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포인트 사냥 그리고 습격의 전조
대런과 마이클은 운 좋게 시작 지점 근처에서 만나게 되어 함께 포인트를 모으고 있었다.
비록 포인트를 둘이서 나눠야 했지만 이 산속에서 누구도 의지하지 못한 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불침번도 서주며 1일 차를 무사히 보낸 둘은 2일 차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지도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네.”
“그러게. 지금 여기가 어디냐?”
새벽부터 일어나 한참을 걸어 다녔음에도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면서도 지도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뚝!
휘릭.
“응? 어어!”
갑자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지도를 살피며 걷던 대런은 순식간에 밧줄에 묶여 허공에 매달렸다.
“대런!”
앞서 걷던 마이클이 급하게 뒤돌아 다가갔지만 이내 날아든 전기 마법에 꼼짝없이 당해 버렸다.
마법은 허공에 매달린 대런에게도 적중해 둘은 기절한 채 그대로 정신을 놓고 쓰러졌다.
그렇게 둘이 쓰러지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던 아드리아스와 디에네가 나타났다.
둘은 당연하다는 듯 각자 한 명의 팔찌를 뜯어 포인트를 흡수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가.”
“뭐가 말씀이십니까?”
“모든 게.”
포인트를 흡수하고 묶인 학생을 풀어 준 디에네가 아드리아스를 빤히 쳐다봤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이런 잡기술들 말입니까? 그냥 취미입니다.”
“네가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아드리아스가 입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전했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내 여기저기 만져 보다 말했다.
“방금 잡은 저 둘보다 먼저 누군가가 이곳을 지났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쫓아가죠.”
“또?”
이내 아드리아스는 빨리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앞서 나아갔다.
분명 대단하기는 했는데 그의 템포를 쫓아가기에는 정신이 지쳐 갔다.
벌써 오늘 잡은 학생들만 해도 6명이 넘었다.
그마저도 아직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니 그들이 얼마나 정신없는 강행군을 치렀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까지만 잡고 좀 쉬죠.”
“그래.”
지쳤지만 결국 그를 따라나서는 디에네였다.
* * *
사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모른 척 무시하려 했다.
어차피 내 쪽에서만 발견한 것 같아 이대로 놔둔다면 자연스레 지나쳐 갈 게 분명했었다.
‘디에네 알븐. 내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2박 3일 동안 버티기만 하고 자잘한 포인트를 모으면 성적은 어느 정도 나올 거다.
하지만 디에네와 팀을 이룬다면 상위권 성적을 노려 봐도 되지 않을까?
포인트 사냥을 위한 추적과 흔적 찾기 그리고 전반적인 생활은 내가 담당하고 그녀는 나 대신 싸우는 거다.
물론 나 혼자 직접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체력도 체력이고 변수가 컸다.
‘괜찮을 것 같은데?’
딱 보니 귀하게 자란 디에네는 갈피를 못 잡은 눈치였다.
아마 저대로 마력을 휘두르고 다니다가 마나 고갈로 탈락하거나 생존 문제로 탈락하겠지.
그러니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도록 꼬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그녀를 거처에 초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는데 디에네가 잠이 들 줄은 몰랐다.
‘이건 조금 곤란한데.’
그래도 이렇게 잠이 든 디에네의 모습을 보고 있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녀와의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른다.
물론 내가 직접 겪은 게 아닌 그저 육체에 남아 있는 기억이었지만 그리운 감정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후에 잠에서 깬 그녀는 여전히 날 경계했지만 결국 내가 제공하는 편리와 편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이 오지에서 편안함을 잠시 맛보게 한 나는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같은 팀이 되어 포인트를 모으기로.
처음에는 싫은 티를 내던 그녀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연스레 팀이 되어 내 충실한 사냥개가 돼 주었다.
‘이 정도 포인트면 충분히 상위권이지 않을까.’
나는 지도에 그려진 포인트를 디에네와 일주하며 그사이에 걸리는 흔적들과 기척들을 잡아내 학생들까지 사냥하고 있었다.
흔적을 찾는 것은 쉬웠다.
눈이 내린 산이라면 널리고 널린 게 흔적이지.
추적에 관한 지식과 기술은 내게 충분했기에 문제없었다.
그렇게 흔적 찾기와 추적을 내가 담당하고 나면 마무리는 디에네였다.
처음에는 내 추적을 반신반의하던 디에네도 이내 곧잘 목표를 찾아내는 날 보며 점차 믿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과 같이 흔적을 읽고 예상 경로에 먼저 도착해 함정을 설치할 때는 이미 신뢰감이 최대치를 쌓았을 때였다.
대신에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난 굳이 능력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뭐라 생각하든 별로 상관없으니까.
‘흑마법사인 것만 들키지 않으면 이제 별 의미도 없다.’
그렇게 다음 흔적을 쫓아 추적을 이어가자 마침내 흔적이 끝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멈춰 선 채 유심히 주변을 둘러보다 앞쪽에 위치한 나무 뒤에 무언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나 디텍트를 사용하면 더 확실했지만 이 기술을 사용하면 상대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기에 습격의 의미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디에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저기?”
“예. 저 나무 뒤입니다.”
디에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가리킨 나무를 보고 마나를 모았다.
역시 천재는 다른 걸까.
그녀의 마나 컨트롤을 보면 기가 막혔다.
미세한 마나의 조정으로 위력을 낮춘 그녀의 마법은 상대에게 적중되면 정확히 기절할 정도의 충격만 주었다.
그뿐 아니라 캐스팅 속도는 물론 마법의 적중률마저 100%였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감탄을 하며 지켜보는 사이 그녀의 마법이 발동되었고 전기로 이루어진 볼트 에로우가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볼트 에로우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나무에 가려진 상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전혀 의외의 소음으로 드러났다.
챙! 쩌저적!
“어떤 새끼야?”
이 목소리? 설마?
상대는 검으로 가볍게 디에네의 마법을 막아 내고는 나무에서 나왔다.
불량한 자세로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는 그녀는 다름 아닌 아이비 클레어였다.
“아이비 조교님?”
“뭐야. 아다 마법사잖아.”
그녀는 담배를 물고 길게 빨아들인 뒤 연기를 뱉어 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꽁초를 버리더니 검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네들,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공격한 거냐?”
“흔적을 쫓아왔습니다. 조교님이신 줄은 몰랐고요.”
“흔적? 네가 무슨 개냐? 내가 여기 숨은 걸 알아냈다고?”
그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디에네가 거들었다.
“사실입니다. 무슨 수를 쓰는지는 모르지만 여기 있는 아드리아스 학우가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쓰다니.
말하는 게 꼭 내가 사술을 쓴다는 것처럼 들리냐.
아이비는 디에네의 말에 얘는 또 뭐냐 싶은 표정을 짓고는 검을 까딱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귀찮으니까 얼른 꺼지라는 뜻으로 보였다.
‘기사학부 조교들이 탈락자들을 후송한다고 하더니 고생이 많네.’
나는 꾸벅 인사를 박고 디에네를 불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디에네는 그런 나를 보고 물었다.
“방금 그 사람, 아는 사람이야?”
“예. 중간 평가 때 같은 조였던 조교입니다.”
“아! 그 흑마법사 잡은?”
“예.”
사실 나 혼자 잡은 거긴 하지만 이와 관련된 아카데미 내에 소문은 같이 잡은 거로 되어 있었다.
나도 켕기는 부분이 있어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멋있으시네. 어땠어? 같이 흑마법사 잡은 거잖아?”
“예? 뭐, 그냥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 기사애호가였구나.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굳이 그걸 물어보네.
나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거처로 돌아가죠.”
“갑자기?”
“예. 거처로 돌아가서 쉬었다가 밤에 다시 나올 겁니다.”
내 말에 디에네는 의도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밤이 사냥하기에는 좋겠지. 근데 가능할까?”
“걱정 마십시오.”
밤이 되면 시야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내게는 기사의 마나가 있었다.
시야를 밝히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순위권은 우리 차지다.
* * *
전날 눈이 내려 새하얗게 변한 산을 올려다보던 고블린 같이 생긴 사내는 이내 옆에서 나란히 걷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를 돌아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이미 돈을 받았다. 돌이킬 수 없어.”
거대한 남자는 고블린 사내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내심 그의 말이 맞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뒤를 따라오는 검은 로브의 인원들로 인해 크게 티를 내지는 못했다.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내면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지.”
“헤헤. 당연하지! 그래도 돈은 많이 받았으니 한동안 놀고먹을 수는 있어서 좋군.”
그때 검은 로브를 입은 인원 하나가 앞으로 치고 나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만 무사히 끝나면 우리도 너희 같은 쓰레기랑 엮일 생각 없다.”
“어이쿠. 키드웰 사장님 오셨어요? 헤헤.”
고블린 같이 생긴 사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자 로브를 입은 자가 혀를 찼다.
“친한 척 하지 마라. 이 더러운 잡종아.”
“말이 너무 심하군. 죽고 싶나?”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걸음을 멈춰 세우고 살기를 드러냈다.
살이 에일 듯한 기운이 퍼지자 뒤따라 걷던 검은 로브의 인원들이 전부 멈춰 서서 남자를 보았다.
이내 그들이 마나를 모으자 남자는 고개를 돌리며 살기를 거뒀다.
“돈을 받았으면 일이나 제대로 완수할 생각을 해라.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돈을 받기 전에 하는 거다.”
로브 남자의 말에 덩치 큰 남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고블린 같은 사내가 뒤따라 걸었다.
“그리고 잊지 마라. 이 일은 제스터 님께서 직접 너희에게 의뢰했다는 걸.”
“……알고 있다.”
점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로브의 인원들은 점차 각기 다른 방향의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며 뿔뿔이 흩어진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키드웰이라는 사내가 말했다.
“너희 둘의 목표는 무조건 하나다. 물론 학생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좋다. 하지만 네 녀석들이 돈도 안 되는 짓을 하지는 않겠지.”
“아이고. 사장님. 돈만 더 주신다면 어차피 이리된 거 뭐든 하죠.”
“흥. 됐다. 주어진 일이나 잘 해내라. 아마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그때 덩치의 남자가 키드웰을 붙잡았다.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이제 와서? 얼른 말해라.”
“내가 알아보니 우리한테 맡겨진 목표가 그닥 뭐가 있는 녀석도 아니더군. 물론 최근 포션인가 뭔가를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굳이 우리가 나서야 할 정도의 녀석인가?”
“그 녀석에 대한 일은 나도 자세히 모른다. 제스터 님이 네 녀석들에게 의뢰를 내렸을 뿐. 확실하게 죽여서 시체나 챙겨 올 생각이나 해라.”
“그 정도야 어렵지 않아. 우리의 일이니까.”
이내 키드웰이 사라지자 미소를 짓고 있던 고블린을 닮은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퉷! 죽지도 살지도 못한 산송장 같은 녀석이 제멋대로 지껄이기는!”
“우리도 슬슬 움직이지.”
“근데 이 산속에서 녀석을 어떻게 찾으려고?”
“……찾을 때까지 죽이다 보면 하나 걸리겠지.”
“뭐? 크헤헤헤! 그렇겠지! 맞는 말이야!”
둘의 대화를 끝으로 빌보레 산의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