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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66화 (166/415)

166화. 음모, 메르쿠르 그리고 엘프

쾅!

아스란 블루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오는 퀜튼의 얼굴을 보자마자 탁자를 내려쳤다.

“퀜튼! 이제 어쩔 거냐!”

인사를 할 만큼 형편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탓하는 아스란을 보며 퀜튼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일을 다 글러 놓고 죄송하다 하면 다야? 이래서 내가 직접 나섰어야 했는데!”

소리를 지른 아스란은 이내 퀜튼의 뒤를 살폈다.

“그런데 어째서 너만 온 거지? 셋째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쌍으로 가지가지 하는구먼.”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은 아스란이 손짓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가? 이대로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파벌을 삼키게 놔두고만 있을 게야?”

“미로에서의 함정은 실패했지만 아직 저희의 소행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았으니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떤 기회냐고 묻는 거지 않나?”

퀜튼은 고개를 조아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일이 어긋나고 나서도 아드리아스의 동선을 상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카데미의 방학을 맞아 밖으로 나왔더군요.”

“나왔다고? 그렇다면 왜 가만히 놔두고 있는 건가?”

“일을 꾸며 보려 했지만 그 전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입수했습니다.”

“놀라운 사실?”

어느새 화를 냈던 것도 잊은 아스란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퀜튼의 말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본 퀜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곁에 악마가 붙어 있었습니다.”

“악마? 설마 살렘 예디디아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허!”

잠시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변한 아스란이 등받이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더니 왜 그 녀석의 곁에 있는 거냐.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살렘 예디디아와 무슨 관련이 있지?”

“크롬웰 가문의 가신으로 활동 중입니다.”

“……말이 안 나오는군.”

아스란은 차라리 퀜튼의 말이 전부 거짓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편이 훨씬 더 믿기 쉬웠을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방랑자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 살렘 예디디아다.

그런 그가 돌연 누군가의 가신이 된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진심은 아니겠지?”

“정확한 정보입니다, 형님.”

“아니,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살렘 예디디아 말이다. 그가 설마 진심으로 가신이 되었을 리는 없지 않나.”

“일단은 가짜 신분으로 있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용케 알아냈구나.”

“페이드와의 마지막 거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대가를 지불해야겠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아스란은 못 들은 척 넘겨 버렸다.

음지에서의 거래는 대개 그렇듯 양지보다 큰 대가를 요구했다.

페이드는 그런 음지 중에서도 가장 위에 위치한 존재인 만큼 만만치 않은 대가를 요구할 게 너무도 뻔했다.

“하지만 운 좋게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지금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그랑디스 왕국에 있다고 합니다. 예상 목적지는 바야트라 대수림으로 살렘 예디디아는 따라나서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마지막 기회군.”

아스란이 탁자를 습관적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무표정으로 조용히 지켜보던 퀜튼은 슬쩍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형님께서 직접 나서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그럴까 생각 중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맡겼다가 또 실패하면 앞으로는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단지 걱정이 되는 건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내가 죽였다는 걸 스승님이 모르셔야 한다는 건데…….”

“바야트라 대수림입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쥐도 새도 모르죠. 그리고 헤이겔이 죄악을 확보해 집회를 곧 연다고 하니 스승님께서도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정해졌군.”

고개를 주억거린 아스란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그깟 녀석을 죽이는 데는 나 혼자로도 충분하지.”

“형님께서 나섰으니 걱정할 필요 없겠군요. 따로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페이드로부터 이런 정보들을 얻은 것만으로도 네 역할은 충분했다. 이 뒤로는 내가 처리하마.”

아스란의 두 눈에 살기가 어리자 퀜튼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셋째가 연락이 안 된다고 했지? 셋째나 신경 써 주거라.”

“알겠습니다.”

퀜튼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조용히 아스란을 뒤로하고 거처에서 빠져나왔다.

참고로 그는 아스란에게 한 가지 알려 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막시민에 대한 정보.

‘운 좋게 풀린다면 아스란을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겠군.’

자신이 왜 직접 처리하지 않았겠나.

아마 막시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이미 진즉에 본인이 직접 달려가서 아드리아스를 죽였을 것이다.

‘모굴도 죽였으니 이제 아스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드리아스가 남는군.’

내심 별 것 아닐 줄 알았던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질겼다.

살렘이나 막시민과 같은 괴물들하고만 함께 있으니 틈이 생기질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인맥을 만든 거지?’

살렘과 막시민뿐만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에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모른과의 인연도 그렇고 루나 펜드래곤과의 친분은 또 어떠한가.

하나같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인물들과 엮여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파벌을 양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지금 당장 죽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니까.

* * *

“오오!”

내 옆에 있던 환인 하나가 감탄을 토해 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방금 갓 만들어 낸 포션을 건넸다.

“힘이 세지는 약입니다.”

“고맙다, 인간!”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그의 뒤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환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니 열심히 포션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마침 주변에 널린 게 재료들이었고 나는 새로운 포션의 레시피를 찾을 겸 실패작들을 환인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물론 실패작이라고 해서 나쁜 건 아니었고 대체로 내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험험.”

“오셨습니까.”

인기척을 내며 다가오는 이는 이 마을의 촌장인 메르쿠르였다.

그는 내가 만들고 있는 포션을 슬쩍 보더니 물었다.

“언제쯤 끝나는가?”

그의 물음에 나는 내 포션을 기다리고 있는 줄을 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눈치챈 메르쿠르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며 휘저었다.

“줄은 신경 쓰지 말게. 내일 해 주어도 되지 않느냐.”

“뭐라고! 안 된다! 나에겐 포션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악덕 촌장은 물러가라!”

줄을 기다리던 너구리들이 소리쳐도 메르쿠르는 태평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손짓했다.

“따라오거라.”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메르쿠르와의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기에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언제나와 같은 거대한 나무의 그루터기였다.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 그 넓이나 크기가 아카데미의 연무장과 비슷했다.

그루터기에 올라서자 메르쿠르가 지팡이를 치켜들며 말했다.

“오늘은 대련을 좀 해 볼까.”

“좋습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루터기에 놓여 있는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처음에 나를 보며 데슈른이 스승님인 걸 알고 놀랐던 메르쿠르는 이후부터 내 검법을 봐주고 있었다.

데슈른의 제자인 나에 대한 호기심 반, 스승님의 검법에 대한 호기심이 반인 걸로 보였는데 나로서도 전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투웅!

내 나뭇가지와 메르쿠르의 지팡이가 부딪혔다.

마나를 불어넣어 부러지지 않는 나뭇가지를 통해 강렬한 반발력이 전해져 왔다.

“신기하구나, 신기해.”

메르쿠르는 엄청난 강자답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공격을 받아 내기만 했다.

그는 신기하다는 말을 자주 내뱉고는 했는데 뭐가 그리 신기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후웅―!

대련인 만큼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고 그를 이기려 들기보다 스승님의 검법을 보여 주는데 주안을 두었다.

“자, 막아 보거라.”

메르쿠르의 지팡이가 자연스레 내 가슴팍을 향해 찔러 왔다.

키가 작은 만큼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방심하지 않았다.

‘꼭 막아야 하나?’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며 계산이 섰다.

그동안 공격을 받아 주기만 했던 메르쿠르의 첫 반격이어서 그랬을까.

무아검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 나왔다.

“옳거니.”

다가오던 지팡이가 어느새 저 멀리에 있었다.

그리고 메르쿠르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이제 보아하니 벽을 본 적이 있구나?”

“예.”

나는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런 것까지 알아차리는 메르쿠르가 더 대단해 보이는데.

“벽이란 건 말 그대로 벽이지. 자네의 전진을 막아 세우기 위함이야.”

“그렇습니까.”

“하지만 말일세. 전진을 막는 벽의 역할이 꼭 잘못되었다고는 볼 수 없어.”

메르쿠르가 지팡이를 허공에 나풀나풀 휘둘렀다.

“데슈른이 스승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스승을 본 지는 얼마나 되었나?”

“1년 가까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구나? 그런데 네 상태를 보면 가르침 없이 경지를 끌어올린 자의 공부가 보인다.”

그런가?

솔직히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판단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도 많이 늦었지만 검을 잡은 지 얼마나 되었지?”

“1년하고 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뭐라고?”

“처음 검을 잡게 된 이후로 18개월 정도 됐습니다.”

구체적인 기간을 말해 주자 잠시 메르쿠르의 말문이 막혔다.

정작 말을 한 나도 생각하고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느 누가 고작 2년도 채 안 된 시간 동안 검을 수련해서 내 실력까지 올라오겠는가.

‘운동 재능하고 전투 재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겠지.’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어쩌겠나.

믿든 말든 그건 메르쿠르의 몫이다.

“허허, 허허허. 자네는 첫날부터 계속해서 날 놀라게 하는군.”

“조금 허황되게 들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네. 아주 허황되게 들려. 하지만 자네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음은 알고 있다네. 그렇기에 더욱 놀라고 있는 거고.”

메르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해가 되었네. 왜 자네의 상태가 그리 뒤죽박죽인지.”

“제 상태가 그리 안 좋습니까?”

“데슈른에게 검을 익힌 기간이 얼마나 되지?”

내 질문에 도리어 질문으로 받아치는 메르쿠르를 보며 일단은 순순히 대답했다.

“두 달가량 되었던 것 같습니다.”

“흐흠. 두 달을 데슈른 밑에서 익히기 전에는 누구한테 배웠지?”

“기본기만 훈련했습니다.”

사실 니켈에게 검을 배웠지만 그에게 기본기만 익힌 것도 사실이니까.

“특이하구나, 특이해.”

잠시 중얼거리던 메르쿠르는 지팡이를 다시 땅에 짚었다.

“자네의 상태는 말하자면 과부하 상태일세.”

“너무 단기간에 많은 걸 익힌 겁니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는데 만약 데슈른이 계속 곁에 있었다면 모두 흡수했었겠지. 자네에게는 스승의 존재가 필요했어. 지금 자네가 익힌 데슈른의 검법과 때때로 나오려고 하는 자네만의 검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 보여.”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옆에서 잡아 주는 이가 없으니 가지가 제멋대로 자란 것이겠지. 물론 가지가 사방으로 뻗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야. 다만 나중에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문제가 되겠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간이 많나?”

“두 달 정도 있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봐주마. 대신 두 달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네. 그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예상치 못한 기연인가?

메르쿠르는 막말로 막시민에 비견되는 강자.

단지 인간들만 알지 못할 뿐 대륙 10인에 버금가는 검사였다.

사실 대륙 10인이라는 것 자체가 제국의 호사가들 기준에서 세워진 순위였으니.

어쨌든 그런 강자가 나를 지도해 준다는데 감사할 따름이다.

‘메르쿠르가 말하는 무아검과 나의 검이 부딪힌다는 의미가 뭔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하고…….’

벽을 엿본 뒤로는 무아검보다 나의 검에 대한 자아가 커졌다.

애초에 오러 비기라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든 기술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다만 무아검과 나를 따로 분리할 필요는 없었는데 옆에서 조언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 보니 엉킨 모양이었다.

타다닥!

“메르쿠르! 메르쿠르!”

갑자기 환인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급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엘프들이 찾아왔어!”

엘프?

이곳은 엄연히 환인족들의 영역.

영역을 그 누구보다 중시하는 엘프들이 함부로 침범하지는 않았을 테니 용건이 있어서 온 거겠지?

“누가 왔는지 아느냐?”

“응! 봤어! 바람의 두 번째 별이랑 바람 기사단이 왔어!”

“바람의 두 번째 별이 기사단을 끌고 왔다고?”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 엘프들이 왔다는 장소로 함께 뛰어가기 시작했다.

“메르쿠르! 괜찮겠지?”

“흐음…….”

혹시 우리 때문에 엘프들이 이곳에 온 건가 싶었다.

최근에 이 마을에서 변한 건 갑자기 방문한 우리밖에 없으니까.

‘잠시만. 바람의 두 번째 별이라면…….’

익숙한 별명이다 싶었는데 미래에 있을 메인 에피소드 중 엘프와 연관된 스토리에서 나오는 인물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개입해서 메인 에피소드를 바꿀 수 있는 건가.’

원래였으면 엘프와는 마주치기도 힘든 시기였다.

워낙 폐쇄적인 종족이었기에 내 마음대로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다는 건 다른 의미로 기회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미래를 바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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