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8화 (38/415)

38화. 혼혈 듀오

밤이 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준비했다.

낮 동안 움직이지 않은 건 어차피 다른 녀석들이 열심히 포인트를 모아 둘 거니 그걸 노리고 움직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 마디로 낮 동안 열심히 꿀을 모은 일벌들을 사냥하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미리 지도를 분석해서 몇몇 포인트를 잡아 놓은 상태였다.

밤이 되면 학생들도 잠을 자야 할 테니 그들의 심리와 이 산의 지형을 생각해 잠을 청할 만한 곳들이었다.

“준비 끝났어.”

마침 디에네의 준비도 끝나고 우리는 곧바로 비밀 아지트에서 나왔다.

“나와서 봐도 감쪽같네. 어떻게 알아보고 돌아오는 거야?”

자신이 나온 비트를 돌아본 디에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딱히 표시를 해 둔 건 아니지만 워낙 많이 접하고 경험하다 보니 대충 위장해 놓은 비트는 한눈에 봐도 티가 났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해 놓은 이 근방의 비트는 내가 만든 이 하나뿐일 테니 찾는 건 금방이었다.

이를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감입니다.”

“뭐?”

디에네의 놀리냐는 듯한 표정을 뒤로하고 앞서 걸었다.

사실인 걸 어쩌라고.

지도에 표시해 놓은 사냥 포인트 중 가장 가까운 곳도 생각보다 걸어야만 했다.

마침 하늘에 떠 있는 달도 구름에 가려져 적막한 사위와 어둠에 가려진 시야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단전의 마나를 신체 활성화, 그중에서도 눈에만 집중해 시야가 트였다.

디에네는 그런 나의 뒤를 허공에 뜬 채 조심조심 따라오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예. 아가씨.”

“그냥 심심해서 물어보는 건데…….”

“예. 말씀하시죠.”

“왜 검을 차고 다닐 생각을 한 거야?”

따라오는 동안 조용하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했더니 그거였냐.

아마 디에네의 머리를 열어 보면 마법보다 기사에 대한 내용이 더 나올 것 같았다.

“아시다시피 제 마력이나 마법 실력은 뛰어나지 않습니다. 저번에 흑마법사와 싸울 때 마나가 다 떨어져 꽤 큰일이었거든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 마법에만 의지하지 말고 뭐라도 몸을 지킬 게 필요하겠구나, 그뿐이었습니다.”

“흐음, 그래?”

“혹시 검에 관심 있으십니까?”

“아니. 전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더만.

딱 디에네가 그 꼴이다.

왜 굳이 숨기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틈타 넌지시 물어보았다.

“검이라고 하니 카를로스 형님이 떠오르는군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빠? 몰라. 매일 낭만, 낭만 노래 부르면서 싸돌아다녔는데 기사 서임이 되고 나서부터는 정말로 전국 일주를 하고 있어서 나도 본 지 꽤 됐어.”

“그렇습니까? 혹시 언제 만날 예정은 없습니까?”

“뭐?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싶었습니다. 형님은 제게도 좋은 사람이었으니 그리운 마음이 드는군요.”

실제로 내 기억 속에 카를로스 알븐은 대귀족의 장남답지 않게 털털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의 호인이었다.

오지랖이 어찌나 넓은지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하면 안 끼어드는 곳이 없었고 언제나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던 순박하고 열혈적인 사람이었다.

“잘 됐네. 이번 아카데미 연말 행사에 잠깐 들르기로 했어.”

“그렇습니까? 정말 잘 됐군요.”

아카데미 연말 행사.

드디어 테러가 일어나는 날짜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사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정보와의 시간 격차가 없어지기에 곧 테러가 일어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확실히 알아낸 건 다행이야.’

연말 행사를 주의하면 되겠네.

거기다 위치도 알고 있으니 잘하면 막아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테러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걷다가 지도를 확인하고 디에네에게 손짓했다.

이제 내가 찍어 놓았던 장소에 거의 다 와 가기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디에네도 내 뜻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화르륵. 타닥타닥.

내 예상이 맞았다.

아주 그냥 나 잡숴 주세요 하면서 절벽을 등지고 방벽을 세운 채 모닥불을 피운 3인 1조의 일행이 보였다.

비록 상대의 머릿수가 더 많았지만 습격과 시야의 이점으로 전혀 문제없이 포인트를 따낼 수 있어 보였다.

뒤따라온 디에네도 그들을 발견하고 곧바로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잠깐.”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디에네를 말렸다.

그러자 디에네가 무슨 문제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우리 말고 또 다른 불청객이 있어 보였다.

“반대편에 다른 일행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처럼 사냥을 노리는 모양입니다.”

“그래? 그럼 기다렸다가 공격해야겠네.”

어부지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을 알아챈 디에네가 조심히 몸을 숨기고 내 옆에 붙어 곧 일어날 전투를 기대했다.

우리로서는 결국 두 일행 간의 전투가 끝난 뒤 남은 상대를 노리면 되기에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보인다.”

드디어 모닥불 일행을 노리던 건너편의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원거리 마법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굳이 모닥불 근처로 어둠에 융화되어 움직이는 모양새가 마치 근접전에 특화된 움직임이었다.

꼭 특수부대원들의 움직임처럼…….

‘마법사가 아니야?’

그리고 이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디에네가 웅얼거렸다.

“왜 굳이 저렇게 다가가는 거지?”

그 순간 어둠에 숨어 있던 작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불침번을 서던 인원의 목을 갈랐다.

“흡!”

깜짝 놀란 디에네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긴장을 최고조로 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뭔가 잘못됐다. 학생이 아니야.

그러나 미처 무언가를 판단하기도 전에 디에네가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케흑?”

한 학생의 목을 가른 고블린을 닮은 남자가 디에네의 마법을 눈치채고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 속도에 나는 상대가 생긴 것과 달리 강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쇄애액―!

디에네가 만든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상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목에서 피를 쏟아 내는 학생을 들어 올려 자신의 앞을 막았다.

“저, 비열한!”

분노에 찬 디에네의 고함과 함께 날아가던 마법들이 급하게 취소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 틈에 고블린 사내와 함께 숨어 있던 덩치 큰 일행이 나왔다.

그는 나오자마자 고블린 사내와 함께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몽사몽 하는 나머지 두 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이 녀석들이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거기서 나와라.”

이미 처음에 당한 학생은 바닥에 엎어져 피를 울컥울컥 쏟아 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저 둘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 상황.

나는 차분히 정보를 파악하려 애썼다.

‘더 이상의 상대는 없다. 두 명이 전부. 하지만 움직임이나 행동이 보통이 아니야. 용병인가?’

용병이라 생각되자 저들의 외모를 보고 무언가가 짐작되었다.

‘만토스와 글라우.’

용병으로 함께 다니는 혼혈 듀오였다.

만토스는 오우거와 인간의 혼혈, 글라우는 고블린과 인간의 혼혈이었다.

게임 속에서도 간간이 나오는데 일을 가려 받지 않는 녀석들이다 보니 온갖 더러운 일에도 엮이는 놈들이었다.

문제는 누구에게 무얼 사주받고 이런 곳에서 학생들을 죽이느냐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디에네가 먼저 나갔다.

그녀가 나서자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도 나왔다.

“그래, 그래. 친구들이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말을 잘 들어야지.”

“정체가 뭐냐. 감히 아카데미 학생들을 해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디에네의 살기가 담긴 말에도 글라우는 킬킬거리며 웃기만 했다.

그와 달리 만토스는 진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너희 둘 중에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는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아나?”

갑자기 내가 왜 나와?

디에네도 그렇겠지만 나도 당황스러웠다.

“알려 준다면 조용히 지나가지.”

다시 한 번 말하는 만토스의 말에 나와 디에네는 서로를 마주 보며 아무 말도 못 했다.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한 글라우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야? 저 녀석 아니야?”

“음?”

글라우의 말에 만토스가 나를 보더니 히죽 미소 지었다.

“맞군.”

“이야! 어떻게 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오냐. 좋다 좋아!”

그 둘의 대화에 디에네가 발끈해서 나서려는 찰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날 왜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그 둘은 좀 풀어 주지?”

“그건 하는 거 봐서.”

“어이, 어이. 아가씨. 우리는 이쪽 친구한테 관심이 있는 거지 그쪽이랑은 엮이기 싫거든?”

디에네가 마나를 사용하려는 정황이 보이자 곧바로 칼을 들고 붙잡힌 학생의 목에 상처를 내었다.

만토스는 발버둥 치는 학생의 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이걸 어떻게 할까나. 일단 그쪽 아가씨는 귀찮으니 좀 빠져 주지 않을래?”

“닥쳐라.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함부로 말하느냐.”

“누군지는 알 바 없고. 안 비키면 그냥 이 녀석들 다 죽여 버릴 거야.”

“사, 살려주어…….”

하얗게 얼굴이 질려 가는 학생을 본 디에네의 안색도 창백해져 갔다.

기사도를 숭배하고 정의감 넘치는 디에네로서는 견디기 힘들겠지.

어차피 이리된 거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로 했다.

“뭘 원하냐. 내가 따라나서면 되는 건가?”

“좋아, 좋아. 그렇게 하지!”

그때 글라우가 손에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이 잡고 있던 학생의 팔을 그었다.

“끄아악!”

“크헤헤. 어이, 아가씨. 우리 따라올 생각 말고 이 녀석들 죽지 않게 봐 주기나 하라고.”

그는 그리 말하더니 만토스의 어깨에 올라탔다.

“넌 따라와라. 안 따라오면 이 녀석도 어떻게 될지 몰라.”

“여자가 따라오면 이 녀석의 목을 바로 부러트리겠다.”

둘의 말에 디에네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까짓것, 어울려 주지 뭐.

“아가씨는 여기서 이들을 살펴 주세요. 지혈부터 간단히 해 주시고, 아마 곧 기사학부 조교들이 올 겁니다.”

“너는?”

“전 따라가야죠. 걱정 마십시오. 죽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어 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물론 디에네는 저 둘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모르니 내가 무사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

그래도 걱정을 덜지 못한 디에네가 내 어깨를 살며시 잡았지만 내가 조심스레 떼어 냈다.

“요 이틀간 보셨잖아요. 저는 꽤 잡스러운 기술들을 많이 알아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보다 빨리 저 둘을 봐 주세요.”

결국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용병 듀오를 노려보더니 쓰러진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케흑. 웃기고 있군. 살아남아? 우리를 상대로? 케헤헤.”

상대가 뭐라 하건 나는 그들이 앞서 걷는 뒤를 쫓았다.

마침내 디에네가 보이지도 않을 깊은 숲속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만토스가 잡고 있는 학생부터 풀어 주기를 요구했다.

“따라왔으니 저자는 풀어줘라.”

“멍청한 건가? 그런 지능으로 어떻게 로들렌 아카데미에 입학했지?”

갑자기 인신공격을 한 만토스는 그대로 자신의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뿌득.

곧이어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학생이 축 늘어졌다.

그를 본 글라우는 혼자 배를 잡으며 웃었다.

“케헤헤헤!”

“다 웃었냐?”

“케흑?”

도대체 뭐 때문에 찾아온 건지는 몰라도 마침 잘됐네.

시험 무대로 딱이야.

“너무 무서워서 미친 건가? 뭐, 이해는 한다. 곧 너도 이렇게 될 거니까.”

“아니. 너넨 방금 그 녀석을 죽였으면 안 됐어.”

방금 그 학생을 죽임으로써.

주위에 더 이상 목격자가 없다.

“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공간 저편에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 꿈틀대는 기운을 느끼며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모인 마나는 이내 검은 포탈로 변하며 무언가의 실루엣을 비춰 보였다.

“일단 맞고 듣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