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은 영문을 잘 몰랐지만 일단 자기 사무실 안으로 그를 데려왔다. 차창은 다 가리고, 문도 잠갔다.
“…재정 경제원 쪽에서 절 방문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대검 안의 주변 시선을 신경 써 주셨으면 합니다.”
안다.
그런데 긴급으로 위에서 내려온 지시였다.
성환수 보좌관은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는 대검 인사를 통해서 의사를 전할까 했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제가 대신 대검 감찰부장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굳은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두영 부장검사에 대한 감사 말입니다. 혹시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거야 아직 감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두영 부장검사는 주식을 통해서 생각보다는 많은 차익을 벌었습니다.”
“그거야 본인 업무와는 무관한 사업 쪽에 투자한 것 아닌가요?”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차익이 무려 100억이 넘습니다. 어지간한 전문 증권 브로커보다 훨씬 나은 성과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 그게 정말입니까?”
“작전 세력을 주도한 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으음.”
성환수 보좌관은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차피 최민혁 실장의 주변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물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박두영 부장검사 하나쯤 추가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성환수 보좌관은 완고한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의 말에 혀를 찼다. 그는 왜 굳이 자신이 이 자리에 와야 했는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윗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두영 부장검사의 투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주세요.”
“하하하, 설마 절 압박하는 겁니까? 아무리 차관 보좌관이라고 해도…….”
“그보다 더 윗선의 지시입니다. 차관님이 지시한 것이 아닙니다.”
“네?”
“원래는 검찰총장을 통해서 지시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현 검찰총장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호의적이니까요. 그러니 감찰부장님이 스스로 처신해 주면 좋게습니다.”
“그거야…….”
그도 아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래서 이번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그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버몬 연방 검사 사임 말이다.
“…설마 아니죠? 혹시 박두영 부장검사 감사는 이것으로 끝내고, 절보고 그 일에 관한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까?”
“…….”
성환수 보좌관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최민혁 실장도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에 대해서는 아직 모를 거야. 아니, 알 수도 있나. 아, 박두영 부장검사가 말할 수도 있구나. 하, 이거야 원.’
그는 곰곰이 고민했다. 정경수 감찰부장이 자리를 지켜서는 곤란했다. 최민혁 실장 안테나에 바로 잡힐 테니까.
서로 좋게 풀어가려면 희생양이 필요했다.
정경수 감찰부장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원래 정 감찰부장님의 사임에 대한 안건은 없었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리에 붙어 있는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과 관련 있는 박두영 부장검사를 이미 건드렸지 않습니까? 어차피 최민혁 실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정경수 감찰부장은 그제야 현실을 깨닫고는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그는 식은땀마저 흘렸다. 이제까지의 일도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한 일이다. 독단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위에서 최민혁 실장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 태도를 싹 바꾼 것이었다.
그 자신은 토사구팽당하고 말이다.
‘씨팔.’
“…사임 압박이라. 한국 언론이 이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전 사임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요컨대 알아서 처신하란 조언일 뿐입니다. 다만 이 자리를 고수하면, 최민혁 실장의 역공을 감수하셔야 합니다. 대검도 감찰부장님을 돕지 않을 겁니다.”
“으음.”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버몬 연방 검사 사임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한편으로 비웃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정작 버몬 연방 검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기 일이 되니, 이제야 버몬 연방 검사가 왜 사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자신이 최민혁 실장을 노린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정부의 윗선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환수 보좌관을 째려봤다.
“좋습니다. 제가 그만둔다면 그 이상의 보복은 없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최민혁 실장도 그 이상은 원치 않을 겁니다.”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은 대략 10분 가까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숨도 쉬고 말이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사임하고, 변호사 생활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여러 가지 변수를 궁리해 봤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도 자기 혼자 최민혁 실장과 싸우는 것은 그냥 자살특공대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마무리 잘 부탁합니다. 아, 문제없이 처신한다면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겁니다. 변호사도 변호사 나름이지 않습니까?”
그리 말한 성환수 보좌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사무실을 나가고 말았다.
* * *
박두영 부장검사는 대검 감찰부장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심호흡까지 했다. 아무리 그라도 대검 감찰부장은 부담스러웠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부탁한 일도 있어서 설마하니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도 대검찰청 인사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아서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은 정부 측과는 그다지 좋은 관계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대검 감찰부장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일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감찰부장 수행 검사의 표정이 저자세인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 제가 방문하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 말입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도 저자세를 취했다. 그 역시 괜한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행 검사는 여전히 사무실의 눈치만 봤다.
이전에 자신을 만나서 그들이 보인 반응은 피의자를 앞에 둔 검사 딱 그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안에서 키폰으로 연락이 왔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의아한 얼굴을 한 채 안내를 받아서 정경수 감찰부장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사무실 안은 마치 싸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엉망이었다.
한쪽 벽면은 마치 이사라도 하는 것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정경수 감찰부장은 힐끗 박두영 부장검사의 얼굴을 살핀 후에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저 묵묵히 사무실 내의 자기 짐을 상자에 담았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영문을 몰라서 멍하니 정경수 감찰부장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정경수 감찰부장이 툴툴거렸다.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 꼴이 고소한가 봅니다.”
“네? 그게 무슨…….”
“설마 몰랐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정말 잘 모릅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경수 감찰부장은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욕설이라도 할까 하다가 탄식하고 말았다. 그는 이 일에 박두영 부장검사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박두영 부장검사가 자신을 자를 수는 없었다.
그 윗선.
‘최민혁 실장이겠지.’
정경수 감찰부장은 직접 권력의 쓴맛을 경험하고서야 최민혁 실장의 위치를 깨달았다. 그런데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이제 한 번 경험했는데, 대검찰청 감찰부장 자리를 그만둬야 한다니.
인사 명령서가 내려오기 전에 스스로 나가는 것이 훨씬 나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박두영 부장검사의 심사라도 알고 싶어서 냉랭하게 말했다.
“…이 주 후에 사임하는 터라 짐을 챙기는 중입니다.”
이 주 기간은 밀린 휴가를 한 번에 몰아서 써서 그랬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그는 정말 매우 놀랐다. 최민혁 실장에게 부탁한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런 부탁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정경수 감찰부장도 어쩔 수가 없었다. 가능하면 빨리 자리를 비우는 것이, 정확히는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확실하게 굽힌 자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박두영 부장검사님을 감사한 것은 자의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윗선의 지시가 있었으니까요.”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정치 수사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이미 제가 책임졌으니, 조용히 사임으로 끝냈으면 합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정경수 감찰부장의 말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면 제 감사는…….”
“혐의없음으로 종결 날 겁니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제야 기이한 눈으로 정경수 감찰부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경수 감찰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싸우려면 끝까지 싸울 방법은 많죠. 하지만 그래 봐야 제가 이길 확률이 없습니다. 깨끗하게 항복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굳이 정경수 감찰부장을 더 자극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정경수 감찰부장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새삼 버몬 연방 검사의 모습이 정경수 감찰부장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 연방 쪽은 자신과 거리가 있어서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 대검찰청은 좀 달랐다.
‘그런데 이래도 괜찮을지 모르겠어.’
* * *
박두영 부장검사의 걱정과는 달리 정경수 대검찰청 감찰부장의 사임은 조용히 처리되었다.
그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기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미국에선 메이저 언론이 연일 버몬 연방 검사 사임 이슈를 터뜨린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국 언론이 왜 입을 다무는지 알 수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매각 대금 말이다.
무려 15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당장 광고가 걸려 있었다.
실제로 KM 전자 기획 팀은 최근 KM 전자 이미지 광고 때문에 언론사를 만나는 중이었다.
이 창구를 통해서 언론사에 광고가 배당될 테니.
지금 당장은 한국 언론치고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는 곳은 없었다.
최민혁 실장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다행히 피 안 흘리고 끝났네요.”
김명준 과장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검은 아무래도 부담스럽습니다.”
“설마 대검을 두려워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한국 검찰은 정치권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괜히 그들과 대립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서 압박할 수도 있으니까요.”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없는 죄까지 만들지는 않겠죠.”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가요? 그쪽은 제가 잘 몰라서요.”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대검찰청과 대립각을 세운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힘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 스스로도 죄를 많이 지었고 말이다. 그저 일방적으로 끌려다녔을 뿐이다.
죄를 지어서 처벌을 받는데, 대검찰청을 원망할 이유는 없었다.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은 사직서를 내고 조용히 물러났다고요?”
“네. 자신이 한 일이니,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흠.”
최민혁 실장은 고민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번 일에 관련된 대검찰청 라인을 다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재정 경제원의 윗선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주적은 그들이 아니라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더욱이 IMF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