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강화
호화로운 마차 안에는 노을이 녹아내린 듯한 홍차가 달콤한 향을 피워 내고 있었다. 홍차가 담긴 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던 헤이겔은 깜빡이기 시작하는 통신 마 도구를 보았다.
‘루나 펜드래곤.’
발신인이 누군지 확인한 헤이겔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통화를 받았다.
“오랜만이구나, 루나.”
―엉! 오랜만!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활기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헤이겔은 잠시 수화기와 귀 사이에 거리를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부탁했던 걸 알아내서 연락한 건가.”
―응! 지금 네가 말한 곳에 왔는데 흔적이 있긴 있네.
“그래서. 카일러를 죽인 녀석은?”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드리아스 크롬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잠시 헤이겔은 말을 멈췄다.
하지만 루나는 헤이겔의 복잡한 심정도 모른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놀랐지? 놀랐지! 나도 놀랐어! 하하!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까지 터트리며 기뻐하던 루나의 말이 이어졌다.
―헤이겔은 아드리아스 본 적 없지? 난 본 적 있다? 부럽지? 부럽지!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 이야기 좀 해 줄 수 있나?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헤이겔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 듯한 침음성이 들려오고 다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는 친구?
“그래, 고맙다.”
애초에 별다른 대답을 기대도 하지 않았던 헤이겔은 카일러를 죽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드리아스가 카일러를 죽였을까? 지금 보니까 카일러도 꽤 강한데?
루나 펜드래곤의 능력은 영혼을 보는 능력.
선천적인 특성으로 지금의 루나 펜드래곤을 있게 한 신비로운 힘이었다.
그 능력을 통해 카일러의 혼을 볼 수 있는 루나였기에 헤이겔이 부탁을 한 것이기도 했다.
“카일러는 약하지 않아. 고작 아카데미 학생 하나에게 졌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군.”
아드리아스가 언데드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능력을 높게 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아드리아스가 모드라스의 탑 30층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둘이었기에 그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 약속했던 건 근 시일 내로 보내 주지.”
-응. 근데 아드리아스는 어떻게 할 거야?
“크게 아쉬운 건 아니지만 경고는 해 둬야겠군.”
―내가 가지고 놀아도 돼?
“네가?”
의외였지만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루나의 전투력은 때에 따라 달랐지만 가장 강할 때는 오러 마스터가 포함된 기사단 하나를 초토화시킨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안 돼?
“상관없다. 대신 어떻게 했는지 알려 줄 수는 해줄 수 있나?”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의 존재를 알아냈지만 헤이겔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잔챙이를 신경 쓰기에는 죄악이 훨씬 중요했고, 루나가 직접 나선다고 한 이상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아니지. 오히려 문제가 커지려나?’
루나 펜드래곤.
악마라는 이명이 붙은 살렘 예디디아와 비슷한 수준의 현상금이 붙은 그녀는 헤이겔조차 예측이 불가능한 여인이었다.
잔챙이 하나 정리하려다 오히려 더 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알 바 없다.’
루나가 일을 크게 벌려 위험에 빠지는 것도, 그 위험을 헤치고 나오는 것도 전부 그녀의 몫.
집회라는 미명하에 잠시 힘을 합치거나 작은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게 전부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
헤이겔은 이미 식어 버린 차를 들고 천천히 입가를 적셨다.
* * *
[‘마력의 원천’을 제작하셨습니다.]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새 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착실하게 내 능력을 키워 오며 동시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관찰해 왔다.
‘내가 딱히 살피지 않아도 열심히들 하고 있으니까.’
물론 내 기준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름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루시아의 치료제를 만든 후, 나를 위한 비약의 연구를 시작했는데 마침 그 결과물이 나온 참이었다.
[마력의 원천]
[복용 시, 마력과 관련된 재능을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이스터 에그라고 봐도 되는 조합물이었다.
한 번 복용하면 중복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는데, 이것도 다 루시아를 플레이 하며 알아낸 조합법이었다.
‘루시아도 지금쯤 치료가 끝났을 텐데.’
그 전에 이것부터 마셔야지.
나는 방금 만들어 낸 따끈한 ‘마력의 원천’을 마시려다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아이템으로 분류되네?
‘강화가 되나?’
곧바로 확인해 보자 강화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 비약은 한 번밖에 복용하지 못한다.
다시 만들어 마신다고 해도 재능이 생기지 않는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어야지.’
작년부터 모아 둔 돈은 있었다.
어디다 쓸 데도 없어서 모아 뒀지.
문제라면 금을 사는 일이었는데 그것도 에버라스트 상단을 통해서 구하면 금방일 거다.
‘이번 기회에 강화가 얼마나 가능한지도 한 번 실험해 봐야지.’
갈락슈르의 1회 강화 비용은 무려 2,400만 윌.
그러나 ‘마력의 원천’은 고작 15g의 금, 그러니까 150만 윌을 필요로 했다.
물론 150만 윌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갈락슈르의 강화 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상대적으로 싸게 먹히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강의도 모두 끝난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마력의 원천을 품 안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일단 수도, 로들렌.
로들렌에 있는 에버라스트 상단이었다.
* * *
“1kg짜리 금 주괴 3개, 여기 있습니다.”
에버라스트 상단의 지점장이 가져온 금괴를 받았다.
무려 3억 윌이라는 거금을 들였는데 워낙 실감 나지 않는 액수라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저희 상단주님께서 특별히 챙겨 주시라고…….”
금괴 하나가 더 얹어졌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나는 손을 저었다.
“이건 너무 과합니다.”
“저희 상단주님께서 무조건 은인분에게 드려야 한다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저는 드려야 하는 입장인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려 1억 윌을 거저 준다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걸 가릴 처지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선물은 잘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거래할 일이 있으시면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지점장의 배웅을 받고 밖으로 나온 나는 묵직한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열차역을 향해 걸었다.
1kg 금괴가 무려 4개.
총 4억 윌이니 로들렌 변두리의 작은 집 한 채정도는 구입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물론 특허로 달에 5,000만 윌 정도를 버니 큰 부담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걸 곧 강화에 사용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쓰라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피 같은 돈인데.’
지금까지 에이미에게 보낸 돈을 제외하면 전 재산을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에 복귀해 개인 연구실로 들어갔다.
“하아, 시작해 볼까.”
금괴를 살 때는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강화에 사용하려 하자 심장이 쫄깃했다. 나는 금괴 옆에 마력의 원천을 내려놓고 강화 특성을 사용했다.
[‘마력의 원천’을 강화하시겠습니까?]
“어.”
[15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성공!]
“후우.”
마력의 원천 옆으로 +1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어차피 금괴는 모두 쓸 생각으로 구입한 것이기에 멈추지 않고 강화를 시도했다.
[16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성공!]
[17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성공!]
…….
[22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실패!]
“내 돈!”
처음으로 실패가 떴다.
무려 220만 윌의 손실.
근데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거다.
니켈의 경우 2강을 하던 도중에 실패가 떠서 곧바로 멈췄더랬지.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금괴를 다 쓰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을 거다.
[22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실패!]
[22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성공!]
…….
그렇게 최대한 성공이나 실패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며 강화를 시도한 결과, 드디어 마력의 원천을 10강 하는 데 성공했다.
[마력의 원천+10]
[복용 시, 마력과 관련된 재능을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10 보너스―획득하게 되는 재능의 질이 향상됩니다.]
“오오?”
10강을 달성한 김에 마력의 원천을 살펴보자 못 보던 문구가 붙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구를 확인하자 강화의 위험성이 짙게 풍기기 시작했다.
“이거 약간 도박성이 있는데? 중독될 수도?”
이러다 전 재산 날리고 패가망신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1kg의 금괴를 반도 못 썼지만 한 번 강화할 때마다 200만 윌 이상이 사용된다고 생각되자 아찔해졌지만, 그와 반대로 강화된 수치가 늘어나자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돈은 다시 벌면 된다. 시간을 금으로 산다고 생각하자.’
애써 자기 최면을 걸며 강화를 계속했다.
어차피 강화 비용이 낮은 축에 속하는 마력의 원천으로, 강화의 끝이 어딘지 알아보기로 한 이상 달려야만 했다.
성공과 실패,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강화 비용을 보며 나는 기계적으로 강화를 사용했다.
[34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실패!]
어느새 20강을 문턱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1kg 금괴 2개를 소진하고 세 번째 금괴도 거의 다 써 가고 있는 상태였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붙어 줘라.”
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마력의 원천에다 대고 간절히 빌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화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마력의 원천’을 강화하시겠습니까?]
“제발 붙어!”
[34g의 금이 소모됩니다.]
[강화 성공!]
20강.
무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20강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하하하!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이게 바로 인간 승리다, 이 새꺄!”
나는 연구실의 천장을 한 번 치고 내려와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점차 감정이 내려앉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화. 무서운 능력이다. 나를 이렇게 흥분하게 만들 줄이야.’
마른 침이 삼켜졌다.
이건 강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20강이 된 마력의 원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나는 천천히 마력의 원천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마력의 원천+20]
[복용 시, 마력과 관련된 재능을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10 보너스―획득하게 되는 재능의 질이 향상됩니다.]
[+20 보너스―심상치 않은 마력이 감지됩니다.]
[강화 불가능]
“이게 끝?”
그 지랄을 해 가면서 내가 널 20강으로 만들어 줬는데.
설명이 이게 끝이라고?
순간 내려칠 뻔했다.
“아니야, 침착하자. 지금 너무 흥분된 상태야, 후우.”
나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이번 기회에 내 또 다른 약점을 알게 된 기분이라 오히려 좋았다.
내 피 같은 돈이 사라지는 걸 보는 게 내 약점이었다니.
“20강 효과가 평범하지는 않을 거야. 그럼, 그럼.”
무려 3억 윌 가까이 처먹었는데 평범하면 안 되지.
강화는 일단 20강이 끝인 걸 확인했다.
하지만 강화 비용이 가장 낮았던 마력의 원천을 ‘풀강’하는 데 3억 윌 가까이 들었으니 다른 건 내가 가진 돈으로는 평생 동안 벌어도 힘들 수도 있겠다.
‘아니지. 돈을 벌 방법이야 더 있으니까. 벌써부터 포기하지는 말자.’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드디어 마력의 원천을 복용할 차례였다.
강화 특성으로 인해 원래의 계획보다 훨씬 대단한 걸 만들었으니 그 능력이 궁금했다.
“3억 윌. 잘 먹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 돈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마력의 원천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