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8화 (28/415)

28화. 모른 그리고 뒷이야기

아무 일 없이 자연스럽게 열차에 탑승한 나는 가방을 품에 안으며 좌석에 앉았다.

나는 아카데미에 복귀해서 할 일을 고민했다.

‘일단 돌아가자마자 니켈부터 진화시켜 줘야지.’

성공 확률이 100%였으니 실패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라면 무려 66가지나 되는 분기였다.

‘분기가 정확히 뭐지?’

내가 생각한 분기는 종류였다.

스켈레톤의 다음 티어는 대표적으로 솔저와 아처 그리고 메지션이 있다.

솔저와 아처, 메지션은 모두 2티어의 스켈레톤이지만 그 종류가 다른 것처럼 나는 분기를 종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66가지 분기라니.’

숫자부터가 심상치 않다.

나태의 페이지의 영향이겠지.

도대체 뭐가 그리 많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시스템은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부디 강한 녀석으로 진화하기만을 빌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자 어느 역에 잠시 정차하게 됐다.

이른 아침임에도 주말이라 그런지 유동 인구가 많았다.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한참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던 도중, 어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더니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굉장히 인자한 인상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내 앞에 앉은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고 습관적으로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당황하였음에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노인을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모른 드왈스키.’

너무 대놓고 온 거 아니야?

그러다 제국에서 쫓아오면 어쩌려고.

게임 속 그래픽과 전혀 위화감이 없는 인물은 처음 본 것 같다.

너무나 똑같이 생겼기에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본체가 나를 직접 찾아올 줄이야.

이대로 죽는 건가?

그때 모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가야.”

“예? 저요?”

일단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래, 아가야. 몸은 좀 괜찮으냐?”

역시 나를 찾아온 게 맞았어.

그런데 전혀 정체를 숨기려고 하지 않네.

모른이 대놓고 나오자 나도 그냥 당당하게 대하기로 했다.

“예. 괜찮습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어르신.”

“호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대부님 아니십니까?”

“허허. 오늘 겪은 너는 여러모로 듣던 것과 다르구나.”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은 모른의 외형과 웃음은 묘하게 푸근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내 경각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주었다.

“아가야.”

“예, 대부님.”

“미안하구나.”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온몸에 근육을 긴장시켰다.

공격하려는 건가?

아무리 모른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 열차 안에서?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사과를 하는 모른을 보자 공격의 전조라는 것은 내 착각이었음을 알아챘다.

“대부님. 죄송하지만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카론 녀석에게 잘 배우고 있나?”

갑자기 말을 돌리는 모른을 보자 상황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아니, 도대체 뭔데 갑자기 사과를 한 거야?

기억을 뒤져 봐도 모른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근데 마치 예전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듯…….

‘가문?’

살렘 덕분에 안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크롬웰가에는 내가 모르는 비사가, 그것도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게 얽힌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게임 속에서 크롬웰가는 아무 영향력이 없었는데 왜지? 어쨌든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네.’

아무래도 그 무언가에 모른도 연관된 느낌이 들었다.

“카론 교수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고 있습니다. 제가 모자란 탓에 항상 실망만 안겨드리죠.”

“허허.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는 않구나. 혹, 돌아간 후에 카론이 네게 해코지를 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신경 쓸 필요 없다. 녀석은 내가 잘 타일러 놓으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죽이러 온 게 아닌가?

왜 이렇게 잘 대해 주지?

하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치는 않았다.

나는 여차하면 달리는 열차의 창을 깨부수고 도망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손…….”

“예?”

“손을 한 번 만져 보아도 되겠느냐?”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

그냥 변태인가? 내가 마음에 든 남색가?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나는 조심히 손을 건네었다.

그러자 모른은 내 손을 잡더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검을 수련하고 있느냐?”

“예.”

“마법에만 전념해도 바쁠 시기인데…….”

내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넘기자 모른은 손자를 보는 듯한 눈빛을 띠며 내 손을 놓았다.

나는 그런 모른도 모른이지만 혹시라도 이 장면을 제국 관계자가 보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대부님. 그런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허허. 걱정 말아라. 아가야. 내 주위에는 3,000구가 넘는 권속이 내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으니 아무도 나를 미행하거나 확인하지 못한다. 그것보다 이걸 받으려무나.”

하기야 모른 같은 네임드급 흑마법사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는 않겠지.

내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고 있자 그는 품을 뒤지더니 두꺼운 책을 한 권 꺼냈다.

“이건?”

“도움이 될 게다. 그리고 이왕이면 카론 녀석에게도 감추어라.”

슬쩍 책을 펼쳐 보자 그곳에는 네크로맨시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와 더불어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모른의 흑마법서]

‘스킬북!’

웬만한 물건들은 시스템창이 뜨지 않는 걸 생각하면, 이건 그 뛰어남이 이미 입증된 셈이다.

특히 책이 아이템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대부분이 스킬북으로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얼결에 책을 받아든 채 시스템창을 보고 있자 모른은 어서 가방에 넣으라며 종용했다.

일단 그의 말대로 책을 가방 안에 넣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의문문으로 감사를 표했다.

생각해 보면 모른이 내게 이런 걸 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잡아 족치면 족쳤지.

일단 주니까 냉큼 받기는 했는데 도대체 왜 준 거야?

“그래. 열심히 하거라.”

모른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지팡이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걸어 나갔다.

마침 열차가 정차해서 예술적인 타이밍으로 퇴장했다.

아니, 이유라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금방 가 버린다고?

혹시 책에 폭탄 주문이라도 설치돼 있나?

나는 슬며시 책을 다시 꺼내 살펴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치 꿈만 같았다.

살렘부터 시작해서 끝에는 모른까지.

나는 크롬웰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 * *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아카데미는 여전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바깥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카론의 말대로 주말 안에 복귀에는 성공했네.

‘배고파.’

열차에서 간단한 요기를 채웠지만 하루 종일 먹은 게 그것밖에 없어서 배가 고파 왔다.

하지만 품에 안고 있는 가방을 위해서라도 잠시 배고픔을 참았다.

기숙사 방에 돌아온 나는 이내 가방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보물을 얻었더니 보물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가 않았다.

‘이럴 때는 니켈한테 맡기면 되지.’

그 전에 진화부터 해 보자.

덜그럭.

곧바로 소환된 니켈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니켈.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는 없어?”

그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근엄하게 허공에 글씨를 적었다.

수련.

수련? 수련이 뭐? 어쩌라고?

니켈은 이내 나를 무시한 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진짜 한결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니켈. 일단 수련은 멈추고 진화부터 하자.”

[스켈레톤 솔저(전설)의 진화 가능성 100%]

[진화를 할 경우 66가지의 분기가 존재합니다.]

[진화를 시키시겠습니까?]

니켈이 그게 뭐냐는 듯 나를 쳐다봄과 동시에 나는 진화를 선택했다.

[스켈레톤 솔저(전설)]

[진화 중…….]

[남은 시간: 55시간 06분 12초]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래도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길수록 기댓값은 커지니까.

덜그럭.

니켈은 잠시 자신의 몸을 둘러보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해골이라 통증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진화 중에도 검술 교습이 가능하겠네.

진화를 시켜 놨으니 우선은 니켈에게 옷부터 입힌 뒤 나도 복장을 풀었다.

이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무르와 미리내를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살폈다.

가지고 온 가방을 열자 모른이 주었던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티무르랑 미리내는 조금 놔두고 이거부터 읽어 볼까?’

지금의 내 사령술 숙련도는 고작해야 초급.

거기다 겨우 스켈레톤 소환밖에 배운 게 없었다.

‘티무르는 상관없는데 페어리인 미리내는 힘들겠지.’

아마 미리내의 시체에 스켈레톤 소환을 사용하면 100에 99의 확률로 실패할 게 눈에 보였다.

차라리 육체가 아예 없어지는 밴시나 고스트 종류로 소환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그래. 차라리 책부터 읽자. 시체가 발이 달려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과연 무슨 스킬이 담겨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크로맨서의 대부인 모른의 책인 만큼 평범할 리 없었다.

아마 익히려면 꽤나 고생하겠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전과 비교하면 배부른 소리였다.

‘좋아. 일단 시체들은 이 책을 독파하기 전까지 보류다.’

모른이 건넨 두꺼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 * *

“모른 할배.”

대리석으로 지어진 듯 고즈넉한 방 안에서 노인과 중년이 마주 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붉은 핏빛 차를 즐기고 있었고 중년의 남성은 기다란 의자를 불량한 자세로 차지하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살렘이 책을 읽다가 모른을 불렀다.

“뭐 좀 물어봐도 되나?”

“음? 물어보게나.”

“나한테 근면하는 나태를 찾았다는 정보를 알려 줬잖아. 그래서 내가 찾아갔고. 근데 그거 사실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거지?”

살렘이 궁금하다는 듯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모른을 쳐다보았다.

모른은 김이 올라오는 차의 향을 느끼며 한 모금 입에 넘겼다.

“왜 찾아왔나 했더니 그것이 궁금했던 건가?”

“알잖아. 나 궁금한 거 있으면 못 참는 거.”

살렘이 넉살 좋게 말하자 모른은 미소 지었다.

“글쎄에…….”

“뭘 글쎄야. 나도 바보가 아니니까 대충은 짐작하고 온 거야. 처음에는 할배 제자인 카론 때문인 줄 알았거든? 근데 마지막에 할배가 시체를 양보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살렘의 눈초리가 마치 뱀의 혓바닥과 같이 예리해졌다.

그는 모든 걸 꿰뚫어 봤다는 표정으로 모른을 보았다.

“아드리아스. 그 녀석 때문에 정보를 흘린 거지? 그 녀석을 내가 지키게 하려고.”

“허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어허. 할배. 자꾸 날 무시하는데 나 이래 봬도 현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어.”

“말은 바로 하거라. 그냥 현자가 아니라 정답을 찢는 현자겠지.”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말 안 해 줄 거야?”

살렘의 보챔이 계속되자 결국 모른이 고개를 흔들었다.

차는 어느새 식은 듯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 네 녀석의 추측이 맞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케인 크롬웰의 아들.”

살렘은 잠시 케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할배가 케인을 아꼈다는 건 알고 있어. 근데 크롬웰이랑 엮인 인연이 그게 다가 아닌가 봐? 솔직히 케인도 처음에는 제국이 억지로 할배한테 맡긴 거잖아. 게다가 그 녀석, 마법적 재능도 없어서 가르치는 데 고생하는 거 뻔히 보였고. 나라면 좋은 감정이 없었을 텐데.”

“살렘.”

“왜.”

“네크로맨서, 아니 사령술의 기원을 아나?”

“갑자기 사령술의 기원? ……불로불사 아니야?”

살렘의 대답에 모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뭐야, 그 제스처는. 맞다는 거야, 틀렸다는 거야?”

“맞았다. 하지만 주어를 말하지 않았어.”

“주어?”

“불로불사. 과연 누구의 불로불사를 원했을꼬?”

“아니, 할배. 갑자기 사령술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뭔 소리야. 지금 크롬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었어?”

“사령술의 기원은 사랑하는 이의 불로불사다.”

모른의 대답을 들은 살렘은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른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 거 참 로맨틱하네. 그래 봤자 시체나 가지고 놀면서 뭔 소리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원이 그렇다는 게야.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게 지금 이야기랑 뭔 상관인데?”

모른은 잠시 차가 담긴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낡아 버린 두 눈이 차 속에 담긴 회한을 읽어 내려 애썼다.

“사랑하는 이가 죽게 되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되돌리고 싶지. 비록 그게 생전의 모습과 다르다 하더라도.”

“……혹시 할배 아까부터 자기 얘기하고 있는 거야? 할배가 네크로맨서가 된 이유?”

“허허. 글쎄. 이제는 잘 모르겠군.”

모른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살렘은 그런 모른을 보고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대충 케인 녀석 말고도 크롬웰이랑 뭔가 인연이 있었다는 거로 알고 있으면 되지? 알았어. 어차피 나도 이번 일로 재미 좀 봤으니까 정보를 흘린 할배를 탓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려 할 때 모른이 새로운 차를 찻잔에 따르며 물었다.

“나도 한 가지만 묻자꾸나. 그 아이는 어땠느냐?”

“아드리아스? 아주 별난 놈이지. 할배도 봤을 거 아니야? 난 아직도 그 새끼가 지 심장 근처를 찌르면서 웃을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케인의 아들이 그렇게 장성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순둥이였던 케인 녀석이 봤으면 깜짝 놀랐을 텐데 말이야. 흐흐.”

살렘은 아드리아스를 생각하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드리아스. 그 새끼는 아마 나보다 더한 미친놈이 될 거야. 그때가 벌써부터 기대돼.”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