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아카데미의 최강자
2학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복귀한 터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부 돌아와 있는 모습이었다. 개학은 이틀 정도 남아 있지만 북적이는 거리를 보면 드디어 돌아왔다는 실감도 느껴졌다.
“아! 아드리아스 학생.”
기숙사를 관리하는 기숙 관리부에 찾아가자 사감이 나를 알아보았다.
“소식 들으셨나요?”
“예, 방금 막 확인했습니다.”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새로 배정된 방은 데르지옹 기숙사 313호실입니다. 짐은 지금 옮기시면 되는데 혹시 짐을 옮기는 데 도움이 필요하실까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러면 짐을 다 옮기시고 물푸레 기숙사의 열쇠는 바로 반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상한 징조가 보이면 바로 기숙사를 나와서 도움을 요청하세요. 기숙사 근처에 경비들이 있을 겁니다.”
“확인했습니다.”
원래 사용하던 물푸레 기숙사는 무료 기숙사였다.
그에 반해 데르지옹은 유료 기숙사였는데 방이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네.
사감에게 방 열쇠를 받고 일단은 물푸레 기숙사로 향했다.
옮길 짐은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어서 가긴 해야 했다.
‘내 예상보다 빨리 일어났어. 많이 앞당겨진 건 아니지만 분명 뒤로 늦춰지면 늦춰졌지, 당겨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원래 물푸레 기숙사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은 2학기 도중에 벌어진다.
게임 속에서는 중간 평가가 끝나고 벌어지는데 그것도 카일러가 흔적을 남긴다는 전제하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근데 카일러의 흔적은 내가 다 지워 버렸지. 직접 쫓아가서 죽이기도 하고. 근데 오히려 사건이 앞당겨졌다?’
확실한 건 이 사건의 주도자에게 무슨 일이 있긴 했다는 거다.
그에게 자극이 없었다면 이번 일이 벌어질 리가 없으니까.
‘어쩌면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물푸레 기숙사에서 일어난 사건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번 에피소드의 특성상 어디까지 진행이 됐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데.
“선배, 얘기 끝났어요?”
관리부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루시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
“어디예요? 새로 배정된 기숙사.”
“데르지옹. 조금 가까워졌네.”
“그러게요. 그럼 같이 가면 되겠다.”
요 며칠 느낀 건데 항상 흐물흐물 졸린 표정과 분위기였던 루시아가 활기차진 것 같다.
병이 고쳐져서겠지? 차차 익숙해져야겠네.
“일단 짐 좀 챙겨 올게.”
“도와줄게요.”
“짐이라고 해 봤자 옷하고 책밖에 없어. 금방 올 거니까 이 근처에서 기다려.”
데르지옹은 반대편에 있었기에 굳이 루시아까지 왔다 갔다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루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기어코 내 뒤를 따라왔다.
“기다리는 건 심심해요. 그냥 같이 가요.”
그러면서도 은근히 눈을 빛냈다.
“그리고 궁금해요. 소문을 보면 귀신이 나온다고 하던데 진짜일까요?”
“2명이나 죽은 건 거짓말이 아니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하니까 조심해야 돼.”
하필이면 물푸레 기숙사에서 가장 먼저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아마 위치 때문일 거다.
게임 속에서도 매번 여기서 먼저 일이 벌어졌으니.
물푸레 기숙사 뒤편에는 금빛 단풍의 숲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었다.
그 규모가 꽤 컸는데 학생들이 가끔 등산도 하고 가을에는 절경이 펼쳐져 인기도 많은 아카데미 부지 중 하나였다.
‘분명 그런 곳인데…….’
숨겨진 히든 피스, 아니 메인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으니 히든은 아닌가.
어쨌든 숨겨진 무언가가 그 산에 있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 무언가와 연관된 사건이었다.
‘아카데미가 지어지기 전부터 존재해서 아카데미 관계자들이나 교수들도 모른다는 설정이지.’
과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게임이 그렇다니 뭐 어쩌겠나.
어쨌든 이번 에피소드는 나도 나름대로 이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피해가 조금 생길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최대한 막아 보고.
먼저 죽은 2명은 내가 시기를 예측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선배처럼 짐 옮기는 사람들이 있네요.”
루시아의 말대로 나처럼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이 짐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뭐가 그리 많은지 사용인들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엄청난 양의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
기숙사 앞에는 학생들이 꽤 모여 있었다.
모두들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구경하러 온 모양인데 경비들이 짐을 옮기려는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입장을 제한하고 있었다.
“진짜 귀신인가?”
“근데 귀신이면 몬스터 아니야? 마법으로 대처가 가능하지 않나?”
“강력한 유령이면 학생 수준에서는 상대하지 못하겠지.”
“근데 학부 교수님들이 둘러봤는데도 아무 흔적이 없었다면서.”
“그게 참 수수께끼야.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대체로 로들렌 아카데미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넘치기에 저런 치기 어린 행동도 종종 보여 주고는 했다.
무서울 게 없을 시기지. 각종 평가로 실전도 어느 정도 치렀으니.
하지만 나는 저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밤에만 조심하면 되기에 저 기숙사에서 밤을 보내지 않는 이상 희생자는 추가되지 않을 거다.
“야, 근데 너 그거 들었냐?”
“뭐?”
“조금 전에 우연히 들은 건데 디에네 알븐 있잖아.”
“디에네 선배? 선배가 왜?”
“조금 상태가 이상하다던데. 막 혼잣말 중얼거리면서 인사해도 무시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고…….”
“거기 너.”
갑작스러운 끼어듦에 수다를 떨던 학생들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상황이 조금 골치 아파졌는데.
“아, 아드리아스 선배님.”
“방금 그 얘기 자세히 좀 해 봐.”
아무래도 오자마자 힘을 쓸 일이 생긴 것 같다.
* * *
로들렌 아카데미의 신문 동아리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아카데미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라 불리는 불칸 아카데미 2학년생 마빈 개럿이었다.
그는 동아리 활동을 위한 부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역시 로들렌 아카데미입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메이저 동아리 부실에 비하면 약소해요.”
신문부의 부장인 마법학부 4학년 크람이 손을 내저었다.
“곧 아카데미 부지를 안내해 줄 후배들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편히 구경하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이내 부실을 나가는 크람을 뒤로 하고 마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창밖을 보았다. 그가 지내는 불칸 아카데미도 명문 아카데미로 유명했지만 아무래도 제국의 아카데미와 비교하면 시설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부지 자체도 비교할 수 없게 넓구나.”
잠시 부지 안내 지도를 살펴본 마빈은 기사학부 측 부지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불칸 아카데미의 경우 마법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었기에 기사학부는 생소했다.
듣기로는 기사학부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던데 무슨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지는 마빈이었다.
때마침 부실로 학생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견학 안내를 할 마법학부 1학년 덱스터 브라이트입니다. 이 녀석은 기사학부 1학년 리처드 윌슨이구요.”
“반갑습니다.”
두 1학년의 인사에 마빈도 마주 인사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불칸 아카데미 2학년 마빈 개럿이라고 합니다. 우연찮은 기회로 로들렌 아카데미를 견학하게 되었는데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마빈은 불칸 아카데미 소속의 신문부 부원이었다.
매해 아카데미들끼리 학생들이 서로 견학을 하기도 했는데 특히 신문부와 같은 동아리들이 활동의 일종으로 견학을 다니는 경우가 잦았다.
“듣기로 불칸 아카데미에는 기사학부가 없다고 들었는데 기사학부를 먼저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기대되네요.”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따라 밖으로 나와 본격적인 견학을 실시했다.
기사학부로 가는 마나 부상 열차를 탄 그들은 여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평가 때를 제외하고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겠군요?”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그런 셈이죠. 아, 근데 토너먼트가 있어서 거기서 실력을 겨루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있었던 토너먼트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토너먼트 이야기가 나오자 그동안 대화를 하던 기사학부의 리처드를 대신해서 덱스터가 말했다.
“그렇죠! 올해는 마법학부가 우승을 차지한 해입니다.”
“오오? 그렇다면 그동안은 기사학부가 우승을 차지한 모양이네요?”
덱스터가 신나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던 리처드가 바로 끼어들었다.
“12년만입니다.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저희 기사학부가 우승을 차지해 왔죠. 아니, 우승뿐만 아니라 준우승까지 계속해서 저희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리고 아마 내년까지도 저희 마법학부가 우승을 차지할 거예요.”
갑자기 기 싸움을 벌이는 두 1학년들을 보며 마빈은 흥미로워했다.
아카데미 내에 두 학부가 있으니 서로 경쟁도 하는 걸 배워 간다.
‘이런 경쟁 심리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가?’
마빈은 재빨리 수첩에 메모를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글쎄다. 과연 내년에도 우승할 수 있을까?”
“토너먼트를 봤으면 너도 알 텐데? 과연 기사학부에서 디에네 선배님을 이길 사람이 있을까?”
“잠시만요.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로들렌 아카데미에도 학생들 간의 랭킹 같은 게 있습니까?”
마빈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둘은 고개를 저었다.
“공식적으로는 없습니다.”
“그 말씀은 그럼…….”
“저희 신문부에서 자체적으로 순위를 매겨 놓은 건 있죠.”
덱스터와 리처드가 서로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때, 마침 열차가 기사학부에 도착했다.
“역시! 혹시 제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같은 신문부로서 이런 화젯거리를 상당히 좋아하거든요.”
“마침 도착했으니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리처드의 말에 마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보여 주겠다니요?”
“학년 별로 유망주를 매겨 놓았는데 직접 가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기사학부부터.”
리처드를 따라 길을 나서자 그는 곧바로 어느 기숙사 근처의 단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개학 직전임에도 단련을 하고 있는 이들로 넘쳐 났다.
“오오!”
“개인 단련실도 있는데 그곳에서는 가문의 비전이나 검법을 연마하고 그 외의 대부분은 여기서 훈련을 하지요. 함께하면 효율도 좋고 서로 조언도 할 수 있으니.”
리처드는 훈련을 하고 있는 이들 중 신문부에서 뽑은 강자들을 꼽았다.
“일단은 1학년. 저기 저 여학생 보이시죠?”
“보입니다.”
“저 학생이 바로 세레나 에레스티얼. 에레스티얼 후작가의 막내딸로 1학년 3강구도 중에 한 명이죠.”
“힘이 대단하군요.”
마침 무거운 중량으로 근력 운동을 하고 있던 그녀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지만 이어진 리처드의 말에 놀랐다.
“원래 저것보다 두 배는 무거운 기구로 운동했었는데 요즘에는 훈련법을 바꿨더라고요.”
“두 배!”
“세레나는 특이하게 대검을 사용했었는데 최근에는 검의 종류를 계속 바꿔 보더라고요. 그래도 강한 걸 보면 역시 3강 중 하나라고 감탄하게 되죠.”
“나머지 2강은 그럼……?”
“오러 마스터인 유노르 후작님의 아들, 크리스 유노르는 요즘 들어 개인 단련실만 이용해서 찾기가 힘듭니다. 가끔씩 나와서 운동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안 보이네요.”
리처드가 설명을 하던 도중 마빈은 특히나 눈에 띄는 남학생 한 명을 발견했다.
갈색 머리카락과 파란 눈이 인상적인 사내.
날렵한 체형은 경갑을 입었음에도 잔근육이 도드라졌다.
이미 겉으로만 보아도 엄청난 강자와 같은 직감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저분은…….”
“역시 바로 알아보시네요. 쟤가 3강 중 마지막, 아니 솔직히 말하면 1학년 최강이라 불리는 루이스 아트만입니다.”
“1학년 최강. 혹시 그 정도면 전체로 따졌을 때는 어느 정도일까요?”
마빈의 순수한 물음에 리처드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덱스터가 대신 말해주었다.
“저희 신문부에서는 전체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허! 대단하군요. 1학년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루이스 아트만은 모나스 아카데미의 역대 수석 기록들도 갈아 치운 천재라 논외로 치고 있습니다.”
같은 기사학부가 아님에도 높게 평가하는 덱스터의 말에 마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3강이라 했는데 그럼 루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분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루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둘은 고만고만합니다. 전체로 따지면 그래도 30명 안에는 간신히 들겠군요. 3강보다는 사실 1강 2중이죠.”
“그 정도의 차이면 저 학생이 유독 대단하군요.”
그 뒤로 기사학부 2학년, 그리고 3학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루이스와 같이 반짝이는 이는 없었다.
“3학년의 사천왕 중 하나…….”
“어? 야, 야. 저기 비비안 벨로칸!”
한참 설명을 하던 리처드를 향해 덱스터가 소리쳤다.
그러자 리처드도 설명을 멈추고 느긋하게 지나가는 비비안을 보았다.
“비비안 벨로칸? 설마 그, 토너먼트 준우승자?”
“네, 맞습니다.”
“오오.”
토너먼트 준우승자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로들렌 아카데미의 춘계 토너먼트는 타국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으니.
‘아름답군.’
토너먼트 준우승자라고 하기에 좀 더 우락부락한 모습일 줄 알았건만 청초하기 그지없었다. 저 호리호리한 몸으로 준우승까지 차지했다니, 지금 단련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근육질 몸을 보면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육체가 전부는 아니니.’
마나를 다루는 데 있어서 뛰어난 걸 수도 있겠다.
그래도 루이스 아트만과 같이 보는 것만으로도 강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의외이긴 했다.
“저희 아카데미 공식 랭킹 2위, 비비안 선배님.”
리처드의 눈이 몽롱한 것이 그녀에게 단단히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방금 보았던 루이스 아트만이라는 학생에 비해 뭔가 느껴지는 건 없군요.”
“그래도 실력은 비비안 선배님이 위입니다.”
“그런가요?”
“네. 직접 대련까지 했으니 확실합니다.”
“대련! 비비안 벨로칸 학생이 이긴 건가요?”
“그렇죠.”
이건 또 몰랐던 정보다.
사실 루이스 아트만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단지 실제로 본 적이 없었을 뿐.
하지만 비비안이 루이스와 대련을 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오길 잘했어.’
역시 이런 정보들은 현지에서 얻어야지.
후에 대륙을 이끌어 갈 인물들이 될 수도 있었기에 로들렌 아카데미 학생들의 인물 분석은 신문부로서 필수였다.
“꽤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비비안 선배님이 가볍게 이기셨습니다. 물론 루이스도 1학년치고는 엄청난 실력이지만 비비안 선배님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웬만한 기사들보다도 강할 거라는 추측이 있거든요.”
“호오.”
졸업반 학생들의 경우 보기가 힘들었기에, 기사학부에서 볼 만한 사람들은 모두 확인한 그들은 마법학부로 장소를 옮겼다.
마침 마법학부는 기묘한 사건으로 인해 한참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설명을 들은 마빈도 호기심을 보였다.
“정말 기묘한 사건이군요.”
“저희도 조사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인명 피해가 있었던 사건인지라 쉽지가 않네요.”
로들렌의 학생들조차 자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말에 마빈은 아쉽지만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보다 마법학부 학생들도 순위를 정해 놓거나 유망주분들이 계실까요?”
“당연하죠!”
기다렸다는 듯 덱스터가 외쳤다.
그는 리처드를 보며 뭔가 잘난 듯 어깨를 높이며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사학부처럼 인재들이 넓게 포진한 건 아닙니다. 마법학부 1학년에도 3강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있지만 기사학부에 비교하면 초라하죠. 2학년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덱스터는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하지만 3학년부터는 이야기가 다르죠. 3학년에는 무려 루시아 에버라스트…….”
“루시아 선배는 토너먼트도 참가하지 않았는데 평가할 게 있나?”
갑자기 끼어드는 리처드를 덱스터가 노려보았다.
그런 그를 향해 리처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왜? 사실이잖아? 물론 루시아 선배가 천재라고 불리는 건 맞는데 그것도 다 마법학부 내에서의 일이지. 솔직히 토너먼트도 참가하지 않아서 신문부 내에서 정하는 순위에서도 빠졌는데.”
“그건, 맞지.”
덱스터가 힘겹게 인정하자 마빈이 손을 저었다.
“뭐, 마법사라는 게 전투만을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강하지 않아도 연구나 실험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저희 마법학부는 4학년이 진짜입니다.”
덱스터가 이번에도 반박해 보라는 듯 리처드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처드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무려 공식 랭킹 1위! 디에네 알븐 선배가 계시죠. 졸업반들조차 제친 천재 마법사이자 12년 만에 마법학부에 우승을 안겨 준 전투 마법의 엘리트.”
“야, 마침 저기 계시네.”
리처드가 손을 들어 가리키자 그곳에는 정말 디에네 알븐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길가에 가만히 선 채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 저분이 디에네 알븐! 한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디에네 선배님께 가서 인사드리죠. 친절하신 분이라 대화를 받아 주실 겁니다.”
디에네의 주위에는 역시나 사람이 꽤 모여 있었다.
유명인인 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아까부터 공식 랭킹이라고 두 분이서 말씀하셨는데, 혹시 비공식 랭킹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그건…….”
그때 수다스럽던 디에네의 주위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차가워진 분위기와 공기에 마빈과 신문부원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리처드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곳에는 녹빛이 깃든 검은 머리카락이 치렁거리는 남자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의 로브와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검이 그의 옆구리에 채워져 있었다.
“저분은……?”
차갑고 끈적이는 기운이 주위를 감쌌다.
등장만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내.
검을 차고 있었으나 로브를 입은 것으로 보아 어느 학부 소속인지 헷갈리는 그 사내를 보고 덱스터가 침을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비공식 랭킹 1위.”
덱스터의 말에 마빈이 눈을 크게 떴고…….
리처드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