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02화 (1,00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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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그 자금을 이 차세대 이동통신에 투자할 생각이니까. 설마 과하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아니군요’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번에 최민혁 실장이 벌어들인 15조에 가까운 자금으로도 엄밀히 말해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규모를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더 필요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저기 앞에 놓인 테스트 장비와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먼저 말을 끊었다.

“아, 그렇다고 호구처럼 기술 표준을 공개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뜻이 맞는 분들을 호출해서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오히려 의심을 떨쳤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저래야 정상이었다. 그는 힐끗 크리스 아몬 박사의 모습을 살폈다.

그저 쇼에 가까운 기술이라면 크리스 아몬 박사가 저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그가 아는 바로 크리스 아몬 박사는 이미 ITU 측과 소통 중이니까.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뼈대와 관련해서는 사전 작업 중이었다.

“…저를 포함해서 다른 이들을 말하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방긋 웃었다.

“그렇죠.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절 싫어하는 분이죠? 이번 일로 그분들이 입은 손실을 어느 정도 메꾸었으면 합니다.”

긍정적인 최민혁 실장의 행동.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최민혁 실장을 잠깐 째려봤다.

저 말이 정말 진심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도 무안한 얼굴로 헛기침했다.

“크흠, 전 다시 말하지만, 미국 정부와 잘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차세대 통신 기술은 제가 충분히 양보하겠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뭘 양보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다만 공짜는 아닙니다. 아, 손실에 대한 보상 정도는 해줄 겁니다. 거래인 셈이죠. 그게 솔직히 서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됐든 거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린 것이었다.

“……?”

마이클 블룸버그는 선뜻 최민혁 실장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도 진지한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보자 무조건 의심할 수만은 없었다.

“…진심입니까? 선뜻 잘 이해가 안 가서. 아, 최민혁 실장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 차세대 통신 기술의 가치가…….”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최민혁 실장의 시선이 한쪽으로 가 있는 것을 보자 시선을 돌렸다.

크리스 아몬 박사는 오현종 실장과 연구진들의 손을 붙잡고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가끔 실망이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놀람이 더 많았다.

심지어 감탄도 말이다.

[패킷 스위치에 관한 기술 표준을 이미 잡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는 쉽게 흥분을 떨치지 못했다. 질문을 통해서 차세대 통신 기술 표준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은 것이었다.

그건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간이 제법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일을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아, 식사는 하셨습니까?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 *

크리스 아몬 박사 때문에 ETRI 외부로 나갈 수는 없었다.

하여 ETRI 내부 사내 식당을 이용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익숙하지 않은 한식에 다소 고생했다.

오늘 나온 비빔밥 중에 고추장이 그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는 터라 티를 내지 못했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었다.

대신 물을 더 많이 마셨고 말이다.

그 모습이 다소 어색하기만 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런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모습에 환하게 웃었다.

그는 이 ETRI 안으로 들어올 때의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모습과는 무언가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자신을 추궁하려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자기 눈치만을 봤다.

어색하기만 한 한식을 억지로 먹는 모습이 그랬다.

실제로 그 모습이 얼마나 특이한 ETRI 연구원은 다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을 쳐다보기 바빴다.

‘좋네.’

딱 자신이 원한 그림대로였다.

크리스 아몬 박사 역시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끊이지 않고 해댔다.

최민혁은 굳이 자세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에 꽤 만족했다. 크리스 아몬 박사가 저렇게 되기를 원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차세대 통신 기술은 이제 자신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가 그냥 안 두겠지. 당장 미국만 해도 날 암살하려고 할 테니까. 하지만 시기적으로 봐서 딱히 나에게 나쁘지는 않아.’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2G 기술과 비교하면 차세대 이동 통신은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아무리 최민혁 자신이라도 해도 그 자본을 혼자 댈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는 없고.’

최대한 이익만 뽑아 먹으면 된다.

그것도 힘든 일은 ETRI, 미국, 일본 쪽에 다 떠넘기고 말이다.

그래 하청.

다만 그는 그런 자신의 진심을 악어의 미소로 표현했다.

“어떻습니까? 이제 제 진심이 보입니까?”

“…솔직히 최민혁 실장님의 진심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 정도면 됩니다.”

* * *

비빔밥 때문에 고생한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최민혁 실장 표정을 살피면서 다시 테스트 설비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 테스트 설비를 힐끗 살폈다. 이미 간단한 테스트가 끝난 이상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차세대 통신 표준이 더 급하지.’

그 시작은 크리스 아몬 박사가 할 일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시간을 넉넉히 준 덕분에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현실을 이제 알았다는 것을 보자 슬그머니 한 가지를 제안했다.

“아, 마이클 회장님 반응을 보니, 괜한 오해를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에게 직접 설득을 부탁합니다. 그쪽에서 절 압박하는 일도 멈춰 줬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이쪽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일테면 연방 검사가 날뛰는 모습은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여론을 믿고 벨린 투자에도 손을 대려고 하더군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연방 검사 일은 잘 모릅니다.”

“에이, 또 이러신다.”

“정말 모릅니다. 혹시 괜한 오해를 할 것 같아서 다시 말하지만…….”

“아, 알겠습니다. 연방 검사 쪽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다만 그쪽에 적당히 이야기만 해주세요.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알겠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새삼 최민혁 실장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은 덤으로 한 가지 자료를 넌지시 넘겨주었다.

“이번 제안에 대한 보답입니다. 아마 꽤 큰 도움이 될 겁니다.”

“…IP 시티폰과 3G 망의 경쟁력 차이라.”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는 달리 내심 화들짝 놀랐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때문에 최민혁 실장의 눈치만 봤다.

이걸 빌미로 정말 엉뚱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 IP 시티폰 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다만 3G 망 서비스, 아니, 2G 망 서비스 사용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IP 시티폰 시장은 큰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건 유념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

실제로 IP 시티폰 사업은 블룸버그에도 꽤 매력적이었다.

투자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였다.

물론 그 기술 최초 개발자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점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그 기술 최초 고안자가 직접 관련 자료를 넘겼으니.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관련 자료를 넘기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가 대충 살펴봐도 심각한 자료였다. IP 시티폰의 미래 말이다.

이건 실무진을 불러 좀 더 이야기를 해봐야 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물어봐야 제대로 대답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라면 미국에 아는 지인도 많고 말이다.

이 투자에 자금을 댈 사람은 차고도 넘쳤다.

아니, 정말 너무 많았다.

그들 중에 골라야 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은 자신의 반대 파벌 쪽과도 같이 엮으려는 것 같아. 하긴 그게 합리적인 방법이기도 하지.’

그는 그제야 의심을 버렸다. 지금 최민혁 실장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제안은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그 압박 때문에 최민혁 실장도 전향적인 태도 전환을 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씩 웃기만 했다. 실상 그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과 헤어진 후에 옆에서 조용히 듣기만 하던 조성돈 팀장에게 말했다.

“3G와 IP 시티폰 사업에 대한 정보를, 으음 보자, 역시 장승일 실장님이 좋겠군요. 그쪽에 이 정보를 흘리세요.”

“…장 실장님에게 말입니까? 하면 최용욱 회장님 귀에도 들어갈 텐데…….”

“어차피 할아버지는 보고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그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어요. 보고서 내용을 각색해서 감이 잡히지 않도록 해두세요. 최동영 상무일도 매듭지어야 할 테니까. 이번 미끼가 꽤 잘 먹힐 겁니다. 신규 사업보다는 이게 훨씬 낫습니다. 제 앞마당이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이 IP 시티폰 사업과 관련된 일을 벌이면서 최민혁 실장이 몇 번에 걸쳐서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바로 KD 통신 말이다.

당시에는 그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3G 망 사업서를 살피자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두 사업이 경쟁한다면 IP 시티폰 사업은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IP 시티폰의 한계 때문이었다.

‘아, 이거였구나. 최민혁 실장이 당시에 말하지 않은 사실이 이거였어. 설마 그때부터 차세대 이동 통신 사업을 염두에 뒀던 것일까? 정말 놀랍구나. 가만, 당장 2G 망도 문제구나. 그런데 정말 이게 문제가 될까. 아직 2G 사용자 숫자 증가율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는 조성돈 팀장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니까. 중요한 점은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라면 IP 시티폰 쪽에 투자한 자금을 뺄 거야. 아마 그게 시작이겠지.’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풋내기처럼 KD 통신 쪽에 정보를 흘릴 리는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서 KD 통신을 뜯어먹으려고 할 것이다.

KD 통신의 미래는 굳이 머릿속으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것이니까.

‘좋네, 정말 좋아.’

* * *

조성돈 팀장은 장승일 실장과는 최근 긴밀하게 연락하는 관계였다.

에플 지분 매각 이후에 KM 전자에 대한 여러 일을 처리하면서 서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실상 최민혁 실장이 잠수한 덕분에 KM 그룹으로 몰려가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장승일 실장은 때문에 조성돈 팀장이 넌지시 알린 정보에 고개를 갸웃했다.

“차세대 이동 통신이라니……. 이게 웬 뜬금없는 이야기지.”

다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 매각 이후에 잠적한 터라 뭔가 대처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차세대 이동 통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도 이번 정보는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에게서 자료를 일부 받은 구길모 차장은 좀 달랐다. 그는 이미 전략 기획실 실무진을 죄다 불러 이 자료를 검토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장승일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아무리 최민혁 실장님이라도 한계가 있어. 당장 CDMA만 봐도 알 수가 있잖아. 퀄컴, ETRI 엔지니어 수백 명이 모여,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겨우 탄생한 거잖아.”

“…그,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이 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성돈 팀장이 넘긴 자료는 마이클 블룸버그에 넘긴 자료와는 좀 달랐다.

추가적인 실험 자료를 포함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실물을 보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물론 이 차세대 이동 통신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터라 초청한 컨설턴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를 해야 했다.

다만 그의 안색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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