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유령 도시
서걱!
―크르륵.
거대한 몬스터의 동체가 서서히 쓰러졌다.
그러자 뒤에 있던 인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아, 저주받은 종자들.”
에반 폰 오를레옹.
카시온 성국의 단 셋뿐인 이단 심문관이자 오러 마스터.
자애의 빛이라는 이명을 소유한 사내였다.
오크와의 전쟁을 곁다리로 도와주며 루나 펜드래곤의 뒤를 쫓은 그는 하필이면 대수림 안쪽으로 이어진 흔적에 골머리를 앓았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굳이 따라가야 하나 싶었지만, 루나 펜드래곤과 오크 로드를 잡았다는 베리 샌더스라는 사내가 어떠한 이유로 대수림에 왔는지 궁금해서라도 뒤를 밟고 있었다.
‘베리 샌더스. 오러 마스터를 잡을 정도의 네크로맨서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
하지만 그 정도의 네크로맨서가 이름을 알리지 않은 것도 특이했다.
아마 유명한 흑마법사가 가명을 쓰는 거라 생각한 에반은 강력한 흑마법사 둘이 대수림을 찾아온 데에는 필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흐음.”
흔적을 발견했다.
금방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기묘한 위치에서 끝나 있었다.
흔적은 어느 평범한 나무 부근에서 끊겨 있었는데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가라앉은 듯 사라져 버린 두 사람이었다.
잠시 제자리에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 에반은 마지막 흔적이 남은 나무를 향해 다가가 검을 뽑았다.
태양의 가호가 깃든 그의 검은 새하얀 빛의 오러를 뿜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부디 용서를.”
콰아앙―!
에반의 칼질에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전설적인 마녀, 이브 밀레니엄과 호각을 다툰 오러 마스터인 만큼 그의 실력은 대륙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괴물이었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들이 터져 나가고…….
엄청난 열량과 힘이 담긴 그의 공격에 결국 숨겨져 있던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이거…….”
에반이 미소 지었다.
드러난 결계를 마나를 담아 건드리자 이내 평범해 보였던 나무가 형태를 바꾸더니 아치형 문으로 변했다.
검을 집어넣은 에반은 순백의 경갑을 털고 경건하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심연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하, 흥미롭군요.”
역시 흑마법사들이 노릴 만한 장소였다.
그 둘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었던 에반은 미소 짓던 그대로 거침없이 발을 뻗었다.
* * *
아치형 나무 문을 통과하자 드러난 풍경은 내 예상과 달랐다.
활기찬 거리, 수많은 사람들,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그런 장소 한가운데에서 나는 멀뚱히 서 있었다.
“돌려줘!”
“싫은데? 뺏어 보든지!”
내 옆을 지나치는 아이들의 외침이 생생했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우선은 루나부터 찾아야 했다.
“루나!”
혹시 따로 떨어진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분명 아치형 문을 지나치자마자 히든 던전이라 하며 메시지가 떴었다.
그런 만큼 이곳은 특이한 형태의 던전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이 모든 게 내 착각이거나.’
그때 저 멀리 허공에서 누군가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루나.”
루나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나는 몸을 날려 어느 상가의 지붕을 밟고 올라섰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 친구!”
다행이다.
이 던전의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어쩌면 이 모든 게 환상 마법이 아닐까 싶었는데.
‘가만, 루나도 환상?’
아직은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루나는 곧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는데 어깨에는 여전히 룰프가 올라타 있었다.
“봐 봐! 여기 뭐야? 나 깜짝 놀랐어!”
역시 나만 놀란 게 아니었군.
루나에게 이야기를 더 들어 보니 허공을 날아 주변을 보자 이곳은 작은 도시로 도시 밖은 안개가 자욱한 상태라고 한다.
마침 도시 밖의 안개로 나가 보려던 상황에 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하며 더욱 놀라운 말을 해 주었다.
“이 사람들, 다 산 사람들이 아니야.”
“그 말은 유령이란 말입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응. 아무래도 여기는 평범한 곳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생각한 유령들과는 전혀 다르네.
솔직히 특수한 능력을 지닌 루나가 아니었으면 유령이라는 것도 몰랐을 거다.
차라리 고도의 환상 마법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있지, 죽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진짜 유령 도시군요.”
“친구가 찾던 게 유령 도시야?”
“그건 아닙니다.”
나는 화룡의 무덤을 찾으러 온 거지 이런 기묘한 던전을 찾으려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게 던전이라 불리는 게 맞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그저 활기찬 도시였고, 루나의 말이 맞다면 이들은 귀신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우선은 정보부터 수집해야겠습니다. 어찌 됐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미리 알고 있어야겠죠.”
“그럼 나는 도시 밖으로 나가 볼게! 나중에 저기서 다시 만나자.”
루나가 가리킨 곳에는 여관이 하나 있었다.
유령 도시의 여관이라니 말만 들으면 조금 오싹했지만 생긴 건 그저 일반 여관과 다를 게 없었다.
“이봐! 거기 남의 가게 지붕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내려와!”
그때 건물 아래에서 중년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 생생함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귀신이 곡할 노릇? 그게 뭐야?”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일단 흩어지고 잠시 후에 저 여관에서 보는 걸로 하죠.”
“알았어!”
루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허공을 유영했고, 나는 건물에서 내려왔다.
“무시해? 사과라도 하라고!”
“예, 죄송합니다.”
내가 깔끔하게 사과하자 중년의 사내는 투덜거리며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게 유령이라고? 이렇게 생생한데?
정말 루나가 아니었으면 눈치도 못 챘겠다.
‘애초에 본인들이 유령이라는 건 알고 있는 건가?’
나조차도 루나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텐데 당사자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말을 해도 아마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 같아 애매했다.
애초에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그리고 어떤 곳인지 알아야 했다.
분명 들려온 메시지로는 ‘반복되는 악몽’이라는 이름의 히든 던전이었는데.
‘이름 한 번 불길하네.’
그리고 그 메시지 전에는 드래곤이 죽은 장소라고도 했었지.
이곳에서 화룡이 죽은 건 확실해 보였다.
다만 그 호칭이 무덤이 아니라, 죽은 장소라는 것을 보면 불의의 사건으로 죽었다는 뉘앙스가 더 강했다.
‘드래곤은 자신이 죽을 장소를 정한 뒤 그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드래곤의 무덤이라는 단어가 나온 건데…….’
여러모로 불길한 징조였다.
이 평범해 보이는 도시에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 * *
해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사람들에게서, 아니 유령들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도시의 이름은 레테.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유령인 걸 모른다. 이곳에서도 죽음이라는 개념이 있는 걸 보면 확실하지.’
조사를 하던 도중 루나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멀쩡했다.
바깥의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상식이나 행동은 나를 무척 헷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확실해졌지, 유령이라는 게.’
저들은 상처를 입어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정말 우연히 목격하게 된 장면이었는데 건장한 사내 둘이 주먹질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피부가 찢기고 입가가 텄지만 피는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도 전혀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 걸 보고 확실해졌다.
저들이 유령이라는 게.
‘루나가 늦네.’
이곳에서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이었으니 꽤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나는 미리 약속했던 여관에 들어와 루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분명 안개가 낀 도시 밖을 둘러보고 온다고 했던 루나가 이상하게 늦었다.
‘솔직히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루나의 실력은 워록이나 오러 마스터와 동급인 초인급.
그런 그녀이기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던 건데 아무래도 비밀에 싸인 장소인지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히든 던전. 게임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없는 형태의 던전이다. 주로 고대 유적과 관련된 곳에서만 나타났었지.’
클리어만 한다면 예상치 못한 보상을 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그 난이도와 난해함으로 결국 캐릭터를 지우고 다시 키우게 하는 원흉이 되기도 했다.
그런 히든 던전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면 이곳도 고대 유적과 관련된 곳인가?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일단은 첫날인 만큼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차근차근 알아봐야지.
꾸득.
“음?”
기묘한 감각.
주변을 둘러보자 여관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등 뒤로 소름이 일어났다.
“뭡니까.”
애써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들은 마치 감정 없는 인형처럼 내게 시선을 준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대앵― 대앵.
도시 어디선가 종이 울리며 순식간에 밤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검은 연기와 같은 형상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알 수 없는 기믹이었다.
절대 호의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관을 나왔다.
그러나 바깥도 상황은 비슷했다.
―고오오오.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검은 연기들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검을 뽑아 검풍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듯 그것들은 계속해서 나를 추적해 왔다.
콰아아앙―!
저 멀리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루나?”
나는 검은 연기들을 꼬리에 달고 소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콰아앙!
투과가가각!
도착한 장소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순백의 복장으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외형이 어딘가 낯이 익어 기억을 떠올려 보자 게임 속 인물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에반 폰 오를레옹?”
저자가 여기에는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건가? 아니면 뒤따라……?
에반은 하얗게 빛나는 오러를 뿌리며 연기들을 걷어 내고 있었다.
내 오러와는 달리 에반의 오러에는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검은 연기들은 흩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했다.
“아! 당신이 베리 샌더스군요.”
드디어 나를 발견한 에반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나는 그가 내 진짜 정체를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카시온 성국의 오러 마스터.
그리고 카시온 성국은 흑마법사들을 제국보다 혐오하는 집단이었다.
‘에반은 이브 밀레니엄을 담당했던 오러 마스터. 기묘할 정도로 빛에 집착하는 괴인.’
이브 밀레니엄을 담당했을 정도면 그 실력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카시온 성국은 다른 플레이어블을 플레이 했을 때는 든든한 아군이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흑마법사.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사이지.
“루나 펜드래곤은 어디 있죠? 아니, 그보다 먼저 이 검고 사악한 것들은 당신이 만든 겁니까?”
“나도 모른다. 우리를 뒤쫓아 온 건가?”
“정확히는 루나 펜드래곤을 쫓아왔습니다만, 마침 잘 됐군요.”
콰징!
에반이 엄청난 속도로 내게 돌격해 왔다.
나는 급하게 내 언데드들을 소환해 내고 검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푸욱!
“크흡!”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오러 비기를 사용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검.
수십 개의 검이 그의 주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전 방심하지 않습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는 에반과 함께 수십 개의 빛의 검이 내게 박혀 들었다.
푸부부북!
* * *
“돌려줘!”
“싫은데? 뺏어 보든지!”
속이 울렁거렸다.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려오고 이내 정신을 차린 후…….
“허억!”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던전에 막 들어왔을 때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내 옆으로 아이들이 지나쳐 갔다.
마치 꿈을 꾼 듯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건 마치…….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