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흑마법 그리고 죄악(peccata)
마나에는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
사용하는 인물의 성향이나 성격, 주로 사용하는 기술 따위에 따라 성질이 변한다.
만약 원소 마법, 그중에서도 화염 계열을 주로 사용한다면 그 마나의 성질도 점차 불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재능이 없는 계열의 마법을 주야장천 사용하면 마나의 성질이 그 틀에 박혀 망캐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특화 마법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검사들도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검술을 익히고 싶어 했다.
물론 타인은 알 수 없고 자신만 그 성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왜 하필 지금 생각이 났냐면…….
‘마나가 감응하고 있어.’
최근 들어 꾸준히 니켈을 소환한 탓에 내 마나의 색감도 점점 칙칙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 근처에 다가서자 내 칙칙한 마나가 요동치고 있었다.
흑마법을 익힌 것 자체가 처음이라 이게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경험은 몇 번 있었다.
검사 캐릭터와 마법사 캐릭터, 모두 겪었던 일로 강력한 A급 아이템의 근처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싶어 함께 온 조원들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나만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마을 입구에서 여전히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만 살피고 있었다.
‘흑마법과 관련된 아이템인가?’
이 정도의 현상을 만들어 내는 아이템이라면 필시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
단지 의외인 것은 그런 아이템의 소재를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명성을 지닌 아이템들은 전부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쉽게 생각하고 왔는데 보통 일이 아니네.”
“저주인가?”
다시 한 번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마법사인 내게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아까처럼 나도 당장은 뭔가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괜히 흑마법이 어쩌네 하며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한발 뒤로 물러섰다.
정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 먼저 말하면 괜히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조그만 꼬투리도 남길 수 없었다.
내 대답에 실망했는지 모두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특히 크리스토퍼는 혀까지 차며 도움이 안 된다는 식으로 투덜거렸다.
“일단은 아무나 붙잡고 멈추게 해 보죠?”
“그러다 전염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잖아.”
결국 하잘의 말이 옳다고 느껴져 마을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진입한 순간부터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정신 조작 마법?”
내가 중얼거리자 모두 멈춰 섰다.
“마법인가요?”
“어느 정도 마나를 다룰 수만 있다면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마법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하지 않다니요?”
“마을 하나를 덮을 만큼의 정신 조작 마법을 사용하는 건 보통의 마법사가 할 수 없습니다. 마법진이나 아티팩트의 도움이 없다면 대마법사라 불리는 이들도 몇 날 며칠씩, 그것도 이런 광범위로 펼칠 수는 없습니다.”
내 말에 크리스토퍼가 끼어들었다.
“이게 몇 날 며칠씩 지속된 건 어떻게 아나?”
“저들의 상태를 보고 알았습니다.”
내 말에 크리스토퍼는 지나가던 사람 하나를 붙잡았다.
붙잡힌 남자는 두 눈이 충혈된 채 고통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는데 잡혔음에도 몸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상태가, 심각하군.”
그의 말대로 남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발은 하도 춤을 추다 보니 피투성이가 되어 검붉은 딱지가 붙은 상태였고 몸도 성해 보이지 않았는데 비쩍 말라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건 한 달 전부터입니다. 설마 한 달 동안이나 이런 상태이지는 않을 텐데요? 그랬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죽지 않게끔 관리를…….”
거기까지 말한 나는 이게 흑마법의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음을 판단했다.
굳이 죽지 않게 관리를 하며 이 상태로 놔둔다?
상대의 목적이 뭔지 대충 감이 왔다.
다름 아닌 내가 흑마법사이기에 짐작이 가능했다.
“아드리아스 학우?”
“이거 아무래도 저희끼리는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흑마법인 것 같습니다.”
“흑마법?”
흑마법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그 조용하던 비비안은 물론이고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만 보던 아이비까지 놀랐다.
“물론 이 상황이 기괴하기는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까?”
“정황입니다만, 흑마법의 힘의 원천 중 하나가 강렬한 감정입니다. 그중에서도 음의 감정이죠. 물론 시전자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흑마법이 비난받고 금기시되는 이유는 외부의 감정에서도 힘을 불러 모은다는 점이죠.”
“그 말의 뜻은 이 상황이 지금……?”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만 마을 사람들의 감정을 억지로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써먹지 못하게 되면 생명도 거둬 가겠죠.”
이건 단순히 흑마법 아이템의 문제가 아니었다.
던전 같은 곳이 아니라 평범했었던 마을인 만큼 분명 배후가 있음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건 분명 게임 속 아드리아스도 이미 겪었을 사건.
근데 아드리아스나 조원들은 멀쩡하게 게임 시작 후의 시간에서도 돌아다녔다.
게다가 이런 커다란 일을 겪었다는 내용도 없었다.
만약 내가 아닌 진짜 아드리아스였다면 조용히 묻혀 갔을 사건이라는 소리.
어디선가 나비효과가 발생했다.
천천히 오늘의 기억을 되짚어 나가자 나는 문득 어떠한 결론에 다다랐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볼로릭 남작이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군.’
볼로릭 영지에 들어서고부터 나는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단 한 번 의견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건 곧바로 마을로 향하자는 것.
내 의견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쯤 영주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임 속 아드리아스는 아마 그대로 영주성에서 쉬었겠지. 그리고 다음 날 마을에 방문했고, 그 뒤 무난하게 사건을 해결했다.’
물론 해결된 사건은 꾸며진 가짜일 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무관할 것이다.
아마 볼로릭 남작이 하룻밤 새에 미리 사건을 은폐했겠지.
그렇게 따지면 집사가 우리를 붙잡으려 한 것도 이해가 간다.
‘굳이 용병을 고용하려 한 것도 흑마법에 쓰기 위함이었나? 그러다 뜻하지 않게 우리가 의뢰를 받아들인 거고?’
정확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이 마을의 실체를 봐 버린 이상 우리에게도 위기가 닥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흑마법사를 잡으면 되겠군.”
“아이비 조교님. 흑마법사와 관련된 일이니만큼 도움이 필요할 듯한데.”
“하아, 하필이면 이런 좆같은 일에 꼬이냐.”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잘의 부탁에 비록 투덜대기는 해도 아이비가 도와줄 의향을 드러내자 한시름 덜었다.
적어도 그녀가 나서는 이상 목숨이 위험해지진 않겠지.
‘제일 좋은 방법은 의뢰를 포기하고 원군을 부르는 건데.’
분위기를 보자 아무래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다 함께 뭉쳐 다니며 수색을 시작했다.
“우선은 지주의 집부터 찾아가 보죠.”
우리는 주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주의 집으로 보이는 저택으로 향했다.
역시 지주는 지주인 모양인지 이런 시골에서도 꽤나 비싸 보이는 대저택이었다.
주변 경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입구는 잠겨 있었지만 크리스토퍼가 가볍게 검으로 갈라내고 들어갔다.
넓적한 정원 끝에 저택이 있었는데 정원은 관리가 안 된 지 시간이 좀 흐른 듯 잡초가 무성했다.
“진입합니다.”
하잘의 신호와 함께 저택의 문을 열었다.
“허…….”
크리스토퍼가 나지막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곳에는 저택의 하인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마치 미라처럼 비틀어진 채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이걸로 확실하네. 흑마법의 소행이야.”
하잘이 말하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비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A급 흑마법 아이템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한데 거기에 흑마법사가 직접 사용한다면 그 파괴력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흑마법사의 수준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게임 중반까지 성장한 카론 디플렌 정도의 위력이지 않을까 짐작이 되는데 아마 아이비만 아니었어도 모두 버려둔 채 도망갔을 테지.
‘믿는다. 아이비 클레어.’
저택을 샅샅이 훑어본 우리는 결국 지주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시체를 제외하고는 다른 흑마법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저택에는 뭐가 더 없나 보군요. 다른 곳을 수색해 볼까요?”
“하잘.”
“응? 비비안, 왜?”
“밖에.”
저택 2층의 집무실에 있던 우리는 비비안의 손짓에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게 뭐인가.”
“아, 씨발. 미치겠네.”
그곳에는 수많은 주민들이 저택 아래에 모여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무슨 호러 영화냐. 누가 흑마법사 아니랄까 봐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생각해 보면 나도 흑마법사인데.’
어찌 됐든 사방을 포위한 듯 둘러싼 주민들로 인해 조원들은 기가 질린 듯 말문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일단 나가겠습니다.”
하잘이 선두를 서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춤을 추는 주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크윽.”
마치 조종을 당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퍼가 몸을 날려 사람들을 밀어냈다.
“비비안! 마법사를 지켜라!”
그때였다.
펑! 펑! 푸확!
“으억!”
사람들의 몸이 폭탄처럼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몸으로 사람들을 막고 있던 크리스토퍼는 피투성이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크리스!”
방심한 틈에 일어난 공격이라 피해가 컸다.
하잘이 황급히 다가가 온몸에 부상을 입은 크리스토퍼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미처 뭘 할 새도 없이 아이비가 나를 업었다.
“따라와라! 일단 탈출이다.”
아이비가 다시 집무실로 들어가 창문을 깨고 몸을 던졌다.
그녀는 나를 업고도 가뿐하게 바닥에 내려앉고는 주민들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뒤를 이어 비비안과 크리스토퍼를 업은 하잘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주민들을 차마 공격하지는 못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스.’
나는 업힌 상태로 바닥의 마찰력을 없애 주민들을 넘어트렸다.
그리고 어스 실드를 벽처럼 세워 그들의 추격을 방해했다.
“야. 아다 마법사.”
“왜요.”
“흑마법사 위치는 알 수 있겠어?”
“잠시만요.”
아드리아스의 기억을 떠올려 기초적인 마나 배열을 생각해 냈다.
마나 디텍트라는 기술인데 마법사로서는 아주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였다.
나는 생각해 낸 대로 마나를 대기 중에 퍼트려 마치 그물처럼 엮어 내려 노력했다.
‘졸라 힘드네.’
안 그래도 급박한 상황이라 힘들었지만 전생의 나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작전을 수행해 보았다.
침착함을 되찾고 천천히 마나의 그물을 짰다.
그리고 이내 그물에 뭔가가 걸린 듯 펄떡였다.
아무래도 상대의 마법이 A급 흑마법 아이템으로 시전되는 건지 내 칙칙한 마나가 순식간에 아이템의 기운을 낚아챘다.
낚아챈 마나의 그물은 주민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마나 간섭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했고 그 마나 간섭을 실처럼 따라가자 특정한 위치가 파악이 됐다.
‘상대도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는 아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
금세 위치가 파악되는 걸 보면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별 볼일 없는 상대인 모양이다.
“9시 방향! 여기서 9시 방향 대략 600미터!”
“좋아! 잘했어, 아다 마법사!”
날 업은 아이비는 위치를 듣자마자 이전과는 다른 폭발적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랐는지 뒤에서 쫓아오던 조원들과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나와 아이비는 어느새 어느 민가의 앞까지 도착했다.
“어디야?”
“이 집인 것 같습니다.”
“일단 내려놓는다.”
아이비는 나를 내려놓고 허리에 맨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
안으로 들어간 아이비가 급하게 멈춰 서는 게 보였다.
『가엽구나, 가엽구나, 가엽구나, 가엽구나, 가엽구나.』
『마치 불길 속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아, 같아, 같아, 같아.』
그리고 갑작스러운 공명음과 함께 집 주변이 칠흑 같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함정……!”
당했다.
하지만 후회는 늦었다.
이미 아이비와 집을 통째로 집어삼킨 검은 결계는 동그란 반원 형태로 완성이 된 후였다.
‘어디지? 이게 함정이었다면 술사는?’
아이비의 걱정이 조금 되기는 했으나 나는 그녀를 믿었다.
아마 무사히 빠져나오겠지.
지금은 나부터 걱정해야 할 때였다.
주변을 다급히 둘러보며 다시 마나 디텍트를 사용하려 하자 또 한 번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니, 뜻이니, 뜻이니.』
『곧 만물은 ‘나태’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을지어다, 지어다, 지어다.』
‘나태.’
허공에서 들려오는 말에 상대가 가진 아이템을 짐작하며 속으로 경악을 참아 냈다.
평범한 아이템은 아닐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무려 ‘죄악’과 관련된 아이템이었다니.
이 게임의 이름은 ‘죄악(peccata)’
고로 메인 스토리 최종급 아이템의 등장을 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