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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8화 (1,018/1,021)

“하지만 누적된 적자까지 고려하면, KD 통신은 독자 생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건 더 이상하잖아요. 대주주가 그런 정보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한부 그룹 때문에 더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업 자체가 최민혁 실장에게 한 방 날렸다는 의미도 있으니.”

최민혁 실장은 ‘한부 그룹’ 이야기를 듣자 다시 분식 회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한부 그룹. 이런.”

“왜 그러십니까?”

“그게…….”

최민혁 실장은 한부 그룹과 엮여 있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특히 청와대와 관련된 미묘한 진실을 말이다.

‘꼬였네.’

그도 한부 그룹의 경우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최민혁 실장은 이번 일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쓰더라도 대놓고 손을 쓸 수는 없었다.

‘뭐, 어차피 그러려고 했으니까.’

대놓고 낄낄 웃는 행위는 조심해야 했다.

“그놈의 탐욕. 그렇다고 치더라도 손실이 너무 커서는 곤란해요. 특히 오성 전자와의 협업을 위해서는 제동을 걸 필요가 있어요.”

“네?”

“오성 전자는 다른 투자자와는 달리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투자금을 정리할 수가 있어요. 권태성 실장에게 그런 정보를 한번 흘려보세요. 아, 그리고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에게는 권태성 실장이 다시 KD 통신 사업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정보도 넘기고요. 모르기는 몰라도 참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될 겁니다.”

‘아니면 말고’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번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서 최문경 부회장과 DL 그룹 고혈을 짜낼 생각이었다.

그게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복수니까.

‘통쾌하지. 정말 상쾌하다니까.’

“…알겠습니다.”

* * *

오성 전자는 메모리 가격 하락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건 수요 하락에 따른 경기 사이클 변화에 따른 일이라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오성 전자, 아니, 오성 그룹은 전사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그 대안 중의 하나가 D램 기술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일본이 1GD램을 발표한 덕분에 오성 전자는 더 정신이 없었다.

하나 다행이라면 오성 전자는 일본 업체가 발표한 건 단순히 256MD램을 4개 묶어 놓은 것이라 안도했다.

하지만 이미 고속 CPU에 대한 포문을 연 곳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고속 CPU 사업부를 인수한 덕분에 이 분야 쪽이 시끄러워졌다.

오성 전자는 덕분에 이 고속 CPU 시장 쪽을 파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는 CPU와 메모리 용량 증가 문제였다.

결국 오성 전자는 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다름 아닌 이 새로운 산업 전선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4~5년을 내다보면서 양산과 새로운 설비를 찾아다녔다.

결국 이 사업은 주문형 반도체와도 연관이 있었다.

그로서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메모리 가격 하락에 따른 대응책이 다름 아닌 인수합병이었다.

바로 콜린스 사업이다.

이제는 이 인수합병에 진지하게 매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중에 터진 사건이 차세대 이동통신 이슈였다.

정말이지 생뚱맞은 이슈였지만.

‘최민혁 실장 솜씨군.’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과 가장 빨리 대응한 인물로 이제는 최민혁 실장의 수법을 잘 알았다. 그는 때문에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아니, 그럴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KD 통신이 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과 엮여 있었다.

‘미치겠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늘 최민혁 실장을 조심했다.

그런데 결국 또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사상 최대의 손실을 볼 상황이었다.

그는 부랴부랴 기획 1팀, 2팀, 3팀을 비롯한 가용한 모든 인력을 이 사업 검토에 투입했다. 불만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실제로 이들 역시 뒤늦게야 오성 전자가 KD 통신에 투자한 자금 내역을 확인하자 모두 진지하게 매달렸다.

다만 결과는 다른 KD 통신 주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애매한 상황.

지금은 KD 통신 투자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손실이 너무 컸다.

권태성 실장은 사안을 검토할수록 패닉에 빠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할까.

다른 대주주와는 달리 권태성 실장은 KD 통신이 어떻게 될지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눈치 빠른 임권수 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핸드폰 사업 팀 이야기로는 IP 시티폰은 존립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거야 그쪽 사업 입장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겠지.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신할 수는 없어. 카드를 까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잖아!”

권태성 실장의 바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지금은 딴소리를 해서는 안 되었다.

“아, 네.”

임권수 부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던 권태성 실장이 친 고함에 화들짝 놀라서 눈치를 봤다.

그건 다른 기획 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이 고약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이 문제의 시작점인 차세대 이동통신을 걸고넘어졌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왜 갑자기 차세대 이동통신 카드를 꺼낸 거야?!!”

다행이라면 해외 사업 쪽을 주로 담당하는 2팀장인 강석영 부장이 진실의 일부를 알았다.

“에플 지분 매각 때문에 난리가 났지 않습니까. 미국 월가의 여론도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 법원이 나선 것이 그 증거입니다. 물론 알아서 자진 사임하기는 했지만.”

“설마 미국 여론을 의식해서 차세대 이동통신 카드를 꺼냈다고?”

“안 그래도 스티븐의 기조연설과 CES 전시회도 있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면, 결과가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도 미처 간과한 결과였다.

에플 지분 매각에 대한 미국 여론이 생각보다 더 나빴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 때문에 손실을 본 이들 대다수가 최민혁 실장에게 치를 떨었다.

그런데 차세대 이동통신 카드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자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다.

강석영 부장은 확실치 않은 어조로 말했다.

“제가 아는 월가 투자자의 이야기로는 최민혁 실장이 차세대 이동통신 이권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 역시 이들 세력과 관련되어 있으니.”

관련된 것이 아니라 대주주로서 한 발 다들 걸치고 있었다.

사실 이건 최민혁 실장 파벌이거나 최민혁 실장 반대 파벌이 다 똑같았다.

그들 대다수는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매각에 치를 떨었다.

“…….”

권태성 기획실장은 근거가 확실치 않은 강석영 부장의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최민혁 실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는 그제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KD 통신에 대한 투자를 회수하려면 지금 해야 했다. 물론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분을 사들이려는 이가 있을까? 그것부터가 문제구나.’

그리고 때마침 한 사람이 찾아왔다.

“…최문경 부회장님이 지금 그룹 본사 1층에 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권태성 실장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자신이 비록 오성 전자의 기획실장이기는 하지만 상대는 KM 그룹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문경 부회장이 이번 일에 대해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이야기겠지.’

“…들여보내요.”

* * *

오성 전자 내의 기획실장실은 다른 임원 사무실과는 달리 담백했다.

그 흔한 사무실 물품도 별로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장서 수십 권이 있을 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일단 기획실장실 분위기에 혀를 내두르면서 맞은편에 앉은 권태성 실장의 눈치부터 살폈다.

그가 이 자리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성 전자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급하게 온다고 그 정보 소스를 확인하지 못했다.

정보 출처가 애매하지만, 그 정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오성 전자의 반응도 확인해야 했다.

‘젠장맞을.’

문제는 자신이 괜한 말을 꺼내서 부스럼을 낼 수가 있다는 거였다.

“요즘 오성 전자는 어떻습니까?”

“힘들죠. 메모리 가격 하락 때문에 그룹 전체가 영향을 받으니까요.”

정확히는 오성 그룹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하는 중이었다.

오성 전자의 성장 엔진 중에 하나가 메모리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안 그래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한국 경제를 흔들었고 말이다.

사실 이 문제를 가지고 요즘 언론도 연일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바로 오성 그룹의 성장 엔진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결국 콜린스 사업부 인수는 이제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니었다.

비록 5~6년 정도가 전성기라고 예측되지만, 콜린스 사업부는 오성 그룹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굳이 부정확한 정보만 듣고도 권태성 실장에게 뛰어온 게 그런 이유였다.

권태성 실장 역시 최문경 부회장이 망설이자 그의 내심을 모를 수가 없었다.

“KD 통신 때문입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KD 통신 누적 적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사회에서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들 통신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분들이라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일단 통신 사업은 수익이 흑자로 돌아서는 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전에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새로운 경쟁 산업이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꾸 말을 돌리는 것 같은데, 혹시 우리 오성 전자가 KD 통신 투자를 철회할지를 알고 싶은 겁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것이 아니라…….”

“…말을 빙빙 돌린다고 진실을 감추기는 어렵습니다. 당장은 그 어떤 답변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차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검증을 한 것도 아니니까.”

“아, 그렇죠. 차세대 이동통신 이슈가 찌라시일 수도 있으니.”

“우리 오성 전자는 한 번 결정한 투자를 단순한 이유로 철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이 정도 답이면 되겠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허리를 숙이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KD 통신을 주도한 세력이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였기 때문이다.

한부 그룹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숟가락을 올린 것에 불과했다.

한부 그룹 뒤에 있는 정치 세력을 위해서 말이다.

다만 이 한부 그룹의 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바로 KD 통신이 실패한다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성 전자가 투자를 철회하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당장 IP 시티폰 통신 장비 수급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권태성 기획실장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는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몸을 돌렸다.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가볍게 지은 미소를 곧 떨쳐 버렸다.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기획 팀 과장급 이상 직원을 다 호출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그냥 넘길 수가 없어. 최문경 부회장이 찾아온 것부터가 문제야. 저 사람이 그럴 깜냥은 되지 않아. 어쩌면 최민혁 실장이 수작을 부린 것일 수도 있어.”

“네? 서, 설마 이 일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말입니까?”

“상황이 너무 공교롭잖아. 얼핏 봐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안 그래. 누군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일어나기 힘들어.”

“안 그래도 보고하려고 했는데, 최문경 부회장이 정경수 감찰부장을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을 노렸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역공작을 당한 정경수 감찰부장이 사임했다고 합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이 고약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콜린스 사업부를 인수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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