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9화 (98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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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칫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최영란 본부장은 사소한 것도 최민혁 실장에게 다 불어버린다.

그러니 식은땀마저 흘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최동영 상무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을 째려봤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즉시 경비를 호출했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채 사무실에 들어오는 경비원을 보면서 이죽거렸다.

“저 대주주인데, 이래도 돼요? 경비 아저씨, 잘 생각해야지. 이사회에서 절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어요. 제 보스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거 아시죠? 최. 민. 혁. 실장 말이에요!”

부회장실에 들어온 경비는 순간 ‘최민혁’이라는 이름에 고장이 난 로봇처럼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뒤를 따른 경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그들 상관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나서면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삐걱거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마를 잡았다.

“야, 너희 뭐 해? 당장 끌어내!!”

경비는 패닉에 빠져서 다시 최영란 본부장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이 이죽거렸다.

“이미 우리 할아버지는 민혁이를 경영 승계 0순위로 찍었어요. 여기 와 있는 최동영 상무님은 그런 민혁을 이용하려는 중이죠. 그런데 경비가 감히 그런 최민혁 실장을 대리한 절 건드리려고요?”

“…….”

경비는 다시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봤다.

그들은 패닉에 빠져서 휘청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으드득 갈면서 결국 경비를 내보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너 미국에 가 있지 않았어?!!”

“우리 부회장님의 내부 쿠데타 소식을 듣고 바로 한국으로 날아왔죠. 누가 날 보고 쿠데타 정리하라는데, 아주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녀는 막 문밖으로 사라지는 경비원에게 커피 한 잔을 시켰다.

당황한 경비는 즉시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가 비서에게 말했다.

“…너, 정말 이럴 거냐?”

최영란 본부장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경비가 아니라 비서가 가지고 들어온 커피를 홀짝이면서 이죽거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우리 주주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을까요?”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던 최동영 상무가 결국 나섰다.

“그렇게 위험한 사업이 아니다.”

“셋째 작은아버지, 그러면 무슨 일인데요? 이동통신 신사업을 하자는 건가요? 요즘 분위기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한국 국제 수지 적자는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당장 미국 내의 경기가 너무 나빠져서 재고 정리 문제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이 침체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고요.”

“유럽도…….”

“말 잘하셨어요. 유럽 상황이 지금 얼마나 나쁜지 아세요? 유럽은 생산 과잉 때문에 제 살 깎기 경쟁이 불거지고 있다니까요.”

“하지만…….”

“아뇨.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이제부터는 통상 압력 조짐이 나타날 테니까. 실제로 미 국무부 분위기가 안 좋아요.”

그녀가 하는 말은 직접 경험한 것도 있고, 최민혁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하는 말이다.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도 최영란 본부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혹시 언론 기사를 듣고 하는 소리라면…….”

“아뇨. 전 미 국무부 직원에게서 직접 들었어요. 민혁이 그 녀석이 한 일 때문에 저에게 불만을 털어놓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가 통상 압력이니까.”

공식적인 미국 정부 압박은 아니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였지만 근거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최영란 본부장은 국내 문제를 미 국무부 직원을 통해서 들은 셈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

“제가 어제까지 있던 장소가 미 국무부였어요. 그곳에 KM DVR 납품 건과 관련해서 협의했으니까요. 그 와중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

두 사람, 아니, 장승일 실장까지 포함한 세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최영란 본부장이 바쁘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녀는 마치 최민혁 실장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특히 KM 그룹과 KM 전자 사이의 가교 구실을 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을 대리해서 미 국무부 쪽과 소통까지하는 줄은 몰랐다.

최동영 상무는 입술을 콱 깨물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하려는 방향이었다. 사실 이동통신 사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자신은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정작 최영란 본부장은 숟가락만 올린 채 열심히 차려진 밥상을 다 먹는 중이었다.

“그것과 이 일은 달라.”

“아뇨. 그렇지가 않아요. 지금 하는 사업도 꽤 눈총을 받는 중이죠. 여기에 이동통신 사업에 숟가락을 얹으면 말이 나올 겁니다.”

“말도 안 돼!”

“민혁이가 퀄컴 오너라는 것을 알고도 그런 소리를 하세요?”

“그건…….”

퀄컴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입을 다시 다물고 말았다.

뻑 하면 잊는 일이었다.

그런데 CDMA 원천기술 중에 많은 지분 소유자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는 심지어 ETRI과 손을 잡아서 CDMA 시스템 핵심 특허도 가지고 있고 말이다.

요즘 와서 이와 관련된 특허료 때문에 말이 나오는 중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ETRI에게 도움을 줄 때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CDMA 파이가 커질수록 그 특허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최근 한국 언론도 뒤늦게 알았으니까.

“민혁이가 정말 많은 일을 벌여놓았죠.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어요. 우리 KM 그룹 역시 마찬가지고요. 민혁이가 이미 경영 승계 구도 0순위라는 사실이 알려진 덕분에 상황이 이전과는 달라졌어요.”

최영란 본부장은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 꼭 이 문제만이 아니에요. 신사업은 주주가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해야 되죠. 민혁이를 이용하려나 본데, 그거 쉽지 않을 거예요. 제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페어플레이 하세요.”

최문경 부회장이 참다 못해서 결국 버럭 소리쳤다.

“최영란!!!”

최영란 본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죽거렸다.

“우리 아버지 열받았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러시는 거 전혀 위협이 안 돼요. 절 옛날의 그 최영란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곤란해요. 그럼 이사회에서 봅시다.”

“…어.”

최문경 부회장은 순간 크게 당황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최영란 본부장을 잡으려고 했을 때는 이미 사무실을 나가고 난 다음이었다.

세 사람은 황당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승일 실장은 아차 싶었다. 최영란 본부장이 괜한 이야기를 최민혁 실장에게 했다가는 큰일이었다. 그는 도망자처럼 부회장실을 나섰다.

최동영 상무는 그제야 최문경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형은 이대로 두고 볼 거예요?!”

“…하.”

“그러지 말고, 우리 힘을 합치죠. 최소한 민혁 그 녀석을 정리할 때까지만이라도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최문경 부회장은 답을 해놓고도 크게 당황했다. 그는 일단 최동영 상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걸 떠나서 굳이 그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장녀인 최영란 본부장이 더 문제였다.

‘젠장.’

그는 힐끗 탐욕에 물든 최동영 상무의 눈빛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몇 개월 전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당했구나.’

* * *

최동영 상무는 최문경 부회장의 대응을 보자 그를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설사 추후 그와 손을 잡아도 대안이 필요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찾아갔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한 일과 그 결과에 대해서 요약해서 말했다.

“으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곤혹스러웠다. 그도 설마 최영란 본부장이 갑툭튀로 끼어들지는 몰랐다.

이미 내부적으로 최민혁 실장이 최동영 상무를 공격하면 한국 지라시를 이용해서 패륜 이미지로 몰아갈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 최영란 본부장은 최민혁 실장이 밀어줬다고 했습니까?”

“맞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최 본부장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KM 센서 설립 이후에 사내 입지를 다졌습니다.”

KM 산업 본부장으로 승진하면서도 KM 센서 설립도 도왔다.

심지어 그녀는 요즘 KM 센서 경영까지 직접 경영 중이었다.

KM 센서가 KM 그룹에서 떠오르는 다크호스였으니.

그녀의 인기 역시 KM 그룹에서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최영란 본부장이 새로운 사업을 하나 일구었기 때문이다.

KM 반도체, KM 센서 두 가지 계열사 매출이 늘어날수록 그녀의 인기는 폭증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최근 한국 무역 수지 적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KM 센서가 보여주는 성과는 눈부시다는 말로 표현해도 부족했다.

“…확실히 문제군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최영란 본부장 말입니까? 아니면 최민혁 실장 말입니까?”

“지금은 최영란 본부장이 문제입니다. 걔는 KM 산업, KM 반도체, KM 센서 지분을 일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더 문제군요.”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골치가 아파서 이마를 잡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만약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분위기가 안 좋은데.’

그는 힐끗 최동영 상무를 쳐다보았다.

최동영 상무는 뜻밖에도 크게 당황한 눈치는 아니었다.

여전히 이성을 잃지 않았다.

다만 능력이 문제였다.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려고 하는 점 말이다.

샐로먼 브러더스 입장에서는 나쁜 캐릭터는 아니었다.

투자를 통해서 이익을 얻고, 필요하다면 바지사장으로 만들면 된다.

더 나아가서 KM 그룹을 나중에 정리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최민혁 실장의 콜린스 사업부 매각이랑 별반 다른 것이 없구나.’

아니었다.

더 들어가 보면 최민혁 실장은 이미 KM 전자의 돈 안 되는 사업부를 하나씩 비싼 값에 정리했다. 그 자금으로 지금의 KM 전자를 재편한 것이니까.

“…일단 검토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최영란 본부장은 뜬금없는 이야기라서요.”

“잘 좀 부탁합니다. 저를 도와만 준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원하는 요구는 다 들어주겠습니다.”

“…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최동영 상무가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동영 상무가 딱 자기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 * *

최동영 상무라는 카드는 샐로먼 브러더스에게도 꽤 나쁜 카드는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였다.

욕심만 많고, 능력이 떨어지는 타입이니까.

데릭 모건 이사 입장에서는 최동영 상무를 이용한 계획에 크게 만족했다. 당장은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건 미묘한 한국 무역 수지 적자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 무역 수지 적자는 그조차 예상 못 한 것이었다.

55억 달러.

이게 그 기준이었다.

실제로 한국 재정 경제원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벌써 60억 달러를 넘어섰다.

데릭 모건 이사는 이 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서 최동영 상무의 상황을 듣고는 골치가 아팠다.

“…일이 잘되고 있지 않았습니까?”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일이 완전히 꼬인 것 같습니다. 어제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서 이사들을 상대로 한바탕한 것 같습니다.”

최영란 본부장은 월급쟁이 이사와는 격이 많이 달랐다.

따라서 지분이 없는 일반 이사는 최영란 본부장에게 감히 대들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최문경 부회장 정도다.

그런데 그런 그도 장녀 최영란 본부장과 대놓고 대립하지는 못했다.

대립해 봐야 자신 꼴만 우습기 때문이다.

“…이사회 자리에서 이동통신 사업을 비롯한 신사업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이 그 문제점을 하나씩 걸고 다 깨버렸다.

특히 그녀가 KM 그룹 이사회를 아주 박살내 놓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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