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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33화 (93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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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LC 전자와 HY 전자 일은 간단하다면 간단할 수 있어요. 하지만 꼬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다른 문제보다 더 심각해집니다. 아시죠?”

“…네.”

장승일 실장은 굳이 자신이 설명하지 않아도 최민혁 실장이 무슨 문제인지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그로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LC 전자와 HY 전자 일에 앞서서 우선 우리 경제 변화의 큰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국내 시장은 외국 기업에 완전히 공개될 겁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 기업이 현상을 유지하려면 무한경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 대기업 대다수는 이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네.”

최민혁 실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승일 실장의 모습에 만족했다.

“이제 보호막은 사라질 겁니다. 한국 대기업들은 그 대안이 필요합니다.”

“꼭 우리가 아니어도 LC 전자 같은 대기업은 대안을 찾는다는 말씀이군요. 그 일이 필립스 같은 기업과 손을 잡는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죠. 다만 개혁에 집중하겠지만, 무조건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이제 한국 내수 경제는 독과점이 사라지게 된다.

금융 혜택 역시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자본 자유화 정도에 따라서 한국 대기업은 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가히 한국 기업이 바라는 기업의 정석이라고 할 만했다.

한국 대기업 대다수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재정 경제원이 굳이 최민혁 실장의 국가 부도설을 무시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였다.

그들도 자존심이 있지만, 최민혁 실장의 실적은 그런 자존심을 무시해서라도 살펴야 했다.

LC 전자가 굳이 무리수를 둬가면서도 최민혁 실장을 벤치마킹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단순히 배신 때문이다? 절대로 아닙니다. 기업 생존의 문제이니까. 아니, 거기에 탐욕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고 해야죠.”

장승일 실장은 묵묵히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LC 전자 보복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정확히는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LC 전자 쪽에서는 사전에 준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LC 전자가 오성 전자가 하는 것을 보고도 저를 얕잡아 볼 것으로 생각합니까? 천만에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제가 보복할 수 없도록 이미 떡밥을 충분히 깔아놓았습니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실 생각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솔직히 적당한 선에서 딜을 하기를 바랐다.

이번 일이 격화되면 상황이 심각하게 변질될 수가 있다.

만약 LC 전자가 흔들린다고 생각해 보라.

당장 한국 언론부터 최민혁 실장을 쥐 잡듯이 공격할 것이었다.

물론 최민혁도 그걸 잘 알았다.

“조용히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자신이 말하고서도 무안해서인지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 자신은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꼭 알고 싶었다. 최소한 문제가 터지기 전에 전조라도 알아야 했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그게 좀 민감한 방법이라서 지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네?”

“김연석 팀장을 말하는 겁니다. 그 양반이 있으면, 제가 뜻대로 도와줄 수 없어요. 그러니 일단 지켜만 보기 바랍니다.”

“…설마 김 팀장에게 직접 손을 쓸 생각입니까?”

“두고 보세요. 불구경이나 하란 뜻입니다. 김연석 팀장이 만만한 인물은 아니니까. 괜히 어설프게 건드려 봐야 소송에서 못 이깁니다.”

최민혁 실장은 말을 하면서도 전생의 정치인 중에 정치적 수작으로 무려 10년 가까이 수사를 피해 간 인물을 떠올렸다.

그런 인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김연석 팀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김연석 팀장이 이대로 쭉쭉 성장한다면 그 자신도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싹은 미리 자르는 것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도 할 말이 많았지만 결국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로서는 영문을 잘 알 수가 없었다.

* * *

최민혁 실장은 장승일 실장과 헤어진 후에 다시 계획을 점검했다.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좀 달랐다.

‘우리 부회장도 아직 세팅이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일 수 있었다.

자신이 선수 칠 기회 말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움직이면, 최문경 부회장 역시 연관될 수밖에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김연석 팀장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장기적으로 자신을 노릴 비수로 김연석 팀장을 KM 그룹 전략 기획실에 박아둘 생각이었다.

‘이걸 몰랐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뻔했어.’

사실 그는 KM 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KM 그룹 인사에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의 손발인 KM 그룹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민혁은 물론 김연석 팀장이라는 카드로 최문경 부회장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르잖아? 김연석 팀장 카드를 최대한 이용해서 우리 부회장을 감방에 보낼 수 있을지도.’

그는 나름 희망을 품었다. 이번 일을 잘 활용해서 최문경 부회장을 정리하면 게임 엔드였다.

그래, 게임 엔드.

그는 결국 김명준 과장에게 지시해서 중앙지검 박두영 부장검사와 약속을 잡았다.

그는 연락을 전했다는 답을 듣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네?”

조성돈 팀장은 영문을 몰라서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 역시 잘 모르는 일이었다.

최민혁은 주차장에 내려와서 대기한 차량에 오르면서 툴툴거렸다.

“중앙지검으로 갑시다.”

“네?!”

최민혁은 크게 당황한 조성돈 팀장은 이해해도, 아직 영문을 모르는 김명준 과장의 표정에 혀를 찼다.

“아니, 제가 지시한 거 잊었습니까?”

“하지만 약속 시간과 장소는 다시 알려준다고…….”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제가 다시 연락해서…….”

“아뇨. 그러지 마세요. 이왕이면 좀 더 리얼한 모습이 시선을 끌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최민혁 실장은 툴툴거렸다.

“이제 힘숨찐 놀이는 그만할 겁니다.”

“…힘숨찐이라니, 그게 무슨.”

“힘을 숨긴 찐따란 말입니다. 아, 그렇지.”

미래의 웹툰에서는 유명한 말이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최민혁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 사람은 물론 서로 귓속말로 속닥거렸고, 뒤늦게야 수긍했다.

조성돈 팀장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자 자신의 추론을 말하고, 그걸 김명준 과장이 뒤늦게 알아들은 것이었다.

* * *

“…….”

중앙지검 입구 안내 경비원은 최민혁 실장을 접하고 나서는 침묵했다. 그는 사소한 질문을 하기에 앞서서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전화했다.

[네? 누구요?]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그 방송에 나와서 국가 부도설을 주장한 그분입니다. 네, 정말입니다. 본인 맞습니다.]

[자, 잠깐만 붙잡고 계세요. 다른 사람이 붙는 것을 막아요!]

[…네.]

박두영 부장검사는 정말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중앙지검 로비에 바로 나타났다. 그는 마치 300m를 전력 질주한 선수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최, 최민혁 실장님?!”

그는 크게 당황했다. 경비들부터 시작해서 통로를 오가는 다른 검사들의 시선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최민혁 실장을 알아본 이도 있었다.

그 탓에 중앙지검 입구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맙소사, 정말 최민혁 실장이잖아?]

[아, 국가부도설을 주장한 그 최민혁 실장을 말하는 거야?]

[맞아,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심지어 사회단체에서 유언비어를 유포한다고 최민혁 실장을 우리 검찰에 고소까지 했잖아!]

[정말이네. 와, 신기하다. 방송이 워낙에 잘 나와서 놀랐는데, 실물은 더한 것 같아. 완전 연예인 해도 되겠다.]

[연예인이 뭐야? 지금 어지간한 톱급 탤런트보다 더 유명하잖아.]

[하긴 돈, 권력, 사랑 안 가진 것이 없어.]

[너도 봤구나. 이지수 박사 말이야?]

[난 이지수 박사보다 그 옆에 동행한 헬렌 박사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 딱 내 타입이잖아!]

최민혁 실장을 둘러싼 이야기가 워낙에 많아서 검사라고 해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더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국 재벌 대다수는 검찰 권력의 눈치를 봤다.

그들이 검찰 장학생을 꽂아 넣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요즘 국민 실장으로 주목받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국민 실장이란 별명은 최민혁 실장이 한때 KM 전자 오너인 자신이 왜 이사진에 합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아직 배가 고프다. 난 몸으로 뛰는 실장이 좋다!’고 발언해서 얻은 것이었다.

당당함.

오만함.

검사도 최민혁 실장의 그 모습에는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 *

“…….”

박두영 부장검사는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본 이들이 그다음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이를 악문 채 최민혁 실장 팔을 잡고는 안으로 끌고 갔다.

최민혁 실장은 박두영 부장검사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 피식 웃었다.

그 역시 박두영 부장검사가 왜 저렇게 당황하는지 알았다.

이미 중앙지검 내에는 박두영 부장검사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다만 이건 소문일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카더라 정도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은 정말 바쁜 사람이다.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중앙지검 로비를 찾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대상자가 자신이었다.

이번 일로 인해서 찌라시가 증명이 되었으니까.

중앙지검 검사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놀람. 시기. 질투. 탐욕. 미움.

박두영 부장검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최민혁 실장을 비상구 쪽으로 끌고 와서 소리쳤다.

“도,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최민혁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도는 이야기가 너무 극단적인 것이 많았다.

당장 재정 경제원이 있으니까.

재정 경제원과 최민혁 실장 사이의 갈등을 모르는 공무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만약 정부가 이 사실을 알면 평온한 지금까지의 생활이 물 건너갈 것이었다.

최민혁은 오히려 당당했다.

“이젠 숨길 필요가 없어서요.”

“네?”

“박 부장검사가 제 측근이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어요.”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최민혁 실장은 너무 당황해서 이성을 잃은 박두영 부장검사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박 부장검사가 좀 더 빨리 클 필요가 있어.’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자신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실적이 필요했다.

스타 검사가 될 기반이 말이다.

“제보할 것이 있어요.”

“…무슨 뜬금없는 제보입니까? 그리고 최 실장님이 직접 이렇게 나서면 어떻게 합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박두영 부장검사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는 주춤 뒤로 물러난 채 심호흡까지 하면서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았다.

* * *

박두영 부장검사는 김명준 과장이 눈치껏 사 온 콜라를 받아서 단숨에 마셨다.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동질감이 가득한 조성돈 팀장의 시선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전처럼 힘숨찐 흉내를 하는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마치 자신이 중앙지검 검사라도 되는 양 비상구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에게 손짓했다.

박두영 부장검사 역시 비상구 통로 쪽이 어수선하다는 것을 깨닫자 최민혁 실장을 따라서 계단을 허겁지겁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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