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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55화 (155/415)

155화. 도깨비의 문

“일단 누가 없어진 건지 같이 확인해 봐요.”

미로를 탈출하는 일은 잠시 미뤄졌다.

디에네는 일단 상황을 정리하려 했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봤다.

“로저스, 케이시, 말론, 닉…….”

한 명, 한 명 가리키고 이름을 말한 디에네는 이내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당황했다.

‘왜 기억이 나지 않지?’

분명 함께 들어온 건 여섯 명.

그러나 여섯 번째 조원이 생각나지 않았다.

천재라 불리는 그녀는 웬만한 건 한 번 보고 외울 만큼 영특한 두뇌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였지? 나도 기억 안 나!”

“나도야…….”

조원들의 호들갑을 들으며 디에네가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마나 이상 현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군요.”

“그게 맞겠지? 우리 다섯 전원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돼.”

“일단 지금부터 기록을 해 두겠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옷소매에 조원들의 이름을 마법으로 적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천천히 정리해 보았다.

‘모네의 미로에서 일어나는 마나 이상 현상은 전부 파악되지 않았어. 길을 막고 있는 함정이나 수수께끼 같은 경우는 이미 발굴 작업을 하며 모두 밝혀졌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가죠. 여기 있어 봤자 해결되는 건 없어요.”

디에네가 앞장서자 알 수 없는 현상에 불안함이 싹 튼 조원들은 조용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의 말대로 가만히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기묘한 일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불안이 남았다.

“디에네. 이 평가, 위험한 건 아니겠지?”

로저스의 말에 디에네는 안색을 굳혔다.

“여기는 고대 유적이에요.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학부 가릴 것 없이 4학년 마지막 평가는 어려운 걸로 유명하죠. 로저스도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서 유독 졸업반하고 4학년의 사망률도 높은 거고.”

“그래도 디에네가 있으니까 마음이 조금 놓인다. 우리 학부 수석이잖아?”

책임감이 디에네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죽지 않도록 저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힘내 주세요.”

아카데미는 단순한 배움의 장이 아니었다.

제국이 대륙의 패자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국가의 상위층을 구성하는 엘리트 육성 기관이었다.

졸업을 하게 되면 부와 명예가 따랐지만 그만큼 무사히 졸업하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걸로도 유명했다.

이번 평가만 무사히 치르면 졸업반으로 진급할 수 있는 만큼,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그렇게 다시 탈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갈색 일색으로만 이루어진 일체형 통로는 풍경이 똑같다 보니 같은 곳을 맴도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아무 일도 없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디에네 일행은 미로에 입장하고 단 한 번도 함정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윽고 계속 한쪽 벽을 따라 걸음에도 표시해 두었던 마법들이 나타나지 않자 같은 장소를 맴도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슬슬 휴식을 취할까요.”

디에네의 말에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동안 걸으며 틈틈이 채집한 식용 식물들을 꺼냈다.

“윽, 에기아 풀은 비리고 쓴데…….”

“지금 반찬 투정할 때냐. 고작해야 며칠 동안만 고생하는 건데 어쩔 수 없지.”

다행히 어떤 평가를 치르게 될지 몰라 미리 이것저것 준비들을 해 온 덕분에 채집한 식용 식물들과 소소한 휴대용 식량들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니까 너무 낭비하지는 말자.”

“모네의 미로 탈출이 평균적으로 며칠이었지?”

“평균은 3일이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아끼는 게 맞겠죠.”

모네의 미로는 실내인 터라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림짐작으로 밤낮을 구분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한 일행은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탈출에 집중했다.

탈출 시간에 따른 상대평가였기에 3일 동안 잠을 잘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뭔가 무난하네. 없어진 한 명을 빼면…….”

“그러게. 원래 이런 곳인가?”

경계를 위한 마법을 전개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던 일행들도 점차 해이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첫 번째 함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건…….”

문헌으로 읽어 보기만 했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한 마음으로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문이 아니라 기괴한 얼굴이 문의 한가운데에 달려 있었다.

얼굴의 크기는 웬만한 사람보다 컸으며 두 개의 뿔이 돋아 있었다.

―또 다시 굶주린 자의 일꾼들이구나.

“문헌대로네요. 기물이 말을 하니 신기하네.”

유적의 함정들 중 의식이 있는 것들은 매번 알 수 없는 존재인 굶주린 자와 일꾼 타령을 한다고 문헌에 적혀 있었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사라지고 일꾼들만 남은 세상이라니 여전히 믿기지가 않아.

얼굴이 아가리를 벌리며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은 문의 말을 무시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가는 건 무리겠지?”

“어차피 다른 곳에도 이런 함정들이나 수수께끼들이 길을 막고 있을 거예요. 별로 의미 없는 회피죠.”

“맞아. 그리고 나 이거 읽어 본 기억이 있어. 학명은 ‘도깨비의 문’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큰 위험부담은 없는 함정이야.”

“도깨비의 문? 아, 이게 그거구나. 나도 기억났어.”

디에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괴이한 문을 보았다.

도깨비의 문.

미로 곳곳에 있는 것으로 판별되었으며 통과 난이도는 낮은 축에 속하는 함정.

한 가지 의아한 건 조금 전 누군가가 위험부담이 없다고 했지만 그녀가 알기로는 위험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함정이었다.

‘나랑 다른 문헌을 본 건가?’

그런 생각을 문득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앞장섰다.

“내가 먼저 통과할게.”

도깨비의 문은 간단한 질의응답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정답을 맞히면 통과를 할 수 있는 함정으로 마법학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난이도 최하의 함정으로 분류되는 이유였다.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기본 소양으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하기에 놓칠 수 없는 관문이었다.

“그래. 어차피 우리도 같이 정답을 알려 줄 수 있으니까.”

도깨비의 문은 통과자가 정답을 몰라도 주변에서 알려 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난이도 최하에 어울리는 기믹이었다.

―이곳을 통과하고 싶은 자, 내 입안으로 들어와 지식을 증명하라.

“으으. 그건 좀 꺼려지는데…….”

가장 먼저 나섰던 로저스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도깨비의 문이 가진 필수 규칙이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거대했기에 로저스가 허리를 숙이자 입안으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질문을 던지겠다.

입안에 로저스가 들어가 있음에도 용케 말을 한 도깨비의 문이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우라크 산맥에 위치한 니디켈 습지에는 푸른 보석이라 불리는 물건이 있다. 이 물건은 생명체를 치유하기도, 죽이기도,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 물건의 종류는 무엇인가?

도깨비의 문이 질문을 끝내자 모두 고민에 들어갔다.

“우라크 산맥? 그게 어디지?”

“잠시만. 니디켈 습지라면……. 아닌데? 나디컬 습지는 알지만 니디켈 습지?”

의외로 들어 보지도 못했던 지명들의 출현에 모두가 골머리를 싸맸다.

입안에 들어간 로저스가 초조해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우라크 산맥, 니디켈 습지, 푸른 보석! 디에네? 디에네, 너는 알고 있지?”

로저스의 외침에 디에네는 습관적으로 입가를 가리고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정리를 마치고 입을 떼려는 순간.

“아! 나 들은 적이 있어! 애초에 이름도 보석이잖아! 당연히 광물 아니면 보석이지!”

“정말이야? 맞는 거지, 닉?”

그때 도깨비의 문이 다시 소리를 내었다.

―내 인내심은 길지 않다. 곧 있으면 입을 닫아 버리겠다.

“뭐야! 빨리 말해 줘! 보석이야? 아니면 광물?”

“아니에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할 리 없기도 하고 애초에 우라크 산맥은 크라테스 산맥의 고대 지명입니다. 크라테스 산맥 내부에는 여러 습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푸른 보석’이라 불릴 물건하고 연관된 곳이면 나디컬 습지가 맞겠지요. 아마 구전되면서 니디켈에서 나디컬로 지명이 변했을 거예요.”

“그, 그러면……?”

“푸른 보석은 그곳에서만 자생하는 ‘별빛 발광 풍뎅이’를 뜻하는 걸 겁니다. 약으로도 사용되고 독으로도 사용되죠. 게다가 그 맛이 별미라는 평도 있었고요. 생명체를 치유하기도, 죽이기도, 기쁨을 주기도 한다는 말에 부합하죠.”

디에네의 말에 일행들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그러니 정답은 ‘곤충’입니다.”

확정적인 디에네의 말에 로저스가 믿음을 가지고 급하게 외쳤다.

“곤충! 정답은 곤충이다!”

―……넘어가라.

어쩐지 억누르는 듯한 기색으로 말한 도깨비의 문은 로저스만 지나갈 수 있게끔 뒷공간에 자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냉큼 빠져나간 로저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디에네……!”

쿵!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히며 건너편과 단절이 되었다.

그리고 도깨비의 문이 다시 입을 벌렸다.

―다음.

그러자 이번에는 케이시가 먼저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디에네가 자신보다 먼저 통과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단순히 질의응답이라고 무시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됐어! 문제 내!”

―기사 아굴로토오스가 들고 다니던 검들 중에 ‘기억을 베는 자’라는 이명이 붙은 검이 있었다. 실제로 이 검에 베인 상대방에게 잠시 동안 혼란을 일으키던 검이지. 이 검은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재질 덕분에 검신도 검은 것이 특징. 이제 여기서 질문, 이 검에 사용된 물질은 무엇일까.

“사용된 재료?”

전혀 뜻밖의 문제가 다시 나왔다.

애초에 일행들은 기사 아굴로토오스가 누군지조차 몰랐다.

사색이 된 케이시가 고개를 돌려 디에네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때 다시 한 번 닉이 나섰다.

“재료면 단순하잖아! 검을 뭐로 만들었겠어? 당연히 광석이지.”

“닉.”

잠시 듣고만 있던 디에네가 닉의 이름을 불렀다.

“왜? 내 말이 틀렸어? 조금 전의 문제는 내가 너무 경솔했는데 이번에는 당연한 거잖아. 아니면 넌 답을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죠.”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저는 기사와 관련된 문헌은 전부 다 찾아봤을 정도거든요. 그나저나…….”

디에네가 말을 하며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자 함께 있던 말론과 도깨비의 입안에 있던 케이시가 당황했다.

“디에네? 뭐 하는 거야?”

“마나 이상 현상으로 기억이 조금 혼란스러운데 잘 생각해 보니까 닉, 당신은 아카데미에서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미로에 들어서기 전, 아드리아스가 했던 충고를 떠올렸다.

‘조원을 조심해.’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깨달았다.

애초에 다섯 명이었어야 할 조원이 여섯이었던 것도 저자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드리아스는 어떻게 안 거지?’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디에네가 말했다.

“오면서 사라진 한 명은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이 없앤 건가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시치미 떼지 마. 네가 이 미로에서 만들어진 함정이라는 건 대충 파악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틀린 답을 일부러 뱉어 내지 않았겠지.”

어느새 반말을 하는 디에네로부터 거센 마나의 진동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닉은 서서히 기괴한 웃음을 짓더니 모습이 변해 갔다.

“너무 티를 냈나? 아니지. 답을 알고 있는 자가 없었으면 들키지 않았을 텐데 아쉽군.”

“이 정도 문제를 못 맞힐 줄 알았다고? 로들렌 아카데미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겨우 미로에 종속된 미물 주제에.”

디에네의 마법이 순식간에 발현됐다.

그리고 공간을 도약하고 날아간 얼음 꼬챙이가 순식간에 닉을 꿰뚫었다.

“헉!”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말론이 놀라며 뒤로 물러났고 케이시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디에네! 일단 답부터!”

“정답은 뼈야! 신화에서 읽은 이야기지만 거기서는 신의 뼈라고 적혀 있었어!”

“마, 맞겠지? 어차피 방법은 없으니까……. 정답! 뼈! 신의 뼈!”

―……정답은 하나뿐이다. 뼈인가, 신의 뼈인가?

“신의 뼈!”

―정, 답이다.

케이시는 문이 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그사이 디에네의 화려한 마법의 향연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게 끝입니까? 별것 없군요.”

그녀의 마법은 닉이라는 이름을 했던 무언가를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완전히 소멸된 공간을 보며 그녀는 도도하게 몸을 돌려 도깨비의 문 앞에 섰다.

“한통속이었나 보죠?”

―굶주린 자의 일꾼이여. 그대도 지나갈 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묻는 도깨비 얼굴에 디에네는 코웃음을 한 번 쳐 주고 뒤로 돌았다.

“말론. 이제 당신 차례…….”

―방심하면 안 된다, 일꾼이여.

푸욱!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디에네는 복부에서 격통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말론이 보였다.

“말, 론……?”

“하나는 찾았지만 둘은 못 찾은 네 패착이다, 일꾼아.”

하, 이렇게 어이없게?

주마등 대신에 디에네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위태로웠다.

하다못해 이 녀석이라도 죽이고 가야겠다는 일념이 모이고 이내 마법을 사용하려 할 때.

서걱! 툭…….

말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무언가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목이 붙어 있던 부분에는 검은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이 존재했다.

“찾느라 고생했습니다.”

무덤덤한 말소리.

하지만 안심이 되는 그 목소리에 디에네는 긴장이 풀렸다.

조원들은 모두 어디다 버리고 온 건지 알 수 없는 아드리아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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