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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72화 (172/415)

172화. 갇힘 그리고 재능 진화

탁!

구덩이에 끌려가도 정신은 똑바로 차린 탓에 무사히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자 거대한 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꽤 넓었지만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나 혼자만 떨어진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서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역시나 위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나가지.”

분명 천장에서 떨어졌는데 위쪽은 까마득히 높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저런 높이에서 떨어진 건 분명 아니었으니 내가 들어온 구덩이가 닫힌 모양이었다.

이왕 검을 휘두른 김에 다시 갈락슈르를 뽑고 아무 벽 앞에 섰다.

콱!

가능한 전력을 다해 휘둘러 보았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다.

게임에서는 타락한 세계수만 상대해 보았기에 이 정도로 단단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동안 갈락슈르의 예리도까지 중첩해서 두들겨 보았지만 세계수로 이루어진 벽은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음?”

슬슬 골치가 아파지려 할 때 검을 휘두르던 벽에 무언가가 잔뜩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나무의 결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고대 문자. 그것도 엘프의 문자네.’

고대의 문자들도 종류가 다 달랐기에 읽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벽에는 고대의 문자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검흔들이 나뭇결처럼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뭐 하던 놈이지?”

내가 전력으로 휘둘러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벽에 이 정도로 깊은 흔적을 새긴 걸 보면 보통이 아니었다.

[“흥. 결국 내가 말한 대로 됐네.”]

“원죄.”

검흔을 살피던 도중 갑자기 원죄가 말을 해 왔다.

오늘따라 말이 많네.

[“지금 보니까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거 같은데……. 지금 이 공간에 걸려 있는 힘을 모르는 거야?”]

“이 공간에 걸려있는 힘? 뭔 소리야?”

[“시간의 흐름이 뒤틀려 있다. 이곳에서 지내는 하루가 바깥에서는 1분 정도밖에 되지 않겠는데.”]

원죄의 설명에 순간 멍해졌다.

여기서 지내는 하루가 바깥에서는 고작 1분이라고?

“바깥이라는 게 세계수 밖이라는 소리야?”

[“아니. 세계수 안에서도 이 공간만 특별하다는 뜻.”]

원죄의 비웃는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너만 큰일 났다고.”]

“내가 여기 끌려온 건 너 때문이겠지.”

[“그래서 말했잖아. 들어가지 말라고.”]

분명 경고를 듣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럼 이곳은 일종의 감옥인 셈인가.

여기서 지내는 하루가 후겐이나 호이르 같은 다른 이들에게는 고작 1분이라면 나를 구하러 와 줄 수도 없겠네.

저들이 하루 동안 나를 찾는다고 해도 내게는 1440일이 지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거의 4년에 가까운 시간.

게다가 세계수의 특성상 하루 만에 나를 찾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탈출하는 방법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것보다 너보다 먼저 누가 여기 왔던 것 같은데 가까이 좀 가서 살펴봐.”]

레테의 던전으로 이미 무한 회귀의 고통을 느껴본 나는 PTSD가 올 것만 같았다.

일단은 원죄의 말을 들어 벽에 새겨진 흔적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누가 일기를 써 놨네.”]

“일기? 읽을 수 있어?”

[“당연하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생각해 보니 원죄의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원한다고 불러낼 수도 없는 녀석이라 그를 받아들이고 난 이후에도 대화를 해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지.

그의 정체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우선은 일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하잘것없는 이야기다.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부터 구구절절 설명해 놨어. 음?”]

말을 하던 원죄는 갑자기 의문이 담긴 소리를 울리며 잠시 말을 끊었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잠시 기다리자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그 녀석이었군.”]

“뭔 소리야?”

[“알 것 없다. 그냥 아는 녀석이었을 뿐이다.”]

“이 흔적을 남긴 주인이 아는 사람이었다고?”

[“그래. 어차피 말해 봐야 너는 모를 테니 묻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 더 궁금해지잖아.

원죄가 알 정도로 유명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려나?

내 생각을 읽은 원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은 초월자가 된 녀석이다. 이 정도면 됐지?”]

“그 말은…… 신이 됐다는 뜻이냐?”

[“신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 나도 초월자였던 몸인데 지금 이 꼴을 봐라.”]

잠시 원죄의 감정이 격해지려 했지만 녀석은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원죄가 입을 열수록 숨겨져 있던 이 세계의 세계관이나 비사들이 밝혀졌으나 그는 더 이상 이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

원죄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신이었으려나?

[“그것보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라고. 이 녀석은 이곳을 무사히 탈출한 모양이니까.”]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점차 희미해지는 원죄의 존재감을 보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여기 새겨진 흔적들을 공부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열쇠다.”]

“이 검흔 말이지?”

[“그래. 녀석이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만든 검법인 모양이다.”]

원죄는 그 말을 끝으로 연결이 뚝 끊어졌다.

순식간에 끊어진 연결과 함께 원죄가 잠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나갈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해서 다행이지.

원죄가 아니었으면 여기서 꼼짝없이 죽었겠네.

‘남은 식량을 확인해 보자.’

당장 저 검흔을 조사한다고 바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니켈을 소환해 공간 확장 배낭을 확인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언제나 식량을 준비했는데 드디어 써먹네.

딱!

니켈은 팔자 좋게 나오자마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식량은 아껴 먹으면 5년은 버틸 수 있겠는데…….’

문제는 5년 안에 탈출할 수 있냐는 것인데 일단은 검흔을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식량의 확인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검흔을 살폈다.

그래도 검술 영재의 재능이 있었기에 검흔을 살피는 것만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걸로 어떻게 검법을 익혀.”

검흔만으로 이 검흔을 만들어 낸 검법을 익히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보고 느껴지는 건 많지만 그건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감상과 같았다.

혹시나 싶어 니켈에게도 내 생각을 전달하자 니켈은 멀뚱멀뚱 검흔을 살펴보더니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난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니켈의 생각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결국 이 문제가 쉽지 않음을 깨달은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 *

이 공간에 갇힌 지 벌써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밤낮의 구분이 없기에 한 달이 아닐 수도 있었다.

―히히히!

미리내가 티무르를 괴롭히며 날아다녔다.

지금 공동 안에는 덩치가 큰 루도와 크리브마허를 제외한 나머지 언데드들이 전부 소환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저 검흔에만 신경 쓸 수는 없기에 다른 탈출 방법도 모색해 봤지만 역시나 아무 발견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크리브마허를 소환해서 브레스까지 써 봤을 정도다.

브레스가 튀기는 걸 피하고 막는다고 별 염병을 다 떨었었지.

“이건…… 이렇게인가?”

나는 니켈과 티무르에게 자문을 구하며 검흔을 분석하기 바빴다.

솔직히 되도 않는 분석이었지만 유일한 희망인 만큼 놓을 수가 없었다.

원죄는 그날 이후로 계속 잠에 빠져 있는 상태라 말을 걸 수도 없었고.

덜그럭!

니켈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름 분석한 대로 검법을 구현해 보려 한 건데 아무리 봐도 어설펐다.

이대로라면 5년은커녕 10년, 아니 평생이 지나도 검법을 복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후우.”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사실 요 며칠 동안 고민한 것이 있었는데 조금 불안한 마음에 미뤄 두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의 진화 가능성 31%]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고작 31%의 가능성.

게다가 아직 실패의 부작용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

성급한 결정일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간다면 이곳에서 굶어 죽을 게 분명했다.

나중에 진화를 하나 지금 진화를 하나 어차피 진화를 해야 가능성이 보일 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천재가 된다고 검법을 복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이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였다.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그래.”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

[진화 중…….]

[남은 시간: 380시간 17분 51초]

16일 정도 걸린다.

이제 기다리며 검흔을 분석하면…….

“으음.”

머리가 핑 돌았다.

동시에 온몸에 오한이 들더니 바늘로 전신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시작됐다.

고통은 익숙했기에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뼈를 뒤틀고 내장이 꼬이는 고통이 느껴졌다.

‘천재로 진화를 해서 그런가?’

그 어느 때보다 진화의 고통이 컸다.

생각해 보면 빛 계열 마법 재능은 진화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번이 처음으로 천재로 진화하는 재능이었다.

“후우. 니켈.”

나는 니켈을 불러 검을 들고 마주 섰다.

어차피 가만히 있는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회를 살려 최악의 상황에서의 전투를 연습해 볼 좋은 기회였다.

“덤벼.”

* * *

―호옹?

미리내가 뜨끈뜨끈하게 열이 나는 내 머리 위에 앉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지고 니켈과 티무르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감정이 내게 전해져 왔다.

길었던 15일이 드디어 지났다.

나에게는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툭, 투둑!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첫 일주일간은 최대한 평범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점차 심해지는 진화의 부작용으로 결국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지금도 자리에 앉아서 검흔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음에도 땀이 쏟아졌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

[진화 중…….]

[남은 시간: 0시간 02분 50초]

아무리 나라도 3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보자 검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진화 가능성은 고작 31%.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성공해야 돼. 반드시 성공…….’

이런 고통을 거의 16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겪었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살짝 미쳐 버리지 않을까?

그 정도로 이번 진화의 고통은 심했다.

고통에 내성이 있는 나조차 이 정도였으니, 뭐.

[남은 시간: 0시간 00분 10초]

그래도 생각해 보면 31%가 적은 확률은 아니었다.

거의 1/3에 가까운 확률이지 않나?

‘5초…….’

31%면 도박치고는 굉장히 높은 확률이다.

오히려 바로 될 수도 있지.

‘내가 점점 미쳐 가나.’

엄청난 심적 부담으로 횡설수설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

“1.”

―띠링!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이 진화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런 씨…….”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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