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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4화 (1,014/1,021)

어차피 IMF 사태가 터지면 중앙지검, 대검찰청 역시 요동칠 것이다.

다만 이 일이 자신이 끝낸다고 해서 끝날 것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민혁 실장은 이 일을 고민하다가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기조연설 준비 내용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확인한 스티븐 말고, 이지수 박사 쪽 말이다.

특히 송도연 로봇 근황을 중심으로.

그는 이지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지수 박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물론 전화만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대안을 물어봤다.

[동영상 말인가요?]

[MPEG-2 동영상 코덱을 만든 것으로 아는데, 이미 메신저에 적용했잖아. 그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요?]

[나오기는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이지수 박사는 화들짝 놀랐다. MP3, 동영상 코덱을 이용한 방식은 구체적으로 최민혁 실장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다 그런 곳에 써먹으려고 MPEG-2 특허를 사들였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메신저를 이용한 화상 통신 서비스를 이용해서 현재 프로젝트 근황을 보여 드릴게요. 최근까지 진행한 결과를 말이죠.]

[그것도 한번 잘 정리해 보세요. 나중에 유튜브 같은 방송 형태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네? 유튜브가 뭐죠?]

최민혁 실장은 아차 싶어서 웃고 넘어갔다.

[하하하, 아니에요. 한번 보여주세요.]

[잠깐만요.]

최민혁은 물론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클린턴 행정부의 차세대 고속 인터넷에도 좀 신경을 써야겠어.’

* * *

이지수 박사는 KMBOOK의 시작점인 메신저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에는 MPEG-2 코덱을 이용한 화상 통신도 포함한다.

아직 상용화하기에는 서버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한계가 있다.

다만 한 사람과 1:1 통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동영상 화질은 640*480 화질이었다.

이지수 박사 수행원 중에 한 사람이 카메라로 동영상을 전송했다.

최민혁 실장은 덕분에 온라인 메신저로 이지수 박사가 안내하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미래의 유튜브 방식으로 말이다.

시작은 역시 SF 영화 속에 나오는, 속이 다 벌려져 있는 로봇이었다.

이전 모델과는 달리 어느 정도 규칙이 존재했다. 복잡한 전선이 엉켜 있는 것은 비슷했지만, 그 내부 구조는 꽤 정리되어 있었다.

이지수 박사는 어색한 얼굴을 한 조창호 차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조창호 차장은 첫사랑과 다시 만날 수가 있게 된 탓인지 최민혁 실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부터 했다.

[기존 모델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한 일이라서 시스템이 꽤 불안정했습니다. 여러 가지 제어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수정하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최민혁 실장에게 보여준 모델은 겉으로는 잘 동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정성이 많이 떨어졌다. 상업화를 떠나서 기능 오작동의 문제가 있었다.

당시 최민혁 실장에게 데모를 보여줄 때와 실제 결과가 실제로 많이 달랐다.

때문에 그 이후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한 것이라면 기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그다음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업데이트를 한 이 모델은 이전 모델과도 많이 달랐다.

기존 모델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해서 새롭게 정립한 것이었다.

[제어 칩을 크게 인공지능 칩, 신경 제어 칩, 관절 제어 칩으로 구분했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을 제어하는 것을 따로 나눈 셈이었다.

이 세 가지 핵심 칩은 기존에 삽질한 모든 역량을 축소해서 만든 것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손바닥에 위에 올려둔 세 가지 칩을 최민혁 실장에게 소개했다.

[이 칩은 KMBOOK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칩입니다. 인공 지능 처리와 모션 처리를 각자 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제어 칩 수준이 아니었다.

소규모 네트워크 통신 방식을 포함해서 데이터 패킷을 자유로이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된 것이었다.

기존에 없던 이 부분은 다른 한 사람이 맡았다.

다름 아닌 세계적인 통신 전문가 헬렌 박사였다.

[흠흠.]

조창호 차장은 힐끗 경이로운 눈으로 헬렌을 쳐다보았다.

[제가 만든 것은 두뇌와 모션에 한합니다. 실제로 동작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표준과 제어 칩은 헬렌 박사님이 만들었습니다. 이 네트워크 칩은 아예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내용은 생각보다 더 장황했다.

자금도 많이 들었고 말이다.

이지수 박사가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개발 비용이 ‘1억 달러가 좀 넘는다고 언급했다.

[…….]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들어간 돈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 지금 전생의 치트키를 돌려봐도 그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하면 산업용 인터페이스인가?’

산업용 로봇에 쓰이는 방식이 이와 비슷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창호 박사가 소개하는 방식은 그보다 발전되고, 안정화된 것이었다.

이 방식은 머리를 굴려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행착오.

될 때까지 해서 대충 때려 맞힌 것이었다.

이 결과는 곧 기술 표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이 부분은 최민혁 실장 자신이 도와준 것이 아니었다.

[…놀랍군요.]

이지수 박사가 슬쩍 놀라운 눈으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대단한 분입니다. 제가 기술 표준은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칩 설계를 그냥 맨땅에 헤딩해서 일궈낸 분이니까요. 비록 개발비가 많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이 기술을 무시하기는 힘듭니다.]

[…다른 쪽에 써먹을 수 있다는 건가요?]

[자동화 로봇 쪽에는 다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표준으로 삼으면, 산업화 로봇 시장도 다 먹을 수가 있고요.]

[…그쪽은 저도 잘 모릅니다. 그 분야도 할 수 있겠어요? KMBOOK하고는 거리가 있잖아요?]

[계열 분리를 해야죠. 메신저 쪽하고, 이쪽 로봇 분야 쪽은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져서 같이 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방산 쪽도 포함해서인가요?]

[…네.]

* * *

이지수 박사는 대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조창호 차장의 성과를 소개한 것과 동시에 업데이트된 로봇을 계속 소개해 주었다.

기존 모델과는 달라서 모델명이 새로 만들어졌다.

바로 KALI 2.0이다.

이 모델을 튜닝하는 공간에는 100여 명이 연구원이 달라붙어서 일하는 중이었다.

KALI 2.0가 고정된 설비에 붙어서 정신없이 작업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마치 차량을 고치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 장비 환경이 모두 작업화되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각 분야별로 6~7명의 팀이 각자 맡은 일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들 중에는 미군도 있었다.

이지수 박사가 그들이 메이런 프로젝트 소속 연구원이라는 말했다.

[KALI 2.0에 사용된 항법 시스템이 메이런 프로젝트의 하위 호환 버전입니다.]

무인 항공기 시스템에서 사용된 항법 시스템이 KALI 2.0에도 적용된 것이었다.

이지수 박사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무인 항공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제한이 있었고, 최민혁 실장의 자금을 끌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 무인 항공기 시스템은 최민혁 실장이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미국 국방성에 영향력을 뻗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 보안 문제 때문에 기묘한 한계가 존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구소 내에 송도연도 와 있었다.

송도연은 자신과 쌍둥이처럼 닮은 KALI 2.0을 앞에 두고 장난치는 중이다.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무 똑같아서 마치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서로 손가락으로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노래도 부르고 말이다.

가벼운 율동까지 했다.

이지수 박사는 다소 어색하게 웃었다. KALI 2.0의 표정은 송도연의 얼굴에서 따왔다. 그녀의 전형적인 표정을 그대로 가져와서 애니에게 적용한 것이었다.

다만 가끔은 어색한 표정도 나왔다.

하지만 대체로 송도연의 표정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

최민혁 실장은 전혀 예상도 못 한 결과물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KALI 2.0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 주변에 매달려 있는 100여 명의 연구원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연구진과 설비가 안정화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들 주변을 오가는 미군도 있었다.

입구 곳곳에 서 있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SF 로봇 영화에 흔히 나오는 연구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지수 박사는 그들 모두를 책임진 연구원이었고 말이다.

[…별일 없죠?]

이지수 박사는 자신만만하게 연구소를 소개하는 중에 들은 질문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거기 미군도 있어서요. 혹시 사고를 치지는 않습니까?]

이지수 박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과거 메이런 프로젝트를 담당한 마크 프랭클린 소령이 지금 이 프로젝트 책임자 중의 하나인데, 그는 이미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당시 메이런 프로젝트 진행할 때 이지수 박사와 미국 국방성 사이의 갈등을 말한다. 그 대립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테일러 박사는 그 갈등의 한 축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국방성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차라리 협력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최민혁 실장은 또한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지수 박사와 헬렌을 완벽하게 통제했고 말이다.

다만 미국 국방성도 최민혁 실장의 갑질에 쌓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참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런 미묘한 점까지는 몰랐다.

[이미 미국 국방성에서 딴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둘 사이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서…….]

이지수 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가 없어요. KALI 2.0에 들어가는 잡다한 부품은 메이런 프로젝트와 연동되어 있어요. 그쪽 업체 쪽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안 그러면 시간이 3~4년은 족히 더 걸립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그걸 원하시면, 다른 대안을 찾겠습니다.]

[아니에요.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죠.]

최민혁 실장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란 말을 되새기면서 혀를 찼다. 자신이 이지수 박사에게 부탁한 일은 확실히 무리가 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지수 박사가 그 일정을 당기기 위해서는 기존 메이런 프로젝트를 응용해야 했다.

그게 또한 메이런 프로젝트 완성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연구원마다 해야 할 파트가 정해져 있었다.

각 연구원은 권한 이상의 연구 과제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이지수 박사는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자레드 해리스 대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 때문에 메이런 프로젝트가 좌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덕분에 미국 국방성 역시 막대한 손실을 보았고요. 그런데 이제 가시적인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 더 헛짓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인 항공기 시제품을 한 대 더 추락시키면 됩니다!’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메이런 프로젝트 과실을 얻고 난 이후라면 다를 수가 있겠어요.]

이지수 박사는 피식 웃었다.

[최 실장님이 그걸 염려해서 사드 프로젝트를 끌어들인 것이 아닙니까? 록히드마틴은 최민혁 실장님의 제안을 계속 뒤로 미루었고, 사드 프로젝트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거야…….]

최민혁 실장은 혀를 찼다. 메이런 프로젝트, 사드 프로젝트, KALI 2.0 프로젝트 이해관계가 날실과 씨실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새삼 버몬 연방 검사가 왜 빠르게 그렇게 갈려 나갔는지 깨달았다.

[…그랬군요.]

이지수 박사는 씩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국 국방성은 절대로 우리를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차세대 이동 통신 가지고 협박하셨잖아요? 한 10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좋네요. 제가 지시하지 않더라도 스티븐의 기조연설에 문제가 없도록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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