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변해 가는 시선
아카데미 내의 기사학부 부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중 외부인들의 비율은 초대받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었기에 많지는 않았고 대부분이 재학생들이었다.
오늘은 드디어 토너먼트의 마지막 날. 그것도 결승만이 남은 특별한 날이었다.
토너먼트의 승자에게는 주최 측인 아카데미에서 1년 장학금 혜택과 특별한 부상을 준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 토너먼트의 우승으로 노리는 것은 금전적인 것이 아닌 오로지 명성이었다.
특히나 대륙에서도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구경하는 토너먼트인 이상 이름을 알릴 다시없을 기회였다.
처음에는 드문드문했던 귀빈석도 오늘만큼은 만석.
얼굴만 봐도 알 만한 유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자리 겨우 잡았네. 어때 그쪽은?”
“우리도 잡았어!”
루이스 일행도 대망의 결승을 구경하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거의 전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대경기장은 그들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덕분에 모나스 아카데미 학생들도 지원자에 한해 한군데에 모여 관람하는 것이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나스의 학생이었던 루이스는 향수를 느끼며 그 방향을 바라보다 뜻밖의 인물을 발견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얼마 전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 붕대를 온몸에 감은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모나스의 학생 중 하나와 아는 척을 하며 자리해 있었다.
아드리아스가 보여 준 32강전의 경기는 그야말로 엄청난 소문과 유명세를 만들어 냈다.
마법사가 보여 주었다고는 믿기지가 않는 검술, 그와 더불어 극소수의 사람에게서만 발견된다는 이중 마나 저장소로 사용한 듯한 기사의 마나까지.
그쯤만 해도 놀라운데 무려 디에네 알븐을 이길 뻔했다.
‘지금의 내가 디에네 선배를 이길 수 있을까?’
루이스는 그 물음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날 보였던 디에네의 신위는 그야말로 마법사로서 보일 수 있는 전투의 끝이었다.
물론 그녀보다 강한 마법사는 얼마든지 존재하지만 적어도 아카데미 재학생 중에서는, 아니 현재까지 졸업한 이들 중에서도 디에네와 같은 나이대에 저만한 무력을 보인 이는 없을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그런 디에네를 아드리아스는 이길 뻔했다.
물론 경기를 보지 못한 이들은 이길 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말했지만 그날 직접 관람했던 이들은 그리 단정 짓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온몸 가득 상처를 안고 등장한 아드리아스는 그 부상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전세를 바꿔 승리를 쟁취해 냈을 거다.
어쨌든 그 경기 덕분에 경기장 안팎으로 난리가 난 것은 물론, 나머지 경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경기력 차이에 다른 경기들은 애들 장난 같았지.’
예외가 있다면 디에네의 맞은편에 선 또 다른 결승 진출자의 경기는 볼 만했다.
아드리아스를 제외하고 또 한 번의 이변을 만들어 낸 참가자.
루이스는 저 멀리 경기장 내부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유력한 우승 후보인 토들론과 다잠 그리고 아론까지 홀로 잡아낸 기사학부 학생.
‘비비안 벨로칸.’
그동안 꽤 강하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우승 후보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들었었다.
그러나 이번 토너먼트에서 이례적인 승리들을 가져오며 결국 결승에까지 올라서게 된 선배였다.
하지만 루이스의 관심은 결국 모나스의 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드리아스에게 도달했다.
아무리 비비안이 대단한 경기를 펼쳤다고 하더라도 그에 비할 바는 못됐으니까.
‘싸워 보고 싶다.’
강렬한 투지를 불태우는 루이스였다.
* * *
“저 녀석이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까.”
조금은 나른한 인상의 남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금빛 올백 머리와 금빛 턱수염이 반짝이는 남자는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이자 금빛의 미누스라 불리는 미누스 모하임 공작이었다.
모하임 공작가는 대대로 마법 명문가로 소문이 났던 가문이지만 현 가주인 미누스는 특이하게도 주먹을 다루는 이였다.
하얀 정장을 입고 손가락에 수많은 금빛 반지들이 끼워져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공작가의 가주라기보다 어느 조직의 젊은 보스와 같았다.
“그래. 저 녀석이지. 그나저나 저번에 있던 논공행상에도 오지 않았던 자네가 이런 행사에 방문할 줄은 몰랐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바하트가 말하자 미누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것처럼 보였다.
“영감님의 따님께서 나온 결승전인데 당연히 축하 인사를 드리러 와야죠. 왜요. 그냥 갈까요?”
건들거리며 대답하는 미누스의 말에 바하트는 혀를 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생김새나 행동거지가 여전히 나아지질 않은 게 마지막으로 본 1년 전과 똑같았다.
“말본새는 여전하구나. 아직도 덜 맞은 게냐?”
“예,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금 경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관전이나 하죠.”
미누스의 말대로 경기가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바하트가 결국 고개를 돌리자 그 모습들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고 있던 싱클레어 클로슈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도 미누스와 같이 결승만 보러 온 참이었다.
“하하하! 매번 둘의 반응이 똑같은 게 웃기는군. 전생에 부부라도 된 건가? 으하하하!”
“제발 봐 주십쇼. 그런 징그러운 소리 듣기 싫습니다.”
“조용!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되려 하지 않은가.”
바하트의 호통에 결국 싱클레어와 미누스의 잡담이 끝났다.
곧이어 사회자의 진행이 시작되고 출전자를 각각 소개했다.
때마침 디에네의 소개를 하고 있을 때, 미누스가 물었다.
“근데 영감님. 정말 저 음침해 보이는 녀석이 따님을 이길 뻔했다는 겁니까?”
“나도 궁금하군. 내가 듣기로는 검으로 경기장 바닥을 뒤집어 놓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양쪽에서 들어오는 질문에 바하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몰라, 이 녀석들아!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고 지금은 조용히 경기나 지켜봐라! 감히 우리 디에네가 출전한 상태인데 누구한테 관심을 가지는 게야!”
* * *
그동안 긴장 한번 없이 경기에 임했었던 디에네였지만 이번만큼은 떨려 오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긴장할 거 없어.’
지난 경기들처럼만 냉정하게 대처한다면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이번 상대인 비비안 벨로칸은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때에 비하면…….’
이미 아드리아스와의 경기를 겪은 이상 그보다 더한 상대는 없을 거라 생각하는 디에네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디에네는 문득 고개를 들어 상대편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비비안 벨로칸이 몸을 관중석으로 돌린 상태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굴 보느라 경기장에 집중하지 않나 살펴보자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으로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에네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를 느꼈다.
그리고는 이내 소름이 돋는다는 몸짓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아드리아스를 왜 걱정해!’
그러나 막상 그를 보게 되자 다시 한 번 우승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비록 아버지는 몸 관리를 못한 것도 실력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로서는 100% 납득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를 대신해서 올라왔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기에 더욱 승리에 목말랐다.
아드리아스를 자신이 제치고 올라온 이상 그에게 보답할 방법은 오로지 우승뿐.
그러나 그런 생각은 디에네 뿐만이 아니었다.
비비안은 관중석에 앉아 자신과 눈을 마주친 아드리아스를 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디에네를 이기겠다고.
자신이 그를 대신해서 승리를 되찾아 오겠다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우승을 통해 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아무 열정도 없이 설렁설렁 경기에 참가했다가 도중에 대충 기권을 했을 거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아드리아스를 통해 일깨워진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널리 알려 그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라서지 못했을 거라고 이미 우승 소감까지 생각하고 있는 비비안이었다.
‘아드리아스. 기대려. 내가 꼭 우승 트로피를 안겨 줄게.’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 이제는 자주 들어 익숙해진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로들렌 아카데미 제58회 춘계 토너먼트의 결승을 시작하겠습니다!”
결승에 선 두 여인의 눈빛이 빛났다.
* * *
디에네와의 시합 도중에 기절을 하고 깨어난 건 몇 시간 만이었다.
저번처럼 며칠씩 혼절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치료를 받았다.
상처의 개수에 비해 심각한 부상은 없었지만 며칠 동안 입원을 하며 쉬었다.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고 그동안 너무 급하게 달려왔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재생 포션하고 회복 포션을 가장 먼저 만든 게 신의 한 수였네.’
사실 호산과의 전투 직후 기절을 하고 깨어났다가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건지 몰라 급하게 아카데미에 복귀했다.
물론 호산의 시체와 검들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복귀하는 도중에 포션으로 온몸을 샤워하며 포션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들이마셨는데 덕분에 아카데미에 도작할 때쯤에는 지혈이 되고 상처가 조금 아물었다.
‘조금 더 성능이 좋았으면 좋았을 텐데.’
요즘 들어 더욱 느껴지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라 한 번 죽으면 정말 끝이다.
포션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해 더욱 좋은 포션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일은 목숨을 여분으로 제작하는 것과 같기에 다른 건 제쳐 두고라도 우선 집회에서 얻은 재료로 포션을 제작할 생각을 했다.
내가 집회로부터 챙겨 온 푸른 카난줄라 꽃과 요빈 뿌리는 무려 모든 부상과 질병을 회복시킨다는 엘릭서에 들어가는 재료였다. 물론 효과에 대한 내용은 과장이 섞인 이야기지만 그만큼이나 대단한 물약이라는 건 확실했다.
확인해 본 바로는 이 세상에 엘릭서의 조합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올 리가 없지. 푸른 카난줄라 꽃이나 요빈 뿌리가 흔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이 두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드니까.’
아쉽게도 토너먼트에서는 떨어졌지만 시합 도중 디에네가 성장한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녀의 성장은 게임에서도 겪어 보지 못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속도라 괜히 뿌듯해졌다.
그렇게 시합을 끝내고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며 치료소에 입원해 있다가 결승이 열리는 오늘 퇴원을 했다.
아무리 휴식이 필요해도 결승은 못 참지.
‘미래가 변했어.’
결승전 진출자 두 명을 생각하자 뒤바뀐 미래에 아리송해졌다.
디에네야 원래부터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지만 그 상대가 비비안이라니.
아무래도 나로 인한 영향이 있었나 보다.
대경기장에 도착해 자리를 잡자 수많은 관심이 내게 쏠리는 걸 느꼈다.
다만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탓인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형님!”
모나스에서 관람을 나온 모양인지 조금은 어려 보이는 학생들이 내 옆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중에 벤자민이 있었다.
녀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소식 들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어. 멀쩡해.”
“다행입니다. 정말.”
벤자민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나는 마침 그에게 주어야 할 선물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건네주기에는 조금 그렇고 다음에 약속을 잡아 놔야지.
그때 경기장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비비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더니 투지에 불타오르는 눈빛이 되어 두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비비안도 그렇고 디에네도 그렇고, 예상치 못하게 강해졌네.’
이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으로 되돌아올지 모르겠지만.
바뀌게 된 미래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저 내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