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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04화 (1,004/1,021)

[그런데 그 대단한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연락을 받자마자 방한했다고?]

[네. ETRI 쪽은 이미 협업한 경험이 있어서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 너도 말을 참 쉽게 하는구나.]

최용욱 회장은 결국 여기까지 통화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힐끗 차세대 이동통신 자료를 대충 살피다가 최동영 상무를 쳐다보았다.

최동영 상무는 심호흡까지 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시기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반쯤 이성을 잃은 채 서재를 나가고 말았다.

장승일 실장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 죄송합니다.”

최용욱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자네가 무슨 죄가 있나. 동영이 저놈이 자기 분수도 모른 채 사업을 이리저리 벌이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거지. 일단 이야기를 계속해 봐. 필요하다면 조언해 줄 친구도 부르고.”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이 가지는 의미와 앞으로의 비전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번 일은 단순한 기술 정도로 여길 수가 없습니다. 정부 차원 수준과 관련된 정도로…….”

“…….”

최용욱 회장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묵묵히 설명을 들었다. 아마 그도 풋내기 중견 기업 회장이었다면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파이가 KM 그룹이 감히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어. 당장의 이익이 문제가 아니라 사내에 괜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 * *

최동영 상무는 큰 충격을 받은 채 일단 최용욱 회장의 저택을 나섰다.

하지만 그는 그 잠시조차 최민혁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참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의 활동 자체가 최민혁 실장에게 빌미를 준 것 말이다.

물론 그 자신이 한 일은 2G 이동통신 사업이었고, 최민혁 실장이 한 것은 3G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달랐다.

하지만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최민혁 실장이 굳이 3G 차세대 이동 통신사업을 검토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내심 끓어오르는 모멸감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최훈열 전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뒤늦게 떠오른 이는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정말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와 술을 마시고 싶었다.

“어디? 특허청 반도체 특허 간담회에 있다고요?”

“네.”

“가겠습니다.”

* * *

최동영 상무는 삼성동 무역 센터에 열리는 조찬 간담회에 방문했다.

원래는 초청장이 있어야 했지만.

“아, KM 건설의 최동영 상무님이시군요. 들어가시죠.”

통과는 뜻밖에 간단했다.

조카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결과였다.

실제로 오늘 간담회를 주도하는 특허청 직원은 상대가 KM 그룹 직원이라는 말에 기꺼이 허리를 숙였다.

심지어 명함도 내밀고.

다만 안 좋은 점도 있었다.

“혹시 최민혁 실장님과 같이 오신 겁니까?”

“…….”

최동영 상무는 이를 갈면서 받은 명함을 상대방 상의 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그는 내심 이를 으드득 갈면서 상대를 째려봤다.

그 행동에 당황한 상대는 도망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HY 전자의 부사장, LC 반도체의 연구소장, 오성 전자의 부사장을 차례대로 마주하자 일단 분노를 감추었다.

[아닙니다. 물론 민혁이에게 이야기해서 한번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당연히 관심이 많습니다. 건설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신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솔 쪽과 손을 잡은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천만에요. 우리 쪽에서 오히려 환영합니다. 오성 쪽과 우리 KM 그룹의 관계는 더 돈독해져야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동영 상무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빠른 시선 처리로 최문경 부회장을 찾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로 상대를 접대 중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대상이 10대 대기업 관련자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호가호위라더니.’

최동영 상무는 분노보다는 오히려 웃고 말았다. 그는 이 상황이 모두 조카 최민혁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은 그를 보자 당황했다.

“응? 웨, 웬일이냐?”

“내가 못 올 곳 왔어?”

“…그건 아니다. 그런데 너 무슨 일이 있냐? 표정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어때서?”

“누구랑 싸운 것 같아서.”

최동영 상무는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이성을 차렸다.

“조금 전에 얻은 정보 때문에 그래. 아마 형은 들으면 패닉에 빠질 거야.”

“…나, 나중에 이야기하자.”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당황했다. 이곳에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실제로 경영 승계 후보자인 두 사람이 대화하자 지켜보는 시선이 더 늘어났다.

그 역시 최근에 느낀 것이지만 조카 최민혁 실장 덕을 톡톡이 봤다.

한국 내에 재벌 중에 감히 KM 그룹을 대놓고 무시하는 이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동영 상무는 오히려 최문경 부회장의 그런 표정을 즐겼다.

“민혁이가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 시작한다고 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통신 사업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그건 2G망이잖아. 민혁이가 하려는 것은 3G야. 차세대 이동통신.”

“…말도 안 되는 농담 하려면 그냥 가라.”

“진짜야. 민혁 그놈이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해서 신사업을 생각했다네. 황당한 것은 마치 2~3년 전에 이미 준비한 결과물을 보여준 거야. 그것도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에게 직접 말이야.”

최문경 부회장은 가슴이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것에 잠깐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는 다급하게 최동영 상무의 손을 끌고, 간담회 구석 쪽으로 갔다.

주변 시선이 여전했지만 무시했다.

“…지, 진담이야? 마, 말이 안 되잖아. 민혁 그놈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차세대 이동 통신망은 이야기가 달라. 그거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런데 어떻게 결과가 나온다는 거야?”

“형, 당황했구나.”

“야!”

최문경 부회장은 소리가 컸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하게 자기 입을 막았다. 그는 따가운 시선에 의혹이 들어간 것을 느끼자 한숨마저 내쉬었다.

그는 최동영 상무를 이끌고는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말해 봐라.”

최동영 상무는 오히려 쾌감마저 느꼈다. 그는 결코 자신이 조카 최민혁 실장을 질투해서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게 다야.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보고서 일부만 살폈으니까. 지금 아버지랑 진지하게 이야기 중이야. 아, 장승일 실장도 있더라. 그 양반 얼굴이 패닉에 빠진 것은 처음 봐서 신기하더라.”

“장 실장이?”

최문경 부회장 역시 장승일 실장의 성정을 잘 안다. 장승일 실장은 지진이 나서 KM 본사 사옥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이가 당황했다면 그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어, 나도 더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나왔어. 술 생각이 나더라. 이번에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진심이구나.”

“어, 설마 내가 형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 이제 반도체 부회장 놀이는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어?”

“글쎄다.”

최문경 부회장은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장녀인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장녀가 자신을 들이박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문제는 최영란 본부장의 입지가 이제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다.

최용욱 회장이 정신이 나가서 KM 그룹 지분을 넘긴다면 정말 최영란 본부장과 경영권 승계 싸움을 해야 했다.

최동영 상무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떠오른 갈등을 비웃었다.

“당장 문제가 되는 KD 통신 쪽도 영향권에 들어가. 그거 가벼운 일이 아닐 텐데?”

“그건 아니야. IP 시티폰은 사업 범위가 전혀 달라.”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런데 그 보고서 안에 패킷 통신 기술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어. 그거 IP 시티폰 사업과 겹치는 것이 맞잖아?”

“…….”

최문경 부회장은 해머로 한 대 맞은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KD 통신 쪽에 걸려 있는 이권이 생각보다 많았다.

최동영 상무는 패닉에 빠진 최문경 부회장의 안색 변화에 쾌감마저 느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최민혁 그놈을 찾은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거야.”

“으음.”

최문경 부회장은 마치 내일 당장 관에 들어갈 시체 같은 얼굴을 한 채 침묵하고 말았다. 그가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동영 상무가 하는 말은 조카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었다.

조카 최민혁 실장과 자신은 불구대천 원수지간이고 말이다.

“…나, 나중에 더 이야기하자.”

최동영 상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나중에 나도 이야기 좀 해주라.”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최민혁이 최동영 상무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것을 깨닫자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정말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을 초청한 이유가 이놈 말대로일까? 아무래도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

* * *

최민혁 실장은 당연히 최동영 상무가 최문경 부회장을 만난 것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보고서 안에 찍힌 최동영 상무는 실연을 당한 남자처럼 넋을 놓았다.

‘충격이 정말 컸나 보네.’

최문경 부회장은 그 이후로 조찬 간담회를 빠져나가서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난 것까지 확인했다.

“…특별한 것은 없군요.”

조성돈 팀장은 보고하면서도 쓰게 웃고 말았다. 이런 일이 너무 당연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조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를 확인하면, 당장 KD 통신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까지는 파악할 테니까요.”

“그걸 알면요.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네?”

“IP 시티폰 관련 투자는 이미 꽤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알아요. 지금 당장은 그 자금을 뺄 수가 없어요. DL 그룹이 제가 손을 쓴 차입금을 무리하게 당겨 쓴 이유죠. 너무 과한 투자 때문에 DL 그룹 자금 사정이 안 좋으니까.”

“그래도 다른 대안이 있지 않을까요? 다른 쪽에게 지분을 넘긴다든지.”

“그거야 투자자가 모를 때 이야기죠.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바보가 아닙니다. 본인 혼자만 이 사실을 알게요? 어지간한 투자자라면 곧 진실을 알게 될 겁니다.”

“…설마.”

“맞아요.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에게 굳이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를 넘긴 것은 그쪽 투자를 조심하란 뜻으로 한 겁니다. 이젠 사실을 알았으니 당장 무리가 안 되는 자금부터 회수할 겁니다.”

“맙소사.”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투자비 회수도 문제지만 그게 끝이 아니란 점이다.

다른 투자자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다. 지금이야 쉬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KD 통신에 대한 투자금 회수는 더 심해질 것이다.

최민혁은 단순히 이런 점만 고려하지 않았다.

“KD 통신 출자자 중에 한부 그룹, 샐로먼 브러더스, 오성 전자, 우리 KM 그룹도 있죠. 아, 물론 할아버지가 이미 자금을 다 정리했고요.”

그랬다.

최용욱 회장은 이미 KD 통신에 한 투자를 회수한 지 좀 되었다.

그것도 최민혁 실장이 손을 썼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은 씩 웃었다.

“오성 전자 역시 꽤 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된통 당하면, ‘앗 뜨거워’ 할 겁니다. 녹취록에 대한 1차 보복이죠.”

“하면…….”

“네. 우리는 불구경만 하면 됩니다. 그 안에 있던 애들이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닌 거죠. 재미있지 않아요? 우리 셋째 큰아버지, 첫째 큰아버지, 샐로먼 브러더스가 산불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거 말입니다. 팝콘 각이죠.”

“…하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동선 파악하는 데나 좀 더 인력을 배분해서 살펴보세요.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큰 방향은 제 의도를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다만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을 테니, 그걸 살필 필요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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