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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7화 (27/415)

27화. 거래 그리고 보상

“무언가를 딱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군.”

제스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허공에 끈적한 검은 액체를 판처럼 만들어 내더니 그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이 중에서 세 가지를 주지, 어떤가.”

음, 겨우 세 개인가.

그가 적은 30개가량의 목록을 보자 내가 예상했던 물건들은 물론, 의외의 것들도 보였다.

‘그 와중에 몇 개는 숨겼네.’

정말 귀하다고 생각하는 건 일부로 숨긴 듯 목록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내가 노리는 건 이미 이 안에 있었으니까.

“이거 어쩌냐. 나는 내가 뭘 가졌었는지 기억나는 게 없는데.”

“그러면 빠져라.”

살렘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제스터가 비꼬았다.

그러나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살렘이 이내 자신의 등에 매달은 ‘사악한 뱀’을 집어 들었다.

“지금 당장 줄 건 이거밖에 없군. 난 이걸로 하지.”

어?

진심인가?

나만 당황한 건 아닌 듯 제스터, 아니 모여 있던 모두가 동요하는 게 보였다.

“살렘 예디디아, 진심인가?”

“어. 뭘 그렇게 놀란 표정들을 지어. 이건 이제 질렸으니까 새 장난감으로 바꾸려는 것뿐인데.”

살렘의 애병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악한 뱀’은 그가 죽을 때까지 사용하던 장비였다.

그런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다고?

“살렘 예디디아, 그렇게까지 우리를 방해할 셈인가?”

“무슨 소리야? 내가 뭔 방해를 해.”

“내가 바보로 보이나? 줄 생각도 없는 악창을 내걸며 판돈을 키울 셈인 걸 모를 것 같은가?”

“어이, 제스터. 판돈을 키운다고? 거기 적힌 물건들을 전부 쥐여 줘도 ‘사악한 뱀’에는 못 비벼. 근데 판돈이 뭐 어쩐다고? 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쓴 것뿐이야. 여기 있는 누구처럼 말이지.”

살렘이 나를 보며 웃었다.

최선의 수를 사용한 누구…… 나를 말하는 건가?

제스터는 화를 삭이듯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다가 나를 보았다.

“5개로 늘리지. 거기다 추가로 시체를 얹겠다.”

“시체?”

“너도 네크로맨서이니 알겠지. 생전에 강력했던 시체는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귀한 보물이라는 걸.”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이어서 말했다.

“호왕 티무르의 시신과 선대 페어리 퀸 미리내의 시신을 주지.”

“허억.”

나도 놀랐지만 뒤편에 있던 카론의 숨소리가 더 가관이었다.

물론 놀랄 만한 내용들임은 확실했다.

살렘의 딜이 생각보다 강력했는지 제스터도 초강수를 두었다.

치킨 게임은 끝난 줄 알았는데 현재 진행형이었구만!

“라고가 말한다. 제스터.”

그때 처음으로 라고가 입을 열었다.

“라고가 말한다. 그건 이미 모른과 거래가 끝난 시체다. 모른이 화를 낼 거다.”

이미 모른에게 가기로 한 시체들이었군.

카론의 스승이자 현존하는 모든 네크로맨서들의 대부 격인 모른과 척을 지는 건 여러모로 불안했다.

저걸 먹으면 왠지 배탈이 날 것 같은데.

그러나 제스터는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지 라고를 향해 쏘아붙였다.

“라고. 그렇다면 자네가 이 거래에 좀 보태지 그러나? 응? 아무리 우리가 개인의 이득을 중시하는 흑마법사라고 하지만 코덱스를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이 나오나?”

“라고가 말한다. 라고는 다 먹어 버려서 가진 게 없다.”

“그럼 조용히 있게나.”

“…….”

둘의 대화와는 상관없이 나는 깔끔하게 거절하기로 했다.

함부로 모른의 물건을 먹기에는 부담이 컸다.

“모른 님의 물건을 제가 가로채는 건 여러모로 불안하군요.”

그러자 제스터가 탁자 쪽을 돌아보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모른. 이번만 양보해 주면 안 되겠나?”

“상관없다. 주어라.”

대답은 뜬금없는 곳에서 들려왔다.

대답을 한 주인을 찾아보자 탁자 위에 앉은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보였다.

“스승님!”

파리를 본 카론이 소리쳤다.

저게 모른?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지금까지 쭉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나는 상관없다. 가지고 싶으면 가지거라.”

아무래도 모른이 부리는 좀비 파리인 듯 보였는데 저만한 기술을 나는 언제쯤 구사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했다.

어쨌든 모른이 내게 말을 한 것 같기에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미 두 번이나 말했다. 더 이상 말하게 하지 말거라. 아가야.”

모른이 포기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선대 페어리 퀸이야 그렇다 쳐도 호왕 티무르는 호족의 오러 마스터였다.

그것도 보통의 오러 마스터가 아닌 역사에 속에 등장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다.

‘생각해 보면 모른이 티무르의 언데드를 다뤘었나?’

게임 속 후반의 중간 보스 중 하나로 나오는 모른은 내가 네크로맨서를 전천후 마법사라 생각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게임 속 모른은 코덱스 아포칼립스의 소환 의식을 저지하려는 플레이어를 막는 역할이었다.

그는 주변에 시체 하나 없는 장소에서 오직 아공간에 있는 언데드들만 소환했었다.

그것만으로도 플레이어에게 절망을 선사했는데 만약 시체가 널린 전장 같은 곳에서 싸웠으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인 존재였다.

어쨌든 그와의 전투는 열 번도 넘게 겪어 보았기에 모른의 언데드들은 내가 철저히 공략을 해 두었다.

하지만 그곳에 티무르는 없었다.

티무르쯤 되는 언데드를 내가 기억을 못 할 리 없으니 확실했다.

“이거 한 방 먹었군.”

내가 생각에 빠진 동안 살렘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저기에 숨겨 놓은 물건들은 많은데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 줄 수 있는 건 이 창이 전부다. 난 더 이상 흥정할 만한 게 없어.”

“자, 카론의 제자여. 선택해라.”

악창 사악한 뱀.

네임드급 아이템으로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무기.

물론 주인으로 인정받아야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런 걸 감안하고도 좋은 무기였다.

무엇보다 창이지만 마법사의 지팡이와 같이 마법 증폭이 가능해 지팡이로 사용해도 된다는 점이 메리트였다.

‘하지만 난 검을 배우고 있지.’

아이템 때문에 사용하는 무기를 바꾸는 건 리스크가 컸다.

그리고 나는 후일을 생각했다.

‘지금은 성장이 중요해. 악창을 얻으면 당장의 전력은 크게 늘겠지만 나 자신의 성장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내 판단으로는 살렘이 날 도와주기 위해 악창을 내건 것 같았다.

조금 전 제스터가 말한 것처럼 판돈을 키우기 위해 걸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제스터에게 말했다.

“집회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분명 살렘을 이겼음에도 제스터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살렘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승자랑 패자의 모습이 바뀐 거 아니야?

“아쉽군! 코덱스의 페이지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이, 제스터. 그래도 한 번쯤은 내가 만져 봐도 되겠지?”

“살렘 예디디아. 그대와는 더 이상 말을 나누고 싶지 않군.”

제스터는 살렘을 싸늘하게 일별하고 내게 물건들이 적혀 있는 목록을 들이댔다.

“다섯 가지. 골라라.”

나는 천천히 목록에 적힌 물건들을 확인했다.

물론 뭘 가져갈지는 이미 정해 두었지만 고르는 척은 해 줘야지.

5분가량을 확인하고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달의 축복, 요정의 눈물, 푸른 카난줄라 꽃, 요빈 뿌리, 캐두넌의 보옥을 가져가겠습니다.”

“번복은 없다. 확실한가?”

“예.”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가 없군.”

제스터가 중얼거리고 나머지 인원들도 내가 선택한 품목들이 특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굳이 어디에 사용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골랐네? 이히히?”

“아드리아스. 이 멍청한 녀석.”

“화룡 그라카누스의 비늘로 만든 갑옷 하나가 저것들을 전부 합쳐도 더 값지겠군!”

각각 루나와 카론, 드라간이었다.

목록에는 내가 고른 잡템들 말고도 온갖 장비와 아티팩트가 있었는데 나는 굳이 잡템들을 골랐다.

잡템들이라고는 해도 그 값어치는 천문학적이었다.

물론 값어치로만 따지면 장비와 아티팩트가 더 비싸겠지.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저런 장비류와 아티팩트들은 당장의 능력은 올려줄지 몰라도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머릿속에는 이미 웬만한 네임드템들의 위치가 각인되어 있었다.

성장만 마친다면 언제든 여기 적힌 것들보다 좋은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건 나도 이해할 수 없군.”

살렘조차 나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보았다.

미친놈이 나를 미친놈처럼 보니까 기분이 묘하네.

“왜 그런 용도 모를 물건들을 고른 거지?”

“죄송합니다.”

나는 이유를 말할 수 없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걸로 비약을 만든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게다가 내가 고른 재료들은 한 가지 비약만을 위한 재료가 아니었다.

무려 4종류의 포션을 만들 재료라고 하면 아마 까무러칠 거다.

물론 방금 고른 것들은 핵심 재료일 뿐, 이것만으로 제조는 불가능했다.

대신 함께 들어가는 부가적인 재료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얼떨결에 루시아의 치료약에 들어가는 재료도 골랐지만.’

이왕 구한 김에 루시아 것도 연구해 봐야지.

내가 무사하다는 전제하에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면 루시아의 힘은 꽤 도움이 될 테니까.

물론 비약이든 치료약이든, 바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 진화가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제 보니까 나랑 딱 맞는 특성이네.’

나와 살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스터가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여기 있다. 달의 축복, 요정의 눈물, 푸른 카난줄라 꽃, 요빈 뿌리, 캐두넌의 보옥 그리고 호왕 티무르의 시신과 선대 페어리 퀸 미리내의 시신.”

공간 확장이 걸린 가방인 모양이었다.

가방도 주는 건가? 그러면 완전 땡큐지.

“이제 ‘나태’를 넘겨라.”

분명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이글거리는 눈빛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곧바로 니켈을 소환했다.

덜그럭.

니켈은 얌전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평범한 스켈레톤이었다.

제스터는 끈적이는 액체를 만들어 니켈의 손에 들린 나태의 페이지를 감싸서 가져갔다.

본인의 앞까지 가져간 제스터는 유심히 큐브를 살폈다.

“‘나태’가 맞나?”

모르셰가 슬쩍 다가가며 물었다.

제스터는 고개를 돌려 모르셰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면하는 나태’가 맞다.”

마치 선언처럼 울려 퍼진 제스터의 말에 지금껏 구경만 하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로 가까이에서 보려고 아웅다웅하는 도중에 살렘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건드렸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이다. 나가자.”

“예? 잠시만……!”

내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린 살렘은 냅다 박차고 나갔다.

모르셰의 둥지 벽을 뚫고 나간 그는 그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펑! 펑!

붙잡히는 숲의 식물들이 땅에 닿은 발을 붙잡으려 했으나 살렘의 속도는 그를 뛰어넘었다.

땅을 박찰 때마다 마나가 터져 나가는 소음과 함께 우리는 순식간에 붙잡히는 숲에서 빠져나왔다.

“살렘 님! 잠시! 잠시만요!”

“응? 왜 그러냐?”

“아니, 갑자기 절 왜 납치하시는 겁니까?”

“납치? 푸하하하!”

그는 내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더럽게 아프잖아!

“이놈아. 나태가 저들의 손에 들어간 이상 이제 저들은 두려울 게 없어진 상태다. 물론 나 혼자라면 어디 한두 군데 잘려 나가기야 하겠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너는? 넌 확실하게 죽는다.”

“확인했습니다.”

상대가 흑마법사라는 걸 잊을 뻔했다.

약속? 그딴 걸 지키는 녀석들이었으면 흑마법과 같은 비윤리적인 마법을 익히지도 않았겠지.

“녀석들이 너를 계속 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나태가 손에 들어왔으니 당분간은 저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너에게 신경 쓰지 못할 거다.”

살렘은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나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크롬웰 백작가로 가면 되나?”

“역까지만 가면 됩니다. 로들렌 아카데미로 갈 거예요.”

“학생이었군. 그래, 차라리 거기가 안전하겠어. 바하트 녀석도 있으니.”

거기까지 말한 살렘은 갑자기 나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영문을 모르겠다.

“너? 생각해 보니 흑마법사였군?”

“예? 그걸 이제 와서?”

“아카데미에 다니는데 흑마법사라! 바하트도 알고 있나?”

“알면 제가 살아 있겠습니까?”

“모른다고? 거, 참.”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때문에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대화는 가능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 들리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거라.”

“예. 감사했습니다. 살렘 님.”

“그래. 허, 참. 운명이란 참 묘하군.”

“예?”

“아니다. 혼잣말이야. 조심히 들어가고 웬만하면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살렘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방금 말하는 뉘앙스가 마치 바하트가 내 정체를 알아도 괜찮을 것처럼 들렸었는데 착각인가?

에이, 모르겠다.

지금은 빨리 복귀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제스터에게 받은 가방을 열어 보았다.

혹시 사기 친 건 아닌가 했지만 제대로 들어 있는 내용물에 환희가 차올랐다.

‘호왕 티무르! 거기다 페어리 퀸 미리내의 시신이라니.’

고맙다! 나태의 페이지!

이제 무적의 언데드 부대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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