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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54화 (154/415)

154화. 살아 있는 미궁

대륙 어딘가에 위치한 음침하고 거대한 공동묘지.

묘지의 관리인인 아스란 블루는 자신의 거처에서 지인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쾅!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저희가 그동안 왜 스승님을 도왔습니까? 이렇게 두 눈 뜨고 코를 베이다니…….”

모른의 제자 중 하나이자 셋째 제자인 모굴 굴란이 탁자를 내리치며 토로했다.

마치 푹 퍼진 찐빵 같은 얼굴에서 살결이 덜덜 떨려 왔다.

그런 그의 무례한 행동에도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으니.

둘째 제자 퀜튼 브룩이 모굴의 울분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아스란을 향해 물었다.

“형님, 형님은 이번 집회에 참가해서 봤을 것 아닙니까. 정말로 그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는 자가 파벌을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까?”

“둘째 형님!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지금 두 눈 뜨고 코를 베이게 생겼다고요! 생판 처음 보는 녀석이 그동안 파벌을 지탱해 온 우리를 제치고 과실만 취하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란 말이냐. 스승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정 불합리하다 생각됐으면 스승님이 있던 자리에서 말했어야지.”

“이익……!”

그들의 스승 모른은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는 제작한 언데드에 따라 전천후 전투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직업.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시간과 정성이 다른 마법사보다 훨씬 많이 필요했다.

현재 대륙에서 흑마법사들의 입지는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모른처럼 정점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잔혹한 성격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아드리아스와 루나에게만은 누구보다 따뜻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의 본질은 웅크리고 있는 패왕.

“그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전 언데드가 되기 싫습니다.”

“나라고 그걸 몰라서 너를 나무랐겠느냐. 스승님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 거다.”

“둘 다 너무 달아올랐어. 조금 차분해지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모른의 제자가 죽고 마침내 수석 제자가 된 아스란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제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둘 다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모굴의 억울함도 퀜튼의 비참함도 다 이해하지. 나라고 다르겠느냐. 그 누구도 아니고 내가 바로 스승님의 수석 제자다. 억울함을 따지자면 내가 가장 억울하겠지.”

아스란의 말에 나머지 두 제자가 침음을 흘렸다.

그런 둘을 보며 아스란이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둘을 부른 이유는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해결책…… 말입니까.”

퀜튼이 회의적인 음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퀜튼을 보며 모굴이 다시 외쳤다.

“뭐라도 해 봐야지요! 이대로 파벌을 뺏길 겁니까?”

“그건 아니지. 뭐,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충분히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군.”

그러나 아스란은 퀜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느긋하게 생각하면 너무 늦는다. 저쪽에는 무려 스승님과 루나 펜드래곤이 있어. 아무리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급력이 크지. 파벌의 인원들을 충분히 잠식시킬 수 있어. 반년만 있어도 모든 세력을 빼앗길 거다.”

“혹시 형님께서는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퀜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굴도 아스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마 전에 입수한 소식이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속한 로들렌 아카데미 재학생들이 이제 곧 ‘모네의 미로’를 방문한다고 하더군.”

“모네의 미로? 아! 평가 때문입니까?”

“그렇다네.”

아스란과 퀜튼의 대화를 들은 모굴이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기회입니다! 거기서 쓱싹해 버리죠! 생각해 보니 아드리아스 크롬웰만 없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래. 그걸 노리고 있다. 물론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죽인다면 스승님의 의심은 피하지 못할 테지만 이미 죽어 없어진 인물을 후계자로 세우실 수는 없겠지.”

그때 듣고만 있던 퀜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를 직접 건드리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살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막시민 크로넬과의 교류도 있었고요.”

“그러면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지만…….”

“둘째 형님은 너무 신중하십니다! 이미 살렘도 아드리아스 크롬웰에 대한 비호는 잊었을 게 분명해요! 그 작자가 그런 걸 다 신경 쓰겠습니까?”

결국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퀜튼이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떠오르는 게 없군요.”

“사과할 필요는 없다. 네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절벽 끝에 몰렸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군. 살렘은 그때 가서 해결할 일이고 지금 당장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결국 모네의 미로에서 아드리아스를 처리하기로 결정한 셋은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드러나면 위험하다. 이미 로들렌 아카데미에서는 흑마법사에 대한 경계가 최고조에 다다랐지.”

“큰 형님! 그건 어떻습니까?”

모굴이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파벌에서 가지고 있던 애물단지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애물단지……. 그걸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저희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겸사겸사 로들렌 재학생들을 모두 처죽일 수도 있고요. 마침 잘됐지 않습니까?”

“확실히…….”

모굴이 말한 ‘그것’의 정체를 짐작한 퀜튼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자칫하면 일이 훨씬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꼬리를 잡힐 수도 있고요.”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 한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고 나는 그중 하나의 선택을 택했을 뿐이지.”

“둘째 형님은 어째 무슨 말만 하면 반대를 하십니까? 큰 형님도 그 정도 생각은 다 하시겠죠.”

“음…….”

결국 설득당한 퀜튼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결국 저희의 계획은 ‘그것’을 모네의 미로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럼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많아서 직접 해야 성에 찰 것 같군요.”

선뜻 자신이 나서겠다는 퀜튼의 말에 아스란은 오히려 달가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선다면 안심할 수 있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보다 누군가를 시키는 게 더 안전할 텐데?”

“안 그래도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말해 줄 수 있나?”

“페이드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네 파벌의 수장 중 하나의 이름이 나오자 아스란과 모굴은 감탄을 흘렸다.

페이드가 암흑세계의 큰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유명세와 달리 그에게 끈을 대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나쁘지 않군. 그를 통해서라면 특급 용병도 고용할 수 있을 테니.”

“안 그래도 예전에 그와 거래를 해 둔 게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사용해야겠습니다.”

“아깝지 않나?”

“형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지금 가릴 처지는 아니죠. 이렇게 해서라도 성공률을 높이고 안전성이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겁니다.”

“고맙네.”

대략적인 계획의 틀이 잡히고 회의가 끝났다.

퀜튼에게 이번 일을 일임하기로 한 이상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결과만 보고 받기로 말을 맞추었다.

그렇게 아스란의 거처를 나와 퀜튼과 함께 밖으로 나온 모굴은 한참 길을 걷다 적막을 깼다.

“형님.”

“음?”

“정말 그대로 도와줄 겁니까?”

회의 때와는 달리 전혀 상반된 말을 꺼내는 모굴을 향해 퀜튼이 미소 지었다.

“하하, 모굴.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거겠죠?”

“어차피 이번 일을 모두 내게 위임하기로 했다. 아스란은 내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모를 거야.”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어떡할 겁니까?”

“어떡하다니? 당연히 죽여야지. 그리고 그 범인으로 아스란이 지목되기만 해도 충분해. 그 뒤로는 식은 죽 먹기니까.”

“흐음. 알겠습니다. 일단 저는 이만 제 거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살펴 가게.”

모굴마저 떠나자 퀜튼의 미소 짓던 얼굴이 급격히 무표정으로 변했다.

언제나 겁이 많아 보이던 그가 순식간에 냉혹한 모습이 되었다.

“그동안 즐거웠네, 모굴.”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린 퀜튼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졌다.

* * *

디에네가 소란스러운 학생들을 향해 나섰다.

“일단 미로부터 빠져나가죠.”

잠시 혼란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조원이 여섯 명인 것은 분명 놀랄 일이었지만 신변에 위협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여섯 명이면 점수에 영향이 있을까?”

“근데 이건 아무 문제없지 않을까? 말 그대로 무작위로 시작 지점이 정해지는 건데, 우리가 일부러 여섯 명이서 조를 짠 건 아니잖아.”

“그래. 일단은 미로를 통과하고 보자. 교수님들도 이해해 주시겠지.”

모네의 미로는 이미 유적으로 잘 알려진 장소였기에 모르는 학생은 없다시피 했다.

원래부터가 무언가를 탐구하고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마법사들의 특성이었다.

“아마 길을 막고 있는 수수께끼나 여러 함정들이 있을 거예요. 웬만한 건 다 외우고 있으니까 어서 탈출부터 하죠.”

“역시 디에네! 믿고 있었다고!”

결정을 내린 이상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은 일체형으로 길게 이어진 짙은 갈색의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미로는 평범한 건축물과는 달리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든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움직이는 것 같단 말이지.’

미로의 벽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여러 문헌을 통해 접한 모네의 미로는 실제로 움직인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렇기에 모네의 미로는 살아 움직이는 미궁이라는 이명이 붙어 있었다.

실제로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로는 한쪽 방향만 짚고 가는 게 정석이죠.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안전한 방법으로 가겠습니다.”

“우린 디에네 말만 따를게.”

이윽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학생들은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별거 없는 평가잖아. 모네의 미로는 그리 위험한 유적은 아니니까.”

“문제는 다른 조랑 마주치는 일이겠네.”

“글쎄. 과연 마주칠까? 여기 생각보다 엄청 넓은 걸로 알고 있는데.”

모네의 미로는 그 규모가 큰 걸로도 유명했기에 하루 만에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미로 곳곳에는 자생하는 식물들이 있었기에 수분과 식량은 보충할 수 있었다.

“근데 말이야.”

한참 걷던 도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응?”

“네?”

누군가의 의문에 모두들 걷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훑어보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계속 같은 풍경이라…….”

“솔직히 헷갈리는데? 정말로 제자리걸음 중인가?”

“확실히. 모네의 미로 내부에서는 마나 이상 현상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해요. 그리고 그 종류는 매번 달라서 짐작할 수 없다고 하죠.”

“그럼 표시를 하면서 걸을까?”

“그렇게 하죠.”

마법이 있으니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그들은 마나로 마킹과 동시에 알람 마법을 설치해 놓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뒤 디에네는 이상함을 느끼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왜 그래?”

디에네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조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리킨 디에네가 말했다.

“다섯.”

“어……?”

“왜 다섯 명밖에 없죠? 누가 사라진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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