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아드리아스의 조언
단 한 수에 자신의 검법이 파훼된 크리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자신의 대련용 검을 보았다.
그리고 뒤에 있던 세레나와 참관을 하던 아이비도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들로서는 아마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도 그럴 게, 유노르 검법은 제국 5대 검법으로 명성이 드높은 검이었다.
그런 검법을 단 한 수에 파훼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지.
“크리스 유노르.”
나는 정신을 못 차리는 상대의 이름을 힘 있게 불렀다.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어. 내가 말한 대련은 분명 ‘2 대 1’이라고 했을 텐데. 어서 새로운 검을 들어라.”
그러나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자 결국 나는 그의 역린을 건드렸다.
“언제까지 제자리에 있을 거지. 겨우 이 정도 일로 충격을 받다니 유노르라는 이름이 아깝군.”
“네가 뭔데 감히!”
역시 바로 정신을 차리네.
아니, 정신을 차린 게 아니라 돌아 버린 건가?
어쨌든 광분한 모습의 크리스는 다시금 새로운 대련용 검을 가지고 왔다.
‘그래. 그래야지.’
아직 그에게 필요한 조언도 못 한 상태.
그와의 대련이 이어져야 했다.
“세레나. 너는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거기서 날 놀리는 거냐.”
내가 세레나까지 언급하자 가만히 있던 그녀는 움찔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차분히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도 크리스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특별 수업이다.’
그들의 잠재력, 성장력, 재능 등을 모두 알고 있는 나다.
나보다 알맞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이도 드물 터.
나는 검을 추켜들며 말했다.
“덤벼라.”
크리스와 세레나가 내게 달려왔다.
채재쟁!
깡! 콰득!
후우―웅.
검과 검이 어우러졌다.
확실히 세레나와 크리스는 강했다.
마법과 언데드들의 도움 없이 검만으로 싸우는 건 조금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은 나한테 안 되지.’
단순히 수련에 들인 시간만으로는 재능과 밀도 앞에 아무 의미 없었다.
물론 세레나와 크리스도 재능으로 따지면 절대 꿇리지 않았지만 아직 개화하지 못한 상태.
‘방향만 잡아 준다면 금방 성장할 거다.’
쾅!
다시 한 번 검이 부딪히고, 도저히 검끼리 부딪혔다고 보기 힘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검을 맞댄 상대는 세레나.
이 녀석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지.
“힘이 너무 들어갔어.”
나는 그 말과 함께 자연스레 검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세레나는 밀어붙이던 그대로 넘어질 듯 앞으로 넘어왔다.
그런 그녀를 가차 없이 걷어차고 이어서 들어오는 크리스의 검을 피해 냈다.
“이도 저도 아닌 검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유노르의 검은 고작 그 정도냐?”
“이 개새끼가!”
광분한 크리스가 다시 한 번 쾌검을 휘둘렀으나 어딘지 모르게 검이 무거웠다.
본래 유노르 가문의 검법은 저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스를 뛰어넘지 못해 한계를 느낀 크리스가 임의대로 검을 고쳐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보여 줘야겠네.’
변화하는 검.
그중에서도 호산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쾌검을 떠올렸다.
그때만큼 무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속도는 나올 터.
위이잉.
창!
마나를 머금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듯 검이 튀어 나갔다.
유노르 검법과 같은 쾌검이지만 내 검은 말 그대로 극쾌에 다다른 검.
퍼억!
“컥…….”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검이 반응조차 못 한 크리스의 복부를 가격했다.
아마 크리스가 마나로 신체를 활성화하고 있지 않았으면 내장이 진탕 됐을 거다.
“끄으윽.”
크리스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그를 그대로 걷어차 넘어트렸다.
“크헉.”
“크리스. 이 되다 만 놈아. 그까짓 실력으로 벌써부터 쾌검에 쓸데없는 잡념을 집어넣으니까 그런 이도 저도 아닌 검이 되는 거야. 알아?”
그때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노린 세레나가 대검을 휘둘러 왔다.
하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고 그녀의 검을 빗겨 막으며 마나를 돌렸다.
이번에 사용하는 ‘변화하는 검’은 중검.
쿠웅!
역시나 힘에서 밀린 세레나가 조금씩 뒤로 밀리더니 결국 중심을 잃었다.
중심을 잃은 상대에게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퍼억!
주먹을 맞고 날아간 세레나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힘에 치우친 검을 쓰는지 이해가 안 가네. 너 바보냐? 조금만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없애는 형식으로 발전을 하는데, 넌 왜 굳이 유리하지도 않은 힘으로 상대하려고 하냐.”
“……알지도 못하면서.”
세레나가 중얼거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알지도 못하긴, 내가 너희 부모님보다 네 검에 대해선 잘 알 거다.
세레나는 그녀의 위로 무려 3명의 오빠가 있었다.
그런 남자들 사이에서 자란 세레나는 육체적인 한계에 대한 콤플렉스가 존재했다.
‘그래서 저렇게 무리하면서 힘이 실린 검을 사용하려 하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멍청한 짓이었다.
왜 굳이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걸으려 하는 건가.
물론 또래에서는 크리스나 루이스를 제외하고는 못 이기는 녀석이 없었겠지.
저런 결점을 안고 가면서도 재능이 커버해 줬으니까.
하지만 이후로는 아니다.
계속해서 저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하면 결국 그 재능도 퇴색되고 말 것이다.
‘실제로 루이스나 크리스를 플레이 하면서 세레나의 방향도 같이 잡아 주지 않으면 10번 중 3번은 엑스트라 캐릭터한테 실력이 따라잡히기도 하지.’
물론 웬만해서는 혼자서 깨우치고 탈피를 한다.
그러나 이왕 내가 엮이게 됐으니 조금쯤은 윤활유 역할을 해 줘도 되겠지.
‘세레나의 강점은 유연성을 이용한 부드러운 연계기와 상대의 허점을 파악하는 직감. 그러니 힘을 빼고 속도에 집중해야 하지.’
단련의 방향도 잡아 주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일단 친해지고 난 뒤에 생각해 보자.
일단은 조금 패 놓고 봐야지.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달려갔다.
* * *
한참의 드잡이질이 끝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레나와 크리스를 향해 말했다.
“야, 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하아, 후우……뜬금없이 무슨 소리죠.”
세레나가 여전히 적대감 넘치는 목소리로 반문했지만 반문은 허용하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진 주제에 자존심은.
“너넨 왜 검을 든 거냐?”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던 탓일까.
세레나와 크리스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난 말이야. 마법사지만 그렇다고 검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아. 이건 자랑이지만 내 실력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잖아. 근데 그런 나도 가끔씩 의문이 들 때가 있거든. 나는 왜 검을 들었는가. 내게 있어서 검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대련용 검을 왼손에 옮겨 들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갈락슈르를 뽑아 들었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검신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에 반짝였다.
“내가 맨 처음 검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목숨’이야. 말 그대로 살기 위해 검을 들었지. 조금 우스운 얘기지만 마법사라는 놈이 마법 실력은 꽝이거든. 그래서 살고 싶어서 들었던 게 검이고, 그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살아 있어.”
갈락슈르를 집어넣고 다시 물었다.
“너네가 검을 들게 된 계기는 뭐지? 단순히 가문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은? 너네들한테 검이란 건 뭐야?”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어. 엄청 중요해.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만약 그런 거라면 그건 검사가 아니라 몬스터가 검을 들고 있는 거랑 다름없어.”
나는 냉정한 눈초리로 둘을 가리켰다.
“너넨 지금 마법사인 나한테 검으로 진 거야. 난 오늘 단 한 번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어. 오직 검으로만 상대했지.”
“…….”
“부끄럽다면 자존심을 버려라. 어떻게 해야 나를 이길 수 있는지 고민해. 물론 크리스, 너는 반대로 생각 좀 비워 내고. 그게 유노르 가문의 검법이라고? 돌아가신 초대 유노르 각하께서 뒷목을 잡으시겠다.”
“이…… 후우.”
순간 욕을 하려던 것 같았지만 지도 지가 쪽팔린 줄은 아나 보네.
정말 말 그대로 마법사한테 검으로 진 셈이니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답을 지금 당장 찾지 말고 몇 날 며칠 고민해라.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았으면 그를 토대로 방향을 잡아. 검이란 건 너희의 인생, 그 자체 아니야? 만약 그 답을 나한테 들려줄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다시 도전해. 언제든지 받아 줄게. 오늘 대련은 끝이다.”
이 정도만 말해도 지들이 알아서 해결해 나갈 거다.
내가 별말은 안 한 것 같지만 핵심은 다 말했거든.
‘세레나는 자존심 그만 세우고 자신의 장점을 찾아 발전시켜야 하고, 크리스는 생각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와 유노르 검법을 다시 익혀야 한다.’
물론 이래도 진전이 없다면 내가 다시 나서면 된다.
까짓것 몇 번이든 조언해 주지. 어차피 녀석들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데.
나는 대련용 검을 반납하고 아이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딱히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조교님을 호출했네요.”
“아니야. 괜찮아.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도 했고. 그나저나 내 생각보다 좀 치네? 원래 그렇게 검을 잘 썼던 거야?”
“전 천재라서요. 아, 아니다. 영재구나. 어쨌든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재수 없는 새끼. 그래. 꺼져라.”
나는 아이비의 욕에도 그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연히 플레이어블들하고 얽혔는데 부디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 * *
아이비는 떠나가는 아드리아스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저딴 새끼가 다 있냐.’
볼로릭 영지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자신의 예상에서 빗나갔다.
‘평범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설마하니 저 정도의 실력을 지녔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저 정도면 검 실력이면 못해도 올해 토너먼트 준우승자인 비비안 벨로칸과 비슷할 정도.
소문으로는 우승자인 디에네를 이길 뻔했다기에 과장이 섞인 이야기인 줄 알았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정말 특이해. 그 성격이나 생각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솔직히 조금 전에 그가 신입생들에게 했던 말은 아이비에게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후 정체한 자신의 실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검사들이 그럴 것이다.
그저 할 줄 아는 게 검을 휘두르는 것일 뿐이니 검을 사용하고 있을 뿐, 그에 대한 고민은 덜 하는 편이었다.
사람이 숨을 쉬는데 왜 나는 숨을 쉬나 생각해 보지는 않으니 말이다.
‘재밌네.’
아드리아스 크롬웰.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그녀조차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묘한 사내였다.
뒤를 돌아보자 병아리들은 아직도 정신 공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그동안 자신들 잘난 맛에 살던 이들이 둘이서 덤벼 놓고도 마법사를, 그것도 검을 사용하는 상대를 이기지 못했으니.
‘게다가 아드리아스는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지.’
듣기로 토너먼트에서는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마법을 사용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도 둘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거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처음 져 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아이비가 입을 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크리스와 세레나가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마치 무언가 깨달은 게 있다는 듯.
‘어쩌면 나는, 포기하고 있던 게 아닐까.’
세레나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아드리아스의 말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자존심.
자신은 그런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런 단어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장점을 취하지 않고 있던 이유, 그건 바로…….
‘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던 거였어.’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오빠들에게 꿇리지 않기 위해 힘에 치중한 검술을 주로 사용했지만 그에 대한 강박은 모나스에 온 후 루이스라는 재능 덩어리를 보고 더 심해졌다.
이제 보니 그건 찌질한 자기 위안이었다.
내가 루이스를 이기지 못하는 건, 나에게 불리한 검술을 사용하기 때문이지 절대 내가 못나서가 아니다.
이런 변명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건가…….’
무의식의 자신에게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나만의 장점을 찾아서 강해져야 한다는 걸.
적어도 저 아드리아스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반드시 강해져서, 반드시 다시 도전한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한테 검으로 진다니 쪽팔려서 못 산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세레나였다.
그런 세레나를 본 크리스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보았다.
“…….”
굳은살로 다져진 자신의 손아귀가 찢어져 있었다.
어렸을 적 이후로, 근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상처가 난 적이 없을 정도로 단단한 손아귀였다.
‘내 검에 잡념이 많다.’
솔직히 마법사 나부랭이가 하는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말을 하는 상대의 태도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고민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검을 들었나. 내게 있어서 검이란 뭐지.’
내게 있어서 검이란.
가문, 명예 명성, 삶, 어쩌면 인생의 모든 것.
‘과연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그 모든 걸 잊고 루이스의 뒤만 쫓았는가.
내 검이 어째서 그 그림자가 되어 뒤따라가고만 있지.
‘아드리아스……는 목숨을 위해서 검을 들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검이 목숨만큼 절박했던 적이 있나.
물론 자신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 방향은?
‘다시 해 본다. 처음부터.’
검을 처음 배웠을 당시에 찢어졌던 손아귀와 마찬가지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한 크리스는 아드리아스가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반드시 재도전 하겠소. 아드리아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