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01화 (101/415)

101화. 아드리아스의 협상

뮤리엘 항구 도시 근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선상 식당, 바다의 축복.

위치 선정도 특수했지만 음식의 맛과 질도 뛰어나 돈 많은 귀족들이나 상인들만 방문하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따라 손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단 한 테이블에만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미누스 모하임과 식사 약속을 잡았던 아드리아스였다.

하루 동안 식당 전체를 전세 낸 터라 조용한 분위기에서 웨이터만이 가끔 아드리아스에게 다가와 물을 리필해 주며 지나갔다.

‘미누스 모하임. 특이한 가문이지.’

게임 속 설정이 그대로 온 것인지 실제로 그러한 역사를 겪은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유난히 특이한 가문이었다.

다른 귀족가들은 대체로 중세 귀족 가문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미누스가 관리하고 있는 모하임 가문만은 유일하게 마피아 조직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실제로 음지의 사업을 많이 하며 특히 용병 사업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가문이었다.

다른 가문이었으면 영주 직속 기사단을 용병으로 내주거나 하는 짓은 절대 안 하지만 모하임 가문은 그런 게 없었다. 돈만 제대로 맞춰서 준다면 어느 이권 다툼이든 개싸움으로 치고받았고 언제나 금을 목표로 달렸다.

명예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덕분에 재력도 알븐가에 필적했다.

“먼저 와 있었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하얀 정장 차림의 미누스가 자신의 여동생인 그레타와 함께 들어왔다.

아드리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전하. 그레타 아가씨도 오랜만입니다.”

“안녕!”

그레타의 환한 인사에 미누스가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잡고 숙이게 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백작’이야. 똑바로 인사해야지.”

“알았으니까 이거 좀 놓고 얘기해! 하여튼 손부터 나간다니까?”

너무나 현실적인 남매의 모습에 아드리아스가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미누스가 손을 놓자 그레타는 여전히 투덜대면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크롬웰 각하. 소녀, 그레타 모하임이라 하옵니다.”

“그레타.”

미누스가 도끼눈을 뜨고 그레타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자 그녀는 고개를 들며 히죽 웃었다.

“소녀, 천방지축이라 부디 거슬렸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미안해, 크롬웰 공. 내 동생이 보다시피 제정신은 아니라.”

공작을 앞에 두고 하는 대화치고는 격식 없는 분위기라 오히려 괜찮았다. 그레타 덕분에 분위기는 많이 이완된 것 같아 아드리아스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일단은 식사부터 하지.”

때마침 미누스의 도착과 맞춰 음식들이 서빙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아드리아스로서는 간만에 호사였다.

어느 정도 식사를 하던 중, 드디어 미누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최초의 모드라스 탑 정복자께서는 요즘 아카데미 생활이 어떤가?”

“똑같습니다. 관심도 하루 이틀이라.”

정확히 말하면 일관된 무시로 인해 관심이 옅어진 거지만 첫 이틀 동안은 강의를 들으러 나가는 게 고역일 정도로 심각했다.

결국 교장이 직접 나서서 말리고 아드리아스도 계속해서 무시로 대응하자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수도 쪽에서는 여전히 네 이야기로 난리라고. 알고 있어?”

“예, 들려오긴 하더군요.”

천외천 막시민 크로넬.

일인 군단이라 불려도 오히려 과소평가라는 남자였다.

그런 그보다 뛰어난 기록을 가졌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지녔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계획해 둔 진로가 있는지 궁금하네. 우리야 뭐 네가 와 줬으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은근슬쩍 본론을 말하는 미누스를 보자 그가 아무리 막 나가는 성격 같아 보여도 능구렁이 같은 면모가 있음을 파악했다.

아드리아스는 잠시 말을 고르다 식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세한 건 말씀 못 드리는 점 죄송합니다.”

“황제랑 관련된 일?”

훅 들어오는 돌직구에 아드리아스는 잠시 미누스의 눈을 바라봤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던 둘이었지만 이내 아드리아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갑자기 황제 폐하께서 왜 나오실까요.”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네 아버지가 황제에게 뒤통수를 까였다는 건 알고 있지.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텐데.”

너무 대놓고 이야기하는 미누스를 아드리아스가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나른한 표정으로 등을 기댄 채 앉아 아드리아스의 반응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가게도 내 거거든.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새어 나갈 일은 없어. 애초에 그런 용도로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에 만든 식당이니까.”

“모하임 전하께서 저희 가문의 일을 아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나만 아는 게 아니야. 싱클레어 영감 빼고 나머지 공작들은 다 알고 있을걸? 뭐, 애초에 카자프 영감은 황제 쪽 인물이니까 모를 리 없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누스를 보며 아드리아스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속마음을 드러내 보여도 아마 상관은 없을 듯했다.

만약 미누스가 황제에게 일러바치더라도 황제는 세력도 없는 애송이가 재롱을 부린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황제가 자신을 크게 신경 썼다면 뭔가 일이 일어나도 진즉에 일어났을 테니까.

그만큼 최근에 아드리아스가 벌인 행동들은 파격적이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대비는 해 두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온 건데…….’

아드리아스의 안색을 살피던 미누스가 말했다.

“꽤 신중하네.”

“약속과 계약은 신중하게 해야 된다고 배웠습니다.”

“황제 개새끼.”

갑작스러운 욕설에 아드리아스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그레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뭐야, 갑자기!”

“아니, 날 못 믿는 거 같으니까 검증 좀 해 줬지.”

씨익 웃어 보인 미누스가 아드리아스를 보았다.

“뭐, 다른 욕도 해 줄까? 말만 해.”

“아닙니다, 믿겠습니다.”

어차피 말을 해도 상관없겠다 싶었던 차였다.

아드리아스는 나직하게 말했다.

“황제에게 복수를 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꿈을 가진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와 제 가족을 지킬 정도의 세력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한 세력을 상대로 버틸 수는 없으니까.”

미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리고는 한쪽 팔을 식탁에 올리더니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우리는 네가 황제와 척을 진 걸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너에게 제안을 한 나머지 녀석들은 이 사실을 모르지. 네가 황제와 척을 졌다는 걸 다른 세력들이 알게 된다면 이전과 같이 너를 환영할까? 아마 우리만 너를 받아 줄 수 있을 거다.”

“그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말해 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 건 말했듯이 황제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죠.”

“내가 잘못 짚었다는 말이야?”

“아까 말한 저와 제 가족을 지킬 만한 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말한 해야 할 일이 우선입니다. 그 전까지는 어딘가에 소속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혹시 이미 다른 곳과 약속을 잡은 건 아니고?”

“하늘에 맹세코 아닙니다.”

하긴 공작인 자신에게 대놓고 능멸하려는 녀석이 아닌 이상 그렇지는 않을 거다.

미누스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그레타를 향해 물었다.

“넌 정했냐?”

“능력은 인정하는데…… 재미없어 보이네.”

“그러면 이번 일은 없던 거로 하지.”

쿨하게 말한 미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기를 들고 마저 식사를 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에 잠시 멈칫한 아드리아스는 남은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는 두 남매를 따라 본인도 식기를 들었다.

그 모습이 조금 웃겼는지 그레타가 음식을 먹다 웃음을 흘렸다.

“그게 끝이에요?”

그레타의 물음에 잠시 고개를 든 아드리아스는 입가를 닦았다.

“우리는 모하임 공작가예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닐 텐데요?”

“그 전에 두 분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드리아스의 물음에 미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저희 가문이 왜 뒤통수를 맞았는지 알고 계실까요?”

“그건 좀 궁금하네. 왜 그렇게 된 거냐?”

“황제는 지금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숨기기 위해 저희 가문을 내쳤죠.”

“목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일까.

미누스와 그레타의 두 눈에 호기심이 담겼다.

“황제의 목표가 뭐지? 그걸 네가 또 어떻게 안 거고?”

“전하께서는 혹시 죄악이라 불리는 물건들에 대해 아십니까?”

“들어 보지 못했다.”

“총 몇 개인지는 몰라도 그 물건들을 모으면 신들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합니다. 그걸 지금 황제가 모으고 있는 중이죠.”

아드리아스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것처럼 숨겼다.

하지만 설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들의 시대를 연다고? 신화시대를 말하는 건가.”

이미 마법이 존재하고 오러가 존재하는 세상.

실제로 고대 유적에서 신들의 흔적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케인 크롬웰은 그 죄악이라는 물건과 연관되었던 건가?”

“예, 그렇습니다. 황제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저희 가문의 숨통을 움켜쥐고 끝내는 이렇게 만들어 버렸죠.”

“왜 흔적도 없이 지우지 않고 너를 남겨 둔 거지.”

“선대께서 자신이 담당한 죄악을 숨겼습니다. 그 위치는 저도 모르지만 황제도 모르는 모양인지 혹시라도 자식인 제게서 단서가 나올까 봐 놔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위험한 상황이군, 재밌어.”

미누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황제가 노리고 있다는 신들의 시대.

신들의 시대는 말 그대로 신들의 시대였다. 인간에게 좋은 점은 하나도 없을 터.

그러나 황제는 그런 신들마저 자신의 발아래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군.’

아드리아스의 말이 사실인지는 둘째 치고 최근의 황제의 상황을 지켜보면 충분히 있음 직한 일이었다.

이전과 달리 어느 순간부터 권태와 오만에 찌든 황제.

최근에는 그러한 황제의 태도 때문에 타국과의 정세도 위태로웠다.

‘아직까지 선을 넘은 적은 없지만 정말로 황제가 저런 위험한 목표를 세우고 있는 거라면…….’

그때 아드리아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천하가 뒤바뀔 겁니다.”

“무슨 소리지.”

“죄악에만 신경 쓰는 황제의 오만함으로 대륙의 정세부터 시작해서 뭐든 게 변할 겁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이죠. 안주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겁니다. 이미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건 전하께서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블러디 댄을 죽임으로써 북부와의 전쟁이 어찌 흘러갈지 몰랐지만 아드리아스는 멍청하지 않았다.

블러디 댄은 고용된 사람일 뿐, 의뢰자는 아직 멀쩡히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의뢰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마 그 의뢰자는 흑마법 집회나 황제 측 인물.’

아마 늦으나 빠르나 북부와의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되면 큰 흐름은 어쩔 수 없이 이어진다.

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

그 전에 황제가 변수로 사망하거나 집회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속력 있는 강한 세력은 그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야 하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너야말로 오만하다. 지금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 거냐?”

“큰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대륙 어디서든 말이죠. 그리고 전쟁은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미리 준비해 둔 자에게는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거 이제 보니까 아카데미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을 하고 있었네.”

미누스가 이를 드러내며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드리아스는 그가 그런 미소를 짓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만족의 의미였다.

하지만 아드리아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미누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전하.”

“왜?”

“왕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미누스가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굳으며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날 놀리는 건 아니겠지?”

“저도 제 목숨 소중한 건 알고 있습니다.”

아드리아스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죠. 모하임 전하께서 왕이 되는 방법을.”

* * *

식사를 포함한 모든 대화가 끝나고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자리에 남은 미누스와 그레타는 조금 전까지 아드리아스가 했던 충격적인 말들로 인해 그를 제대로 배웅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레타가 먼저 입을 뗐다.

“저 말들이 진짜일까, 오빠?”

그레타가 물어봄에도 미누스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왕이 되겠냐는 발언과 그것을 받치는 아드리아스의 주장들은 미누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작은 징조 하나로 대국을 살피는 눈. 마치 예언자 같군.’

마치 뛰어난 모사가 있었다면 그러할까.

아드리아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쉽사리 넘겨 들을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알고 있던 미래를 토대로 각색을 하여 계획을 말한 아드리아스였기에 미누스가 예언자 같다고 착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미 대륙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사건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파생되어 일이 커지는지 그간의 오랜 게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아드리아스였기에 그의 말은 흡입력이 있었다.

“근데 중요한 걸 쏙 빼놓고 말했어.”

“그렇긴 하지. 결국 우리 가문이 왕가가 될 만한 결정적인 힌트는 없으니까.”

드디어 입을 연 미누스의 말에 그레타가 동조했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미누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두고 보자고. 진짜로 아드리아스의 말대로 되는지.”

미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레타는 조금 전까지 아드리아스가 앉아 있던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재미없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매력이 있었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