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55화 (95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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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격화되어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계속 퍼지고 있습니다.”

“혹시 일본 기업 쪽 솜씨입니까?”

“네. 일본 언론에서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이슈를 기사화했습니다.”

내용은 간단했다.

매국노 코다 도시히로 이사. 더불어서 나온 이야기는 MPEG-2 원천기술을 팔아치운 일본 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이었다.

아직은 몇몇 언론에서만 이야기되지만 이게 끝이 아닌 것 같았다.

에플 주가 폭등과 관련해서 MPEG-2 이야기가 돌았다.

에플 차세대 제품에 이 기술이 들어갔다는 이야기 말이다.

에플의 주가 폭등은 결국 일본 대기업이 최민혁 실장에게 강탈당한 MPEG-2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조금씩 돌았다.

그러니 일본 내부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안 좋았다.

최민혁 실장은 곰곰이 고민했다. 그도 처음에는 무시할까 싶었는데, 이 일을 그냥 버려 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관점을 좀 달리하죠. 지금과 같은 흑색선전이 난무한 것은 정확한 진실을 외부에서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이 일은 한국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그런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솔직하게 다 알리자는 거죠. 진실은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니까.”

“…그건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요? 문제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아뇨.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퍼뜨려서 제가, 아니, 우리가 한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명확하게 알려야 해요.”

“…어, 어떻게 말입니까?”

“문제의 시작은 니시무라 야스시 소장 맞죠? IPS 원천기술 말이에요.”

“…네.”

“그쪽에 LC 전자와 오성 전자의 양산 막바지에 다다른 IPS 시제품과 결과물을 보내세요. 지금 진행되는 전반적인 사안과 앞으로 미래 가치에 대해서 말이죠.”

안 그래도 니시무라 야스시 소장은 최민혁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았다. 자칫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할지도 몰랐다.

“…저, 정말 그렇게 할 생각입니까?”

“뭔가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러면 그걸 다시 이용하죠. 어차피 노이즈 마케팅이니, 이번 일을 잘 활용하면 에플 홍보에도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주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미래 비전을 말하는 거죠.”

“…네.”

조성돈 팀장은 ‘주가’, ‘차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혁 실장이 뭘 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기는 했다.

이전까지는 몰래 일을 꾸몄는데, 이젠 작정하고 일을 벌이는 것이다.

늘 조용히 살겠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휴우, 하긴 이제는 숨겨서 넘어갈 일이 아니지.’

* * *

니시무라 야스시 소장은 IPS 기술 강탈 건 때문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가 최민혁 실장이 보낸 IPS 관련 자료를 받았으니.

그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서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다시 정신을 차라기가 무섭게 MPEG-2 관련 피해자를 불러 모아서 일본 정부에 노골적으로 항의했다.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의 스파이 행위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이 MPEG-2 기술 탈취 사건은 일본 정부에서도 진지하게 접근했다.

해외 산업 스파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결국 일본 외무성은 한국 외부에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이 사안은 재정 경제부 내의 최민혁 파벌에 의해서 최민혁 귀에도 들어갔다.

이게 전부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일.

최민혁조차 혀를 내둘렀다.

“우리 정부 참 빠르네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 공무원이 보일 수 있는 반응 속도가 아닙니다.”

조성돈 팀장은 굳은 안색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요즘 산업 스파이 이슈 때문에 더 빠른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정확히는 미국 정부에서 최근 산업 스파이 관련해서 해당 각국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아하, 결국 중국이겠군요.”

“네, 중국이 1위인 것 맞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이어서 우리 한국이 3위에 랭크되었습니다.”

“기술 탈취국으로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원래는 7위 정도였는데…….”

최민혁 실장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설마 저 때문에 4단계나 뛰어올랐다는 말입니까?”

“…….”

조성돈 팀장은 민망해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이번 일이 결국 미국 하원 블랙 리스트와 연동된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 이번 MPEG-2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을 질렀다.

그런데 역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 것이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일을 그냥 좌시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죠. MPEG-2 관련 문제 말입니다. 기술 확보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다 준비해 둔 것으로 압니다.”

“네.”

“그 자료를 전부 재정 경제원 쪽에 넘기세요. 아, 이왕이면 관련 기술도 다 합쳐서요. 우리 KM 전자가 그리는 방향을 대략 알 수 있도록요. 우리 KM 전자의 미래 이정표를 알리세요. 다만 중요한 원천기술 자료는 빼고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네. 반드시 해야 할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일본 정부에서 손을 쓸 수가 있어요. 그 산업 스파이 혐의 말입니다. 한국 외교관을 통해서 진실을 알릴 기회이니까. 아,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우리 KM 전자의 진정한 실력을 밝히는 것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날 잡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순간 ‘조용히 살고 싶다는 경영 철학과는 어긋나지 않습니까’라고 차마 질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최민혁 실장이 하고자 하는 말뜻을 금방 깨달았다.

힘을 숨긴다고 다가 아니었다. 차라리 강력한 힘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 오히려 쓸데없는 구설수를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오는 영향력은 덤이고 말이다.

이번 세계 경영자 모임이 그 증거였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나발을 불던 분이 아닌가? 설마 생각을 바꾼 걸까?’

“…….”

최민혁 실장은 물론 조성돈 팀장의 갈등 어린 모습을 보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하지만 민망해서 그에게 굳이 발언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 자기 합리화를 했다.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으니까.’

* * *

재정 경제원 장관이자 부총리 김웅배는 갑자기 모인 회의에서 일단 침묵한 채 기다렸다.

이환채 차관이 조금 전에 한 설명을 묵묵히 떠올려 보았다.

바로 MPEG-2 기술과 관련해서 일어난 모든 일 말이다.

황당한 것은 이 자료에 전 미쓰비시 전기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어떤 식으로 MPEG-2 기술을 매각했는지 잘 나와 있었다.

법적인 하자는 없었다.

산업 스파이가 흔히 보이는 기술도 아니었다.

이환채 차관 역시 혀를 내둘렀다.

“미쓰비시 전기가 아무래도 MPEG-2 기술 가치를 가볍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른 일본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MPEG-2와 관련된 매출이 일어나지 않아서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그랬다.

미쓰비시 전기가 보여주듯이 일본 기업은 MPEG-2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비록 표준 협회에 나가서 일을 주도적으로 하기는 했다.

다만 그들과 실제 미쓰비시 전기를 움직이는 주도 세력의 의견이 달랐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미쓰비시 전기의 실세 때문에 외면당한 것이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것 같습니다. 그런 차에 들어온 시즈벨의 좋은 제안을 무시하지 못한 겁니다.”

“미쓰비시 전기 이사회에서는 그런 점을 몰랐다는 건가?”

“네. 아마 알기는 알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일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네. 을사오적에 못지않은 것 같아.”

“그들도 몰랐을 겁니다. 우리도 지나고 나서 안 일이니까요.”

“새삼 최민혁 실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

“아직 최민혁 실장의 진정한 능력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능력만 본다면 산업 스파이라고 오해할 만합니다.”

그가 다른 예로 든 것은 미국 기술을 탈취한 산업 스파이에 대한 것이다.

미국 기술을 노린 이들 역시 지금 일본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한국이 미국 산업 스파이 국가 중에 무려 3위에 랭크했기 때문이다.

이환채 차관은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부각했다.

김웅배 장관은 불법을 용인할 수가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휴, 이거 쉬운 일이 아니군.”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복잡한 내막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 * *

재정 경제원 내에서 갑자기 열린 ‘최민혁 실장’ 안건은 간단하지 않았다.

내부 협상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외부 조언을 구해야 했다.

결국 재정 경제원 회의실에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ETRI를 주도하는 오현종 실장과 김승구 팀장이었다.

두 사람은 갑자기 재정 경제원의 요청을 받아서 이 자리에 나타났다.

다만 곧이어서 자신 앞에 놓인 서류를 살피고는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 실장님?”

이환채 차관이 나서서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오현종 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여러분은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을 전혀 모르기에 이런 회의를 하는 겁니다. 아마 그분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회의 따위는 할 수가 없어요. 산업 스파이라니, 하, 그게 말이 됩니까?”

큰소리를 친 오현종 실장은 일단 자료부터 천천히 살폈다.

그가 원래 아는 최민혁 실장의 능력은 CDMA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자료는 MPEG-2가 그 기준이었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MPEG-2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기술을 거쳐서 결국 목적지는 지능형 인공지능이었다.

특히 애니와 관련된 기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애니 레벨화 기술은 그도 이 자리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

이렇게 시작된 탄성.

“설마…….”

이런 정보는 또 처음이었다.

카더라를 통해서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넘긴 자료는 그들이 아는 것과는 또 달랐다.

“맙소사.”

김승구 팀장 역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본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전문가답게 최민혁 실장이 보내온 기술 가치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설사 핵심 기술 부분이 빠졌다고 해도 자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 기술이 완성되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HY 자동차였다.

예상과는 달리 HY 자동차는 미래 자동차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향후 20년간 무려 10조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막연한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다 나와 있었다.

“…제가 최민혁 실장님에 대해서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요.”

“네? 무슨 말씀입니까?”

오현종 실장은 힐끗 이환채 차관을 비롯한 재정 경제원 실무진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잘 이해를 못 하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이 자료는 전문가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난감했다.

설득을 시키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는 결국 전화를 걸어서 주차장에 혹시나 해서 준비해 온 자료를 가져오라고 연구원에게 지시했다.

바로 CDMA 관련 자료였다.

* * *

요즘 CDMA 사용자가 늘기는 해도 눈에 띄게 늘질 않아서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CDMA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일단 CDMA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최민혁 실장님이 직접 관여한 부분을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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