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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75화 (75/415)

75화. 아드리아스의 교육

“이름이 비비안이라고? 성은 뭐지? 귀족인가?”

그레이스의 질문 세례를 받은 비비안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명백한 무시 표현에 그레이스가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리 건방진 태도를 취하느냐. 난 메이른 왕실의 적통이자 3왕자, 그레이스 메이른이다! 감히 나를 무시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소란이 벌어지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다가온 모건과 미르코 아카데미 측 인물이 그레이스를 말렸다.

“그레이스 전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전하. 이곳은 타국인 만큼 부디 언행에 주의를…….”

“닥쳐라! 감히 내게 잔소리를 할 셈이냐?”

호통을 친 그레이스는 제 갈 길을 가려는 비비안과 아드리아스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전하!”

“네놈들이 나를 무시하고도 그냥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여기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면 내 친히 용서해 주고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마.”

비비안의 안색이 점차 얼음장처럼 변해 가고 있을 때, 아드리아스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아드리아스의 행동에 비비안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슬며시 손을 뻗었다.

“비비안. 괜히 제가 이런 곳에 데려와 안 좋은 경험을 하게 했네요.”

“아니야. 이건 아드리아스가 잘못한 게 아니라…….”

아드리아스는 고개를 내젓는 비비안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지어 보이고는 이내 그레이스에게 말했다.

“메이른 왕국의 그레이스 왕자님이라고 하셨나요?”

“넌 또 뭐냐. 너 따위에게는 관심 없다. 설마 그 여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나온 것이냐? 그렇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그레이스. 그레이스 메이른. 여긴 지금 로들렌 아카데미입니다. 미르코 아카데미의 운영 방침이 어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계급의 고하 없이 모두가 평등한 학생입니다. 그 알량한 지위도 이곳에서는 의미가 없단 말입니다.”

아드리아스는 말을 하면서 서서히 기운을 뿜었다.

발산된 마나로 만들어진 기운은 점차 주변의 분위기를 잠식해 들어갔다.

비록 존대를 하고 있지만 점차 커져 가는 기운으로 인해 그의 모습이 사납게 느껴졌다.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야생의 감각,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끈적이는 음습함이었다.

“그레이스 메이른. 이곳에서 당신의 지위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능력만이 전부죠. 자신이 있다면 힘으로 증명하십쇼. 뭣하면 제가 지금 바로 받아 주겠습니다.”

차분히 말을 하는 아드리아스의 경어에는 힘이 있었다.

그와 함께 언제든 상대방을 부숴 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 강렬하고도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아드리아스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마저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크흠. 흠.”

아드리아스가 내뿜은 기운 탓일까.

그레이스는 무안한 헛기침을 뱉어 내며 딴청을 피우더니 이내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손에 쥐인 지팡이는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아드리아스 학생. 불미스러운 일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제가 아니라 비비안이 불쾌했을 겁니다.”

“아, 그, 그렇군요. 비비안 학생 죄송합니다.”

“……괜찮아.”

모건은 아드리아스가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풍긴 탓에 비비안을 잊은 채 사과를 했다.

하지만 비비안의 안색을 살피던 아드리아스는 그녀의 얼굴이 붉었기에 그만큼 화가 났나 보다 싶어 챙겨 주는 중이었다.

‘아드리아스가 나를 위해 나서 줬어.’

물론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꽃밭인 상태였다.

일이 대충 일단락되자 식당의 직원이 식은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저, 손님. 마침 바깥의 연못 근처에 자리가 비는데 그쪽에서 식사하심이 어떻습니까?”

“비비안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만약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기분이 나빠서 다른 식당을 알아봤을 비비안이었지만 지금은 아드리아스로 인해 기분이 좋은 상태.

거기다 그와 단둘만의 식사를 즐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난 좋아. 배고파.”

그렇게 자리를 옮기게 된 아드리아스는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미르코 아카데미 측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가 않은 듯 꿍해 있는 그레이스와 케슈른으로 보이는 푸른 머리의 마법사가 보였다.

사실 상위권 성적의 인원들만 선별했다기에 그레이스가 참가할 줄은 몰랐는데 왕자라는 직위로 교류회에 참석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좋아.’

조금 전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케슈른을 위해서라도 그레이스를 가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교류회 기간은 무려 일주일.

시간은 많으니 그 시간 동안 해결하면 될 듯했다.

‘기를 꺾어서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아무도 모르게 섬뜩한 미소를 품는 아드리아스였다.

* * *

싸늘한 기운이 맴도는 개인 단련실.

그 한가운데에서 마치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누워 있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토들론 테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사학부 졸업반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던 남자였다.

“끄응.”

힘겹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단련실 내부에 뒹굴고 있는 술병들이 몸에 치였다.

단련실 내부에서의 취식은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그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생에 마지막 토너먼트에서, 고작 32강 만에 떨어졌을 때부터 모든 게 끝난 것처럼 굴었던 그였으니.

거대한 덩치와 그 생김새에 맞게 주량도 상당했던 터라 며칠 동안이나 이곳에 틀어박혀 술만 축내고 있던 참이었다.

아카데미의 졸업반들은 따로 개인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면 직접 과제를 선택해 수행하는 성과제였기에 이런 행동이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쿵쿵쿵!

숙취로 인해 아픈 머리를 싸매며 땅을 짚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단련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어떤 새끼야…….”

안 그래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토들론은 이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내 거칠게 문을 연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을 문 앞에서 볼 수 있었다.

“누구냐? 뭔데 단련실 문을 두드리고 지랄이야?”

“토들론 테리. 맞으신가요? 전 마법학부의 안토니오 홀트라고 합니다.”

다짜고짜 자신의 소개를 하는 안토니오를 보며 토들론은 미친놈인가 싶어 침을 한 번 땅에 뱉고는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안토니오의 은근한 목소리가 닫히려는 문틈으로 들려왔다.

“토들론 테리. 분하지 않으신가요? 당신이 고작 32강에서 떨어지다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인데 말이죠.”

“이 새끼가…….”

순간 열이 뻗친 토들론은 다시 문을 연 뒤 그대로 안토니오의 멱살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허공에 매달린 안토니오는 괴로운 기색 없이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입을 놀렸다.

“술 냄새가 나는 걸 보니까 술에 찌들어 사시는 모양이시네요. 그렇게 해서 과연 당신을 이긴 그 여인을 앞지를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만 더 해 봐. 네 모가지가 없어지는 마법을 내가 보여 주지.”

마나까지 발산하며 살기를 드러내는 토들론을 향해 안토니오가 미소 지었다.

그는 매달린 상태에서 자신의 품을 뒤지더니 자그마한 시약병을 꺼냈다.

“선물입니다.”

“뭐?”

토들론은 안토니오가 건넨 시약병을 받고 그를 내팽개쳤다.

시약병은 굉장히 작아 새끼손톱만 한 크기였는데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말씀드렸다시피 마법학부 학생입니다. 당신과 같은 졸업반이죠. 저도 이번 토너먼트 결과가 영 좋지 않아서 토들론 학우와 동질감을 느끼던 참입니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래서 이 포션은 대체 뭔데?”

“포션 제조 교수님이신 카일러 슈츠만 교수님께서 이번에 새로 만드신 포션입니다. 효능은 제가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직접 한 번 경험해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교수가 만든 포션이라고?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그리고 효능을 직접 확인해 보라니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토들론의 말에도 안토니오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 드시든 안 드시든 그건 당신의 몫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포션을 구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교수님의 밑에서 일하는 덕분에 빼 올 수 있었던 거거든요.”

그리고는 몸을 돌리더니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다음에 또 봅시다. 일주일 뒤에 다시 여기로 오지요.”

“미친놈이군.”

별 또라이 같은 놈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토들론은 다시 단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안토니오가 건네준 포션이 손에 쥐어진 채였다.

어차피 요 며칠 망가진 몸.

향상심에 대한 의욕도 떨어진 상황이었다.

‘설마 독약 따위를 줬을 리는 없을 테고.’

게다가 양도 적으니 이 정도 먹어 봤자 간에 기별이나 찰까 싶었다.

아니. 이런저런 핑계는 다 필요 없었다.

어차피 술도 다 떨어졌겠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속는 셈 마셔 보기로 했다.

꿀꺽.

‘음?’

포션의 효능은 곧바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반응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건…….”

신체 활성을 안 했음에도 육체에 강대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전에 있던 마나에도 마치 펌핑이 된 듯 늘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마나를 사용해 정권을 질러 보았다.

그러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동안 보였던 것 이상의 힘이 느껴졌다.

토들론은 그 뒤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단련실에서 날뛰었다.

이 힘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발악을 하던 그는 이내 10분 정도가 지나자 사라져 가는 힘에 아쉬움을 느끼며 멈춰 섰다.

‘미쳤다. 어떻게 이딴 포션이 다 있지?’

그는 포션을 허무하게 낭비한 것만 같아 후회를 느꼈다.

하지만 안토니오가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온다던 말을 기억해 낸 그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포션만 다시 손에 들어온다면……!”

비비안 벨로칸.

그녀를 이길 수도 있을 거다.

감히 졸업반 수석인 자신을 무참히 꺾어 버린 듣도 보도 못한 여검사.

그녀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가 모두 무너져 버렸다.

이제는 그 복수를 해 줄 시간이었다.

‘기다려라. 비비안 벨로칸!’

* * *

식사를 마치고 행정동에 도착했다.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비비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밥을 먹고 가자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기로 한 본관 앞의 공터에는 이미 참석하기로 한 로들렌 아카데미 학생들이 전부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지난 토너먼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이들과 뜻밖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루이스도 올 줄은 몰랐는데.’

예상치 못한 루이스의 등장이었지만 신입생 수석, 그것도 유례없는 성적으로 입학을 하게 된 슈퍼 루키인 만큼 교장이 신경을 써 준 모양이었다.

명성으로 따지면 루시아도 제의가 갔을 법했는데 이 자리에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거절한 듯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옆에 있던 비비안도 반응했다.

“토너먼트 우승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이제 와서 무슨 축하야. 그리고…….”

갑자기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뜸을 들인 디에네는 이내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라고 그만 불러. 어렸을 때는 편하게 불렀으면서.”

갑자기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어찌 됐든 본인이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니 그렇게 해 줘야지.

“예. 디에네.”

“그 경어도 좀! 아유, 됐다. 그건 너 알아서 해.”

그 반응을 보고 있자 바하트 알븐이 떠올랐다.

마치 내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행동.

누가 그 딸 아니랄까 봐 반응이 너무 비슷했다.

‘뭐지? 나한테 뭐 잘못한 게 있나?’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나저나 디에네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비비안이 묘한 눈초리로 나와 디에네를 바라본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잠시 감상하고 있자 이번에는 저 멀리서 루이스가 다가온다.

‘루이스도 한 번 살펴 주는 게 좋기는 한데.’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아직도 루이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네.

그렇게 점차 그가 가까워지던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러분! 학생 여러분!”

저 멀리서 모건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회장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 같이 가시죠!”

모건이 저기서 온다는 건 미르코 아카데미 측 학생들은 이미 자리해 있다는 건가.

다른 학생들의 생각도 나와 같았는지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마치 전운(戰雲)과 비슷했다.

‘타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기가 눌리고 싶지는 않겠지.’

젊은이들이 으레 그렇듯 기 싸움이 벌어질 게 다분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그들과 싸우기 위한 게 아닌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케슈른과 친분을 쌓기 위해 참가한 거라 임하는 자세가 달랐다.

‘케슈른 비올가. 보조 마법과 마법진의 천재.’

그와 친해져서 나쁠 건 전혀 없지.

모건을 따라 건물에 들어서자 모건이 했던 말대로 마치 연회장처럼 꾸며진 내부가 보였다.

예상과는 달리 미르코 아카데미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미르코 아카데미 측도 금방 도착할 겁니다. 부디 서로 교류하며 친목을 다졌으면 좋겠네요.”

모건은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미르코 아카데미 측 인원들이 입장했다.

그와 더불어 전부터 존재했던 긴장감이 극에 치달았다.

“흠.”

미르코의 학생들도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 긴장된 기색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이건 좋지 않은데.

난 언제 또 보게 될지 모르는 케슈른과 친해지기 위해 참석한 거란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나대 볼까.’

앞장서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나서야지.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분위기를 완만하게 풀기 위해 한마디 하려는 순간.

“네 이놈! 아까는 잘도 지껄였겠다! 듣고 보니 네 녀석이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룬다던 그 반푼이라고 들었다! 마법 실력도 고작 초급 수준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그깟 놈이 감히 이 그레이스 메이른 님에게 겁도 없이 까불다니!”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분위기 환기에는 매타작만 한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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