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경매장 그리고 검귀
뮤리엘 환락가에 존재하는 경매장, 돈이 흐르는 밤.
그곳의 지배자인 존스는 오늘 이루어질 경매의 참가자들을 보고받고 있었다.
“검귀가 참가했습니다.”
“올 거라고 짐작했다. 이번에 나올 물건이 물건이니만큼.”
미친놈이라고는 해도 검에 미쳤을 뿐이니 크게 사고는 일으키지 않을 거다.
애초에 검귀에게 덤빌 간 큰놈도 없을 테고.
수하가 마저 보고했다.
“묘족의 차기 족장 후보, 야융민이 자신의 호위들을 대동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심해의 드라간은 이번에는 바쁘다며 참가를 거절했습니다.”
“그래. 저번에 올 수도 있다고 했던 드왈스키 영감은 어찌 됐지?”
“자신의 문양을 소유한 대리자를 파견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뜻밖의 시체가 있지 않는 한 경매에 참석하지 않은 모른이 어쩐 이유에서 이번 경매에 참가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검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검을 제외하고는 오늘 나올 물품들은 전부 고만고만했다.
모른의 흥미를 돋울 만한 시체가 이번 경매에는 없었을 텐데.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경매 물품들 중에 섞여 있는 건가?
‘모른의 대리자가 뭘 구매하는지 살펴봐야겠어.’
시커먼 속내를 숨긴 존스가 다시 물었다.
“또 다른 특이사항은.”
“누군가가 블러디 댄의 가면을 쓰고 환락가에 입장했다고 합니다.”
“댄의 가면을? 그래, 알았다. 나가 봐라.”
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려한 반지들이 끼워진 손을 까딱거렸다.
수하가 사라지자 입에 물고 있던 연초에서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블러디 댄의 가면이라…….”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죽은 블러디 댄이 발견되었다.
죽은 이가 블러디 댄이라는 확신은 없었으나 댄의 마지막 동선이 파이먼과의 만남이었기에 추측이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묘지기 파이먼과 싸우다 죽은 걸로 되었지만 가면이 없어진 게 수상했는데 아무래도 사건의 진짜 주인이 나타난 모양이다.
‘뭐 하는 놈인지 살펴봐야겠군.’
* * *
환락가의 경매장은 투기장과 붙어 있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둘러보자 환락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기저기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인물들이 돌아다녔고 그런 이들의 돈을 노리는 포주들과 사기꾼들이 즐비했다.
‘그동안 못 봤던 빌런들을 여기서 다 보게 되네.’
연쇄살인마 마이클 히단, 인간 사냥꾼 잭 힐, 찢어 죽이는 발란까지.
평소에는 찾기 힘든 악당들이 이곳에는 고개만 돌려도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굳이 그들과 엮일 필요는 없기에 시선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경매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었다.
괜히 시비가 붙어 봤자 이로울 게 하나 없었다.
‘저곳이군.’
투기장 건물과 함께 운영되는 경매장의 입구에는 문지기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막고 있는 입구가 경매장으로 향하는 입구이고 투기장은 뒤편에 따로 입구가 또 존재했다.
나는 모른에게 받은 편지에서 문양만 오려 낸 종이를 문지기에게 건넸다.
“확인되었습니다. 들어가시죠.”
돈이 흐르는 밤은 황금의 연회와 다르게 추잡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VIP 룸도 따로 없었고 그저 단상과 여기저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술을 판매하는 바까지.
‘클럽이 따로 없네.’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딱 클럽을 연상시켰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조금 더 퇴폐적인 분위기가 흐른다는 것 정도.
“어머. 손님이신가 봐요?”
경매장에 들어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호구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어떤 여인이 달라붙었다.
인간은 아니고 혼혈 엘프 같았다.
“아직 경매가 시작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그때 동안 우리 얘기나 좀 나눌래요?”
살갗이 드러나는 요염한 옷을 입은 그녀가 은근한 눈길로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괜히 가면을 쓰고 온 줄 아나.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안 되었다.
“아쉽네요.”
그녀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다른 호구를 낚으러 갔다.
그나저나 인물을 가려 받은 탓인지 경매장에 참가한 인물들의 낯이 익다.
‘호크슈터 미젤란, 묘인족 야융민, 저주받은 눈 플러트먼…….’
경매의 참가자들은 거의 30명쯤 되어 보였다.
몇몇은 나처럼 정체를 감추려 외모를 가리고 있는 게 보였는데 귀족이거나 적어도 음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유명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보다 경매장 한구석에서 술잔을 비우고 있는 한 사내가 신경 쓰였다.
‘검귀 호산.’
오러 마스터 직전에 다다른 빌런.
실력으로 따지면 저번에 싸운 파야트와 대등한 수준의 유명한 악당이었다.
검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캐릭터로 등에만 5자루의 검과 허리춤에도 양쪽으로 3자루씩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살인귀였다.
그가 빌런이 된 경위도 명검에 대한 욕심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서도 유명한 명검이나 네임드급 검을 지니고 있으면 검귀 이벤트가 생겼었지.’
검귀가 나타나는 시간은 랜덤이었다.
운이 나쁘면 네임드급 검을 얻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찾아올 때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몇 년이 지나도록, 어떨 때는 게임 클리어를 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물론 이는 전부 게임에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의 내가 갈락슈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검귀는 모를 테니 상관없었다.
호산은 사람을 자기 멋대로 죽이는 악당이지만 평소에는 차분했다.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문제가 없을 거다.
지하 투기장에서 올라오는 함성을 들으며 경매를 기다리고 있자 드디어 진행자로 보이는 인물이 원형 단상으로 올라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곧바로 경매를 진행할까요?”
거대한 덩치의 직원 두 명이 이내 첫 번째 경매 물품을 단상에 올려놓았다.
진행이 엄청 빠르네.
“첫 번째 경매 물품! 이 상자에 든 것은 돌연변이 켈투스입니다. 머리가 두 개에 다리도 여섯 개나 생겼죠. 시작가는 2,000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켈투스는 몬스터로 사마귀 외형의 몬스터라고 보면 되었다.
사마귀와는 다르게 포유류라는 점과 포유류답게 털로 뒤덮인 괴물이었다.
저런 걸 누가 사나 싶어도 결국 낙찰을 하는 사람이 나왔다.
마법사들에게 돌연변이 몬스터의 존재는 꽤 괜찮은 실험체이니 팔리는 모양이다.
그 뒤로도 온갖 노예들부터 몬스터나 이종족의 장기 등이 경매 물품에 나왔고 도대체 어디에 써먹나 싶은 저주받은 아이템들도 등장했다.
‘어서 내 것만 사고 뜨고 싶은데.’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모른이 말해 준 것과 같은 책자가 그다음으로 등장했다.
설명은 그저 암호화가 된 지도라는 게 전부였는데 주최 측도 제대로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책자의 경쟁 또한 심하지 않았다.
‘아무 정보도 없는 지도를 사려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
입찰을 해 보는 이들도 전부 궁금함에 한 번씩 찔러보는 모양새일 뿐, 나처럼 낙찰을 원하고 덤벼드는 이는 없었다.
결국 아무 문제없이 고만고만한 값에 책자를 낙찰했다.
나는 낙찰이 결정되자마자 뒤에 이어질 경매는 포기하고 곧바로 대금을 지불하러 갔다.
‘괜히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다 이상한 일에 엮이면 안 되지.’
내가 바로 떠나자 경매 참가자들의 시선이 내게 몰려왔다.
그들의 심정도 알 것 같기는 하다.
겨우 책자 하나 사러 이곳까지 방문한 게 특이해 보일 테니.
대금을 지불하는 장소에 도착해 책자를 건네받은 나는 모른의 문양을 보여 주었다.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문양을 확인한 직원은 확인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의외의 말을 전해 왔다.
“손님. 저희 지배인께서 손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시는데 잠시 시간이 되실까요?”
돈이 흐르는 밤의 지배인은 분명 존스라는 사내였다.
이런 곳의 주인인 만큼 질이 나쁜 남자였는데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자존심이 상당히 강했다.
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었으나 괜한 문제를 일으키기 싫었다.
“잠시만이라면.”
“예. 감사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이내 화려하게 꾸며진 플로어에 들어설 수 있었다.
널찍한 공간에는 바닥을 파서 만든 거대 욕조가 있었고, 그곳에는 헐벗은 여자들과 온몸을 보석으로 두른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저자가 경매장의 주인인 존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곳의 주인인 존스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불렀습니까.”
용건부터 묻는 내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푼 존스는 맞은편에 비치된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일단은 그의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었다.
“모른 드왈스키 님의 대리인으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른 님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그분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겠습니다.”
나를 모른의 대리자로 알고 있군.
어쨌든 나도 모른의 상황을 모르는 이상 입을 많이 열수록 좋을 건 없었다.
“흠. 그 정도도 알려 줄 수 없다니 조금 이상하군요.”
“모른 님에 대해 묻는 거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정말 모른 님의 대리자가 맞는지 의심되는데?”
존스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그의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울 것 없는 나는 차분히 말했다.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
“글쎄? 적어도 네가 수상한 녀석이라는 건 알겠다. 네가 쓴 그 가면, 블러디 댄의 가면이잖아.”
“그거랑 지금의 핍박이 무슨 연관인지 모르겠다만.”
“일단 가면부터 벗어 봐라. 그러면 네가 진짜 모른 님의 대리인인지 확인해 주지.”
말이 안 통하는군.
굳이 이렇게 꼬투리를 잡는 이유가 뭐지.
“내 사정도 이해해 달라고. 네가 만약 모른 님의 대리인이 아니면 나도 곤란하단 말이야. 그러니 시원하게 가면을 벗고 확인만 해 보자.”
모른의 대리인이 맞으면 저 이야기를 구실로 벗어나고, 내가 만약 모른의 대리인이 아니면 해코지를 할 셈인가.
그럼에도 나는 정체를 밝힐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싸움이 불가피해 보였다.
‘얕보였군.’
상대의 태도를 보니 내가 대화를 거절했더라도 미행을 붙여 뒤통수를 쳤을 것 같다.
차라리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무력행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검? 모른의 대리자가 검? 점점 더 수상하군.”
“수상한 건 네 시커먼 속내고, 이 새끼야.”
곧바로 검풍을 휘둘렀다.
그러자 존스의 수하 둘이 그대로 상, 하체가 분리되어 쓰러졌다.
“꺄아악!”
존스의 곁에 있던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고 당황한 표정의 존스가 외쳤다.
“뭐해! 빨리 저 녀석을 죽여! 먼저 공격했잖아!”
“먼저 협박한 주제에 지랄은.”
먼저 검을 뽑게 한 주제에 누구 탓을 하는 거냐.
그래도 존스를 죽이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 그의 수하들만 공격하기로 했다.
서걱― 푹!
검풍은 아직까지 첫 공격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몸을 직접 움직이며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름 실력 있는 녀석들이었으나 데슈른에게 수련받은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10명 남짓했던 존스의 부하들을 썰어 버리고 출구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존스를 붙잡았다.
“히익!”
“덩치랑 안 어울리게 히익이 뭐냐, 히익이.”
나는 검에 묻은 피를 존스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에 닦으며 물었다.
“왜 이 지랄을 떤 거야. 모른이 무섭지 않은 거야?”
“저, 정말 모른 님의 대리인인 줄 몰랐습니다. 블러디 댄의 가면을 쓴 자를 아무래도 신뢰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이렇게 문양까지 가져왔잖아.”
“굳이 변명하자면 그 문양도 당신이 뺏었을 수도 있으니까…….”
눈알이 굴러 간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군.
나는 손이 미끄러진 척 칼로 그의 배를 긁었다.
“어이쿠, 실수.”
“으어억!”
“존스. 존스야. 우리 제대로 좀 말해 보자. 자꾸 말이 길어지면 나 또 실수할 거 같은데.”
“사,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검을 치워 주십시오!”
이게 어디서 나랑 흥정을 하려고.
나는 다시 한 번 실수하려 했으나 이내 누군가가 올라오는 기척에 계단이 있는 입구를 바라봤다.
‘검귀!’
네가 여기에는 왜?
검귀, 호산은 계단을 올라오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끝까지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 호산님! 살려 주십시오! 암살! 암살자입니다! 제가 사례해 드릴 테니 어서 이 녀석을…….”
“시끄럽군.”
스릉.
호산의 검집에서 반쯤 드러난 검신이 이내 철컥 소리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자 내가 깔고 앉아 있던 존스의 목이 갈라지더니 피가 쏟아져 나왔다.
‘미친놈!’
평범한 이들은 보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발도를 하고 검을 집어넣었다.
역시 강하다는 생각과 역시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죽여 버린 건가?
아무리 호산이 강하다고 해도 꽤 귀찮아질 텐데.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호산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따름이었다.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호산의 눈은 내가 들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그 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름이 뭐지.”
큰일이다.
하필이면 호산이 갈락슈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