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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7화 (1,017/1,021)

특히 김희찬 부사장은 김현탁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실상 이 사태를 계속 우려한 채로 경고한 사람이 김현탁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구체적인 이유를 대지는 못했다.

그저 최민혁 실장이 바보가 아닌데, 하는 짓이 수상하다 정도였다.

당시 한 말은 정말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차세대 이동 통신 이야기가 나온 후에 상황이 달라졌다.

패킷 기술 때문이다.

이 기술이 IP 시티폰과 겹친다.

그 탓에 그나마 있던 IP 시티폰 기술의 강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게 앞으로 IP 시티폰 사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고등학생 정도의 지능만 있어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몇 년 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기업 경영자가 이걸 예측 못 할 리가 없다.

그러니 표정이 좋으면 이상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그런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DL 그룹의 내부 사정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TRS 이야기는 꺼내기도 싫었다.

“제가 급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무래도 KD 통신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서 그렇습니다.”

김희찬 부사장이 망설이다가 결국 푸념을 내놓고 말았다.

“그건 최 부회장님이 오히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차세대 이동 통신이 정말 문제이니까요.”

“오해입니다. 민혁이 그놈이 저에게 귀중한 정보를 알릴 거로 생각합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그 피도 피 나름이죠. 민혁이 그놈과 저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는 안 보입니다만?”

최문경 부회장은 단호한 김희찬 부사장의 지적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아는 김희찬 부사장은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

이번 차세대 이동통신 일로 단단히 분노한 것이었다.

‘아니, 그게 당연한 건가?’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동통신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까스로 출시한 CDMA 사용자 증가 폭이 그 증거입니다. 내년이나 되어야 그나마 사용자가 백만을 돌파해서 그럭저럭 쓸 만하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차세대 이동통신이라뇨? 그건 개발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4~5년은 족히 걸립니다!”

“제가 들은 정보와는 다르군요. 이미 테스트 플랫폼을 만들어서 방향성까지 정했고, 미국 퀄컴도 긍정적이라는 소리가 있어요. ETRI는 아예 따로 인원과 기술을 할당했고 말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단호하게 반박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격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비싼 CDMA 단말기 가격이다.

과거 이 고가의 장비를 일반인에게 먹혀 들어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김희찬 부사장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 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 사업을 깊이 파보았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영업과 통신비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되니까.”

“…글쎄요. 그건 쉽지가 않을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울러서 내놓은 이야기는.

“요즘 중국에서 IP 시티폰의 인기가 절정입니다. 200만 명이라는 사용자 숫자가 그 증거입니다. 중국 인구가 12억이 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그중에 1%만 고려해도 1억 2천만 명입니다. 1억 2천만 대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마치 자신이 CDMA 단말기 영업 사원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했다.

IP 시티폰의 장밋빛 미래를 말한 것이었다.

김희찬 부사장의 안색이 다행히 좋아졌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중국에서 나온 성과 때문이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상황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김현탁 사장의 표정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도 이 자리에서 내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KD 통신 사업을 정리하자는 이야기도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먹힐 것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자신이 기대한 분위기와는 달라서 몇 번 망설였지만 결국 침묵했다.

그는 이보다 최문경 부회장의 개소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내심 부아가 치밀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온 목적 자체는 DL 그룹이 KD 통신에서 철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손 떼기도 쉽지는 않지. 천문학적인 손실을 고려해야 할 테니.’

손실이 천문학적인 것은 이유가 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후발 주자로 투자를 늘렸는데, 덕분에 KD 통신 대주주들은 각자 자기 지분을 지키기 위해서 투자를 더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최민혁 실장이 계속해서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만약 KD 통신이 박살이 나면 손실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투자 손실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은 손실 부분보다는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행히 그의 노력은 꽤 먹혔다.

굳은 DL 그룹 오너 일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승부는 나기 전에 알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PCS 사업이 유리할 것이라 누가 장담합니까. 매출 현황만 본다면 IP 시티폰이 더 유리합니다!”

* * *

“…사장에서 사임하고 싶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을 따라 나온 김현탁 사장이 한 황당한 이야기를 단호하게 무시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KD 통신은 지분 비율이 참 애매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가장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대주주들 역시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

김현탁 사장은 이런 KD 통신의 문제에도 지금까지 회사를 잘 이끌었다.

불협화음도 없었고 말이다.

김현탁 사장의 놀라운 능력 덕분이었다.

때문에 지금 그가 물러나서는 곤란했다.

그런데 김현탁 사장은 진지했다.

“제 사임을 받아주지 않으면, KD 통신 현황을 다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이, 잘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외형적인 숫자 200만 명은 의미가 없어요. 실제로 매출에 도움이 되는 숫자는 얼마 안 되니까요. 더욱이 사용자 증가 속도가 확 줄었습니다.”

“그거야 CDMA 사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CDMA는 얼마든지 전화를 하거나, 받을 수 있어요. 태생부터 절름발이인 IP 시티폰 사업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허, 그건 어디까지나 다양한 의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글쎄요. 제가 파악한 실제 사용자 현황 결과와는 다릅니다. 저도 솔직히 중국 IP 시티폰 매출 현황을 분석하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으니까요.”

“…….”

최문경 부회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현탁 사장 말이 맞았다.

바로 실제적인 매출과 앞으로 예상 매출 말이다.

사실 이 숫자는 직접 서비스해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실제로 해보고 나서야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나마 IP가 붙어서 다행이다.

그냥 시티폰이라면 이런 고민도 할 것이 없었다.

그는 그래서 더 한 사람을 증오했다.

‘민혁이 이 죽일 놈의 새끼 짓이야.’

최민혁 실장이 KD 통신 대주주가 도중에 집착을 버리지 않도록 교묘하게 손을 써 놓은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때 최민혁 실장의 반응이 좀 많이 이상했다.

IP 시티폰 특허를 빼앗긴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때 보인 눈물이 진정한 악어의 눈물이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지금 이 현실을 예상했다면 말이다.

속으로 배꼽을 잡고 웃었을 것이다.

‘정말일까?’

그런데 김현탁 사장은 최문경 부회장 차량에 같이 탑승하면서 말했다.

“솔직히 전 이 계획을 처음부터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조차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 회장님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거야…….”

“휴, 말도 마십시오. 우리 할아버지는 통신 산업에 미쳐서 정신병자 같았으니까요. 그건 최용욱 회장님도 비슷하죠? 아, 죄송합니다. 최용욱 회장님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는 새삼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담배를 베어 물었다. 최문경 부회장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그나마 담배 한 연기를 들이마시고 나자 겨우 이성을 차렸다.

“솔직히 최문경 부회장님이 더 밉습니다. 부회장님이 만약 최민혁 실장의 악의를 알았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운전수에게 출발을 명령한 후에 김현탁 사장을 잠깐 쳐다보았다.

“…김현탁 사장은 이 사업이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 최용욱 회장님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 정리했습니다. 그 시점을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힙니다. 더욱이 타이거 펀드가 차명으로 몰래 투자한 자금을 이미 회수 중입니다. 그 지분을 받은 헤지 펀드들은 또 뭔지. 월가 놈도 다 똑똑하지 않더군요. 그건 아시죠?”

“…….”

최문경 부회장은 움찔했다. 그도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다음 타자는 오성 전자일 겁니다. 설마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이런 상황을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다 알 겁니다. 다만 지금 자금 회수하면 손실이 너무 커서 망설이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지분 매각 대상을 찾고 있든지 말이죠.”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KD 통신이 이미 침몰 기미를 보이는 거대한 타이타닉호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심지어 눈치 빠른 이들은 도망칠 궁리만 하는 중이라는 것도 말이다.

김현탁 사장은 어느 정도 설득했다고 판단하자 온갖 협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이 KD 통신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냈다.

최문경 부회장은 김현탁 사장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를 끝낸 김현탁 사장이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상황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안 좋았다.

‘젠장맞을.’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이전의 다른 사건들처럼 지켜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걱정되는 사람이 또 있어.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어. 그런데 이쪽은 연락하기가 좀 그래.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 * *

최문경 부회장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은 이미 KD 통신 사업을 내사 중이었다.

다만 그도 KD 통신 철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를 못했다.

정확히는 현실을 외면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KD 통신이 떠안은 막대한 적자였다.

특히 중국 시장에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IP 시티폰 설비를 과하게 설치했다. 그 때문에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 설비 투자 과정에서 추가로 들어간 자금이었다.

중국 부동산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베이징 같은 도심을 중심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많이 둔 것이었다.

물론 중국 시장의 미래를 생각하면 부동산, 건물 투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안 그래도 한국 내수 경제가 흉흉한 상황에서 그건 그렇게 좋은 투자가 아니었다.

이 투자까지 포함하면, 오성 전자도 쉽게 철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 권태성 실장의 현황을 살피면서 피식 웃었다.

“우리 부회장님이 오성 전자의 권 실장은 만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김명준 과장은 조성돈 팀장과 같이 최민혁에게 보고했다.

“아무래도 오성 전자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 같습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오히려 의심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IP 시티폰 매출이 안 좋죠.”

“지금까지 투자가 들어간 금액만 이미 2조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매출 부진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조가 큰돈 같아도 KD 통신 대주주가 샐로먼 브러더스, 오성 전자, 최문경 부회장, 한부 그룹인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크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한부 그룹이 낀 이상 한국 정부가 은행 쪽의 자금을 지원해 줬을 테니까.

최민혁은 ‘한부 그룹’과 관련된 투자 이력을 살피면서 그냥 서류를 덮어버렸다.

‘분식 회계 장부겠지. 가만, 한국 정부도 이번 일에 엮여 있는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어. 이게 중국하고 연관된 사업이니까.’

그는 자신의 전생 기억에는 없던 사업이라서 관자놀이를 눌렀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예측도 불가능했다. 이건 그냥 손을 떼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액수가 적은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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