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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03화 (1,003/1,021)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이 넘긴 자료를 확인했지만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해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자료를 공개적으로 넘긴 것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고 봐야 했다.

그는 대신 구길모 차장을 비롯한 실무진을 불러 모아서 1차 점검부터 했다.

“솔직히 한국 10대 대기업이 제조업체를 다 가지고 있어서 PCS 사업자 선정을 포기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PCS 사업자가 된다면 장비 사업에서 강점을 가지니까요.”

“그건 다른 이야기잖아.”

“아, 제 말은 한솔 같은 기업에서도 정보 통신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2G 통신 사업도 이 정도 열기입니다.”

“…참, 그 일은 어떻게 되었어?”

“한솔 쪽 역시 한계를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수긍했고, 전략적인 제휴는 이후에 합의 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래?”

장승일 실장도 혀를 내둘렀다. 한솔 역시 정보 통신 쪽으로 욕심을 냈다. 다만 지금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한솔은 KM 그룹 쪽에 기술, 서비스 측면에서의 상호 협력을 제안했다.

KM 그룹 역시 미래를 위해서 한솔 쪽과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장승일 실장은 이 일도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솔이 과거엔 KM 그룹에 이런 식으로 저자세를 취할 이유가 없었다.

“3G는 더하다는 소리겠어.”

구길모 차장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힐끗 기획 조정실 직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은 대부분이 아주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들이 지금 살피는 것은 PCS 사업이기 때문이다.

최동영 상무의 이동통신 사업에 관한 관심 이후에 관련 자료를 살피는데, 더 많은 인력을 동원했다. 최근 새벽 3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의 대다수는 실적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KM 그룹은 10대 대기업과는 그 역량을 비교하기 어려웠다.

컨소시엄도 더 했다. 그들은 자기 밥줄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솔과의 협업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다만 그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한솔 역시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알게 모르게 KM 그룹을 배척했다.

구길모 차장은 더 걱정스러운 점을 지적했다.

“정통부 입장이 더 큰 문제입니다. 2년 후에는 외국에 통신시장을 전면 개방한 후에 국내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의도할 생각이니까요.”

장승일 실장 역시 굳은 얼굴을 한 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쩌면 이번 참여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말인가?”

구길모 차장은 장승일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 실장님 마음은 저도 압니다. 굳이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최동영 상무의 안목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꼭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면 차세대 이동 통신은…….”

“전 이게 일단 사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다른 기업이 했다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손을 댔다면…….”

“가능성이 있겠지. 아니, 현실성이 높다는 소리이니까.”

“…네.”

구길모 차장은 대답하면서도 안색을 와락 굳히고 말았다.

그는 솔직히 이 일을 어디서 시작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이 처리하는 CDMA만으로 업무도 역량을 벗어났으니까.

“알겠네.”

“아뇨. 장 실장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솔직히 이 일은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기업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들이대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괜한 일 때문에 우리 자원을 계속 소진할 수는 없습니다.”

“…알겠네.”

장승일 실장은 대답하면서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구길모 차장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다. 그만큼 이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최 실장님이 이걸 노리는 것일 수도 있어.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만 해도 그래.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잖아. 최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아도 혼란스러워하실 테니까.’

* * *

장승일 실장은 내부적인 차세대 이동 통신에 대한 검토를 끝낸 후에 최용욱 회장에게 먼저 달려갔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최동영 상무가 이미 와 있었다.

서재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 영란이 한 말은 저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제 능력을 검증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습니까?”

“이미 시간은 충분히 줬다.”

“그건 아니죠. 민혁이랑 큰 형에게만 집중했지 않습니까? 저에게 계열사 지분 1%라도 넘긴 적이 있습니까?”

“그거야 KM 건설 상황이…….”

“그 KM 건설 말입니다. 이제 부채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부실 사업도 다 털어냈습니다. 그것도 실적 아닙니까?!”

“안다. 하지만 아직…….”

“아뇨. 언제까지 KM 건설에만 집중하란 말씀입니까? 그 말씀은 너무 일방적입니다!”

최동영 상무는 최대한 자제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최동영 상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최용욱 회장도 그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최동영 상무의 성과는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경영자와 비교해서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최민혁 실장이 돌연변이 같은 실적을 내놓은 거지 최동영 상무의 실적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하.”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게 모두 민혁이 이놈 때문이기는 한데…….’

최동영 상무는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이 점을 지적했다.

“민혁이가 영란이를 노골적으로 밀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저에게도 기회를 더 줘야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절 지원해 줘야 공평해지지 않겠냐고요?!!”

“…….”

최용욱 회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감정을 눈치를 챈 이가 있었으니.

[회장님, 저 장 실장입니다.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 * *

장승일 실장이 눈치껏 노크한 후에 서재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최용욱 회장은 갑자기 서재로 들어온 장승일 실장이 오히려 반갑기만 했다.

그런데 장승일 실장은 최동영 상무를 보자 머뭇거렸다.

아니, 정확히는 눈치 보는 척을 한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우리끼리 다시 하자. 지금은 나가 봐.”

“못 나갑니다!”

최동영 상무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아는지 고집을 부렸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을 불러 따로 이야기를 해봤다.

최문경 부회장은 내심 갈등하면서도 바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에게는 최동영 상무 역시 정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런 최동영 상무의 행동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허, 이놈이.”

“저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세요.”

하지만 말을 한 최동영 상무는 최용욱 회장보다는 장승일 실장에게 째려봤다. 그는 그제야 땀을 뻘뻘 흘리는 장승일 실장이 들고 온 자료를 봤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장승일 실장에게서 그 보고서를 강제로 뺏었다.

“…장 실장님, 이게 뭐…….”

하지만 그는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보고서 안에는 차세대 이동 통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관련자가 더 중요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설마 블룸버그의 그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을 말하는 겁니까? 민혁이를 ETRI에서 만났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는 그제야 허겁지겁 보고서 내용을 대략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게.”

장승일 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면서 최용욱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최용욱 회장도 무조건 최동영 상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장승일 실장은 아직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잘 몰라서 눈동자만 굴렸다.

최민혁 실장은 애초에 이 정보를 흘릴 생각이긴 했다.

물론 최민혁 실장조차 최동영 상무가 보고서를 뺏어서 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결국 전전긍긍하다가 말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님이 차세대 이동통신과 관련해서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을 ETRI 쪽에 초청했다고 합니다. 그 자료는 관련 자료입니다.”

최동욱 상무가 버럭 소리쳤다.

“아니, 장 실장님, 도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이라뇨? 지금 이동 통신 서비스 사용자가 몇 명인지나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지는 사용자 숫자가 백만이 넘으려면 내년 상반기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이제 CDMA가 걸음마 단계인데, 차세대 이동 통신 사업이라뇨!!”

“사실…….”

장승일 실장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 다름 아니 최민혁 실장이었다. 심지어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같은 거물이 방한했고 말이다.

그 역시 이게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정황 자체만 놓고 볼 때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최용욱 회장이 결국 최동영 상무에게 한마디 한 후에 장승일 실장에게 말했다.

“너는 좀 가만히 있어. 장 실장, 좀 알아듣도록 말해보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차세대 이동 통신이라니. 설마 3G 서비스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정말 너무 나간 이야기잖아. 아무리 민혁이 그놈이라지만, 이건 그 녀석 능력 밖이야!”

“…그게.”

장승일 실장은 평소 모습과는 달리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일단 급하게 보고하기 위해서 달려왔는데, 그 내막까지는 잘 몰랐다.

그는 눈치껏 최동영 상무가 들고 있는 자료를 쳐다보았다.

최용욱 회장은 이 일이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자 일단 최동영 상무에게서 강제로 자료를 받아서 확인했다.

“이, 이건…….”

당연히 그로서는 자세한 내막까지 알 수는 없었다.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잖아.’

* * *

최용욱 회장도 억지로 보고서를 살피면서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그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했다.

그는 최동영 상무의 애절한 시선을 보자 스피커로 전환했다.

[나다. 장 실장에게 차세대 이동통신 관련된 자료를 받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설마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을 벌써 시작했다는 소리야?]

최민혁은 밝은 어조로 말했다.

[아, 최동영 상무가 한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아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차세대 먹거리 연구로 진행하는 차세대 이동통신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 부분을 좀 확인했습니다. 의외로 성과 자체가 나쁘지 않아서 그쪽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설마 이게 검토 중인 결과란 소리야? 몇 년에 걸친 연구 성과로 보이는데?]

[…그만큼 우리 연구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 필요하다면 일정을 당기기 위해서 외주를 줬습니다. 돈이야 넘쳐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설마 내가 KM 전자를 갔을 때 보여주지 않은 프로젝트냐?!]

[그중에 하나입니다. 으음, 사실 할아버지 방문이 실마리를 준 셈입니다.]

[으음.]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의 자기 핑계에 허탈하게 웃고만 말았다. 너스레를 떠는 최민혁의 말이 꼭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서다. 다만 뭐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는 힐끗 최동영 상무를 쳐다보았다.

최동영 상무는 피가 나도록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최동영 그 자신이 한 제안과 행보가 정작 최민혁 실장에게 아이디어를 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실제 사실이었다.

최동영 상무가 그렇게 설치지 않았다면 최민혁은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몰랐으니까.

일테면 애니에 집중했을 수도 있다.

다만 애니만으로 좀 힘들 수가 있었다.

에플 지분 매각 역풍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결국 이를 무마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고.

그게 차세대 이동통신이 된 것뿐이었다.

최민혁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푸념을 털어놓았다.

[최동영 상무님 제안은 꽤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마침 하는 프로젝트도 있었고요. 거기에 제가 좀 거들기만 해도 그럴듯했습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 파이가 너무 커서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쪽에 도움을 청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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