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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70화 (170/415)

170화. 엘프 회의 그리고 전야

오늘도 어김없이 라스틸리아 대회의장에 엘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벌써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회의에 지칠 법도 했지만 원래부터 할 일이 없는 데다 라스틸리아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드문 엘프들에게는 이만한 논쟁거리가 없었다.

“후겐 장로 오셨소?”

“갑자기 웬 인사지.”

“그야 뭐,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어서 말이오. 내가 듣기로 지금 초대받은 인간이 후겐 장로의 집에 있다고 들었소만.”

후겐은 착석하자마자 자신을 보며 묻는 마레티오 가문의 장로에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호오. 사실인가 보오? 그냥 궁금했소이다. 그 소식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미 포문이 열린 시점부터 회의장에 모인 엘프들의 시선은 온통 후겐에게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런 후겐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이는 크락시아 가문보다 위상이 높은 몇몇 가문들뿐이었다.

“자, 자. 일단 이번 안건을 다시 상기합시다. 신탁을 따라 인간을 세계수로 들여야 하나, 아니면 신탁을 무시하느냐…….”

“무시하다니! 우리는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리 신탁이라고 하지만 세계수에 인간의 발을 들이게 하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그게 무시하는 것과 무슨 차이입니까? 애초에 세계수가 신탁보다 우선이란 말입니까? 세계수도 결국은 타피오께서 내려 주신 신물. 중요한 것은 타피오와 저희 엘프들이지 세계수가 아닙니다. 본말이 전도되었어요.”

“세계수가 없다면 결국 라스틸리아도 없고 엘프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신탁이 내려왔다는 것도 믿기 힘들군. 몇백 년 만에 내려진 신탁이 인간을 세계수에 안내하라는 내용이라고?”

“어허! 지금 저희 대사제님을 우롱하는 것입니까!”

곧바로 언성이 높아지며 고함이 오고 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목표를 바꿨다.

“후겐 장로님, 장로님께서는 직접 그 인간을 겪어 보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도 어제 그 인간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인간을 세계수에 안내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다시 한 번 엘프들의 시선이 후겐에게 몰렸다.

그는 여태껏 중립의 입장을 표명해 왔기에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라스틸리아에 초대받은 적은 몇 번 있었어도 세계수까지 발을 들이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후겐의 말에 반대파의 안색이 환해졌다.

“맞습니다! 어디 감히 인간 따위가 세계수에 발을 들이밉니까!”

“대화를 해 보니 금세 목적을 드러내더군.”

“역시! 이야기를 해 보니 인간의 본성이 보인 거겠죠?”

“그래. 인간의 본성은 욕심, 아니 탐욕이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찬성파의 인물들도 술렁이며 흔들렸다.

중립적인 후겐은 없던 일을 지어낼 자도 아니었으니 초대된 인간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들으셨습니까? 인간을 직접 마주한 후겐 장로님께서도 인간이 세계수에 안내되는 걸 반대하십니다.”

“내가 언제 반대했지?”

“네?”

“난 그저 녀석이 탐욕적이라고밖에 하지 않았다.”

“그, 그게 그…… 반대한다는 의견이 아니신지?”

호기롭게 말하던 젊은 고위층 엘프가 자신도 모르게 멍청하게 되물었다.

후겐은 그런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인간의 탐욕은 대체로 부정적이지. 뭔가를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서 뺏어 오는 형태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인간들을 싫어하는 것이고.”

“후겐 장로님?”

“하지만 그 탐욕이 때로 상대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녀석에게는 이미 세계수의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애초에 신탁이 내려질 이유가 그것밖에 없으니 그냥 말해 버렸지. 그러자 녀석이 말하더군.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대신에 문제를 해결하면 보상을 해 주길 원했다. 이 얼마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냐.”

후겐의 말이 끝나자 엘프들의 안색이 굳었다.

만약 말을 한 인물이 후겐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화를 냈을 분위기였다.

“인간 따위가 감히…….”

그러나 몇몇 엘프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계수는 목숨보다 귀한 존재.

그런 세계수를 협상의 물건처럼 대하는 인간이 괘씸하게 느껴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니 애초에 녀석은 인간이야. 우리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도 그게 본성이란 말이지. 나도 녀석과 같이 배려 없는 것이 되기는 싫었기에 인간의 입장을 생각해 왔다. 그러자 답은 간단했어.”

“그게 무엇일까요?”

오랜만에 입을 연 대사제, 헤그리우가 묻자 후겐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그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는 엘프가 아닌 인간. 일단 이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지켜본 뒤 해결을 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문제야.”

“그렇다고 인간을 세계수에 들이는 것은…….”

“인간이 세계수에 들어간 적은 없다. 이후로도 결코.”

“……장로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지금 이 문제는 여기에 모인 우리만 아는 이야기. 우리만 조용히 있으면 누구도 모른다는 소리다.”

후겐의 냉정한 얼굴빛이 스산하게 비쳤다.

“경과와 별개로 그의 처분은 조용히 처리하면 그만이지.”

* * *

아침 일찍부터 아이미르가 찾아왔다.

후겐은 이미 회의를 위해 떠난 상태라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이들은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단순 혐오 범죄로 분류가 될 듯해요.”

예상했던 일이다.

포람이나 세이르가 아직 배신자라는 사실을 모르니 그들이 왜 나를 막으려 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괜찮습니다. 다치지도 않았고.”

그보다는 라스틸리아까지 온 김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었다.

전날 후겐과의 대화에서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니 세계수로의 입장은 반쯤 가능할 거라 생각되었다.

세계수를 방문하게 되면 더 이상 용건이 없어지니 지금처럼 라스틸리아를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없겠지.

“아이미르가 저와 동행하시는 겁니까?”

“네. 바람 기사단의 업무 중 일부이기도 하고…….”

잠시 말끝을 흐린 아이미르가 조금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분들은 타 종족분들을 대하기 어려워하셔서…….”

“이해합니다.”

대하기 어렵다기보다는 깔본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괜히 숲의 귀족이라 불리는 건 아니니까.

엘프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그런 생산성 없는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봐야지.

“일단은 나가죠.”

나가야지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하고 뭔가를 얻을 수 있겠지.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나가서 굴리는 것이다.

‘뭐가 좋으려나?’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호위들이 눈인사를 건네 왔다.

어제 그런 일이 있던 만큼 인간에게 그나마 호의적인 인물들로 호위를 고른 모양이다.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이미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라스틸리아의 엘프들은 모두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아갑니까?”

“그러려고 노력은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얘기죠. 대수림 주변의 타 종족들과 교류가 있어요.”

“인간들과는 교역을 하지 않는 겁니까?”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타 종족 중에 인간들과 교역하는 종족이 있어서 그들과 물물교환을 주로 하는 편이에요.”

이거 뭔가 돈 냄새가 나는데?

최근 고민 중인 문제가 바로 돈 문제다.

사실 이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얼마 전에 만난 그레타 모하임으로부터 전쟁세를 듣고 난 이후부터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점차 스케일이 커져 가는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나한테는 강화도 있으니까.’

내 언데드들을 전부 20강화까지 하는 데도 얼마가 들어갈지 모르겠다.

다행히 에이미가 상단을 만들어 잘 꾸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돈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미르, 혹시 차를 재배하는 곳이 근처에 있습니까?”

“차라면……. 혹시 마시는 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있습니다만 혹시 차의 재배지를 방문하고 싶으신 건가요?”

“예. 조금 둘러보고 싶군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엘프들의 차였다.

보관과 관리가 용이하고 값도 비싼 기호품인 만큼 가져갈 수만 있다면 큰돈이 되겠지.

다만 꾸준히 거래가 가능해야 큰돈이 벌리는 거지 단순히 공간 확장 배낭에만 채워 간다고 내 상황에 영향을 줄 만한 돈을 벌 수는 없을 거다.

‘만약 교역이 가능하다면 에이미가 말했던 크롬웰 영지도 금방 살 수 있게 될 텐데…….’

아이미르는 내가 차 밭에 가겠다는 말에 조금 의아한 듯했지만 순순히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그녀의 안내를 받고 차를 재배하는 곳을 방문하자 예상보다 큰 규모에 놀랐다.

“저희는 하루에도 12번씩은 차를 마시니까요. 차를 마시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에요.”

“그렇습니까.”

인간들보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라스틸리아라는 도시에서만 지낸다고 생각하니 납득이 갔다.

그래도 인간과는 성향이 다르니 그렇게 살아가도 멀쩡한 거지 인간이 그리 지낸다면 진즉에 정신병이 걸렸을 거다.

차를 재배하는 엘프에게 물어보니 찻잎의 가격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일상용품이나 마찬가지이고 세계수가 있는 한 크게 관리할 필요 없이 알아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들을수록 당기네. 어떻게 안 되려나?’

세계수의 타락을 막고 난 이후에 공로를 인정받으면 교역 허가를 한번 부탁해 볼까.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만할 것 같은데.

그렇게 차의 재배지와 아이미르의 추천을 받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결과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중간중간 나를 안 좋게 바라보는 엘프들이 있었지만 그런 시선쯤은 사뿐히 무시했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나오겠습니다. 편히 주무세요.”

후겐의 거처까지 데려다준 아이미르가 손을 흔들며 호위들과 사라졌다.

꽤 나쁘지 않은 나들이였다고 생각하며 이내 후겐의 집에 들어가자 이미 후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앉아라.”

보자마자 하는 소리에 기가 질렸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맞은편에 앉았다.

“회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설득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에 당연히 아직은 안 됐구나 싶었는데 되새겨 보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물었다.

“허락을 받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날짜는 내일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라.”

후겐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적어도 며칠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후겐의 발언권이 컸나 보다.

라스틸리아는 거대한 만큼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곳이 많았는데 졸지에 바로 세계수로 떠나게 됐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유야무야 시간만 끌다가 결국 엎어지면 그게 더 손해였으니까.

‘뿌리.’

내가 향해야 할 곳은 뿌리.

세계수의 타락은 뿌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도 내가 항상 주의하고 있던 어떤 존재로 인해.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세계수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죄악 ‘폭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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