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83화 (83/415)

83화. 자선하는 탐욕

자욱한 흙먼지가 통로를 뒤덮었다.

나는 무리한 더블 캐스트로 인해 잠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마 조금만 쉬면 상태는 금세 호전이 될 듯했지만 지금은 안심하기 일렀다.

다행히 본 익스플러전을 사용하기 전에 언데드들을 뒤로 물렀기에 우리 쪽의 피해는 없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명령을 내려 카일러를 공격했다.

콰직!

콰가가각.

예상했던 대로 카일러는 살아 있었다.

흙먼지가 조금 걷히자 어떻게 살아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처참한 모습의 카일러가 간신히 니켈의 공격을 막아 냈다.

“허억. 하아. 크흡.”

피를 토해 낸 카일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나도 알아.”

이미 게임 속에서 겪어 본 카일러의 패턴과 여러 페이즈들.

아마 이제 곧 마지막 페이즈에 진입할 것이다.

꽈드득― 콰득!

그림자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넓게 퍼지지 않고 카일러의 주변만 맴돌았다.

그리고 소극적으로 내 언데드들의 공격을 막기만 하던 그림자가 이내 카일러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카일러의 마지막 페이즈.

그림자 갑주 상태였다.

저 상태가 된 카일러는 직접 육탄전을 벌이는데 포션으로 강해진 육체와 그를 둘러싼 그림자로 인해 꽤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래 봤자 마법사일 뿐.’

체계적으로 싸우는 법을 익힌 게 아닌 그저 육체 능력만 믿고 까부는 녀석에게는 질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있어서는 이 마지막 페이즈가 반가울 정도였다.

“흐으으. 흐아아악!”

물론 저 폭주하는 마나를 보면 전혀 방심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말 그대로 질 자신이 없을 뿐.

카일러는 내 언데드들은 제쳐 두고 오직 일직선으로 나에게 뛰어왔다.

그림자로 전신 갑주를 입어 거대해진 몸과 달리 그 속도는 꽤나 위협적이었다.

쇄애액―!

그림자로 이루어진 손톱이 내 몸을 찢어발길 듯 스쳐 지나갔다.

‘상성이 나쁘다.’

상대를 향한 생각이었다.

내 재능은 전투.

저런 초보적인 움직임에 있어서는 압도적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아무리 육체 능력이 뛰어나도 내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게 아닌 이상 모든 움직임이 읽혔다.

쇄액.

휘익!

후아앙― 후웅!

마치 괴수의 그것과 같은 그림자 손톱이 계속해서 휘둘러졌지만 내 몸에는 닿지 못했다. 그러자 상대는 조급해졌는지 갈수록 격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럴수록 그의 동작은 피하기 쉽게 커질 뿐이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닿지 않는 거냐!”

상대가 말을 한 순간 빈틈이 생겼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검을 깊게 찔러 넣었다.

‘변화하는 검.’

이전 그레이스의 방어막을 뚫었을 때와 같은 일점 집중.

그와 함께 머리가 다시 핑 도는 것을 참아 내며 화염 마법을 융합했다.

푹! 화르륵!

찔러 넣은 검이 엄청난 반발력을 이겨 내며 상대의 그림자를 뚫어 냈다.

동시에 오러로 만들어진 검은 화염이 주변의 그림자를 야금야금 불태워 나갔다.

“커헉.”

카일러가 발버둥 치며 흉기와도 같은 손을 내게 휘둘러 왔지만 그동안 구경만 하고 있던 니켈과 티무르가 그의 양팔을 봉쇄했다.

“죽어라.”

화르르륵!

마나가 텅 빈다는 느낌으로 화염의 출력을 높였다.

그러자 무언가가 익는 냄새와 함께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끄어어어억!”

검은 불꽃에 휩싸인 카일러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그의 뒤로 다가온 루도가 거대한 대검을 힘차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내려찍었다.

꽈앙― 꽈직!

그걸로 끝이었다.

내 앞을 한 뼘 차로 스치고 지나간 루도의 대검 밑에 한 줌의 핏덩이가 되어 버렸다.

아니, 핏덩이가 아니라 잿더미라 해야 하나.

‘다른 캐릭터였으면 혼자서도 못 이기고 마지막 페이즈 때도 고생했을 거야.’

역시 혼자 다 해 먹을 수 있는 네크로맨서가 사기다.

게다가 네크로맨서의 진가는 이런 소규모 접전이 아닌 대규모 전쟁이었으니 말 다 했지.

카일러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언데드들을 역소환했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 페이즈를 너무 빨리 끝내 버려 카일러가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못 하고 끝나 버렸다.

언데드들이 사라지고 카일러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자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검게 타 버린 시체를 뒤지자 드디어 탐욕의 파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혼자서 다 가지고 있었잖아?’

그가 가지고 있던 보석은 무려 4개나 되었다.

나중에라도 뮤리엘에 재방문해 탐욕의 행방을 조사하려던 게 필요 없어졌다.

‘게임 속에서는 집회가 탐욕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지금 보니까 카일러가 탈출하고 집회로 도망쳤던 모양이군.’

하지만 이제는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탐욕의 모든 세트를 모은 나는 마침 니켈에게 맡겨 놓았던 공간 확장 가방을 꺼내 탐욕의 파편들을 모았다.

총 5개의 보석과 하나의 왕관.

보석들의 색은 모두 검붉은 색으로 동일했는데 칙칙하다는 느낌보다 사람을 현혹시킬 듯 영롱했다.

‘이걸 합치게 되면 네임드급 아이템이 되는 건가.’

한 가지 걱정이라면 만들어 놓고 내가 주인으로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인데 어차피 모이게 된 탐욕을 만들지 않는 것도 아까웠다.

‘지금의 나는 어떤 캐릭터한테도 꿇리지 않는다.’

내 자신을 믿고 탐욕을 조립했다.

핏빛의 보석을 왕관에 가져다 대자 마치 자석이 끌린 것처럼 비어 있는 자리에 붙었다.

이내 모든 보석들이 왕관에 붙자 검은빛의 왕관은 기묘한 고동을 흘리기 시작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2장 자선하는 탐욕]

[대기 중의 마나 상시 흡수]

[흑마법 사용 시, 소모 마나+66%, 위력+200%]

[귀금속을 매개체로 한 모든 마법의 성공률+15%]

[마나 저장 기능]

[아이템 소유 시, 저주에 걸립니다. (저주 목록: 탐욕, 무기력, 상처 부패, 기력 저하)]

[내장된 스킬 ‘탐욕의 선율’, ‘자선’]

[스킬 ‘탐욕의 선율’: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귀중품의 힌트를 듣습니다.]

[스킬 ‘자선’: 초월적 감정 상태 ‘탐욕’을 극복합니다.]

언젠가 보았던 나태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스펙이었다.

소유 시, 저주에 걸리는 것도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아무 문제없으니 상관없었다.

‘문제는 내가 과연 주인이 될 수 있냐인데.’

그런 생각이 무색해지게 내 안에 숨어 있는 원죄가 먼저 반응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자선하는 탐욕’을 감지합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2장 자선하는 탐욕’이 ‘순수한 원죄’의 숙주에게 복속됩니다.]

탐욕의 고동이 멈췄다.

그리고 내 몸 안에 숨어 있던 원죄의 가지가 튀어나와 탐욕의 왕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야, 그걸 네가 먹으면 어떡해?”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자선하는 탐욕’을 일시적으로 소유합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성장을 시작합니다.]

갑자기 왕관을 집어삼킨 원죄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니켈의 경우에는 없었던 일인데 아직도 원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죄가 성장함으로써 얻는 힘이었다.

탐욕도 일시적 소유라고 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꼭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 같네.’

원죄가 느끼는 감정이 내게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성장을 마쳤습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자선하는 탐욕’과 연동합니다.]

[기본 성능 강화]

[추가 기술 생성]

저번과 같이 성장은 금방 끝마쳤다.

그리고 늘어난 마나가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그릇의 특성으로 몸 전체가 저장소가 되었는데 그런 몸 전체를 끈적한 기운의 마나가 넘칠 듯 일렁였다.

‘앞으로 마나가 부족할 걱정은 거의 없겠어.’

성장한 원죄의 능력치를 살펴보았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

[마나 회복량 222% 상승―나태, 탐욕]

[마나 감응력 77% 상승―나태, 탐욕]

[6일에 1번 특수기술 사용 가능 (현재 저장된 기술: 나태, 탐욕)]

[마나의 질이 시간이 흐를수록 올라갑니다.]

[마나의 성질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집니다.]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성능이 대체적으로 향상되고 특수 기술로 사용 가능한 탐욕이 추가된 정도였다.

‘나중에 원죄가 다시 뱉어 낸다면 왕관을 쓰고 특수 기술을 사용하면 되겠군.’

왕관 자체에 달린 아이템 스킬 중 ‘자선’은 특수 기술로 인한 감정의 폭주를 막아 주는 장치로 보였다. 만약 내게 근면한 나태가 있었다면 특수 기술인 나태를 사용했을 때도 숨이 막혀 죽을 뻔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 후유증은 별개의 문제니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사라진 거지 후유증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예상치 못한 보상을 얻었네.’

그저 확실하게 정리를 하기 위해 뒤를 쫓았던 건데 이런 보상이 기다릴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보상이라고 하니 이 안쪽에 있는 카일러의 은신처가 생각났다.

게임 속에서는 카일러를 놓치게 되니 탐욕의 파편을 얻는 일이 없었는데, 그 대신에 그의 은신처에서 보스 공략에 대한 보상을 얻게 된다.

‘결국 게임은 게임이니까. 보스를 잡은 보상은 줘야지.’

우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카일러의 시체를 대충 정리했다.

언데드로 소환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바삭하게 타 버린 카일러를 루도가 내려찍는 바람에 써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마법형 언데드를 얻을 기회였는데 조금 아쉽네.

이제 보상을 위해 은신처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알던 거랑은 조금 다른데?’

뭔가가 많았다.

게임 속에서는 딱 플레이어가 가져갈 만한 아이템 몇 개만 있었던 것에 반해 지금은 여러 문서와 책들 그리고 자잘한 연구 도구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문한 시기가 다른 만큼 없던 게 있고, 있던 게 없어진 느낌이었다.

이왕 발견하게 된 거니 은신처를 잘 살펴보던 나는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카일러의 흑마법서?’

* * *

새하얀 눈이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얼어붙은 대지.

그런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대의 검은 마차를 말 형태의 몬스터가 이끌며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여기저기 달려 있는 뼈 장식들이 음침함을 더한 마차 안에는 한참 책을 읽고 있던 헤이겔이 있었다.

‘음?’

북부에 있는 죄악을 찾으러 나온 헤이겔은 갑자기 전해지는 마나의 기운에 읽던 책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는 마차의 창을 열어 눈보라가 치고 있는 밖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거세게 내리는 눈 사이로 희미하게 북부 경계의 산맥이 보였다.

저 너머로 존재하는 건 로들렌 제국.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금 전 느껴진 감각.

그것은 자신이 아카데미에 심어 둔 부하의 죽음을 의미했다.

‘카일러 슈츠만. 그리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었는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였다.

이 바닥에서 생활한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둘이나 죽은 건 이례적이었다.

‘성국이 움직이고 있나? 아니면 우연?’

하필이면 죄악을 찾고 있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라 골치가 아팠다.

특히나 아카데미에 심어 둔 첩자를 잃은 건 큰 손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카일러 녀석이 탐욕과 연관된 물건을 찾았다고 보고했었지.’

생각할수록 일이 꼬인 것만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헤이겔은 마차에 비치된 마법 통신기를 들었다.

잠시 동안 연결음이 들려오고 이내 상대가 통신을 받았다.

―히히! 여보세요!

“루나 펜드래곤.”

헤이겔은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광기 어린 목소리에 대고 말했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