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08화 (1,008/1,021)

그는 마침 조정수 중앙지검장의 호출을 받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혁 실장이 조용히 살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더니, 국내는 이해가 돼. 그런데 이제 국제적으로 난리인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구나.’

* * *

얼핏 생각해서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서 중앙지검에 별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부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앙지검을 비롯한 대검에서는 이미 최민혁 실장을 은밀히 내사하고 있었다.

수사를 목적으로 하는 내사는 아니었다.

이보다는 자료 수집이 목적이었다.

이유는 상부 기관에서 계속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중앙지검장으로 최민혁 실장과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여러 외압에도 배 째라고 나왔다.

“그래도 이번 일 때문에 부담을 많이 덜었어.”

“정말 괜찮겠습니까? 지검장님 인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던데.”

“상관없어. 정 안 되면 변호사 하면 돼. 그뿐이야.”

소탈한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아예 최민혁 실장 측에 선 것이었다.

다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 사태가 그 증거였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갈등도 많이 했고 말이다.

박두영 부장검사가 전해준 사실을 듣고서는 최민혁 실장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자네 조언처럼 최민혁 실장은 다른 대기업 오너와는 많이 달랐네. 정치 비자금과 같은 불법적인 일을 아예 하지도 않았지. 오직 경제에만 몰두했으니까.”

“그거야 찾아보면, 다른 기업가도…….”

“아니, 그런 기업가는 없어. 국세청이 살펴본 최민혁 실장의 세금 명세를 봤나? 단 하나의 불법도 없었지.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사업하는 사람이잖아. 더욱이 하는 일이라고는 새로운 기술만 팠어.”

“그렇기는 합니다.”

“에플 지분 매입 때를 떠올려 봐. 그때 난리가 났잖아. 최민혁 실장이 미친 짓을 했다 했어. 실제로 맞는 이야기였지. 다만 최민혁 실장은 계획이 있었지. 에플 제품을 업그레이드시켜서 에플 가치를 끌어올렸으니까.”

“하긴 지금 에플 지분 매각도 그 연장선이라고 봐야겠군요.”

박두영 부장검사도 탄식하고 말았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냉정한 눈으로 말했다.

“난 사견으로 최민혁 실장을 돕자는 것이 아냐. 비리가 판을 치는 한국 기업가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그러면 최민혁 실장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박두영 부장 검사는 조정수 중앙지검장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조정수 중앙지검장이 생각보다 최민혁 실장을 더 믿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놀랄 일이네.’

그가 아는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

“박 부장.”

“네?”

“최민혁 실장과는 계속 소통하고 있지?”

“최근에는 연락이 좀 뜸합니다. 아무래도 에플 지분 매각 이후에 민감한 상황이라서 연락을 자제합니다.”

“우리 쪽 사정은 말해줬고?”

“…그건 아닙니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혀를 찼다.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가 최민혁 실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정도는 알게 해줘야지.”

“하지만 괜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자네가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해야지. 이번 미국 일도 그래. 솔직히 저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우리에게는 바람직해. 저건 미국 정부에 손을 썼다는 소리잖아. 다들 겁을 집어먹었는지, 요즘 그 많던 전화가 다 끊어졌다니까.”

정확히는 조정수 중앙지검장에게 압력을 행사하던 전화였다.

국회의원, 대기업 오너, 언론사, 심지어 청와대에서까지 전화가 쏟아졌다.

웃기는 것은 그 와중에 검찰총장은 나 몰라라 한다는 거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이 손을 쓴 것이었다. 정확히는 박두영 부장검사가 한 최민혁 실장에 대한 언급을 이용한 것이었다.

검찰총장은 덕분에 ‘최민혁 실장’이 아주 부담스러워서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물론 최민혁 실장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서 압력을 넣을 수는 없잖아. 그럴 수는 없지.”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중앙지검이나 검찰총장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자세하게 말해줘. 우리도 정말 힘들어. 생각보다 압력이 심해. 어쩌면 사임해야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결국 최민혁 실장에게 검찰의 칼날이 날아갈 거야. 자네가 말한 최민혁 실장의 성향이 30%만 맞아도 서로에게 비극이야.”

“…알겠습니다.”

* * *

박두영 부장검사는 확실히 최근 외부의 외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중앙지검도 한계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티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 미국 연방 검사 사임 소식과 함께 그런 외압의 태반이 사라졌으니.

그는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다.

만나는 것 역시 신경을 많이 썼다.

다행히 최민혁 실장이 산자락에 준비해 둔 별장이 있어 그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본 최민혁 실장은 이전과는 달리 파릇파릇했다.

최근 일은 안 하고 휴가를 보낸 결과였다.

산속에서 휴양을 즐기니.

건강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운동도 끊이지 않고 했으니.

다만 최민혁 실장은 박두영 부장 검사의 방문을 그다지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괜한 걱정을 했군요.”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내 표정을 바꾸어서 절친이라도 환영하는 듯 박두영 부장 검사를 포옹했다.

“아니, 솔직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마 국내 검사들이 움직였다면,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하시죠. 제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뜨끔한 얼굴이었다. 박두영 부장 검사의 방문 요청은 정말 이례적이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다행히 최민혁 실장이 먼저 용건을 꺼내자 슬쩍 최근 중앙지검에 쏟아진 압력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결과도.

“…버몬 연방 검사의 사임이 꽤 도움되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겁을 먹어서인지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버몬 연방 검사 일도 일이지만 중앙지검이 자신을 내사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버몬 연방 검사 사임은 저랑 관련이 없습니다.”

“네? 아니, 그러면 버몬 연방 검사가 정말 개인적인 일로 그만뒀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저도 모르죠.”

최민혁 실장은 정말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가 살짝 주문하기는 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지는 않았다.

‘딱 그냥 경고 정도?’

“흠.”

박두영 부장 검사는 한동안 최민혁 실장을 째려봤다.

그는 물론 그 와중에 나온 다과부터 즐겼다.

최민혁 실장의 말이 진실인지는 몰랐다.

다만 전혀 무관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건 넘어가죠. 버몬 연방 검사를 손봐준 덕분에 이쪽 일도 편하게 되었습니다. 최 실장님에 대한 내사는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으음, 이왕이면 이런 이벤트를 자주 했으면 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사람들이 최민혁 실장님의 영향력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그러면 얕잡아보고 덤비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걸 처리하는 일은 어렵지는 않아도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괜히 그 과정에서 앙금이 생겨봐야 좋은 것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혀를 찼다.

“…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가끔 손을 쓰죠. 그런데 중앙지검에도 절 수사하라는 압박이 들어옵니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검 역시 꽤 많은 압력을 받으니까요.”

다만 그럼에도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에게 별다른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최민혁 실장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과거 국세청처럼 중앙지검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었다.

아니, 최민혁 실장이라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마냥 안도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였다.

“…만약 틈이 보이면, 달려들 수도 있다는 말 같군요.”

“…네. 그러니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꼭 저희 쪽이 아니라도 욕심 많은 지검에서 최민혁 실장님을 향해 달려들 수 있습니다.”

그는 박두영 부장 검사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번 일처럼 언제라도 변수가 생길 수가 있었다. 다만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외압 세력을 무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좀 있으면 저에 대해서 정신을 쓸 겨를이 없을 테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굳이 자신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IMF가 그들을 단숨에 쓸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그때 가서 압력을 행사하면 된다.

‘이왕이면 블랙리스트도 뽑아놔야겠어.’

“절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아마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고 바쁠 텐데, 압력을 넣고 말고가 없습니다.”

“…설마 국가 부도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씩 웃었다.

“부동산, 주식은 빨리 다 정리하고, 현금 보유하세요. 이왕이면 달러로 말이죠.”

박두영 부장 검사는 더 자세한 질문을 할까 하다가 최민혁 실장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최민혁 실장이 자신에게 특혜를 준다는 것도 파악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혀를 찼다. 그도 검찰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박두영 부장검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라 봤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네. 하긴…….’

그와 재정 경제원 사이에 있었던 일은 현실적인 타협을 보기는 했다.

그런데 재정 경제원 장관을 비롯한 그 윗선은 생각이 다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이라고 했죠? 이왕이면 제 라인이랄 수 있는 분에게 다 조언해 주세요. 가지고 있는 부동산 주식은 모두 2개월 안에 다 매각하고, 모두 현금으로 보유하라고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도 그제야 최민혁 조언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 자신이 아는 최민혁 실장은 이렇게 단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천만에요. 이게 어떻게 보면 상납금이니까. 아, 상납 정보라고 해야겠죠.”

“…네.”

* * *

박두영 부장검사는 최민혁 실장과 헤어진 후에 다시 중앙지검으로 복귀해서 조정수 중앙지검장에게 상납 정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정말 우리나라 경제에 큰 쓰나미가 온다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이 이제까지 한 말 중에 틀린 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사 자료만 봐도 나옵니다. 가히 주식의 신이나 다름없는 분입니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최민혁 실장의 내사 자료를 떠올렸다. 특히 주식으로 종잣돈을 마련하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에 주가 조작 세력도 있기는 했다. 사실 한때는 중앙지검도 이 부분을 파고들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리 파도 관련성이 나오질 않았다.

‘정말 이상하기는 했지. 마치 미래 주가를 아는 것처럼 투자했으니까.’

이 부분은 내사 팀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결국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알게 된 것은 최민혁 실장의 신과 같은 투자 기법이었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 조언을 따르기에는…….”

“제가 꽤 자산을 불렸다는 것은 잘 알 겁니다. 그거 다 최민혁 실장님이 조언해 준 겁니다.”

“흠, 그래?”

“최민혁 실장님은 아무래도 자기 측근을 더 늘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현금을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보를 줘서 그 대안으로 삼으려는 것 같고요.”

“…알겠네.‘

조정수 중앙지검장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최민혁 실장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었다. 그 역시 박두영 부장검사가 최근 1년 동안 재산을 엄청나게 불렸다는 것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감사 팀조차 황당해했는데, 세 차례에 걸친 감사 결과, 혐의 없음이 드러났지. 더욱이 그 정보 출처가 의문이었기는 했어. 그게 모두 최민혁 실장의 조언이었구나.’

그는 새삼 지금 미국에서 일어난 CNN 사태가 얼마나 황당한지 깨달았다.

이런 능력을 갖춘 최민혁 실장이었으니.

버몬 연방 검사 하나는 그냥 잘라 버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 반대 파벌 쪽은 여전히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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