈듯이 녀석도 나의 존재를 느꼈을 거다. 그리고 지금 녀석을 괴롭히고 있는 건 나의 일부. 내가 숙주 삼고 있는 널 순순히 놔두지는 않겠지.”]

녀석이라는 건 이 세계수를 뜻하는 건가?

세계수를 괴롭히고 있는 원죄의 일부는 분명 ‘폭식’을 의미하는 거겠지.

“인간. 뭐 하는 거지?”

결국 참지 못한 엘프 하나가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분명 원죄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지만…….

‘내가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 아닌가?’

세계수를 괴롭히는 존재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 존재 때문에 나를 박해하려는 거면 그 존재를 없애면 되는 일.

[“흥. 마음대로 해라. 나는 분명 경고했다.”]

원죄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스르륵 사라졌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배가 좀 아파서요. 이제 괜찮습니다. 가시죠.”

원죄가 무언가를 한 모양인지 실제로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졌기에 내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진짜라 여겨졌는지 엘프들은 이내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걸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균열을 향해 드디어 발을 디디려 하는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의 두 번째 별?”

왜 안 나오나 했다.

세이르는 정령을 이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호이르를 향해 묵례했다.

“그대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저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음? 바람 기사단의 단장이 아니었던가? 기사단은 어찌하고?”

“부단장에게 잠시 직책을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세계수와 관련된 일에는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더군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어째 일이 쉽게 풀린다고 했더니 세이르가 합류하게 생겼네.

“괜찮지 않습니까? 대전사가 하나 더 늘어나면 부담도 덜할 겁니다.”

함께 왔던 엑스트라 엘프 하나가 의견을 냈다.

내가 배신자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건 아니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보니 저 녀석도 의심스러웠다.

“후겐 장로,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과한 전력이긴 하지만 상관없겠죠.”

“알았다. 그럼 함께 하도록 하지.”

결국 이렇게 되는군.

원죄가 한 말 때문에 세계수도 걱정스러웠는데 걱정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 * *

“그래서. 이제 무얼 해야 하나?”

세계수에 진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워낙 큰 나무였기에 입구를 지나는 것만으로 꽤나 시간이 걸렸는데 드디어 확실한 내부로 들어오게 되자 호이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군.”

“신탁이 잘못된 건가?”

수군대기 시작하는 엘프들을 무시하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지하로 내려갈 수 있습니까?”

“지하?”

“예. 뭔가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금은 허무맹랑한 느낌 타령에 호이르와 후겐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세이르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는데 아마 저 둘과는 다른 의미로 굳은 거겠지.

“허튼짓을 꾸미는 거면 목숨이 날아갈 거다.”

“예.”

오러 마스터가 셋이나 있는데 내가 어떻게 딴마음을 품냐.

일단 뿌리까지만 내려가면 폭식이 있을 거니까 폭식의 처리도 후겐과 호이르한테 맡기면 되겠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겠네.’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먹고 있는 폭식.

그것들은 폭식의 본체가 아닌 새끼들이었다.

‘분노가 인간의 아이라면 폭식은 샤이야 사막에 서식하는 네임드 몬스터.’

살아 있는 죄악은 이 둘이 전부인 걸로 알고 있었다.

세계수를 타락시키고 있는 건 새끼라고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투력을 지녔다.

게임에서는 꽤 고전했었지만 지금은 무려 엘프 최강의 검사와 세계수 지킴이까지 동행하고 있는 파티.

새끼들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게임 끝이었다.

“고작 느낌이 드는 것만으로 지하에 가야 한다고? 뭔가 말이 안 되는군.”

세이르가 갑자기 나섰다.

“애초에 인간을 세계수에 초대하라는 신탁부터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까지 해 줘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막상 들어오고 보니 별다른 변화도 없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은 가 보지. 만약 헛수고였으면 충분히 이 인간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함세.”

호이르가 은근히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뭣 같은 말이긴 했지만 일단 내려가기만 하면 문제없었기에 나도 주장을 굳혔다.

“그렇게 하시죠. 만약 지하까지 내려갔음에도 별일이 없다면 제가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대가? 목숨이라도 내놓을 건가?”

세이르가 비웃듯이 말했다.

목숨? 어차피 별일이 있을 게 100%인데 못 걸게 뭐 있나.

“예. 목숨을 걸죠.”

“허!”

세이르가 기가 막히다는 소리를 냈지만 다른 엘프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조금 신빙성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려가지.”

후겐마저 내려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굳히자 결국 세이르는 잔뜩 경직된 모습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러다 갑자기 미쳤다고 칼부림하는 건 아니겠지.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호이르가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세계수 내부의 길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세계수 지킴이의 역할 중 하나였기에 문제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잠깐…….”

그렇게 호이르의 뒤를 따라 나아가던 중에 갑자기 그가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는 가운데 호이르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 후겐에게 눈짓했다.

“왜 그러십니까.”

“길이 바뀌었다. 세계수가 움직이고 있어.”

그의 말에 모두가 긴장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느 곳 하나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내가 지킴이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거늘…….”

“물러섭니까?”

호이르는 잠시 침묵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일이 갈수록 꼬여 가는 기분이라 나도 속이 좋지는 못했다.

“이 인간 때문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나가야 합니다.”

세이르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가 뭐라고 지껄이든 나는 차분히 호이르의 결정을 기다렸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되돌아가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하지.”

드디어 고민을 끝낸 듯한 호이르가 말했다.

“나와 여기 있는 인간 둘이서만 들어가겠네. 나머지는 모두 철수하게.”

“알겠습니다.”

후겐은 이견이 없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이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일임에도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인간. 상관없겠지?”

“예.”

나도 물론 괜찮았다.

폭식만 처리하면 아마 세계수도 길을 터 주겠지.

물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내게는 미리내와 크리브마허가 있으니 어떻게든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자네도?”

이 새끼가 기어코 발목을 잡고 늘어지려 하네.

“인간을 믿을 수 없습니다. 호이르 님의 실력은 의심하는 바가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다시는 못 나올 수도 있다.”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의논을 나누던 중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꾸드드드득.

“세계수가……!”

“이건 대체……. 모두 경계 태세!”

내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엄청난 소음을 내며 움직였다.

“이런!”

순식간에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거리가 벌어진 틈 사이로 나무 벽이 가로막고 다시 바닥이 꿈틀대며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겐! 인간부터 챙겨라!”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무 틈을 비집고 후겐의 모습이 비쳤다.

일단은 나도 전력을 다해 후겐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떨어지다 세이르와 둘이 남게 된다면…….

“뛰어!”

후겐이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무줄기들이 뻗쳐 오며 내 다리를 붙잡았다.

“이건 또 뭔…….”

검을 뽑아 베어 버리려 했지만 후겐이 소리쳤다.

“세계수에 검을 댈 생각이냐!”

별 그지 같은……. 지금 그게 중요하냐?

그러나 후겐의 외침은 결국 찰나의 망설임을 만들어 버렸다.

휘릭!

결국 줄기들이 내 두 다리를 전부 휘감더니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구멍?’

끌려가는 곳을 보자 짙은 어둠이 드리운 구덩이가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결국 검을 휘둘렀지만 나무는 잘리지 않았다.

“미친.”

세계수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질기고 단단할 줄이야.

그 한 번의 시도로 이미 벗어날 시간은 끝났다.

나는 세계수가 끌고 가는 구덩이로 순식간에 삼켜져 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