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미르코 아카데미
빠듯한 한 주가 지났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루시아의 치료 약 연구도 조금 손봐 주고, 마법들도 차근차근 익혀 나가기 시작했으며, 주말에는 벤자민을 만나 호산의 검들도 전해 주었다.
루시아의 경우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는 연구라 당장은 해결되는 게 없었고 마법에는 진전이 있었다.
화르륵.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땅 계열 이외의 마법.
불꽃으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허공에 피어났다.
‘아직은 기초 마법 수준이지만 마나 재능 덕분인지 초급까지는 금방 진도가 나가겠군.’
불 계열 마법을 먼저 익힌 것은 지금 내게 있어서 주류가 되는 땅 계열 마법과 상성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마나의 성질 때문인지 화력은 영 시원치 않네.’
마법의 숙련도가 빨리 늘어나는 것과 별개로 흑마법으로 인한 성질의 변형 탓인지 화력이 약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살렘의 마나 파동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었지만 과연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화력이 조금 낮더라도 내가 다른 계열의 원소 마법을 익히려고 했던 이유.
스릉.
나는 갈락슈르를 뽑아 들고 마나를 주입했다.
검은색의 마나가 순식간에 검을 휘감으며 번뜩였다.
‘여기서 마나를 배열하고 술식을 입력하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꾹 참고 계산을 마치자 그저 검기만 했던 갈락슈르의 검신이 검은 불꽃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법과 검의 융합.’
사실 게임에서 몇 번 시도해 보려다 대차게 실패를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어코 성공하고 말았다.
“답은 ‘그릇’이었어.”
만약 ‘듀얼 코어’인 상태였으면 또다시 실패했을 거다.
실제로 내가 게임 속에서 시도해 본 캐릭터들 모두 ‘듀얼 코어’로 시도를 해 봤었으나 성공하지 못했었다.
‘검에 사용되는 마나로 마법을 사용한다. 대신 이거는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겠어.’
우선, 요구되는 집중력이 어마 무시했다.
신체 활성화와 검에 두르는 마나만으로 정신이 없는데 거기다 복잡한 마나 배열과 술식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것만 같았다.
‘대신 제대로만 사용할 수 있으면 대박일 텐데.’
개인 수련실에 있는 수련용 인형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깔끔하게 베어 넘겨진 인형으로 검은 불꽃이 옮겨져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공격 한 번에 후속타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릇은 유니크 특성.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마법과 검을 섞어서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거다.
당장 살렘만 해도 무술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으니.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 융합하는 건 오로지 나만의 기술이었다.
이외에도 마법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새로운 마법을 창시할 수 있다는 거다.’
일단은 기초를 쌓고 배울 수 있는 마법은 전부 배워야 했다.
그를 토대로 마법과 관련된 재능을 얻거나 진화시킨 후, 검으로 사용할 만한 마법이나 융합 마법을 내가 창시하면 된다.
‘말은 쉽지.’
생각을 하고 보니 말은 거창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 정도의 수준에 다다를지 까마득했다.
일단 이를 위해서 마법을 열심히 익히는 수밖에 없겠지.
‘그사이에 비약을 만들어 먹으면 재능을 얻을 테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우선은 마법을 배우는 것과 함께 집회에서 가져온 재료로 비약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만들 비약은 무려 ‘재능’을 얻게 해 주는 물건.
그 수많은 재능 중에서도 ‘마력’과 관련된 재능을 부여했다.
이를 위해서 잠깐 동안은 검술 수련을 멈추기로 했다.
데슈른의 검법, 무아검도 진도가 막힌 상태라 당장은 더 수련한다고 성장할 기색은 없었다.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해 줘야지.’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개인 단련실에서 나왔다.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몸에 난 땀을 식혔다.
이제 내일이면 미르코 아카데미와의 교류회가 시작된다.
원래는 없었던 시나리오라 의외이긴 했지만 딱히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하던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 * *
오전 강의가 끝난 비비안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을 안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향하는 곳은 행정동.
미르코 아카데미에서 견학을 오는 학생들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드리아스도 온다고 했지.’
하지만 지금 비비안의 머릿속에는 미르코 아카데미의 대한 안중은 단 1도 없었다.
그저 아드리아스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온통 꽃밭일 뿐.
며칠 전 교장인 데오스가 제안한 교류회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토너먼트에서 활약을 보인 이들을 선발해 교류회를 연다는 말에 그녀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드리아스도 참가하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괜찮겠지?’
열차 역에 도착한 그녀는 잠시 자신의 검을 뽑아 검 면에 반사된 자신의 머리를 손질했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잠깐 모난 곳은 없나 살펴보려던 그녀는 이내 아드리아스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웃을까?’
그녀는 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 보인다고 생각되어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마치 협박을 받고 억지로 웃는 것과 같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도 루시아처럼 귀여웠으면 어땠을까.’
자신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든 그녀는 울상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뚜우― 뚜우.
열차가 역에 진입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비비안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려 노력했다.
푸슉.
열차가 완전히 정차하며 마법으로 움직이는 자동문이 개방됐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비안?”
여전히 검으로 비춰지는 자신을 보며 이런저런 표정을 연습하고 있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아드리아스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아, 아…….”
당황한 비비안이 입을 벌린 채 더듬거리자 아드리아스가 먼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예.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열차 타시는 거죠?”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열차에 올라탔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은 어느새 얌전히 검집에 들어간 상태였다.
“비비안도 교류회에 참석하시는 건가요?”
“응.”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요.”
“아드리아스.”
“예.”
갑자기 아드리아스의 이름을 부른 비비안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
“예? 예.”
아드리아스는 갑작스러운 비비안의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항상 무뚝뚝한 표정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이었던 그녀가 미소를 짓자 그 파괴력이 남달랐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러가고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아드리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준우승 축하해요. 미리 찾아가서 축하해 주지 못해 미안하네요.”
“아니야. 괜찮아. 아드리아스는 아팠으니까.”
이미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였던 아드리아스는 비비안의 말에 묘하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창밖을 보는 비비안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오전 강의 끝나고 바로 오신 건가요?”
“응.”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니. 아직.”
아드리아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걸음을 옮겼던 비비안이었다.
마침 아드리아스도 오랜만에 알븐 스트리트에서 배를 채울 생각이었기에 바로 열차를 탔던 참이었다.
“그럼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축하 기념으로 제가 밥이라도 사 드릴게요.”
“점심?”
두 눈이 동그래진 비비안이 되묻자 아드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혹시 배가 안 고프신가요?”
“아니. 엄청 고파. 많이 고파.”
다급하게 말하는 비비안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아드리아스는 그 반응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일단 알븐 스트리트에서 밥부터 먹고 행정동에 가요.”
“응.”
행정동보다 알븐 스트리트가 더 가까웠기에 그들은 금방 열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열차에서 내리니 오전 강의를 끝내자마자 출발했기 때문인지 한산한 거리가 보였다.
아드리아스는 슬쩍 비비안의 눈치를 보며 어느 식당으로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제는 꽤 돈이 많다고 자부해도 될 만큼의 수입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습관이 된 탓인지 자잘한 일에 돈 쓰는 것을 언제나 주저하게 되는 그였다.
‘그래도 비비안인데, 그동안 고마웠던 것도 제대로 보답을 못 했었으니 밥 정도는 비싼 걸로 사 줘야겠지.’
아드리아스는 큰마음을 먹고 비비안에게 말했다.
“‘알폰소의 별’이라는 식당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거기로 가죠. 혹시 가 보신 적 있나요?”
“아니. 없어. 난 어디든 좋아.”
둘은 이내 알븐 스트리트 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인 알폰소의 별로 향했다.
식당은 외형부터가 화려했는데, 마치 고급스러운 개인 저택에 온 듯 드넓은 정원과 건물 뒤로는 자그마한 연못까지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엄청난 스케일에 잠시 돈을 계산해 본 아드리아스는 애써 괜찮다고 되뇌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예쁘다.”
비비안은 그저 아드리아스와 단둘이서 함께 걷고, 함께 식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기에 그저 천진하게 식당의 풍경을 구경했다.
식당 건물 앞에 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왔다.
“예약을 하셨을까요?”
“안 했습니다.”
“두 분이신가요?”
“예.”
“그럼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분수대와 소규모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갈수록 비싸질 것 같은 모습에 머릿속으로 얼마나 나올지 가늠하고 있을 때쯤 식당 안에 선객들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아드리아스 학생!”
그저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직원을 따라가려던 때에 누군가가 아드리아스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부른 이를 천천히 확인해 보자 그는 다름 아닌 데오스의 직속의 아카데미 직원인 모건이었다.
그는 10명가량 되어 보이는 이들과 함께 자리해 있었는데 아드리아스는 그들이 누군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미르코 아카데미.’
먼저 도착해서 밥을 먹고 있었나 보다.
아드리아스는 아는 척을 해 온 모건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대로 지나치려 했지만 모건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아드리아스 학생뿐만 아니라 비비안 학생도 오셨군요! 두 분 다 어차피 교류회에 참가하실 분들인데 미리 미르코 아카데미 학생들과 인사 좀 나누시죠. 아! 차라리 합석을 해서 같이 식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드리아스도 내심 궁금하기는 했다.
미르코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케슈른 비올가.
그가 저 틈에 있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비비안에게 답례로 밥을 사 주는 자리.’
어차피 곧 있으면 행정동에서 통성명을 나누게 될 사이인데 굳이 저 틈에 끼어야 할까.
그리고 합석을 하게 되면 비비안에게 밥을 사 준다는 의미도 퇴색된다.
비비안의 반응을 살펴보자 목석과 같은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거절을 하고 물러서려는 아드리아스였다.
“죄송하지만…….”
“잠깐!”
그때 미르코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보이는 자가 한 명 일어나더니 뒤뚱뒤뚱 걸어오기 시작했다.
‘뒤뚱뒤뚱?’
아드리아스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그 뚱뚱한 인물은 기어코 비비안의 앞까지 다가와 말했다.
그는 온몸에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기에 조명에 반사되는 빛이 눈부실 정도로 거슬렸다.
“마음에 드는군. 그대도 이곳의 학생인가?”
오만한 말투로 비비안에게 말을 거는 그 인물을 아드리아스는 기억해 냈다.
미르코 아카데미의 플레이어블, 케슈른을 플레이 할 때 항상 걸림돌이 되었던 캐릭터.
‘미르코 아카데미가 있는 메이른 왕국의 3왕자, 그레이스 메이른.’
그레이스 왕자를 보는 아드리아스의 감정이 차갑게 식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