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특성 확인 그리고 미리내
덜컥.
치이익.
나는 손에 든 플라스크의 용액을 천천히 포션병에 부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디에네의 개인 연구실.
내가 모드라스의 탑을 간 사이 그녀의 연구실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었기에 장소가 옮겨졌다.
그렇기에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내 옆으로는 루시아와 디에네가 있었다.
둘은 숨을 죽이고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내 눈 또한 저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실험이나 연구가 아닌 치료제 제조 그 자체였으니까.
‘재료는 아직 두 번 정도 더 만들 양이 남아 있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내가 집회에서 받은 재료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충분히 3번 정도는 시도해 볼 만한 숫자.
그중 지금이 첫 번째 시도였다.
“디에네.”
“어. 여기.”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양의 배합물을 계속해서 섞어 줘야 했다.
다행히 내게는 영재급 포션 재능이 있었기에 숨 쉬듯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었다.
디에네가 옆에서 만들고 건네준 배합물을 다시 포션병에 넣고 섞었다.
섞는 방법도 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고, 어느 때는 가열도 해 주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루시아, 온도 올려.”
“네.”
기계처럼 돌아가는 내 손과 지시에 디에네와 루시아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림의 시간이 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어.”
“수고하셨어요, 두 분 다.”
“그래, 수고했어.”
내 말을 이어 루시아와 디에네가 차례대로 말했다.
연구실 한쪽에 설치된 냉장 도구에 포션병을 넣은 뒤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3일 뒤면 살렘이 말했던 2달이었다.
‘아마 살렘은 약속도 잊고 성서에 몰두하고 있겠지.’
어쩌면 아직도 성서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위치를 알려 주었다고 해도 워낙 지역이 넓었으니.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
“3시간?”
“그러면 잠깐 나가서 배 좀 채우고 오자.”
디에네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둘이 다녀와. 난 좀 쉴게.”
루시아가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내 눈치 빠른 디에네가 루시아의 손을 잡고 나갔다. 혼자만 있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읽은 모양이다.
나는 둘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허리춤에 있는 갈락슈르를 뽑았다.
[봉인된 검―갈락슈르]
[마나 전도율 73%]
[봉인되어 있습니다.]
[강화가 가능합니다.]
예전에는 없던 문장이 추가되었다.
나는 강화가 가능하다는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강화가 가능합니다.]
―240g의 금이 필요합니다.
부가 설명을 읽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 업적 달성 보상으로 새로 얻게 된 유니크 특성 ‘강화’는 이전에 얻어 본 적은 없었으나 진화와 달리 복잡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돈을 써서 강화.
지금까지 확인해 본 바로는 아이템과 내 언데드들에게도 가능하다는 문구가 나왔다.
‘근데 저 금이 문제란 말이지.’
처음에는 1g의 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었다.
금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강화를 시도하기 위해 금을 사서 시도해 보자 대충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었다.
‘1g당 이곳의 금의 시세가 대충 10만 윌 정도.’
갈락슈르를 한 번 강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2,400만 윌이라는 소리였다.
2,400만 윌이면 내 1년 학비나 마찬가지였다.
‘미쳤지.’
물론 물건에 따라 강화 비용이 다 달랐다.
갈락슈르는 네임드급 아이템이라 유난히 비싼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고 내 언데드들의 경우는 비용이 조금 더 쌌다.
시험 삼아 니켈을 한 번 강화하자 니켈의 설명창에 +1이라는 문구가 붙으며 스탯이 상승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강화 비용도 소량이 상승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웃긴 건 강화에 무조건 성공만 있는 게 아니라 실패도 있어서 금이 그대로 증발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워 온 못된 버릇인지 모르겠다.
그냥 성공만 하면 얼마나 좋아?
어쨌든 새로 얻은 특성으로 인해 돈을 더 벌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돈만 내면 강해진다는데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이미 특허를 통해 들어오는 돈이 꽤 되는데 앞으로도 포션 제작을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지금의 내게는 유일하게 돈을 벌어다 줄 구석이 포션 특허뿐이었다.
‘잘됐지. 어차피 루시아의 치료제를 연구하면서 재능도 영재급으로 진화했으니.’
루시아의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판단이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이롭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포션을 만들 생각도 못 하고 거지처럼 살아야 했을 거다.
루시아의 치료제를 떠올리자 내 시선은 자연스레 냉장 도구로 향했다.
‘이번 걸로 한 번에 성공하면 좋을 텐데.’
내가 계산한 확률은 90% 이상.
애초에 그 정도의 확률이 예상돼서 시도하는 거기도 하고.
아마 루시아도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 떨고 있을 거다.
‘실수는 한 번도 없었다. 계산했던 대로 다 들어가고 시간도 오차 범위 이내였어.’
근데 어째서일까.
치료제를 만들었다고 생각되자 마음이 놓이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결과를 확인한 것도 아니었지만 눈이 감겨 왔다.
최근 들어 쉴 틈 없이 달려온 건 사실이기에 지칠 만도 했었다.
모드라스의 탑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온 후까지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조금만 잘까.’
나는 어느새 연구실 한구석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루시아?”
아드리아스를 놔두고 둘만 나온 거리.
갑자기 잘 걷고 있던 루시아가 눈물을 보였다.
디에네 알븐은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루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저도 모르게, 이게.”
루시아는 애써 자신의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보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큼 그녀의 감정 상태는 불안정했다.
이번 제작을 통해 루시아의 사연을 알게 된 디에네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는 루시아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고생했어. 힘들었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내 밝게 웃어 보인 루시아는 디에네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저희 돌아가는 길에 아드리아스 선배 것도 사 가요!”
“그래, 그러자.”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컸는지 루시아는 알븐 스트리트에 가는 내내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덕분에 배를 채우고 간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디에네는 대충 먹을 걸 사 들고 루시아에게 말했다.
“이왕이면 연구실에서 다 같이 먹는 게 좋겠지?”
“네! 그렇게 해요.”
간단하게 군것질거리와 요깃거리를 사 들고 둘은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연구실에 돌아온 그들은 벽 한쪽에 기대 잠이 든 아드리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나 의외의 모습을 봐서일까.
디에네와 루시아는 입구에서 굳은 채 잠든 아드리아스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저, 단 한 번도 아드리아스 선배가 쉬는 모습을 못 봤어요.”
작게 들려오는 루시아의 말에 디에네도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드리아스는 새벽 운동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허투루 사용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열차의 이동 시간에도 책을 읽고 있던 그를 떠올리자 심경이 복잡해졌다.
‘언제부터였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 왔던 그의 행동들을 다시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려 왔다. 그동안은 그냥 지나가는 풍경처럼 스쳐 갔지만 그의 행동들을 곱씹어 보자 속이 매슥거릴 정도로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그때 루시아가 총총걸음으로 잠든 아드리아스에게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마치 그의 잠든 모습을 자세히 보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보며 디에네가 헛웃음을 흘렸다.
“뭐 하는 거야?”
“귀한 모습이에요. 지금 많이 봐 두지 않으면 다신 못 볼 수도 있어요. 디에네 선배도 지금 안 봐 두면 이제 못 볼걸요?”
왜인지 모르게 루시아의 말은 묘한 설득력을 지닌 채 디에네에게 전파됐다.
결국 디에네는 자신도 모르게 루시아의 옆으로 다가가 잠든 아드리아스의 얼굴을 살폈다.
‘흉터가 있네.’
옅은 자상의 흔적이 볼에 남아 있었다.
언제 생긴 상처일까. 혹시 토너먼트에서 생긴 건 아니겠지?
그렇게 묘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와중에, 돌연 아드리아스의 눈이 떠졌다.
“아.”
루시아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고 디에네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뭐 하고 있어?”
어색한 분위기가 연구실 내부를 감돌았다.
디에네는 당황한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이 사 온 음식들을 꺼냈지만 루시아는 여전히 쭈그려 앉아 아드리아스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선배도 자는 모습은 천사 같네요.”
“그럼 평소에는 악마라는 소리냐?”
“그건 아닌데 겉모습은 솔직히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지 않을까요?”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냐.”
그런 둘 사이를 헛기침을 한 디에네가 끊었다.
“사 온 거나 먹어. 일부러 같이 먹으려고 챙겨 왔으니까.”
“네! 선배님!”
루시아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아드리아스도 실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 *
결과적으로 치료제는 무사히 제작이 되었다.
루시아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오히려 나와 디에네보다 덤덤한 모습이었다.
치료제의 복용은 조금 미루었는데 치료제를 먹기 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치료는 치료제를 먹는다고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몇 날 며칠에 걸쳐서 진행이 되기도 하고 그동안 큰 통증이 동반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양해를 구해 잠시 본가에 내려가기로 했지.’
치료제의 복용은 아마 본가에서 이루어질 거다.
며칠 뒤면 아마 멀쩡한 모습으로 아카데미에 복귀하겠지.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루시아의 가족들에게도 알려졌다.
덕분에 홀링턴 자작이 부디 사례를 하고 싶으니 직접 아카데미에 방문하겠다고 했었는데 일단은 정중히 사양하고 루시아가 나은 뒤에 만나기로 했다.
이제는 좀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오래 기다렸지?”
개인 연구실을 가득 메운 마법진들은 바닥이며 벽, 그리고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법진의 한가운데에는 전대 페어리 퀸이었던 미리내의 시신이 놓였다.
작년 가을에 얻었으니 반년이 넘었네.
그때에 비해서 내 마법 실력은 물론 전반적인 모든 게 성장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꿈틀거립니다.]
내가 마법진을 발동시키려 하자 원죄가 반응했다.
그 감정이 읽혔는데 아무래도 내 발상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그것보다 언제쯤 왕관 뱉을래?”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어쨌든 이번 언데드 소환은 공을 들인 만큼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했다.
‘이것도 어쩌면 카론에게 배운 영향이 클 수도 있네.’
카론은 좀비 스켈레톤이나 키메라 좀비와 같은 특이한 언데드들을 많이 실험했었다. 지금의 언데드 소환도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법진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모른의 흑마법서로 배운 밴시 소환을 사용했다.
참고로 마법진은 카일러의 그림자 마법을 마법진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되냐?’
미리내의 시신이 들썩였다.
그리고 이내 마법진에서 나온 그림자들이 미리내를 삼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카론과 연관된 에피소드도 선수 쳐서 해결해야 한다. 전력 보강은 필수.’
솔직히 미리내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방학 동안 계획도 짜 놓은 상태였다. 미리내는 그야말로 기본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그 기본이 성공하기를 빌고 있었다.
쩌저적!
미리내를 덮었던 그림자에서 마치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실패인가.’
언뜻 들리는 소리는 영 좋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알림이 보였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의 기운이 더해집니다.]
내 마력에서 원죄의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파르륵.
후아아앙―!
로브가 휘날리며 시커멓지만 순수한 기운이 터져 나오며 연구실을 휘몰아쳤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휘몰아치는 원죄의 기운은 밴시 소환 마법은 물론 마법진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직.
우드드드득.
[중급 합성 사령술: 밴시 소환(그림자 마법) 성공]
[쉐도우 밴시(전설) 한 구를 소환했습니다.]
[소환된 유령의 수준이 뛰어납니다. 스탯 보너스가 붙습니다.]
[소환된 유령의 수준이 월등하게 뛰어납니다. 티어(tier)가 오릅니다. 쉐도우 페어리 밴시가 됩니다.]
[소환된 유령의 수준이 초월에 근접합니다. 생전의 자아를 약간 되돌려 받습니다.]
빛을 잃고 사라지는 마법진에서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고고한 자태의 페어리 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전혀 언데드와 같지 않았다.
“미리내.”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검은빛을 뿌리는 쉐도우 밴시, 미리내가 개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