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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56화 (95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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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CDMA 교환기였다.

이 교환기는 CDMA 단말기와는 달리 시스템이라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채널 용량의 변화, 통화 품질, 주파수 특성에 따른 간섭, 보안 문제, 여기에 전력 소모 역시 빼놓기 힘들었다.

이런 문제는 분산 제어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다시 시스템 구조, 병렬 처리 문제, 실시간 운영 시스템, 거기에 신뢰도 향상과 관련된 시스템과 연결된다.

이런 각각의 모듈 부분은 따로 나누어서 설계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시스템 구조만 관련해도 당장 필수적인 자료는 500페이지 보고서 수준으로 해서 무려 50권이 넘었다.

오현종 실장은 그나마 이 보고서를 줄여서 재정 경제원 공무원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딱 한 시간 강의.

그것만으로 다들 질려 버렸다.

그들은 각자 ETRI에서 가져온 보고서를 나누어서 살피다가 덮어버렸다.

설명을 듣고, 봐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CDMA 시스템과 관련된 다양한 부분은 이와 비슷한 설명이 필요했다.

오현종 실장은 지루한 설명을 하면서 가끔 최민혁 실장이 무엇을 했는지 설명했다.

“분산 구조에 대한 설계를 최민혁 실장님이 도와줬다는 것은 저희도 아직 정확히 모르는 사안입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이 조언대로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설명은 꼬리를 물면서 계속 새끼를 쳤다.

그렇게 CDMA 시스템 설명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

이환채 차관도 뒤늦게 오현종 실장의 의도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단순히 몇 마디 말만 했다면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설명을 듣자 이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다만 계속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서 오현종 실장의 강의를 막았다.

“최민혁 실장님이 CDMA 쪽에도 정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오현종 실장은 여전히 만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기여요? 핵심은 최민혁 실장님이 다 했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 최민혁 실장님이 없었다면 적어도 2년은 더 걸렸을 겁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지금처럼 적극적이지 않을 테니, 글로벌 시장 형성은 시간이 더 걸렸겠죠.”

라고 한 이후에 이어진 추가 설명.

단순히 CDMA 단말기가 아니라 기지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설명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아우르는 설명 말이다.

조금 전의 설명에서 한 단계 수준이 올라갔다.

특히 최민혁 실장이 제안한 CDMA 관련 기술 특허는 가볍게 생각할 일이었다.

이환채 차관을 비롯한 재정 경제원은 열심히 들은 끝에 가까스로 일부만을 이해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믿을 수가 없네.’

지루한 설명이어도 그게 곧 백그라운드였다.

그것이 있기에 최민혁 실장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다.

오현종 실장은 그제야 설명을 MPEG-2 쪽으로 넓혔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MPEG-2와 관련된 미래 기술 말이다.

그건 일본 기업이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최민혁 실장님이 MPEG-2 기술을 도둑질했다라?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일본 기업은 그런 가치를 전혀 몰랐으니까.”

“하면 이번 일은 뭐라는 말입니까?”

오현종 실장은 피식 웃었다.

“보통 이런 행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이라고 하죠!”

“…인수합병이라.”

조금은 맞지 않는 해석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럴듯하게 맞아 들어갔다.

그제야 재정 경제원 공무원들은 혀를 찼다. 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은 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자회사가 끼어 있었다. 이후 시즈벨이 뒤늦게 그 자회사를 인수했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 과정이 이상했을 뿐이다.

거기에 따른 증거 자료가 지금 자신 앞에 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지만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의 능력 일부를 깨닫고는 다들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들이 한때 최민혁 실장을 상대하려고 했으니까.

‘가만, 이런 사실을 알아도 과연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공격할까?’

* * *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본 정부는 한국 외무부에 최민혁 실장의 산업 스파이 행위를 계속 따졌다.

다만 그들도 얼마 있지 않아서 한국 외교부를 통해서 자료를 받고 나서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일본 검찰까지 동원해서 일을 크게 벌이려다가 침묵하고 만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최소한 한국 재정 경제원이 설명하면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일본 언론 역시 자고 일어나니 최민혁 실장의 스파이 행위 관련 기사를 접어버렸다.

다만 이 여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최민혁 실장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덕분에 일본 내의 풍파를 안 스티븐이 또 에플 이사회 압박 때문에 최민혁 실장을 찾았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최민혁 실장에게 달려갔다.

얼마나 빨랐는지 한국 언론사도 스티븐과 인터뷰를 하려다가 허탕을 치고 말 정도였다.

스티븐은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숨을 헐떡이면서 최민혁 실장이 숨어 있는 경기도 도심의 한 펜트하우스를 찾았다.

산을 끼고 있는 이 펜트하우스는 대략 200평이 넘었다.

높은 담으로 보안도 튼튼하고 말이다.

“…도대체 어쩔 생각입니까?”

최민혁 실장도 크게 당황한 스티븐 표정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안녕하세요.”

“하, 미안합니다. 인사부터 해야 하는데,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냉철하던 스티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앞으로 어쩔 생각입니까? 일본 외무성이 난리가 났던데, 괜찮은 겁니까?”

“아, 일본 말입니까?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네? 어떻게 말입니까?”

“그 부분은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최민혁 역시 이런 소동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가짜 뉴스는 아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일본 정부나 언론사가 사과 따위를 할 리가 없었다.

최민혁은 굳이 하고자 하면 할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손대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스티븐은 천하태평인 최민혁 실장 모습에 혀를 내두르다가 일단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일본은 그렇다고 하죠. 아니, 갑자기 대주주가 에플 지분을 팔아치우는데, 걱정을 안 합니까?”

“이제 1%, 아니, 겨우 1.5% 정도 팔아치웠을 뿐입니다.”

스티븐은 황당해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식은땀을 닦지도 못한 채 최민혁 실장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오해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스티븐이 왜 저러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에플 공매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거랑 주식을 팔아치우는…….”

“이대로 그냥 놔두면 에플 주가에 거품이 너무 많이 낍니다. 그렇게 되면 에플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모릅니다. 그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투자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가 있습니다.”

스티븐 역시 모르지 않았다. 그 역시 에플 주가에 대해서 많이 걱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에플 이사회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들은 에플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와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도 에플 주가는…….”

최민혁 실장도 굳은 얼굴을 한 채 반박했다.

“네. 그게 문제예요. 여전히 에플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것 말이죠.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그만큼 에플 주가의 왜곡이 심하다는 뜻입니다.”

“으음.”

스티븐 역시 신음성을 터뜨렸다. 이 문제는 에플 내에서도 계속 경고음이 나왔다. 자칫하면 불법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곧 SEC, 아니, FBI의 간섭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미국 IRS마저 움직일 수 있었다.

실제로 이미 비공식적으로 경고까지 했다.

최민혁 실장도 스티븐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죠.”

“…네.”

* * *

최민혁 실장이 잠시 머무른펜트 하우스 뒤편으로 산길이 나 있었다.

한국 산자락을 잘 보여 주는 산세였다.

공기도 맑고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등산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스티븐은 이런 한국 산에서 호연지기마저 느끼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오해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최민혁은 산꼭대기에 나 있는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스티븐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에플 공매도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제 자산으로도 완전히 대응하기가 힘들죠. 시장의 흐름을 강제로 막기는 힘드니까요.”

“지금 에플 주식을 매각해서 최악의 사태에 대해서 대비를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

최민혁 실장은 당혹감에 사로잡힌 스티븐의 표정에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차마 IMF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줄 수가 없었다.

‘실탄은 넉넉할수록 좋으니까.’

“제가 확실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저와 에플은 계속 같이 갈 겁니다. 지금은 에플 지분을 매각해도 결국 다시 에플 지분을 매입할 테니까.”

스티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만약 그 반대로 에플 주가가 폭등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솔직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는 힘들 겁니다. 이번 아이팟이나 아이컴이 대박도 지금 주가를 설명 못 해요.”

“하지만 에플의 미래 가치는…….”

“에플의 미래 가치라. 좋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차기작이 연이어서 대박을 이어간다면 상황이 다를 겁니다. 한 10년 지나면 지금 에플 주가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

스티븐은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게 최민혁 실장이 미래를 위해서 대비한 인공지능 애니와 스마트폰 기술 때문이라는 것도 어렴풋하게 느꼈다.

문제는 역시 타이밍이었다.

지금 이 시점의 기반 기술과 인프라도 포함해야 한다.

그 한계 때문에 기반 기술이 있어도 상업화 자체는 한계가 존재했다.

‘설마 그런 점까지 고려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물론 이제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경험해 본 최민혁 실장은 정말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스티븐은 대략적인 그림을 거리다가 최민혁 실장에게 다시 질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그에 대해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냉수 한 잔 주십시오!”

최민혁 실장은 눈짓으로 김명준 과장에게 신호했고, 곧 사용인 한 사람이 들어와서 스티븐에게 냉수와 다과를 내놓았다.

“…….”

스티븐은 냉수 한 잔을 마시고 나서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특히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진행한 일 말이다.

그조차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기술도 있었다.

그런데 에플 역시 그 기술과도 관련이 있었다.

최민혁 실장 입장에서는 에플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LC 전자, HY 전자를 끌어들인 것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에플을 토사구팽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티븐이 염려한 것을 깨달았다.

“그 두 회사와 에플은 영업권이 다릅니다. 일부 성격이 겹치기는 해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일까지 다 손을 댈 생각은 없습니다.”

“…네.”

스티븐은 잠깐 다시 고민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느꼈다.

다만 최민혁 실장과의 대화에서 미래를 어렴풋하게나마 예측할 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최민혁 실장은 쿨하게 스티븐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는 애초에 스티븐이 하려는 일을 절대로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 일까지 다 할 수는 없지.’

* * *

최민혁 실장은 시간이 지나면 에플 지분 매각 이슈는 가라앉을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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